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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3. 월요일

멀더요원


 


1.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두 가지 실험을 해보자.


 


1) 2만 원을 그냥 준다. 이기면 3만 원을 더 받아 총 5만 원을 얻을 수 있는 내기를 제안한다.


2) 5만 원을 주고 3만 원을 다시 빼앗으며 게임을 해서 이기면 3만 원을 주겠다고 한다.


 


두 경우 모두 이기면 5만 원을 벌 수 있는 게임이지만 두 번째 경우에 게임을 하겠다는 비율이 첫 번째 경우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런 선택이 나타나는 것은 첫 번째 경우 이미 얻은 이득을 안정적으로 지키려는 심리를, 두 번째 경우는 빼았겼다는 박탈감을 주게 되기 때문인데, 이것을 프레임 효과(frame effect)라고 한다.


 



대표적인 프레임 효과, 조삼모사


 


이것은 어떤 틀 속에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 일반적으로 이득을 포함한 위험과 손실을 포함한 위험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을 말하는데, 첫 번째 경우 이미 얻은 이득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안정을 선택하고, 두 번째 경우는 빼았겼다는 손실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박탈감을 느꼈을 때 더욱 모험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반드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선택이라는 보장은 별로 없다.


 


지난 4.11 총선의 결과 야권연합이 크게 이길 것이라고 느꼈던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아마도 그동안 우리가 잃었던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손실을 느꼈기 때문에 아마 위의 두 번째 경우의 상태였으리라 생각된다.


그 상황에서 저들은 싸움을 걸어왔고, 야권연합은 싸움에 응하면서 결국 선거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정책 대결이 아닌 세력간의 대결 구도. 독재세력과 민주화세력, 성장지상주의 세력과 꼭 그렇지만은 않은 세력의 대결. 난 여기서부터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싸움이라는 프레임에 말렸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선거 기간 내내 우리를 지배했던 것은 상대세력에 대한 적개심이었고 그것은 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길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 기간 중의 트위터 여론으로만 치자면 민주당은 이미 단독과반, 통합진보당은 한 50석 정도를 확보했고, 진보신당, 녹색당, 청년당이 다들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졸라 행복했다...)


 


물론, 그 엄청난 착각으로 인해 우리는 멘붕의 과정도 심하게 겪고 있다.


 


이건 마치,


고등학교 1,2학년 때 신나게 조진 내신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3학년 때 맘잡고 밤새며 졸라 공부했는데, 반장 새끼가 시험범위 잘못 알려줘서 시험문제의 절반은 안 본 데서 나왔고, 그나마 아는 문제는 열심히 풀었는데 답안지를 밀려쓴 1학기 기말고사 같은… 개 같은 경우랄까.


 


다 잡았다고 느꼈는데, 뭔가 빼앗긴 느낌. 박탈감이다..


새누리당이 가져간 저 뱃지..저거 우리건데..하는 느낌...씨발..


 



 <씨발…>


 


 


2.


 


선거가 끝났고 결과를 두고 여기저기서 야권연합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안 그래도 멘탈이 붕괴되어 졸라 빡쳐있는 상황에 이런 저런 복잡한 분석들이 돌아다녀서, 도대체 뭔 소린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빡쳐서 읽어보지도 않았다.


대충 기사들의 제목들을 보니 어떤 사람들은 보수언론에 당했다, 어떤 분들은 구조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새끼들은 누구누구 때문에 졌다, 라고들 한다.


 


아마, 모두들 나름의 논리를 갖고 대충 많은 분석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선거때 뭐가 어쨌네 저쨌네… 어떤 새끼들 때문에 졌다는 둥... 이딴 소리 하기 전에, 야권연합은 '왜'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했을까를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본 지난 선거결과는 한 마디로 이런 의미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75% 이상의 주권자들에게 야권연합,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야권연합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그 동안 우리가 옳다고 믿어 왔던 사회의 정의, 도덕관념, 사회과학적 이론, 철학적 배경...이런 것들에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난 진짜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혹시, 야권연합이 진짜로 필요없는 게 아닐까?


 


 


3.


 


우리가 잘 아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혁명인 프랑스대혁명을 살펴보면, 그 배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꼽는데,


 



<니들 시선이 어디에 멈춰져 있는지 다 안다... 너무 그렇게 뚫어지게 보지는 마라…>


 


첫째, 구체제의 모순


둘째, 재정악화


셋째, 계몽사상의 영향


 


그러면 이 중에서 민중들에게 어떤 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까.


 


당시 프랑스 사회의 구성은 2%의 왕족, 성직자, 귀족과 98%의 시민, 농민,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르주아에 의한 혁명이라고도 하지만 농민, 노동자들의 거대한 움직임이 없이는 불가능한 그 혁명,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가 과연 '구체제의 모순'을 얘기하고 루소의 계몽사상을 이해했을까?


 


프랑스는 1717년 그 유명한 미시시피 버블의 붕괴와 (물론, 이 버블 붕괴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대혁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와는 별개로) 그 이후 수십 년 간 쌓여온 정부부채, 파산직전의 국가재정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미국전쟁에 지원, 곡물가격과 물가의 폭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그리고, 서민층에 높게 부담된 세금.


당시, 프랑스는 예산의 절반을 국채이자로 물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음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층이 있었고, 시민들은 소금에 부과된 과도한 세금을 내야만 했다. 더군다나, 당시 프랑스의 조세 징수권은 정부가 아닌 금융업자가 갖고 있었으니 그들이 휘두르는 횡포는 대충 사채업자랄까.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보라. 뭐라도 들고 뛰어나가야 하지 않나.


 


1977년 7월 한국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수증대를 위해 영업세, 물품세 등으로 나뉘어 있던 세제를 통합하여 부가가치세 10%를 도입한다. 이에 따라 계속 오르던 물가는 더욱 폭등하게 되고, 1979년 부마항쟁에서는 도청, 경찰서, 언론사 그리고 세무서도 공격당한다.


 


역시, 손실의 위험을 느낌 인간은 모험도 선택할 수 있기에 그 험악한 정권 하에서도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마도,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게 만들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래도 그들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빼앗을 때일 것이다.


 


물론,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각종 민중항쟁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 배경에 혹독한 경제상황이 있었으며 그러한 상황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압박보다 더 일반 대중을 움직이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4.


 


이제, 우리가 배워서 아는 역사 말고 지금 현재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경험한 역사를 보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가장 심각하게 빼앗았던 것은 당연히 한국전쟁이다.


그보다 앞서, 그들의 가족이 일제에 핍박당하고 전쟁터 끌려가서 강간당하고 죽어갔던 시절이 있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과 관계없는 남의 일이거나 자신의 재산과 무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지금 우리 사회는 일제시대에 벌어졌던 각종 만행과 매국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모양이다. 오히려 더 나아가 그들이 애국자라는 소리도 하고 있으니.


 


딱 마키아벨리의 말이 맞았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기 재산을 빼앗긴 것을 더 못 잊는다."


 


왜냐하면, 군주를 바꿔도 아버지를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군주를 바꾸면 다시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전쟁을 경험 한 세대들이 그 전쟁의 원인이 된 집단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하다.


 


1960년 이후 우리 역사에서 경제성장률은 딱 두번 오일쇼크와 IMF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IMF시기에 국민의 정부가 함께 들어섰고, IMF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며 실업자를 만들었다. 그것이 어느 정부에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민주정부가 집권하고 앉아서 정책을 결정했으며 그에 따라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것.


 


이후, 국민의 정부를 이어 받은 참여정부는 어떤 이유에서든 종부세를 통해 강남의 돈을 빼앗았고 법인세를 높여 재벌의 돈을 빼앗았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세금과 각종 규제들이 어떤 목적과 배경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돈을 빼앗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 새누리당에게 적극적으로 표를 준 30%가 민주세력을 좋아할 이유보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더 충분하지 않은가?


 


 


5.


 


새누리당에게 적극적으로 표를 주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을 돕게 된 45.7%의 경우를 보자.


그들에게는 투표할 후보가 없어서, 지지할 정당이 없어서, 바빠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들은 야권연합과 새누리당 모두가 필요없거나 누가 해도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들은 어느 정치세력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것도 빼앗긴 것도 없고, 빼앗긴 게 있다고 하더라도 나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정치에 기대하지 않게 된 것이 그동안 쌓아온 정치에 대한 혐오, 불신, 그리고 2004년 탄핵 이후 가졌던 아주 약한 기대에 대한 큰 실망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이상 실망하지 않기 위한,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어느 정치세력에도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들은 특별히 나서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마도, 실망과 패배에 익숙해졌거나 아직은 살 만하거나.


 


 



아직 이 정도까지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리 욕먹을 일도 아니다. 너무 욕하지 말자.


 


그럼 투표하지 않은 45.7%을 어떻게 투표소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1)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을 하지 않고, 야당은 의원직을 사퇴하며, 새누리당과 재벌이 저지르는 모든 것을 그대로 하게 둔다. 특히, 어떤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새누리당과 재벌이 모든 권력을 갖도록 한다. 그러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것이고 지금의 정책을 계승하여 새누리당이 원하는 세상은 순식간에 만들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1년 넘게 지속되는 기록적인 저금리를 내년에도 이어나갈 수는 없다. 내년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금리는 올라갈 것이며, 그 시점에서 가계부채와 지방부채는 폭발할 것이다.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며 사회 정의는 더욱 무너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당분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동산 연착륙, 버블의 급격한 붕괴 방지, 다 좋은 얘긴데 어떻게 하는지 알면 다른 나라들은 왜 못했겠나.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걸 야권연합이 아닌 새누리당 정권이 하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사람들의 돈을 빼앗게 해야 한다. 그러면, 45.7%는 자연스럽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권연합을 찾게 될 것이다.


주변을 보라. 치솟는 물가와 한미FTA, 민영화에 대해 그렇게 얘기해도 전혀 관심없었던 사람들이 서울지하철 9호선의 500원 인상에 분노하는 모습을. (역시, 한 번도 맞아보지 않은 아이한테 맞았을 때의 고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냥 한 대 맞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다만, 우리는 그때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무너지는 걸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무지막지한 고통을 참아야 하며 그때는 이미 평화적인 정권교체 따위는 없을 것이다.


 


 


2) 정부와 여당, 야당 모두를 압박하여 복지를 빠르게 늘리도록 한다.


 


어차피 지금 쌓여가는 지방부채, 국가부채, 공기업부채 이런 거 따져보면 몇 년 안에 뭐든 크게 터지게 되어 있고, 금리는 올라가게 되어 있다. 어느 정파가 정권을 획득하더라도 복지재정을 삭감할 것이므로 어차피 지금 복지를 하더라도 곧 줬다 뺐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데 아마도, 이 시점에서 야권연합은 지들끼리 치고 받다가 지리멸렬할 것이 뻔하다.


이 경우 사람들은 어떤 놈이 하든 복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좌우 따지지 않는, 이른바 무지개 내각이 구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난 이걸 지난 정부에서 좀 더 많이 했다면 이번 정권 들어서 삭감되었을 것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했을거라고 본다. 복지서비스는 한 번 받기 시작하면 그걸 멈추는 순간 난리가 나는 거니까.


 


어쨌거나 우리는 복지서비스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부를 갖게 될 수 있다.


 


 


6.


 


이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의 결론.


 


지난 선거에서 45.7%의 주권자는 절박하지 않았을 뿐이고, 야권연합은 졸라 촌스러운 구애 방식으로 인해 그들로부터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을 뿐이니, 서로 남탓 좀 하지 마라. 재미없다. (쟤네들이야 병신들 모아놓으니 재미라도 있지… 이쪽은 점잖은 사람들끼리 왜들 그래...)


 



<보수의 메시지 : 단순하고 고민이 필요없다, 맨날 같은 메뉴지만 주문하면 뭘 먹게 될 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진보의 메시지 : 맛있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뭔지 모르겠고 주문은 했으나 내가 뭘 먹게 될 지 알 수 없다.>


 


누군가 이성에게 가서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날 좀 좋아해줘! 라고 사정하며 자기를 사랑해야 할 백만 가지 이유를 제시하면, 막 사랑하고 싶어지나?… 말부터 좀 쉽게 하자고.


 


야권연합은 사랑받을 짓을 좀 해라.


그 동안 사랑받을 짓을 했으면 가만 있어도 사랑하게 될 것을.


 


어쨌든… 지면 안 되는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질 만했어.


 


그리고 이건 졸라 희망사항인데… 다음 선거 전날,


마트 계산대의 아줌마가, 등록금 벌기 위해 막노동하는 대학생이, 택배아저씨가, 주유소 알바 어르신이... 투표하러 가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관리자에게…


 


"씨바 힘들어서 못살겠어! 지금 내가 투표를 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죽을 것 같아. 짜르든 말든 맘대로 해! 난 투표하러 갈 거야!"


 


라며 투표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크게 변할 거다.


 


 


*뱀발


 


박근혜를 정계에서 은퇴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대통령을 한 번 해먹고 나가게 두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지금 야권연합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그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마도 박근혜가 대통령하면 임기 말에 친박을 걷어내려는 새누리당(그때 가면 이름을 뭘로 바꾸려나)에 의해 자연스럽게 박근혜와 그 일당을 날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졸라 좋지만 싫다. 젠장.


 


멀더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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