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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31. 목요일

samuelseong


 


세례명을 필명으로 쓰다 보니 기독교도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본 기자의 세례명은 프랑코가 총통 자리를 지키다가 죽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던, 카톨릭의 교세가 대단히 셌던 스페인의 열성적인 선생님 덕택에 별 생각 없이 얻은 거다. 국민학교 입학하자마자 스페인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부모님의 스페인어 실력 역시 안습이었던 까닭에 일요일에 학교에 나오라는 선생님의 편지를 무슨 보충 교육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참고로 본 기자 종교는 불교다.


 


본 기자, 밥벌이 때문에 인도 대륙을 휘젓고 다닌다. 이 대륙, 정 주기 좀 어렵다. 인도인들 상대로 일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스트레스 레베루가 따로 있다. 거기다 이 양반들 상대로 받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간 골로 가기 딱 좋다. 엄청난 땀을 흘린 상태에서 집어넣는 맥주는 거의 위스키의 위력이니. 그런 관계로 매일 아침을 108배로 시작하고 심심하면 염주 돌리면서 독경을 mp3 파일로 듣고 있다. 본의 아니게 독실한 불자 코스프레를 하게 된 것,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 같으니.


 


그러다보니 유일한 낙이 시간 날 때 불교 성지 돌아다니는 것이다. 뭐 20세 연하의 네팔인 여자 친구가 생긴 것도 낙이긴 하지만. 여튼.


 



후후


 


인도 대륙의 대표적인 불교성지는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의 룸비니, 깨달음을 얻으신 인도 비하르주의 보드가야, 첫 번째 설법을 하신 바라나시 근처 사르나트. 그리고 열반하신 인도의 쿠시나가르를 꼽는다. 쿠시나가르를 제외하곤 다 가봤다. 특히 룸비니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불과 5시간 거리라 꽤 자주 찾는다.


 


인도 대륙을 처음 찾았던 게 2006년이고 처음 룸비니를 찾았던 것은 2007년이었다. 그런데 그때와 달라진 것들이 좀 있다. 이거, 우리랑 관계가 좀 많다.


 


 


* 아쇼카 석주


 


아쇼카 대제는 기원전 260년에 마가다국의 왕이 되자마자 500명의 대신과 후궁을 죽였다. 그 이후 인도 대륙을 거의 완전히 통일하면서 엄청난 살육을 벌인다. 칼링가 지역만 정복하면서 10만을 죽이고 15만명의 거주지를 강제로 옮겼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에선 이후 전쟁의 잔혹함을 늬우친 아쇼카 대제는 불교에 귀의하면서 법에 의한 통치를 벌이기로 마음 먹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통치 이데올로기로 불교를 채택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일제의 문화 정책 비슷한. 여튼 즉위 20년에 맞춰서 인도 대륙의 주요 불교 유적지에 40개의 석주를 세운다. 지금까지 세상에 남아 있는 석주는 20개. 그 중에 3개가 본 기자가 주로 있는 네팔 남부에 있다.


 



구나함모니불 탄생지임을 표시했던 아쇼카 석주. 니그리하와


 



구류손불의 탄생지임을 표시했던 아쇼카 석주. 고티하와


 


과거7불 중 제 5불인 구나함모니불, 제4불인 구류손불,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에 하나씩 있다. 구나함모니불과 구류손불의 탄생지에 세워진 석주는 석가족의 왕국이었던 카필버스투, 불교경전에는 카필라성이라고 나오는 지역 근처에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이곳에서 약 40킬로미터 서쪽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를 표시한 아쇼카 석주. 룸비니


 


이 석주가 중요한 것은 14세기 이후 역사의 기록에서 없어졌던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의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뭐 일부 상태 안 좋은 힌두트바(힌두교의 세상)를 외치는 인도 정치인들은 자기네 동네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라고 우기고 있긴 하지만.


 


1896년에 독일 고고학자와 네팔 지주가 발굴해서 찾아냈던 것은 "이곳이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이며 이에 세금을 1/8만 받는다"는 내용이 들어간 비문이었다. 지금도 비교적 선명하게 그 비문을 읽을 수 있다.


 


구류손불의 탄생지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진 고티하와의 석주는 사진에서처럼 부러져 있으며 구나함모니불의 탄생지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진 니그리하와의 석주도 부러진 상태로 있다.


 


네팔은 좀처럼 바뀌는 것이 없는 나라다. 그럼에도 룸비니, 니그리하와, 고티하와가 좀 바뀌었다. 뭐냐... 요즘은 이 곳에 네팔무장경찰 AFP가 총들고 경비를 서고 있다. 왜냐... 한국인 한 분이 룸비니 석주에 못으로 십자가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새기다가 잡혔고, 그 이후에도 석주에 락카칠로 십자가를 그리려고 했던 한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스리랑카 아누라다뿌라와 캔디


 



스리랑카 캔디시에 있는 치아진신사리 앞


 


스리랑카의 캔디에는 무굴제국이 불교 유적들을 파괴하는 것을 피해 모셔온 치아진신사리가 있다. 평소에는 보관함 안에 넣어두다가 의미있는 불교 행사에 맞춰 한 번씩 일반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에게 공개한 것은 15년 전. 그리고 공개를 하기 위해선 1주일 내내 24시간 예불을 올린다고 한다. 방탄유리로 보호되는 방 안에 있는 치아진신사리 보관함을 열기 위해 필요한 열쇠는 총 9개. 수상과 대통령, 대종정 등이 나눠서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거의 핵발사 코드 보관하는 수준이다.


 


 



방탄유리 앞에서 예를 올리는 스리랑카 대통령. 대통령도 여기까지밖에 접근을 못한다.


 


그리고 아누라다뿌라에는 아쇼카 대제가 자신의 딸을 시켜 보낸 보리수 나무가 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에 있던 보리수 나무의 가지를 딸이 스리랑카까지 가지고 와서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수령이 2300년이 넘는다.


 



아누라다뿌라의 보리수 나무


 


이외에도 스리랑카에는 불교 유적지들이 많다. 초기 불교가 고스란히 그대로 유지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종교적, 역사적 가치, 대단히 높은 곳들이다. 그런데 이 불교유적지들에 입장하기 위해선 필히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역시 한국 기독교도들이 락카 등으로 훼손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인도 비자


 


한국 기독교도들의 행패야 봉은사 땅밟기 같은 오컬트적 주술행위부터 샘물교회 사건으로 터져나왔던 이슬람 성지 훼손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것. 별로 신기한 거 아니다. 그런데두 이거 쓰는 이유. 인도 비자 발급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자 신청시 "인도에서 선교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서약서를 첨부하도록 했단다. 2012년 5월 14일부터.


 


이 포인트에서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씨발 니네 종교의 자유 때문에 왜 내가 서약서 써야 하냐...?


 



할 거면 들키질 말던가(?)


 


인도 정부가 이거 요구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단순히 기독교도들의 광적인 선교 활동 때문은 아니다. 인도의 전국 정당 중에 하나인 BJP는 정강이 태양족의 "힌두트바", 힌두교들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힌두 민족주의정당이다. 종교 갈등, 정말 심하다. 이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 중에 하나인 UP주에선 2006년 한 해 종교 분쟁을 막다가 죽은 경찰이 1000명이 넘기도 했다. 종교 분쟁으로 지들끼리 죽인 숫자가 아니라 그걸 막다가 죽은 경찰이 1000명이다. 인도 경찰들, 총 들고 있으며 일단 때리고 시작한다. 그런데두 그렇게 죽어나갔다.


 


이런 앗쌀한 판에... 한국인 선교단이 들어와서 "할렐루야"를 힌두 성지에서 외친다고 생각해보시라. 그 말 알아들으면 뭔 일이 벌어질지.


 




 


그런데...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몰라도, 이거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인과가 있는,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IMF 이후 45세 정년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꿈이 정규직이라고 하는 아이들까지 나올 정도. 직장을 잃은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편입되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말아먹었다. 그리고 이들을 흡수한 곳, 해외선교단체들이다. 이들을 끌어들이면서 선교단체들끼리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공격적 선교가 늘어난 것이 아닌가 싶은 것.


 



 


한참 일해야 하는 나이에 선교를 위한 인생 2장을 살겠다는 본 기자 또래들을 네팔에서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추정해보는 거다. 구체적인 수치는 없다.


그러나 공격적 선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97년 이후의 일이고, 한국의 경제 상황들을 따져봤을 때... 이게 과연 무관한, 소수의 광신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까...?


 


2012년 대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후보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먼저 세상을 뜬 친구, 대구 강재욱을 추모하며


국제부 Samuel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