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2. 5. 23. 수요일

논설우원 파토


 


본지 기사나 트위터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지난 주 목요일 밤 딴지스이자 우원의 입사 동기인 빅마우스, 강재욱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다시 한 번 그의 명복을 빈다.


 


그는 항상 딴지일보 내부, 혹은 주변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옛 사람들 중 하나였고 입사 동기고 같은 또래였다. 그래서인지 가끔 보더라도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모종의 끈끈함이 오랜 세월 남아 있었다.


 


허나 그가 내 매일의 일상은 아니었기에 그가 떠난 지금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에 계속 고통 받거나 하루하루의 빈자리가 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맞아도 많이 아플 것 같지 않은 솜방망이, 하지만 든 솜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은 넘으로 잽을 한 대씩 맞는 느낌. 잊어버릴 때쯤 한 대, 긴장 풀고 있을 때 한 대, 잘려고 누웠을 때 두 대... 이런 식이다.


 


이렇게 툭툭 맞을 당시에는 그리 아픈 것을 모른다. 하지만 이게 계속 쌓이면 얼굴이 붓고 앞이 잘 안 보이고 코피가 나고, 조금씩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필살기를 걸고 싶어도 스텝도 안 잡히고 자세도 안 나오고 피로가 쌓이면서 경기를 반쯤 포기하거나 빈틈을 보여 급기야는 다운되고 마는 거다.


 


갑작스러운 이 비극을 겪으면서 우원은 우연찮게도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후 내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의 날카롭던 슬픔이 점차 내면을 갉아먹는 만성적인 잽으로 변해 가던 것, 결국 더 이상 펀치를 날리는 건 고사하고 서있기조차 힘들어진 것, 나중에는 승부야 어찌되었건 링을 내려가 버리고 싶은 상태가 된 것.


 


이런 걸 우리는 그로기라고 부른다.


 



 


2009년 오늘, 그가 갑자기 떠난 후 본지에 첫 공식 추모글을 올린 것은 우원이었다. 당시는 본지가 오랜 공백기를 지나 일종의 재창간을 앞두고 한참 준비에 열을 올릴 때다. 아직 내부 인원은 물론 온라인 필자도 충분히 섭외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라 갑자기 그 무거운 글을 쓸 사람이 우원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침 7시 반쯤부터 서거 뉴스를 접하기 시작해 긴가민가하던 상황, 이어지는 확인, 확인들. 그리고 오전 11시 반 편집장으로부터의 전화. 오후 4시쯤까지 추모글 부탁합니다.


 


충격으로 스스로도 몸을 가누기 힘든 와중에, 눈이 퉁퉁 부어 앞을 보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글쟁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지 싶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필요하다면 뭔가를 써낼 수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을 맞춰 가며 단어와 문장을 다듬는 짓을, 그런 상태에서라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이어 봉하마을 취재로 연결됐고, 서울에서의 영결식, 49재 취재까지 계속됐다. 그렇게 계속 노무현과 더불어 몇 달을 보내고 감정적으로, 이성적으로 그에게 올인한 상태는 다음해 4월의 경기지사 토론회 <야간분만>, 이어 편집장이 돼서 1주기 때의 노무현 주간, 봉하마을 방문, 지방선거를 치르던 6월까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연대를 위해 시민 단체와 노조, 독자 모임 할 것 없이 웬만한 곳은 다 찾아가 함께 했고 정치인, 방송인 등을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본지의 분위기 전환 프로젝트였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을 연재하던 때도 그 즈음이다. 이게 우원에게는 전혀 다른 마인드로 전환해 써야 하는 거라 정체성의 문제가 생기는, 심리적으로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우원은 소진되고 말았다.


 


분노와 슬픔의 아드레날린을 태우고 있었던 것을 불퇴전의 의지로 착각했던 걸까. 아니면 케이오 펀치를 맞은 후에 자신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감정적인 잽을 스스로에게 너무 허용하고 만 걸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이 백주에 벌어지는 부조리를 납득할 수 없는 내 머리, 더 심해지는 가카와 딴나라당의 전횡을 욕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의 무력함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러다보니 우원이 가졌던 분노와 비애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피로와 낙담으로 바뀌어 갔다. 엉뚱한 방향으로 짜증이 밀려왔고 무력감과 피로가 켜켜이 쌓여갔다. 맑은 정신으로 무장해도 부족한 판국에 점점 전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던 거다.


 


그 시점에서 우원은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해 티벳, 네팔, 인도, 두바이, 요르단, 이집트, 터키, 그리스까지 말 그대로 동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해 서진하는 4개월 간의 배낭여행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지만 정작 내가 필요로 하던, 내 자신의 소진됨에 대한 답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지쳐 있었고 지난 몇 년 간의 울나라 현실은 마치 다른 우주의 일처럼 느껴졌다. 멍했다.


 


그래서 몇 달 후 다시 미친 척 하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800 킬로미터의 기나긴 길을 죽도록 걷고 이름도 멋진 Santiago de Compostela 의 대성당에 도착하면, 그래서 2천 년 전 죽은 어느 인물의 12 제자 중 누군가의 무덤 앞에 서고 나면 뭔가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인 역사의 관성, 문명의 힘이 집약된 그 길, 그 성당에는 무엇인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갈등과 혼란, 피로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깨달음 같은 것이.


 


그렇게 하루에 20~30 킬로미터씩 걸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었고 나무그늘 하나 없는 땡볕의 초원을 지났고 위험한 고속도로를 따라 걸었고 매일 저녁 파김치가 되어 이름 모를 스페인 시골 동네에서 잠을 청했다. 이 끝에서 나는 과연 뭔가 소중한 것을 갖고 돌아가게 될까... 그런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그렇게 3분의 2가 넘어설 즈음 되었을까. 매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고 비마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대체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 돈과 시간이면 어디 편안한 데 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도 남을 텐데. 10킬로 배낭을 짊어지고 수퍼에서 산 오렌지와 싸구려 소세지, 식빵으로 끼니를 해결해가면서 왜. 이런 의문이 절정에 달할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돼서야 어렵사리 찾은 깡촌의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손님도 거의 없어서 저녁 먹으면서 독일인 주인장에게 소진이 어떠니 순례길에서 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둥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이해한다는 듯 내 뻔한 투덜거림을 - 한두 번 들었을 게 아닌 - 잠자코 듣고 있던 그는 내게 짧은 한 마디를 던졌다.


 


"여보게... 순례길은 자네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네. 필요한 것을 줄 뿐이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흔히 우리는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잘 구분하지 않고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은 주로 감정이나 욕망의 발로이고, ‘필요한 것’은 이성이나 존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문장은 그날 이후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원하는 것만 얻고 싶었을 뿐이었다. 필요한 것을 얻는 상황은 분명 길고 피곤하고 힘들 것이다. 그런 건 싫고 귀찮다...


 


그렇게 39일이라는 긴 시간을 걸은 후, 우원은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서게 되었다. 머나먼 여행을 끝낸 벅찬 보람과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극도의 허전함이 동시에 엄습했다. 순례길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과 긴 이별, 부르튼 발을 주무르며 동고동락의 심정으로 그들과 나눴던 내밀한 감정들... 우원은 성당 앞 광장에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그 고색창연한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던 그 무엇인가는 그곳에도 없었다. 영원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던 순례길의 이상향인 종착점, 성 야고보의 시신이 잠들어 있는 800년 된 대성당, 천 년이 넘도록 이 먼 길을 걸어온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무릎 꿇고 눈물을 뚝뚝 흘렸을 이곳마저도 내게 아무런 비전도, 깨달음도, 의지도 주지 못하는 거다.


 


나는 결국 빈 손으로, 여전히 공허한 마음과 피로함 속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지쳐버린 우원이 ‘원한’ 것은 그저 현실에서 도망가는 것이었지 싶다. 어디로 가서 뭘 할 건지 계획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은 채 그저 떠나고만 싶었던 거다. 그렇게 도달한 어딘가에서, 그게 물리적인 장소던 내면의 어떤 곳이던,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었던 게다.


 


몇 년 전이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여겼을 이런 것이 어느새 내 존재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오랫동안 쌓아온 내 정체성과 세상에 던져 놓은 수많은 말과 글들을 다 부정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허상이었다. 인도의 작은 마을, 히말라야의 산자락, 티벳의 사원, 네팔의 호숫가, 요르단의 사막, 중국의 성, 이집트의 유적, 유럽의 고도... 그 모든 곳을 돌아 모든 여행의 종착점이라고도 하는 산티아고 대성당에까지 도착한 내게 정녕 필요했던 것, 그건 거기서 뭔가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거기 간들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깨우쳤다고 여겼던 이 뻔한 진리를 완전히 잊어먹을 만큼 우원은 맛이 가 있었다. 이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웠고, 그렇게 오랫동안 땀과 눈물을 흘려가면서까지 부정하려 들었다. 그러자 결국 천 년 내공의 순례길이 내게 조용히 손바닥을 열어 지혜의 말을 보여준 거였다.


 


‘그런 건 없어, 짜샤.’


 


그렇게 우원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결국 내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그토록 이를 갈며 기다리던 그 때가 어느새 현실이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3년 후’.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미안하고, 나중에 힘을 합쳐서 이겨야 하고... 그런 이야기들, 지난 3년 간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우원이 쓴 것만 해도 족히 열편은 될 거다.


 


그래서 우원은 노무현 서거와 그 언저리의 감정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좀 드라마틱한 예인지는 모르지만, 그 우울한 피로와 절망, 그리고 극복에 대해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내가 찾은 답은 현실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하나의 답이 암시되어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하루하루의 밝음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하던 나 자신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소위 포지티브한 에너지 말이다. 아니면 지쳐 쓰러지고 결국 지고 만다는 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혹시, 순례길의 우원처럼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원하는 것은 정죄와 심판이다. 필요한 것은 정권 교체다.


 


이 두 개가 똑같은 걸까.


 


우리는 노무현과 이명박, 이 두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국민 전체를 두 편으로 갈라왔다. 그렇다고 딱히 노무현 편 Vs 이명박 편의 구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노무현의 죽음과 이명박의 존재에 대한 각각의 입장에 따라 갈린다는 게 맞을 거다.


 


예컨대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염치와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이고 -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도 실은 공범이다. 기억들 하고 계신가? - 저들은 고인의 진정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은 후에도 무례한 후레자식들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선한 피해자이고 저들은 탐욕의 화신이다. 따라서 우리 편이 저편을 이겨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런 동지의식 속에서 우리는 어깨동무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총선에서 패해버렸다. 진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야권연대만 하면 1:1로 붙어 필승한다던, 그래서 3년만 참으면 끝이라던 그 당시를 기억해 보면 답은 명백하다. 득표율, 수도권 운운하면서 ‘사실상의’ 승리를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는 진짜 승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지금 눈 앞에 드러나고 있는 두려운 현실은, 결국 이렇게 가면 대통령 선거에서도 패배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그럼 대체 왜 이렇게 된 거냐? 3년 전 승리를 장담하게 만들었던 그 세와 집중력은 왜 흐트러지고 있나?


 



6세기, 신라 진흥왕 시대의 삼국 세력판도냐


 


그건 우리가 철저히 나뉘어진 선악 구도 속에서 아드레날린만으로 싸워 현실 선거를 이기려 했기 때문이다.


 


슬픔, 분노, 결기... 이런 것들이 3년 넘게 실제적 힘으로 유지되려면 끝없는 자극의 수혈을 필요로 한다. 사실 가카 덕분에 수혈이 계속되어 오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고 잦은 수혈을 받으면 몸이 축나고 지쳐간다. 이것은 내 피가 아니다. 내 구체적 삶이 아니다. 명분 혹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위한 피다... 지치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게 사람이다.


 


기대보다 낮은 총선 투표율, 특히 이길 게 당연하니 나는 놀러나 가겠다는 생각. 그 심리적 기저를 깊이 들여다 보면, 이런 것은 승리의 환상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환상을 통한 확신이라면 오히려 그 축제의 자리에 참여하고 싶은 게 사람 맘이다. 대신 그들은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는 그 자리를 아예 피해 버렸다. 거기에 참여해 책임감까지 나눠야 하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이제 불편한 거다. 그렇게 아드레날린이 떨어졌지만 수혈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은 거다.


 


이렇게 외곽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금씩 떨어져 나갔던 거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긴 싸움에서 이기려면, 전투의 결기에 앞서 과연 왜 이겨야 하는 것인지 장기적 전망 속에서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불의의 응징을 위해? 야권의 누군가가 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테니까? 노무현의 동료 중 하나가 되면 그 정신이 계승될 수 있을 테니?


 


이런 관념적인 것들은 한계가 있다. 진심으로, 무의식 레벨에서도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승리의 이유는 하나뿐이다. 행복해지는 것. 지금 이 사회에 만연된 행복 추구의 독트린과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거짓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제대로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 정권을 바꿔야 하는 거다.


 


하지만 현실은, 노무현과 이명박 코드가 지난 총선 국면의 중심을 철저히 지배했다. 지금 가는 모양새대로라면 대선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 코드와 주장은 이제 말 안 해도 누구나 아는 것 아닌가? 노무현을 복권하고 이명박을 심판하자고 무한 반복해 주장한들 새로운 세가 규합되고 저들 중 일부가 깨달음을 얻어 전향할 건가.


 


이제 그보다 더 보편적인 그림, 행복의 비전과 꿈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해야지 않냐. 그냥 저 코드 속에서 ‘암시’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그리고 왜 정권을 바꿔야 행복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이명박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그네공주와 비교해서 설득할 수 있는 비전과 열정과 감동과 희망 등등을 엮어내 밝음의 승부를 해야지 않냐는 거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을 동시에 공략해야 투표율도 높일 수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내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질 뻔 했기 때문에 아는 거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씨파.


 


그리고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기를 원하고 이거는 유니버살한 감정이다. 근데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노/이 코드에 근거해 ‘저들’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당근 포함된다. 수구꼴통뿐 아니라, 굳이 노무현을 증오하거나 이명박을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문제에 둔감하거나 우리가 지난 3년 간 제시한 정의의 기준에 그닥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 우리한테는 ‘저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현재 이 사회의 행복 공식에 우리만큼이나 불만을 느끼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꽤 많다. 근데 이 양반들은 우리를 보며 과거 열혈 운동권을 보는 듯한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낀다. 나꼼수 현상과 통진당 사태가 거기에 한 몫 한 면도 있다. 그래서 그네공주에도 확신은 없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쪽으로 간다. 우리에게 표를 주기는 좀 찜찜하다.


 


이들을 끌어 오지 않고 대선에 이길 수 있나. 기본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서슬 퍼런 기준을 들이대 저들로 고착시켜 그 표를 아예 버리는 슬로건과 전략으로 어떻게 50.01% 의 지지를 끌어 올 거냐. 우리끼리만 결집하면 이길 수 있다는 셈법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냐? 우리는 대체 누군데. 어디까진데.


 


그러니 이제부터는 어떻게 행복하게 될 건지,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고 오자는 거다. 공연에서 행복하자며 노래 부르는 것 말고, 뒤이은 건조한 정책 설명 말고, 철학과 감동이 담긴 비전 말이다. 국민에게 열정적으로 절라 멋진 미래를 이야기하고 그걸 대통령이 돼서도 꼭 실현시켜 줄 것 같은 리더쉽, 머 그런 모습 말이다.


 


우리는 꼭 이겨야 된다. 왜냐하면 꼭 이겨야 되니까. 잘 싸우고 장렬하게 지는 비장미를 연출하는 건 필요 없고 마지막 2%라도 끌어와서 이겨야 한다. 이번 대선은 향후 5년 혹은 수십 년을 놓고 벌이는 결전이다. 진검 승부라면 상대가 어린아이라 한들 이길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요건을 총동원해 전력으로 붙는 게 기본.


 


이 초식은 우리 문파의 것이 아니니, 이걸 쓰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소.


 


이건 아니지 않냐.


 



 


우리 중 아무도 그의 유서, 유지를 진심으로 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고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운명이라고 했다. 물론 미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이라고 그냥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레벨에서의 이야기다.


 


그가 그런 말을 남긴 이유는 뭘까. 그걸 읽고 나면 우리 모두가 그래, 미안해하지도 말고 원망하지도 말자, 하며 털고 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그가 우리에게 한 부탁은 자기의 죽음으로 너무 아파하지는 말라는 뜻이었을 거다. 흔들리지 말고 그가 남긴 유산을 통해, 그의 비극을 거울 삼아 새로운 행복의 길로 가라는...


 


하지만 우리는 너무 아팠고, 이제 세월이 지나 탈상을 하게 되었다.


 


탈상은 묘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살다가 드디어 집으로 내려가는 거다. 시간이 지나 부모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과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정상적인 희노애락의 상태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뜻이다.


 


우원은 이제 우리도 그럴 때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그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이제 미안함과 죄책감은 조금만 남겨두고 그의 죽음과 한, 분노와 정죄보다는 우리와 함께 만들고 싶었던 세상에 대해 더 꿈꾸고 싶다. 그리고 우리 문파의 울타리를 넘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그 큰 꿈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다. 그렇게 이기고 싶다.


 


나는 말이다, 그분도 이제 그걸 원할 것 같다.


 


 


…잘 가세요. 다시 한번.


 


우리 빅마우스도. 실망 안 시킬께.


 


논설우원 파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