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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5. 화요일

오랜만에 돌아온 화성


 


J에게


J, 당신을 만난 지 벌써 15년이 넘었구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강산도 바뀌고 정권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다 변했지만... 유독 변하지 않은 게 두 가지 있는 것 같소. 하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파업을 주동하고 있는 저 지긋지긋한 노조고, 다른 하나는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내 사랑이라오.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 말로 여간 쪽팔린 게 아니라서 많이 망설였지만, 그래도 어쩌겠소! 마치 스무 살 청년의 그것처럼 당신을 향해 팔딱팔딱 뛰고 있는 내 심장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으니... 


 


이런 나를 향해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좋고 주책없다고 흉을 봐도 상관없소. 이미 당신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마당에 그런 것들이 무슨 대수라고 할 수 있겠소.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꿈속에서까지 난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오. 아, 이 죽일 놈의 사랑......


 


 


 



 


 




 


 


아마도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슬프고, 고통스럽고, 무엇보다도 많이 외로웠을 텐데...


 


명품 옷만 입히고, 자연산 회만 먹게 하고, 고급 맛사지 샵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게 하고, 특급 호텔에서만 편히 잠들게 해주고 싶었는데...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그 사슴 같은 커다란 눈망울에 근심이 가득 담겨있을 것을 생각하니...


 


이 씹어먹어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 노조원 새끼들을 기어코  내 손으로 그냥...(당신처럼 교양 있고 점잖은 분에게 큰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노조의 노자만 들어도 야마가 돌아서 그만... 흥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수준 낮은 단어들을 쓴 점 그대의 넓은 가슴으로 이해 바라오) 이 모든 게 다 내 부덕의 수치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믿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주길 바라오.


 


사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작금의 상황이 힘들기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요. 믿었던 시중이 형은 은팔찌 차더니 다죽어가는 모습으로 수술 뼁끼나 쓰고 있고,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빨아주던 찌라시들도 요즘엔 지들 코가 석 자라며 자기들 코나 파고 있으니... 진짜 믿을 놈 하나 없는 더러운 세상이오. 


 


 


 



 


 


 


그나마 전투 경험이 풍부한 진숙이를 승진시켜놨더니 지 밥값은 하고 있고, 앵무새 승언이와 현진이, 허리우드액션의 재홍이, 돈맛 김성주... 기타 등등 덕분에 대충 땜빵은 하고 있지만... 한 번 배신한 놈들은 언제든 기회만 되면 또 배신하는 법, 그나마 내가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까 앞에서 딸랑거리고 있지만, 내가 힘이 없어지면 언제든 등 뒤에 칼을 꽂을 놈들이라 생각하니 정말이지 무섭고도 고독한 하루하루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만약 이런 내게 당신마저 없었더라면... 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이 수모와 굴욕... 정말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할 것들이라 생각하오. 배임, 횡령, 부동산투기 혐의에 불륜까지, 게다가 뻔뻔하다, 철면피다. 재처리다, 비리백화점 사장... 나를 향한 그 수많은 조롱과 비난의 화살들.


 


물론 그것들도 하나같이 다 아프고 쓰리지만, 무엇보다 내가 참기 힘든 것은 바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오. 쥐뿔도 없는 것들이 왜 나를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는지 원......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런 내가 싫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쪼인트까지 까이면서 왔는데, 하찮은 아랫것들에게까지 개무시 당하며 살아야 하다니... 그래서 한동안 나는 나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했었다오. 내가 봐도 내가 너무 처량하고 불쌍해 보여서 나는 김재철이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내가 아는 나는 공영방송의 사장으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그래서 모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그런 사람이다, 하는 자기 최면을 걸면서 말이오.


 


어느 땐 당장에라도 다 때려치우고 당신 손을 잡고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가령 안드로메다 같은 곳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었지만, 난 그래도 꿋꿋하게 그 모든 역경과 고통을 참아냈다오. 아니, 참을 수밖에 없었소. 나를 위해서가 아니오. 가카를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오. 당신을 위해서, 오로지 당신과 나의 보랏빛 미래를 위해서였단 말이오.


 


 


 



 




 


 


우리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쪽팔림은 한순간이지만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긴 것 아니겠소.


 


지금 당장이야 까짓것하고 사표 써버리고 나오면 맘이야 편하겠지만 그런 다음엔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겠소. 음으로양으로 공들여왔던 고향에서의 국회의원 출마도 게거품이 돼버렸고, 그동안 당신의 그 탁월한 수완 덕에 여기저기서 삥땅 친 돈이 꽤 짭짤하긴 하지만, 당신과 내 사이가 대한민국 방방곡곡까지 뽀록 난 마당이니 엄청난 위자료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오.


 


지금 당장이야 국민 여론의 70% 이상이 내 사퇴를 바란다고 하니까 가카나 차기 대선을 앞둔 여권에서도 내 문제에 부담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그저 그렇게 보이고 싶은 액션일 뿐이지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데 100원 걸겠소. 


 


만약 내가 지금 노조에 굴복해서 쫓겨난다면 지금 같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어떻게 되겠소? 또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는 다른 언론들은? 아마 다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거세게 일어날 것이고 결국 그들도 승리하게 될 것이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인 법이니까.


 


권력은 바로 그 '희망' 이란 놈을 제일 두려워하는 법이라오. 총선 패배, 통진당 사태, 임수경 발언,,, 사실 권력자의 처지에서 지금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오. 국민들은 이제 진보하면 부칸이 연상되는 불안함을 느끼게 됐고, 그 진보 진영 자체에서도 '역시 우리는 안돼'라는 열패감에 휩싸여서 집단 멘붕 상태에 빠졌으니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풀고 밑까지 닦은 셈 아니오. 


 


이런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국면이 전환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카드를 쓰겠소? 티 안 내려 애는 쓰지만 사실 그들은 내가 무척이나 기특하고 고마울 것이오. 자신들이 먹어야 할 욕을 내가 대신 다아~ 싸그리 처먹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저 대선 전까지 이렇게만 주욱 ~ 그냥 가는 거요. 그러면 국민은 뉴스도 안 보고 나라 돌아가는 꼴에 염증을 느끼게 될 터이고 그다음은 뭐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니 이쯤에서 줄이고......


 


물론, 이 각본에도 변수는 있소. 원래 정치란 작품에 '완벽'이란 없으니까. 가능성은 좀 희박하지만, 지금의 사태가 대충 마무리되고 구석에 몰린 야권이 똘똘 뭉쳐서 대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되면, 그때는 내가 히든카드로 쓰일 수도 있을 테니까.


 


노조도, 야권도, 심지어 가카도 해결 못 한 이 어려운 사태를 차기 대권 주자가 나서서 한 방에 해결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럴 때도 희생양은 내가 되겠지만, 세상에 공짜가 있을 리 없는 법, 나야 뒷구멍으로 퇴직금 두둑이 챙겨서 조용히 사라지면 되는 것 아니겠소. 바람과 함께, 아니 J, 그대와 함께. 하.하.하. 


  


그러니 부디 지금의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라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소.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머지않은 미래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하오.


 


그리고 지금 나와 당신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몇 개월만 지나면 지들 먹고살기에 바빠 우리에 대한 기억들도 깡그리 지워버릴 것이니 두려워할 꺼리조차 못 된다고 생각하시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도덕도, 법도, 사람들의 시선도 아닌, 두려움, 그 자체뿐이니까.


 


내가 평소 존경하는 이외수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이 혼탁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존버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셨소.


 


 


 



 


 


그대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존버 정신이란 '존나게 버티는' 정신인데, 누가 악플을 달든 말든, 죽이네 살리네! 욕을 하든 말든, 그저 묵묵히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뜻이라오. 지인의 작품을 표절해서 출세한 녀옥이도, 나라를 통째로 말아 드신 가카도, 그 가카의 형님도 다 이 존버 정신으로 저렇게 버티시는 걸 보면 정말 훌륭한 정신이라 아니 할 수 없소.


 


 




 


 


J, 오래간만에 써보는 편지라 장황하기만 하고 두서 없는 점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고, 때 이른 무더위에 소중한 그대의 몸 잘 건사하기 바라오. 내 사랑은 오직 그대 한 사람 뿐임을 늘 명심하고...  힘이 들 땐 꼭 기억하시오. '존버 정신!'


 


 


 



 



P.S) 요즘 집에도 못 들어가고 호텔을 전전하며 생활하는데, 그러다 보니 잠도 잘 안 오고 해서 그대를 위해 노래 가사를 한번 써보았다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우리의 애틋한 사랑을 아파하면서,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밤을 새워 쓴 것이니, 부족해도 나무라지 말고 예쁘게 봐주시길... 그리고 내가 생각날 때마다 혼자서 불러주시길... 내 사랑.



 


    


J에게-


 


J, 스치는 뉴스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댈 그리워 하네♬


 


J, 20억 공연과

J, 7억원 카드는

내 가슴 속 깊이 얼룩져 남아 있네♪


 


J, 끗발좋은 사장직이

멀~리 사라진다해도~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J, 김재철이 누구야~

J, 난 그런 사람 아니야♪~♪


 


J, 우리가 걸었던~

J, 아파트 그 길을♬

난 이 밤도 쏠쏠히~

쏠쏠히 걷고 있네~♪♬


 


 


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