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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3. 수요일


아외로워


 


노무현이 죽었다. 그가 죽은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이전까지 그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도저히 이 엽기적이고 잔인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죽고 나서도 마치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원래 없었던양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았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서야 그에 대해 이야기 할 엄두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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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관해서 내가 가진 가장 강렬한 기억은 2004년 12월, 그가 극비리에 자이툰 부대에 방문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나에게 인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당시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라크에 파병을 갔던 것은 아니고, 서울시내에 있는(고로 땡보로 불릴 수 있는) 육군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유럽 순방을 다녀온 노무현이 극비리에, 기습적으로, 전격적으로 자이툰 부대에 방문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파병 하지 말라고 촛불집회 나가고 했던 기억도 났다. 우리가 시작한 전쟁도 아니었고, 도덕적인 전쟁도 아니었다. 파병에는 정당성이 없었고(물론 지금 당시 파병 반대논리를 이야기 했다가는 빨갱이 취급 받겠지만) 위험하기까지 했다.


 



 


이런 파병을 추진한 대통령이, 어찌보면 전쟁터인 이라크까지 가서 장병들을 격려하는 것은 군인의 눈으로 보기에 뭔가 마음을 흔드는 것이 있었다. 노무현 대단하다. 혹은 이 나라가 군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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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하다.


 


물론 수구세력에게는 그들의 탐욕을 방해하는 사탄의 수장이었을 것이다. 저 사탄무리의 이름은 대체로 '빨갱이' 이며, 노무현은 빨갱이가 대통령이 되는 세기말적 재앙의 징표였을 것이다.


 


민주화를 주도하고 경험했던 386세대(이젠 586이 되어가는)들에게는 동료와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자, 5공 청문회 스타인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좀 더 각별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다만 노무현의 노선과, 자신이 투신했던 노선의 차이에서 찬성도 하고 반대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20대 초반을 참여정부와 함께한 나같은 사람에게 노무현은 어떤 의미일까. 군대시절 군 통수권자가 노무현이었던 세대들 말이다. 물론 노무현을 보는 나의 관점이 내 세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 무너지고 무지하고 무모했던 2000년대의 운동권에 투신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경련이 개최하는 청년캠프에서 친재벌 세뇌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 나같은 보통사람의 관점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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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상식적이었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미국에게 양보를 요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연을 파괴하고 더럽히면서 '친환경'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도 않았다. 자기 친인척의 이권을 챙겨주기 위해 국가 기간산업을 팔아먹거나, 재벌의 편익을 위해 군사시설의 설계를 변경하지도 않았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준 덕분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죽여버려야 한다는 연극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의 NGO 프리덤하우스의 분류에 따르면 언론 자유국가가 아니다. 국제회의 같은 것을 하면 그냥 회의로 끝냈다. 국격 어쩌고 운운하며 서구 열강에 굽신거리는 천박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참여정부는 대양해군을 지향했고, 동북아 허브를 지향했다. 새로운 정보통신 표준을 만들려고 했고, 다른 열강들이 하는 것들을 하려고 했다. 당시 나와 뜻 있는 친구들은 우리나라가 제국주의화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과연 도덕적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국가 원수가 나라를 식민지처럼 팔아먹고 열강 앞에 알랑거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나라는 대통령이 미국 수반과 악수하는 것을 보고 국격이 올라갔다고 말한다.


 


물론 참여정부에도 논란이 되는 정책들이 있었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던가 이라크 파병 문제도 있었고 한미FTA문제도 있었다. 물론 요즘에는 이런 정도 심각성을 가진 문제가 한 달에 한 번은 터진다. 어쨌든 노무현에게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의 정책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한 상식적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게 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달랐다. 노무현이 대통령인 나라의 젊은이들은 뜻대로 되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 줄을 대고, 굽신거리고, '사회생활을 잘' 하면서 '눈치것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신념과 정의만으로도 살 수 있는(그 때도 이런 식으로 '잘' 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다만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었다. 세상은 여전히 꼰대들의 것이었고, 깝치면 바로 짓밟히는 세상으로 돌아갔다. 물론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 우리 세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의 대통령은 권위적이지 않았고, 우리의 말을 들어줄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의 말이 옳다면 수긍할 줄 알았다. 나는 노무현이 가진 이런 미덕이 세상이 진보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지도자의 미덕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게 될 '윗 사람들' 도 그런 미덕을 가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노무현의 걸출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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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노무현이 죽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모욕과 고통을 줄 줄 안다. 신념이나 당위적 정의를 이야기하는 젊은 애들을 '싸가지 없는' 애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젊어서 고생을 해봤으니, 너네는 불평하지 말고 더 고생해라 라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노무현은 내가 20대때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고, 당연히 영속하리라 생각했던 상식이었다. 그가 죽으면서 그가 일구었던 상식적인 나라도 같이 죽었다. 이제 젊은이들도 더이상 상식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삼성에 취업하고, 또 임원까지 올라서 임원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을 받으며 방탕하게 사는 꿈을 꾼다. 삼성의 경영진이 무슨 나쁜 짓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꿈꾸는 삶은 곧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따라서 삼성(이나 다른 재벌)에 취직해서 이른바 '성공'을 향해 죽도록 달리지 않는 사람은 패배자가 된다. 도덕적 기준이 서있지 않기 때문에 패배자들은 마음것 짓밟아도 된다. 사회는 점점 약자에게 관용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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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백일몽처럼 존재했던 상식과 관용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 때문에 지금처럼 빡빡한 세상이 더욱 아프다.


 


지금의 정권은 G20의장국 한 번 되더니 'G20세대' 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간 에이팩 세대나 아세안 세대가 왜 안 나왔는지, 다른 나라에는 왜 G20세대 비스무레한 것도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역시 정부의 분류법에 의해 G20세대가 됐다. 그러고보면 우리 세대는 88만원세대, 이해찬세대, n세대 등등 수많은 세대로 불렸다. 한 세대를 부르는 호칭이 이렇게 중구난방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이왕 부르기 복잡한 세대이니만큼, 마음을 편하게 먹고 우리 세대에 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 '노무현세대'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상식과 탈 권위를 공기처럼 마시며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지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것을 뺐겼다. 그 상실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골방에 틀어박힌 젊은이들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고,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가 한 때 가졌던 상식과 관용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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