첫 번째 사건: ‘듣지 않는’ SNS
대통령이 X 이용자 ‘풀잎이’를 차단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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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이’는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청년 후보 기탁금 문제에 대통령이 의견을 낸 것을 두고 “대통령인지 민주당 당대표인지 착각하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고, 그 후 계정이 차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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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민주당 전당대회 국면에서 한 청년 후보가 기탁금이 비싸다며 눈물을 보였고, 대통령은 자신의 X를 통해 청년 후보 기탁금 인하를 제안했다. 민주당은 이를 수용해 최종적으로 기탁금을 낮췄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대통령은 다시 X를 통해 “당원으로서 법률과 당헌·당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당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청년 기탁금 제안은 특정 후보를 편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직접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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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당무 개입 문제를 제기한 ‘풀잎이’ 계정은 대통령의 X 계정으로부터 차단되었다. 대통령실은 해당 조치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SNS는 정치인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다. 대통령 자신이 그렇게 말해왔고, 취임사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라고 했다. 이 사례가 그 소통의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통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듣는 것, 명확히 말하는 것, 설명하는 것.
이재명 대통령의 X 차단 기준
2016년 8월 23일, 성남시장 이재명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자신의 계정에서 차단하는 기준을 밝힌 글이다. 1) 일베, 2) 도배, 3) 허위 사실, 4) 음해. 그리고 차단의 목적은 친구들의 글을 읽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에게 트위터는 듣는 공간이었다.
이 기준으로 풀잎이의 사례를 보자. 일베, 도배, 허위 사실, 음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이 당무 개입 지적에 직접 반박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논쟁할 가치가 있는 주장이었음을 방증한다.
최근 호르무즈 파병을 비판하며 “이재명 당신 아들부터 파병하라”고 쓴 계정도 대통령의 계정으로부터 차단됐다. 자녀를 끌어들인 조롱은 2016년 기준의 음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문제는 기준의 일관성이다. 무례하지 않았고, 정책을 근거로 비판했고, 대통령이 직접 답까지 한 상대도 차단됐다. 그렇다면 차단의 기준은 무례함이 아니다. 남는 공통점은 단 하나, 비판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듣기 위한 공간이라던 대통령의 X 계정은 비판이 삭제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사건: 말하지 않는다
2026년 6월 27일, 이재명 대통령은 X에 이렇게 썼다.

이 글의 문제는 주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누가 부처이고 누가 돼지인지 명시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최대한 명료하고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에 비춰보면, 이 모호함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층 전체가 해석 투쟁에 빠졌고, 서로 주장이 엇갈리며 갈등이 터져 나왔다.
맥락이 있었다. 하루 전 유시민 작가가 “지지자들은 증축을 원하는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원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고, 같은 날 김민석 총리는 대통령 비판을 “과잉 자신감에 의한 난”에 비유했다. 그 직후 이 게시물이 올라왔다.
만약 이 글이 국민의힘이나 보수 언론을 향한 것이었다면 대통령은 주어를 명확히 했을 것이다. 정치인 이재명이 국민의힘 계열 정치집단을 비판할 때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그의 과거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화법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의장 후보 권리당원 투표가 시작된 날, 대통령은 선호투표제 제도 설명 글을 올렸고, 그 글과 함께 조정식 의원에게 투표한 지지자의 캡처가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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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이 있다. 대통령은 결코 특정인에 대한 지지를 직접 표명하지 않는다. 대신 제도를 설명하거나, 원칙을 말하거나, 격언을 인용한다. 그럼에도 신호는 정확히 전달되고 당은 반응한다. 부인 가능성을 확보한 채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메시지가 모호하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고, 이는 곧 해설자를 들끓게 한다. 여기서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해석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른바 ‘뉴이재명’ 세력이다. 이들은 “정청래가 싫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신 해석해 유포하고, 유시민을 반명으로, 김어준을 반명 수괴로 규정한다.
대통령이 직접 말하지 않았으니, 메시지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그러나 효과, 즉 지지층의 반응과 해석은 발생한다. 해석의 권한이 제3자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명확히 말하지 않는 것과 소통이 뒤섞여 지지층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세 번째 사건: 설명하지 않는다
9월 1일, 정부는 세제 개편안을 수정했다. 비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를 9억 원으로 낮추려던 안을 12억 원으로 되돌렸고, 세 부담 상한을 200%로 올리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실거주 원칙을 내걸고 발표한 지 불과 29일 만이었다. 입법예고 기간에 정부안을 이 정도로 수정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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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원칙은 단순한 세율 조정이 아니었다. 집을 사는 곳으로 볼 것인지, 자산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의 철학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것을 되돌린 데 대해 일관성이 없는 개혁 후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29일 만에 정책이 뒤바뀐 데 대해 대통령은 X에 이렇게 썼다.
“이는 고가 비거주 1주택의 종부세 변경, 다주택 또는 초고가 주택의 종부세 변경은 간과한 비판입니다.”
“종부세 인상 한도 200%는 정의롭고 150%는 부정의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호오가 교차하는 정책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12억, 150% 그대로 유지했다면 비난이 없었을까요? 이제 주 공격 지점이 사라졌으니 다른 걸 또 걸고넘어질까요?”
“허위에 기초한 선동과 음해, 무조건적 비난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 잘하기 경쟁이 꼭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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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왜 29일 만에 정책이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실거주 원칙을 왜 후퇴시켰는지, 어떤 판단에 따른 것인지,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인지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그 빈자리를 비판자의 자격과 동기를 문제 삼는 데 글의 대부분이 쓰였다.
논점도 바뀌었다. 대통령은 “정책 입장을 바꾸는 것은 부정의고 고수하는 것은 무조건 옳은 것일까요”라고 되물었는데, 비판의 요지는 “정책을 바꾸는 게 잘못됐는가”가 아니라 “왜 후퇴했는가”였다.
“호오가 교차하는 정책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문장은 정책의 방향을 취향의 문제로 격하시켰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어떤 정책 후퇴도 후퇴가 아니게 된다. 그저 ‘호오’의 선택이 바뀐 것일 뿐이니까.
“강성 주장”, “헐뜯는 것”, “선동과 음해”라는 표현이 향한 대상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표현들은 야당이나 검찰, 보수 언론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 후퇴에 실망한 사람들을 향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후퇴에 실망한 이들, 뒤집어 말하면 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시장이 그에 맞춰 움직이는 성격을 띤다. 29일 만에 제시했던 방향을 뒤집는다면 시장은 앞으로 어떤 신호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 신뢰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쓰여 있지 않았다.
네 번째 사건: 구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게시물들은 모두 대통령의 개인 계정에서 나왔다. 대통령실이 2025년 7월부터 공식 X 계정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부터 써온 개인 계정으로 국정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공식과 사적 발언 채널이 구분되지 않는 이 방식은 사소한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의 생일 케이크로 SPC 제품이 등장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 한 예다. 정치인 개인 계정이었다면 장점이었을 특유의 즉흥성과 격식 없음이 국정이라는 공적 영역까지 넘어오면서 단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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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대통령의 X 사용 방식이 ‘경청’보다는 ‘대응’에 가깝다는 점이다. 비판이 제기되면 반박이 이어졌고, 반박 이후에는 차단이 있었으며, 정책이 후퇴했을 때는 설명 대신 비판자에 대한 규정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모든 대응이 공식 채널이 아닌 개인 계정에서 구분 없이 이뤄졌다. 이러한 방식이 대통령이라는 직의 성격과 부합하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같은 도구, 다른 무게
2014년, 성남시장 이재명은 토요일 오후 도로를 순찰하다 찌그러진 환풍구 덮개를 발견하고 트위터에 올렸다. 3시간 만에 조치가 완료되자, 시민들은 환호했고, 안전행정부가 표창하면서 전국의 지자체들이 이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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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비판은 없지 않았다. 대중이 지켜보는 공간에서 결정권자가 실무자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 적절하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재명 시장은 “칭찬 못 할망정 뭐 그리 불만?”이라고 응수했다. 이 방식은 대통령이 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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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결과에 있다. 2014년에는 그 방식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맨홀 뚜껑이 세 시간 만에 고쳐졌고, 시민들은 박수를 쳤다. 행정력의 신속함이 격식에 대한 비판을 상쇄했다. 그 성공이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지금은 위상이 다르다. 시장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문제다. 주어 없는 문장 하나가 진영 전체의 해석 경쟁으로 이어지고, 그 해석이 낙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도구, 같은 방식이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대상도 맨홀 뚜껑이 아니라 당의 경선 룰, 국회의장 선출, 부동산 세제 개편처럼 무게의 차원이 다른 사안들이다.
이 방식은 이제 대통령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여당 당대표도 유사한 방식으로 SNS 메시지를 내고 있어, 하나의 소통 방식이 정부 여당 전반의 문법으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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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그는 트위터를 “친구들의 말을 읽는 곳”, 듣기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그 정의가 유효하다면, 지금 계정에 있어야 할 것은 반박이 아니라 경청이고, 차단이 아니라 포용이어야 한다. 도구는 그대로지만 그 도구를 쥔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고, 크게 바뀐 자리는 같은 방식도 다른 결과를 낳게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인지는, 이 글이 이미 답했다.

편집: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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