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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회차 순서를 바로 잡습니다. 이번 편은 지난 21편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글이 ‘22편’이고, 전에 ‘22편’으로 공개된 것이 ‘23편’입니다.
회차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올리겠습니다.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
잔금 없음, 희망 없음
흥분한 어머니의 고함에,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예?”
어머니는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듯 거듭 외치셨다.
“주공 ○○동 ○○○호! 우리 아저씨 와서 팔았소, 안 팔았소?”
아주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는 여기서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 말이 어머니의 화를 더 돋웠는지, 어머니는 눈에 불을 켜고 소리치셨다.
“우리 집인데 뭘 말해줄 수 없다카노! 말 안 해주면 내 오늘 이 앞에서 칵 죽을 삐끼다.”
부동산 안의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소란스러워지자 안쪽에서 다른 손님과 상담하던 남자가 다가왔다. 부동산 주인인 듯했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집, 여기서 팔았소 안 팔았소?”
부동산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안쪽에 손님도 있는 데다 더 이상 난장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는지, 이내 순순히 대답했다.
“예. 여서 팔았습니다.”
“얼마에 팔았소?”
“1억 8천에 파셨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서 맥이 탁 풀렸다. 어머니는 가까스로 말을 이으셨다.
“집을 팔았으면 중도금하고 잔금 남았을 거 아이요. 그거라도 주소.”
어머니는 절실했다. 이제야 겨우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란 희망. 당신 인생에서 거의 유일했던 희망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것이 너무나 뼈아팠다. 하지만 부동산 주인의 대답은 확인사살에 가까웠다.
“그런 거 없습니다. 일시금으로 다 받아 가셨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올 때와 달리 낯빛이 하얗게 질린 어머니는 비척비척 걸으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망할 놈들… 집값 뛰는 와중에 집 판다고 오니까 호구 잡았구나 싶어 돈을 어떻게든 모아 한 번에 줏는가베…. 망할 놈들…. 이놈도 망할 놈이고 저놈들도 망할 놈이네….”

©게티이미지(링크)
모든 정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도 가족과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팔아치운 아버지에게 깊이 화가 났다. 동시에 큰 실망감도 들었다.
아버지에게 우리의 존재란 무엇이었을까? 어떤 목적과 의도로 집을 파셨든,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리 만무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살아온 방식이 그랬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새집과 그로 인한 이익이 아버지라는 사람의 그릇에는 담을 수 없는 과분한 것이라 일이 꼬인 것 같기도 했다. 혼자만의 길을 가는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번듯한 집과 가족이란 처음부터 차고 넘치는 것들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어머니 역시 다음 날 낮에 어디론가 나갔다가 저녁 무렵 손에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들고 돌아오셨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차갑고 정돈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야기 좀 하자.”
조용하지만 방 안 전체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정적에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껐다.
“집…. 얼마에 팔았노?”
“... 1억 8천.”
“왜 팔았노?”
“주유소 하는 사람이 주유소 넘긴다 카길래, 내 모아논 돈이랑 보태서 살라고 팔았다. 주유소 사가꼬 시골에 있는 삼봉이 데려와 일 시킬 끼다.”
“니가 인간이가? 니 머리속에는 느그 동생, 느그 형제밖에 없나? 우리는 머고? 가족도 아니가? 니 맘대로 살 거면 결혼은 왜 하고 아는 왜 낳았노?”
날이 선 채로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깊은 탄식을 뱉으며 아버지 앞에 봉투를 내미셨다.
“이혼 서류다. 보고 도장 찍어라. 애들은 두고 니 기름차만 가지고 가라. 주유소를 하든 느그 동생이랑 시골 가서 농사를 짓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라.”
평생 구박받고 매 맞으며 살던 어머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태도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 역시 내심 놀라셨을 것이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이미 자랄 만큼 자란 탓인지, 두 분의 이혼 논의에도 내 마음엔 별 동요가 일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라면 차라리 갈라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평생 어머니가 못생기고 촌스러워 어디 데리고 다니기도 부끄럽다며 무시하던 아버지였다. 이참에 취향껏 애교 많고 술도 같이 마셔줄 수 있는 예쁜 사람을 찾아가시고, 어머니도 당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줄 상냥한 사람을 만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을 터였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이혼해야 했을 가정에서 자란 아이’ 중 어느 쪽이 더 문제가 많은가를 두고 댓글 창이 반반으로 갈려 논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혼을 하면 경제적 빈곤 탓에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글쎄…. 나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소리였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아버지가 제대로 된 생활비조차 주지 않았고, 먼 훗날의 일이지만 아버지의 노동력 상실로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그리고 동생이 자라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상처와 그로 인해 성격마저 극히 방어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것을 돌이켜보면, 이때 두 분이 갈라서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류봉투에서 꺼낸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는 이내 서류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나이 묵고 이혼하면 머 하긋노. 쫌 기다리 바라.”
말을 마친 아버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다. 항상 방안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시던 분이 말이다.
이혼을 하게 되면 남들에게 그나마 ‘번듯한 가장’으로 사람답게 살고 있음을 증명할 수단이 사라져서였는지, 아니면 정말 뒤늦게 반성하고 잘살아 보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버지가 우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벌면 그만이라던 사람
며칠 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이틀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실종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셋째 날 아침, 아버지는 어두운 얼굴로 돌아왔다.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이고? 어디 갔다 왔노?”
“... 사기당해가…. 주유소 사장 찾으러 댕깃다.”
“뭐? 사기? 돈은? 돈 다 줘뿟나?”
“... 어….”
아버지의 사회생활이라곤 군 생활과 선원 생활이 대부분이었고, 육지에서 살아온 기간은 고작 10년 남짓이었다.
아버지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속이기 쉬운 사람이었다. 큰아버지에게도, 아버지에게 집을 사 간 부동산 주인에게도, 그리고 이번 주유소 주인에게도 아버지는 너무나 쉬운 먹잇감이었다. 일정 수위를 넘기면 아래로 술이 다 빠져나가는 계영배(戒盈盃)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어렵게 모은 자산을 송두리째 털어버렸다.
“니는…. 이 인간아….”
어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집을 팔았을 때만 해도 이혼하자고 서류까지 내밀었던 어머니였지만, 사기를 당해 넋이 나간 채 돌아온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집 안 분위기는 끝을 알 수 없는 침울함으로 가라앉았다. 반복되는 실망 끝에 나역시 아버지에게는 그 어떤 미련도, 애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버지가 그때 거짓말을 했던 게 아닐까 조심스레 의심해 보곤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삼봉이 삼촌이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뚜렷한 직업도 없이 시골 큰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던 삼촌이 말이다.
어머니에게는 큰돈이었겠지만, ‘전장의 용사’를 자처하던 아버지에게는 별일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장수가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전쟁에서만 이기면 그뿐 아닌가.
‘돈 없으면 그까짓 거 또 벌면 되지.’
늘 반복되던 아버지의 인생 공식대로 다시 벌면 그만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물이 들어올 때 노와 배를 모두 부쉈다가, 다시 처음부터 배를 만들 재료를 모으듯 새벽부터 일을 나갔다. 늘 그래왔듯 아버지가 어떻게든 다시 돈을 벌어올 거라는 생각이 지독한 우울함에 빠져있던 가족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 골든골로 자신의 실수를 만회했던 안정환 선수와 달리, 아버지에게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빗길에 아버지의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논두렁으로 굴러 불이 났고, 아버지 상태가 위중해 생사가 급하니 속히 오라는 연락이었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가끔 이유 없이 서고 보닛에서 연기가 나던 아버지의 흰색 쏘나타. 언젠가 사고를 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큰 사고를 낼 줄을 꿈에도 몰랐다. 설마 그렇게까지 큰 일이야 나겠냐는 안일함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나와 어머니는 택시를 잡아타고 토성동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앞에 서자 보안요원이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술주정할 때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평소에는 훤칠한 키만큼이나 기백이 항상 대단했던 아버지. 거기에 내가 알던 그 아버지는 없었다.
불구덩이에서 꺼낸 고구마처럼 몸 전체가 화상을 입어 온통 숯검정과 피투성이가 된 채, 속옷 차림으로 침대 네 귀퉁이에 사지가 묶여 있었다. 마치 생체 실험을 당하는 실험체처럼. 입에는 헝겊을 물려 끈으로 묶어 놓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인지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고 있는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왼쪽 팔 팔꿈치 아래로…. 손이 사라지고 없었다.
눈물의 온도
응급실에서 나와 멍해진 정신으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서류에 서명했다. 정신도 없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긴급한 수술을 할 것이고 수술 중 사망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죽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불합리하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그 이의제기할 돈조차 없던 우리로서는 그저 서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무과에 수속을 마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빗소리만 듣고 있었다. 좋은 일이 일어나기는 어렵지만, 안 좋은 일은 이상하리만치 연달아 몰아친다는 세상 이치를 아주 맵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점심 무렵이 되자 아버지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는지 둘째 고모와 큰어머니가 달려왔다. 어머니에게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은 큰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가 집을 판 돈의 행방을 두고 내가 의심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가 삼봉이 삼촌 문제로 큰 집과 크게 다툰 뒤, 서로 원수가 되어 의절하고 몇 년 동안 왕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눈물 흘리는 모습이 나는 유난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이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아버지만 잘된다는 무당의 말 한마디에 조부모 묘를 이장해 버리고,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목숨 걸고 벌어온 돈에, 그 이후로도 삼촌 핑계로 돈을 뜯어 간 전적이 화려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이성적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럽게 울던 큰어머니는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하게 있던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이고…. 사람이 저래 됐는데 우찌 그리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노? 독하다. 독해.”
돌아갈 집마저 사라진 마당에, 아버지가 몰던 탱크로리라도 팔아 당장 병원비를 대야 하나 현실적인 걱정에 짓눌려 있던 어머니에게 눈물 따위는 사치였다. 안 그래도 아버지가 집 팔아먹은 게 수상한데,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던 사람이 와서 눈물을 짜내고 있으니 더 수상했다. 괜히 와서 부글부글 끓는 어머니의 속을 쿡쿡 찌르니 당장이라도 머리끄덩이 잡고 난장판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어머니 편을 들어주던 둘째 고모가 가로막으며 한마디 던졌다.
“니는 마 씰때없는 소리 하지 마라. 타는 속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고는 응급실 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아이고야…. 인자 그만하고 그냥 가뿌면 안 좋긋나….”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김폭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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