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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2. 화요일

과학불패 돌아온피아골






편집부 주


아래 글은 과학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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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 제더

 

2012년 6월 13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자 홍해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제더(Jeddah)에 위치한 닥터 솔리만 파키 병원(Dr. Soliman Fakeeh Hospital)에 60세의 사우디 남자가 입원했다. 지난 7일간 열과 기침, 가래 그리고 호흡곤란으로 고통 받았던 그는 만성콩팥병이나 심폐질환의 과거력이 없었으며 복용하는 약도 없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입원당시 체온계는 38.3℃를 가리키고 있었고 혈압은 140/80, 맥박은 117회, 호흡수는 20회였다. 


최초의 중동호흡기바이러스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환자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 한다. 이튿날 중환자실(ICU : intensive care)로 이실된 그는 입원 열하루째 호흡부전과 콩팥부전으로 사망하였고 부검은 실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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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종합병원의 중환자실

 

병의 경과가 통상과는 다른 것을 인지한 의료진은 이례적으로 즉시 오슬타미비어(Oseltamivir : 항바이러스 제제 )를 경구로 복용시켰고 타조박탐(Piperacillin-tazobactam : 광범위 항균제), 미카펀진(micafungin : 항진균제)을 정맥으로 투입했다. 인간에게 중증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virus), 세균(bacteria), 곰팡이(fungus) 모두를 염두에 두고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곰팡이는 병원성이 약하기에 면역기능이 정상인 사람들에게는 큰 해를 끼치지 않고 주로 면역이 저하된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감염을 일으킨다. 흔히 볼 수 있는 곰팡이감염은 알다시피 무좀인데 죽을 만큼 가렵울 뿐이지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곰팡이가 체내에서 또아리를 틀고 심각한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를 곰팡이혈증이라 한다.


아무튼 이 정도 치료는 후천성면역기능결핍증 환자, 말기암환자, 여타중증질환으로 입원치료 중인 환자들이 발생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유와 원인을 불문하고 일단 발생하면 항진균제 치료를 받아도 1/3은 사망한다. 외래를 통해 입원한 환자에게 바로 항진균제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고 이 경우처럼 평소 건강하던 이에게 투여하는 것은 과잉대응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우리라면 100%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삭감대상이 될만한 공격적인 대응이었음에도 환자에게는 듣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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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미카펀진 주사용 혼합제,

오른쪽은 공공병원의 적(?) 심평원

 

사실 여기까지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통상의 종합병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증례들이다. 솔리만 파키 병원의 닥터 알리-모-자키(Ali Moh Zaki, M.D)가 달랐던 점은 병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했고 마침내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해냈다는 데에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가래를 멸균된 컵에 받았고 바이러스수송배지를 첨부한 후에 2000알피엠(RPM, 분당회전수)으로 10분간 원심분리했다. 이렇게 얻어진 부유액(supernatant)을 아프리카 푸른 원숭이와 붉은털원숭이의 신장으로부터 얻어낸 세포주(Vero and LLC-MK2 cells)에 접종, 배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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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를 위해 콩팥을 기증한 아프리카 푸른 원숭이(왼쪽)와 붉은털 원숭이(오른쪽)

 

첫날에 환자로부터 얻어진 가래를 가지고 기존에 알려진 바이러스(인플루엔자 A&B, 파라인플루엔자 type 1&3,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등)를 검출하기 위해 간접면역형광법(indirect immunofluorescence assay, 항원이나 항체에 형광색소가 포함되어 있음에 착안해 특정 항체나 항원이 존재하는지 검출해내는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유액이 접종된 원숭이의 세포주들에서는 세포병리효과(cytopathic effect)가 나타났다, 알 수 없는 병원체-아마도 바이러스-가 열심히 증식하면서 원숭이 세포들을 괴롭히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 세포병리효과를 보인 원숭이의 세포들을 다시 원심분리해서 부유액을 얻어내고 이를 다른 건강한 세포들에게 접종했을 때 5일 이내에 같은 병리효과(cytopathic effect)가 관찰되었다. 무언가가 있음은 점점 분명해졌다. 


감염된 원숭이들의 세포들을 가지고 위에 언급되었던 면역형광법을 적용해보았지만 기존의 알려진 바이러스들은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단지 이 감염된 원숭이 세포들을 입원 10일째 환자로부터 얻어진 혈청과 반응시켰을 때 강력한 항원-항체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면역글로불린 G를 매개로 한 반응이었다는데 이런 것까지 설명하면 얘기가 복잡해지므로 생략한다.) 반대로 2010년부터 2012년 까지 여러가지 이유로 솔리만 파키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를 받았던 2400명의 혈청샘플을 사용해서 감염된 원숭이들의 세포와 반응시켜 보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입원 10일째 환자의 몸에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생성되기 시작했는데 지난 2년간 병원을 찾아온 지역의 일반인구에게서 동일한 항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종합병원에서는 환자들의 혈액샘플을 검사직후 바로 파기하지 않는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채취 후 1주간은 냉동보관하여 추가검사, 추적검사 등이 용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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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이 정상적인 원숭이 세포주, 

우측은 사스에 감염되어 지랄염병(?) 중인 세포주

 

감염된 원숭이들의 세포로 실시간중합효소연쇄반응법(Real-time PCR, 알려진 DNA를 표적으로 중합효소를 투입하고 반응이 있는지 보는 것)을 사용하여 역시 알려진 바이러스(아데노바이러스, 장내바이러스, 인간 메타뉴모바이러스 등)를 검출하려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다른 종류의 중합효소연쇄반응법(family-wide PCR,)을 통한 파라믹소바이러스의 검출도 실패했다. 하지만 독생자 예수는 성경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고 모든 일에는 원인 있는 법이니 결국 미지의 바이러스도 꼬리가 잡혔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과학자들은 여러 분자생물학적인 테크닉을 (원리는 매우 쉽고 간단하여 초딩도 이해할 수 있지만 필자는 모르니 더는 묻지마라.); 사용해서 새로운 바이러스 유전자의 전체염기서열을 획득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A colorized electron micrograph of the new coronavirus HCoV EMC  Credit  NIAID RML Beth Fischer.jpg

메르스를 전자현미경을 통해 본 모습, 왕관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코로나(왕관)바이러스다.

 

처음 붙여진 명칭은 HCoV-EMC 였고 후에 정식으로 MERS-CoV 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H는 휴먼 CoV는 코로나 바이러스, EMC는 에라스무스 병원(Erasmus medical center)의 약자다. EMC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데 최초 바이러스 발견에 있어서 임상적인 부분은 사우디의 솔리만 파키 병원의 닥터 자키(Ali Moh Zaki, M.D, Ph.D)가 담당했지만 기초의학적인 부분은 EMC 바이러스 연구소 소속의 보히맨 (Sander van Boheemen, M.Sc), 베스테브로어(Bestebroer B.Sc), 오스터하우스(Albert D.M.E Osterhaus,D.V.M, Ph.D), 파우치어(Ron A.M. Fouchier, Ph.D) 가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여담인데 닥터 자키는 이 새로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주를 파우치어와 공유했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해고당했다. 사우디 당국이 세포주 반출을 승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파우치어가 메르스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전체를 밝혀 내고 거기에 대해 일종의 권리를 주장했을 때, 사우디 당국은 속된 말로 '빡쳤다') 그리고 파우치어도 본 연구와 직접적으로는 상관없지만 조류독감 바이러스 연구와 관련해서 네덜란드 당국과 법정 다툼을 벌였고, 지방법원에서 패소했다. 네덜란드 당국이 파우치어가 사이언스지(Science)에 논문을 싣기 전에 '수출면허(export liscence)'를 얻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판사도 이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EU 협약에 따라 위험한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외로 유출하는 것은 생화학 무기를 '수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새롭고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은 이처럼 괴랄한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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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우치어 박사가 네덜란드 정부에게 엿먹었다는 기사

기사 원문 - 사이언스 매거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이도비랄스(nidovirales)-목(order)의, 코로나비리데(coronaviridae)-과(family); 그리고 코로나비리네(coronavirinae)-아과(subfamily)에 속하는 바이러스를 말한다. 아과(subfamily)인 코로나비리네에는 총 4가지의 속(genus)이 있는데 메르스(MERS-CoV)는 4가지 속 중에 베타코로나바이러스(betacoronavirus)에 속하는 메르스(MERS-CoV) 종(species)이다. 뭔 소리냐고?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마라, 내가 알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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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의 계(kingdom)에 대한 모식도

 

우리가 생물시간에 달달 외운 종(species)속(genus)과(family)목(order)강(class)문(division)계(kingdom)분류법은 계로부터 시작해서 종으로 끝나며 계(kingdom)는 보통 5계로 나뉜다. 동물계(kingdom of animals), 식물계(kingdom of plants), 진균계(kingdom of fungus), 원생생물계(kingdom of protista), 원핵생물계(kingdom of monerans)가 바로 그 5계이다. 동물, 식물, 진균계는 설명 안 해도 잘 알 것 같고, 원생생물은 아메바로 대표되며, 원핵생물은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로 대표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다루는 바이러스는 이 5계 중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응? 뭣이?) 


달리 말해 전통적인 생명체 분류법에서 바이러스의 족보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체 중에 가장 크기가 작고 그래서 나중에 발견되었다. 그리고 바로 바이러스부터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모호해 지기 시작한다. 어쨌든 전통적인 분류법 상으로 아직까지는 (최근의 분류법 중에는 바이러스를 하나의 계통으로 묶어낸 것도 있다.) 뽀대나는 족보를 획득하는데 실패한 바이러스는 떡하니 목(order) 부터 그 족보가 시작된다. (에비에미없는 바이러스)

 

일반적인 바이러스의 특징이나 생활사에 대해 설명해 보고 싶어서 살짝 긁적여 봤더니 난이도가 상상이다. 그러니 다시 메르스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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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의 계통수(phylogenetic tree)를 표현한 그림

 

위 그림에서 그리스어로 표기된 알파,베타,감마,델타는 위의 단락에서 언급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네가지 속(genous)이며 메르스(HCoV-EMC)는 베타코로나바이러스로 분류되어 있다. 메르스에서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려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바로 사스(SARS-CoV)가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중에서도 사스와 메르스는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고 염기서열에 약 90%를 공유한다. 물론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메르스와 가장 가까운 것은 BtCoV-HKU4 와 5(Bt는 박쥐, CoV는 코로나바이러스, HKU는 홍콩대학교의 약자) 바이러스다. 초기에 메르스가 박쥐로부터 직접 전파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후속 연구결과로 인해 인간에게 직접전파를 일으킨 것은 중간숙주인 아프리카 낙타고 박쥐는 아마도 최종숙주이지 않을까? 라는 것이 정설이 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하나의 감염원이 사람과 닭이나 쥐같은 혐오 동물을 오가며 일으키는 병을 인수공통전염병(Zoonosis)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히 많은 전염병들이 인수공통전염병인데 예를 들면 에볼라, 사스, 탄저, 장티푸스, 세균성이질, 일본뇌염, 쯔쯔가무시, 간흡충증, 광견병 그리고 흑사병(대항해시대 시리즈에만 등장하는 병이 아니라 2014년 마다가스카에서 40명이 흑사병에 걸려서 사망했다.) 등등 셀 수 도 없을 만큼 많다. 이 리스트에 2012년, 낯설지만 무서워 보이고, (현재까지 보고된 결과에 따르면 확진된 환자의 40%는 결국 사망한다.) 여전히 잘모르겠는 질병, 메르스가 추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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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의과학자들의 로망, NEJM 홈페이지

 

이제 슬슬 글을 마칠 시간이다. 사실 본 글의 핵심적인 내용은 뉴잉글랜드의학지(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2012년 10월에 투고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 메르스에 관한 극초기 논문의 저자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증례가 축적되지 않았고 산발적이었음으로– 메르스의 중간 숙주가 낙타임을 몰랐고,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다는 것 역시 몰랐다. 불과 2년 8개월 전의 일이다. 후속 연구로 인해 단봉낙타(dromedary camel)가 사람에게 전파를 일으키는 중간숙주라는 것,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으로도 병이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특이적인 치료법이나 정확한 전파경로는 미지의 영역이다. 한달 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메르스감염자 지도(홈페이지)에 따르면 지금까지 1084명이 감염되었고 428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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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감염자 지도(coronamap)의 캡쳐화면, 

저 숫자들은 감염자도 사망자도 아니다. 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시각 뉴스를 들으니 국내에서 확진판결을 받은 사람이 15명으로 늘어났다고 하는데 다음 업데이트 때는 우리의 감염자들도 저 숫자에 포함될 것이고 당분간은 꽤 시끄러울 것 같다. 더 이상 추가 감염자가 없길 바라고 의국차원에서 내일 아침 메르스에 대한 긴급대책회의를 한다고 하니 감염내과 과장님이 어떤 얘기를 풀어놓으실지 잘 들어봐야할 것 같다. 관심있는 여러분들도 보건당국의 발표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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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협회 이름으로 날라온 공문

(그림을 누르면 크게 보인다)

 

 

자료 참고

 

1.  Isolation of a Novel Coronavirus from a Man with Pneumonia in Saudi Arabia, www.nejm.org

      http://www.nejm.org/doi/full/10.1056/NEJMoa1211721

 

2. MERS, www.cdc.gov

http://www.cdc.gov/coronavirus/mers/

 

3. MERS, Youtube.com

     https://www.youtube.com/watch?v=gq0U0PPtUpE

 

4. Coronavirus, 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wiki/Coronavirus

 

5. Coronamap.com

    http://coronamap.com/

 

6. Flu researcher Ron Fouchier loses legal Fight Over H5N1 studies, new.sciencemag.org

   http://news.sciencemag.org/health/2013/09/flu-researcher-ron-fouchier-loses-legal-fight-over-h5n1-studies

 

7. SARSreference.com

   http://www.sarsreference.com/sarsref/virol.htm

 

8. National association of science writers.

   http://www.nasw.org/member_article/science-blogs-deadly-virus-and-long-dead-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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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