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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8. 수요일

사회부장 산하


 


1970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2층 유리창을 닦던 한 학생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국전 상이용사의 4남매 중 장남으로 똑똑하고 듬직하여 가족의 기대를 받던 학생이었지만 허무하게 생명을 잃고 말았다. 요즘 같으면 학교측의 관리 소홀이 인정될 테지만 5층 유리창틀에 아무 안전장치 없이 걸터앉아 유리를 닦았던 내 기억으로 미뤄봐도 그저 사망자의 실수로 인정됐을 것 같고, 원통한 가족들은 소송까지 걸었지만 패소한다. 집안 말아먹으려면 정치 아니면 소송을 하라는 격언은 그때도 마찬가지여서 집안은 더욱 기울고 식구들은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법대에 가서 억울한 사람을 돌보겠노라고 다짐한 막내가 있었다. 서울법대 81학번으로 그 꿈을 이룬 그의 이름은 노진수였다.


 


그런데 입학 후 그는 내리 세 번 휴학을 한다. 그 기간 동안 서울대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니지는 않았지만 법대 내에서 학년 대표를 맞는 등 활달하게 생활했고 의식화 서클로 분류되는 서클에도 가입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1982년 4월 17일 기거하던 독서실에서 "건장한 세 남자가 찾아와 함께 나갔다."는 독서실 총무의 증언 이후 세상에서 증발했다. 지방에 있었던 가족들은 뒤늦게 노진수를 찾기 시작했지만 종적은 간곳이 없었다.


 


세 명의 건장한 남자를 따라갔다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처음엔 '가출' 신고를 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어머니의 조심성이었다. 남편은 한국전 상이용사였지만 오빠는 당시 대구 경북에 흔했던 보도연맹원이었고 어느날 아들처럼 누군가와 함께 나간 뒤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서슬이 푸르다 못해 손으로 만지면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았던 전두환 집권 초기, 정치적 실종 문제를 제기하기엔 가족의 깜냥이 너무 작았다. 어머니는 하나 남은 둘째 아들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실종된 막내의 책이며 유품이며를 죄다 버리고 있었다.


 


 

오늘은 컴컴한 독서실에서 자신을 찾아온 세 명의 남자와 함께 길을 나선 청년이 사라진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그 실종의 이유는 짐작하는 이에 따라 다르다. 가족은 정치적 실종이라고 믿고 있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떤 이는 그가 말못할 고민을 품고 그걸 술로 풀며 괴로와했고 81년 가을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사는 술인데 안 먹을 거요?"라는 식으로 말하여 주변을 놀래킨 적도 있다고 증언한다. 그가 떠돌이가 되어 부산에서 변사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노진수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한 독서실 총무의 신원도 행방도 30년 세월의 늪 속으로 사라졌다. 장래가 촉망되던 법대생 노진수는 아무런 종적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과 민가협, 그리고 81학번 지인들의 도움으로 일종의 '사설탐정' 격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특별취재반을 가동했지만 손에 잡힌 진실은 없었다. (오늘의 '오역'은 그 취재 기사 내용을 갖다 베낀 것임을 밝혀 둔다)


 


그런데 엉뚱한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 노진수의 최후를 안다는 이의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북파공작원 출신이던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노진수를 납치해 죽여서 강원도 고성의 저수지에 던져 버렸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했고 저수지의 물을 빼도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북파공작원 내부의 알력으로 인한 허위제보였다. 그런데 누명을 쓸 뻔했던 이의 증언을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당시 다른 정치 테러를 한 적은 있어도 운동권 학생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보사가 그들을 암적 존재라고 말하고 죽여서 수장하라고 시켰다면 주저없이 실행했을 것이다."



 


그가 자행한 정치 테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에게는 명령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사람 때려 죽여 밧줄 묶어 수장시킬 기세의 물리력을 넘치게 보유했던 이들이 즐비했던 시절 과연 그런 명령은 내려진 적이 없을까.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진 이들은 대관절 얼마나 될까.


 


공포는 무엇보다 오래 기억되며 심지어 유전되기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의 실종 앞에서 어머니가 허겁지겁 한 행동이 문제될 만한 물건을 치우는 것이었음은 뭘 말하겠는가. 잠시 나갔다 오마 나간 오빠가 돌아오지 않았던 날의 공포가 고압전기처럼 노진수의 어머니를 감싸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매우 의아한 것이 있다. 왜 평범한 대학생들이 실종되고 엉뚱한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허리에 콘크리트를 매고 헤엄치다가 자살(?)하고 "모처에서 나왔다"는 한 마디에 사색이 되고 술자리에서 말 한 마디 하기 두려웠던 날의 공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일까. 공화국의 대통령을 꿈꾸면서도 자신의 아버지의 야만적 행각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여자가 '선거의 여왕'이 되고 , "저 새끼 싸가지없네 조져"를 부르짖는 민간인 사찰보다 인터넷 방송에서 지껄인 헛소리가 더 문제시되는 이 공포의 실종을 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30년 전 오늘 한 젊은이가 세 명의 건장한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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