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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7. 목요일

부편집장 필독


 



 



 


 



 


독자 여러분,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다.


 


대망의 마지막 편이다. 지금껏 항상 강조해왔지만, 이 시리즈는 지난 이야기들을 착실히 읽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특히 17편 <배신의 계절>과 20편 <왕의 귀환>은 꼭 복습하기 바란다.


 


 



 


테무진은 아버지를 잃은 고아였다. 그는 지옥 같은 포로생활과 도망자 생활을 거쳤고 아내를 빼앗겼고 화살에 목이 꿰어 죽을 뻔하기도 했으며, 전쟁에서 몇 번의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노인이 다 된 나이에 불과 19명의 부하만 남아 흙탕물로 갈증을 푼 적도 있다. 테무진은 자무카라는, 더없이 뛰어난 친구이자 라이벌을 만나 반 평생에 걸쳐 생사를 넘나드는 대결을 펼쳐야 했다.


 


그토록 많은 절망과 실패, 불운을 겪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인물은 테무진이 유일무이하다. 그 성공의 크기는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폭발적이다.


 


테무진은 나이만 정벌에 성공하면서 초원을 제패했다. 남은 적들을 초원 밖으로 완전히 몰아냈다. 무엇보다 1205년, 자무카가 죽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의 죽음을 만류했지만, 속사정이 어쨌든 자무카의 죽음은 초원을 통일하는 마지막 방점이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 즉 초원 유일의 칸이 되었다. 이제 유일무이한 군주로 등극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테무진 본인이 절대적인 칸으로 등극하겠다고 설치면 그건 꼴불견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입지전적인 정복군주는 절대자로 '추대'되는 모양새를 띈다. 이 편이 보기 좋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합리적이다.


 


혼자 절대자의 위치에 올라가면 그건 그저 싸움 잘하는 도적과 다를 바가 없다. 무슨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도 아니고, 혼자 '내가 킹왕짱이야!'하고 1인자의 자리에 덜커덕 앉아버리면 남은 백성들 입장은 뭐가 되는가. 죄다 싸움에 진 피정복민이 되는 거다. 추대를 받는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합의를 얻어냈다는 뜻이다. 어차피 승자가 오르는 자리라지만 형식 즉 ‘모양새'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테무진은 부하들과 초원 백성들에 의해 초원의 절대적 칸으로 추대 되는 순간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물론 놀고 있지는 않았다. 테무진은 자신이 절대적 대칸으로 추대 되는 순간, 지상에 출현해본 적 없는 새로운 국가를 출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선에 승리한 후 정식 취임할 때까지 국정을 구상하는 대통령 당선자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테무진의 마음은 그것보다 백 배는 더 진지하고 복잡했을 것이다. 아예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거였으니까...


 


테무진은 문맹이었고, 당시 주변국이었던 고려나 금나라, 탕구트 등의 기준으로 보면 야만인이었다. 당시에 존재한 어떤 문자로도, 제 이름도 쓰지 못한 노인네가 국가 체계를 만들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국가란 복잡한 체계로써,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는 법이다. 테무진은 이걸 하루아침에 만들어야 했다. 아마 골머리 깨나 썩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 편에서 테무진이 고민한 결과를 확인해볼 수 있다.


 


 



 


‘자기가 속한 세계'를 통일한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중국인들은 예부터 중원의 패권을 놓고 싸울 때 '천하(天下)를 논한다'고 표현한다. 천하는 사전적으로는 인간 세계 전체를 뜻하는 말이지만, 정치적인 의미는 한정적이다. 중국인에게 천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통일 중국의 황제가 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주변국 군주들에게 조공을 받아 외교가 안정되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이 천하엔 북방 유목민들, 서역이라 부르던 아랍 문화권은 빠져 있다.


 


비슷한 예로 전국시대 일본의 영주들에게 천하를 제패하는 것은 ‘교토로 가는 것'이다. 일본인에게 천하통일이란 교토에 있는 천황을 보위하는 쇼군이 되는 것이지, 중국으로 진출해 새로운 중국 왕조를 창건하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려와 후백제, 신라가 경쟁한 우리나라의 후삼국시대를 보면, 당시 사람들도 '삼한(三韓) 통일' 즉 한반도를 통일하는 과업을 당연시하고 있다. 삼한통일은 궁극의 목표이자 결국 도달하게 될 종착역이다. 누가 이루냐의 문제일 뿐... 여기엔 중국을 침략하자거나 일본에 진출하겠다거나 하는 사족이 없다. 그런 건 통일 후의 외교문제다. 우리 조상들에게 ‘자신이 속한 세계'는 한반도였고, 따라서 천하통일이나 삼한통일이나 결국엔 같은 말이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중세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다. 유럽 군주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타이틀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다. 이미 서로마제국은 멸망했고 명목뿐인 황제 자리긴 했지만 말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본인이나 유럽인들이나, 황제가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에 진출해 술탄이 되거나 동로마를 점령해 로마 통합 황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설정은 하지 않고 살았다.


 


반면 유럽에서 쳐들어온 십자군에 맞선 살라딘(원래는 '살라후 앗 딘'으로 부르는 게 맞다.)은 이슬람 세계를 통일함으로써 당시 아랍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십자군을 물리쳤던 것도 그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통일해 힘을 한 데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와 중세 사람들의 세계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보다 특별히 넓지도 않았다. 인간의 사고방식엔 비슷한 데가 있다. 테무진이 초원을 통일한 것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얘기다. 저번 23편 '초원통일'에 나온 것처럼, 자무카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이 테무진과 자신의 대결을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서부터 해가 지는 서쪽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이 닿았다."


 



 


자신은 비록 패했을지언정, 세계 전체를 놓고 테무진과 싸워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 세계는 초원 유목민 세계다. 물론 자무카도 초원 바깥의 세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살았지만 그가 투쟁의 무대로 설정한 세계는 자신이 태어나고 활동한 초원이었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테무진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속한 세계'를 통일했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 끝까지 올라간 것이다.


 


 



 


우리는 1205년 겨울에서부터 1206년 봄에 이르기까지, 테무진의 심경을 상상해보도록 하자. 이제 곧 자신은 초원세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기스칸'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물론 우리는 익히 알다시피, 테무진은 젊은 시절 한 줌의 세력을 모아놓고 칭기스칸으로 추대된 적은 있다. 흔히 1차 즉위라고 부르는 그 사건을 역사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의 테무진은 명목 뿐인 대칸이었으며, 실제로 '칭기스칸'이 된 후 자무카에게 처절하게 패배했다.


 


테무진이 '진정한' 칭기스칸이 되는 건 1206년에 2차 즉위, 혹은 '진짜 즉위'라고 부르는 사건을 통해서다. 1차 즉위가 순 뻥카였다는 건 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테무진 본인은 물론, 심지어 그의 부하들까지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이름을 두 번씩이나 주고 받을 이유가 없다. 여하튼 이제 곧 테무진은 칭기스칸이 된다.


 


자, 그럼 테무진은 뭘 하려고 했을까. 우리는 테무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는 초원에서 평생 군사 집단을 이끌고 싸워왔다. 글을 배울 기회는 없었고, 나중에 배웠지만 재능이 없었는지 글을 깨치는 데 실패했다. 타고난 두뇌는 그저 평균치거나, 그 이하가 분명하다. 카리스마가 있었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테무진은 신체적 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고 좌중을 사로잡는 특별한 감각이 있지도 않았다. <몽골비사>에서 테무진이 실제로 했다고 기록된 대사들은 모두 소박하며, 심지어 전투 직전에 하는 말도 그닥 뜨겁지 않다. 그저 상식적인 말뿐이다. 그에 반해 자무카는 전투 전 웅장한 웅변으로 군사들을 휘어잡았으며, 다른 상황에서 보여주는 표현력도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


 


테무진은 투르크족, 위구르 족 등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평생 부대끼며 살았지만, 단 한 마디의 외국어도 구사하지 못했다. 특히 투르크어가 심각하다. 중세 몽골어와 중세 투르크어는 서로가 서로의 방언이다. 거칠게 말해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아무리 거리를 벌려줘도 서울말과 제주도 사투리 정도다. 그런데 투르크어 한마디 하지 못했으니 정말 언어능력이 저렴한 사람이다. 요즘 한국의 수험생이라면 아마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 점수가 처참했을 것이다.


 



 


그럼 무쇠처럼 단단한 성품의 남자였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테무진은 부하들과 가족들 앞에서 자주 울었으며, 특히 여자들의 호통에 정신을 번쩍 차리기도 한다. 판단력이 뛰어난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전쟁에 지고 나서도 현실을 부정하고 우왕좌왕한 적도 있다. 사람을 끝까지 우직하게 믿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의심하고 화내다가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딱 걸려버리는, 그런 인간이다.


 


테무진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실패를 몇 번이나 경험했다. 불운하기로 치면 테무진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거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점에서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안 죽고 오래 산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속한 세계 전체를 통일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크게 성공하는 게 가능할까? 사람들은 대체 뭘 믿고 그를 우직하게 믿고 따랐단 말인가?


 


그가 성공한 이유를 한 번 복기해 보자.


 


헐룬은 자기 자식인 테무진의 장점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운동에도 재능이 없고, 특별히 용감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최고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개를 무서워해 부모들이 신기해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도대체 얘의 어디가 뛰어나다고 칭찬해야 하는 걸까? 헐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테무진은 가슴에 재능이 있다."


 


엄마로서 무척 노력했다는 게 보인다. 딱 집어 칭찬할 게 없으니, 저렇게 뭉뚱그린 거다. 하지만 역시 엄마는 엄마다. 자식을 엄마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저 말은 테무진이 지닌 소박한, 그러나 확고한 장점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몽골인들은 사람의 영혼이 피에 있다고 믿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뇌가 몽골인들에겐 피였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情), 즉 뜨겁거나 차가운 마음의 에너지는 간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중세 몽골어에는 '간이 있다'는 표현이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간에 가득 찼다는 뜻이다.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다정한 사람, 즉 정이 많은 사람. 둘째는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한국어가 몽골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우리는 정주 농경문명의 후손이지만, 그보다 역사를 더 오래도록 타고 올라가면 우리말의 기본적인 관념은 유목민의 생활에서 나왔다. 우리말에도 '간이 크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표현이 있다. 겁이 없다는 뜻이다. 이 사례는 중세 몽골어와 다를 바가 없다.


 


한국어의 뿌리는 몽골어와 마찬가지로 유목민의 언어다. 기본적으로 문맹이고, 실용적이면서 물질적이다. 문자란 건 배워본 적도 없는 사냥꾼이자 목동이자 전사를 생각해보라. 형이상학적인 언어 개념에 도달할 방도가 없다. 이들이 인간의 영혼, 정신, 양심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들은 허구한 날 인간의 신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짐승들을 도축하는 삶을 산다. 원시적인 해부학자들이다.


 


물론 인격을 장기에 대입하는 건 동서를 통틀어 보편적인 언어습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유목민들이 더 세부적일 수밖에 없다. 왜 우리말에서 멍청한 사람을 돌머리라고 하겠는가. 두개골이 단단하단 뜻이 아니다. 두개골은 가장 소중한 뇌를 보호하는 장치기 때문에 사실 단단할 수록 좋다. 돌머리는 단단한 뇌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죽은 후 부드러운 뇌조직이 굳어 단단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돌머리는 ‘뇌가 이미 죽어 생각할 수 없는 상태'를 이른다.


 


중세 몽골인들에게 영혼은 피에 있고, 마음의 에너지는 간에 있다. 생각하는 능력은 물론 머리에 있다. 자존심과 과단성은 쓸개에 있다. '쓸개 빠진 놈'이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쓸개는 한자로 담(膽)인데, 용기를 뜻하는 '담력'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순우리말과 인격의 위치가 다르다.)


 


그렇다면 심장엔 무엇이 있을까. 선과 악, 즉 양심이 있다. 우리말에 '염통에 털이 났다'는 표현이 있다. 양심이 없다는 뜻이다. 중세 몽골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과 악에 재능이 있다라... 이게 대체 뭘까. 아예 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중세 몽골 초원엔 '보편적 도덕률' 같은 철학적인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지구상 어디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보편적 악이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실천해야 할 옳은 일 같은 건 없었다. 중세 몽골인들에게 도덕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이런저런 사람들과 관계 하면서 맺는 '약속'이다. 몽골 전사들에게 다른 부족을 기습해 약탈하고 학살하는 건 죄가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아무 약속도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중세 초원의 도덕은 '조폭의 의리', '조폭의 도덕'이었다.


 


'가슴에 재능이 있다'는 헐룬의 말은 테무진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 남다른 면모가 있다는 얘기다. 누구도 억울하게 하지 않고, 누구한테나 같은 원칙으로 대한다. 테무진은 공정하다는 뜻이다.


 


물론 테무진이 성공한 데에는 여러가지 인간적 요소가 있다. 잡초 같은 인내력, 어떻게든 될 거라는 낙천주의가 없었다면 테무진이라는 인간은 진작에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함이야말로 그를 초원 유일의 대칸으로 만든 최대 요인이다. 왜냐하면 칸은 혼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서 싸우는 군사 지도자는 없다. 사람들이 따라주어야 한다.


 


테무진만큼 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영웅은 역사에 전무후무하다. 어린 시절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있을 땐 소르칸 시라 가족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젤메는 테무진이 쥐뿔도 없던 시절에 군신의 의무를 다한다고 그의 가족에 와주었다. 말을 도둑맞았을 땐 처음 만난 보르추가 친구가 되어 그를 도왔다.


 


테무진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만 받은 게 아니다. 그는 고아이자 포로로서 신분계층의 바닥을 경험해봤다. 테무진은 제로에서 출발했으며, 따라서 신분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도 제로에서부터 파악했다. 테무진이 자신이 맺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철저하게 공평하고 공정했다. 그래서 철저한 '계약의 인간'이 된다.


 


 



 


공정함. 그리고 약속.


 


테무진은 이 평생의 모토 - 기브 앤 테이크라는 단순하고도 확고한 원칙을 새로운 국가에 대입한다. 여기서 성장이 둔하기 이를 데 없는 대기만성형 영웅 테무진의 숨은 재능이 드러난다. 광대한 사고의 스케일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테무진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새로이 그리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구축해냈다. 조폭의 의리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사회정의’로 점프했다고 보면 된다.


 


그 과정을 보자.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한다. 군사지도자가 된 테무진은 백성들의 충성과 납세의 대가를 공정하게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칼을 쥔 권력자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었다. 테무진에게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의무였다. 그는 초원 사람들이 처음 경험해보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군주였다. 초원 대중은 바보가 아닌 한 테무진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테무진의 공정함과 민심은 상호 관계를 가진다. 민심이 그와 함께 했다.


 


테무진은 자무카와 함께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군사지도자가 되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의 무리를 떠나면서 '초보 칸'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자무카 무리의 태반이 테무진에게 넘어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쥐뿔도 없는 테무진에게 말이다. 물론 테무진이 보여준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건 테무진에게 자신들의 인생을 걸면서 권력을 쥐어준 행동이다.


 



 


테무진이 13익 전투에서 자무카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한 후, 외려 승자 쪽에서 패자에 넘어온 부족들이 있다. 이후 테무진에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충성한 오로이드족과 망구트족이다.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에서 대패했을 때도 오히려 자무카 쪽에서 귀순자가 넘어왔다. 불과 19명의 부하만 데리고 발주나 호숫가로 도망갔을 때는 '초스 차간'이 이끄는 고롤라스족이, 부족 전체가 조건 없이 귀순했다. 나이만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는 옹구트족의 지도자 '알라쿠쉬 디긴 코리'가 세가 약해 불리해 보이던 테무진을 선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드라마틱한 순간은 20편 '왕의 귀환'에서 이야기한 테무진의 재기전일 것이다. 단 19명만 데리고 초원에 다시 나타난 테무진을 위해, 불과 며칠만에 수만 명의 전사들이 아무 조건 없이 결집했다.


 


결과적으로 그만한 숫자가 모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당시 테무진은 상식적으로는 패배가 확실한 전쟁을 선포했다. 수만 명의 전사들은 테무진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모여들었다. 테무진을 향한 초원의 민심은 죽음을 각오할 정도였던 것이다.


 


테무진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자신의 사회를 구축했다. 그래서 사회 전체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게 된다. 이는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소박하지만 확고한 장점 때문이기도 하다. 테무진의 머리 속에서 개인 사이의 계약은 개인과 사회의 계약으로 확장된다. 이는 백성들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회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소정의 책임을 진다.


 


테무진은 근대적 사회계약의 원리로 국가를 건립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는 대체 어떤 사회일까?


 


당연히 더 이상의 갈등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다. 테무진은 기본적으로 야심가가 아니다. 그는 빼앗긴 아내 보르테를 찾기 위해 무력행사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군사지도자가 되었다. 자신의 목적에 사람들을 동원한 이상 칸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고, 결국 초원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하게 됐다.


 


전통적인 야심가에게 자신이 속한 세계를 통일하려는 이유는 스스로 그 세계의 정점에 서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반면 테무진은 야심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삼았다. 의도하지 않게 폭력에 뛰어든 테무진의 목표는 ‘지배’가 아니라 ‘폭력의 종식’이었다.


 



 


그러니 이제 1인자가 되었으고, 1인자로 살다 죽을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칭기스칸' 등극이 초원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바람직한 결과가 되어야 한다. 이제 밑에서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일단 우리는 테무진이 칭기스칸으로 등극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1206년 가을. 초원에서, 아니 유목민 문화 전체에서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있어본 적 없는 최대 스케일의 잔치가 열렸다. 일전에 누누이 설명했지만, 초원에서 잔치는 양껏 가축을 도살할 수 있는 가을에 벌이는 법. 주인공은 당연히 테무진. 장소는 주인공 맘이다. 테무진은 자신이 태어난 오논 강가, 자신의 토템인 부르칸 칼둔이 저 멀리 보이는 목 좋은 곳에 잔치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에, 초원의 전 인구가 결집했다. 참석자만 놀러온 게 아니라, 아예 온 백성 온 가족이 모여 각자의 게르를 쳤다는 얘기다. 그늘 한 점 없는 초원에 도열한, 햇볕에 빛나는 수만 개의 하얀 게르. 유목민은 가축을 끌고 다니는 법. 수천만 마리의 가축도 함께 모였다. 그 중 가장 많은 머릿수를 자랑하는 건 역시 하얀 양. 초현실주의 그림에나 어울릴 법한 압도적인 광경이다. 조그만 강가에 나라 전체가 모였으니.


 


모였으니 잔치를 시작한다. 테무진은 사열시키듯 사람들을 불러다 쭉 세워놓고 권위적으로 건국행사를 하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신나게 노는 와중에, 새로운 국가 건립을 알린 것이다. 현명하기도 하거니와, 참으로 즐거운 풍경이다. 하긴 이제 테무진과 백성들 모두 즐거울 일만 남았다.


 


그동안 초원 사람들은 서로 많이도 죽고 죽였다. 테무진의 신생국 건국 당시 초원 인구는 대략 100만 명 가량이었는데, 이 인구는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의 절반 정도라는 계산도 있다. 내 생각엔 그래도 60% 정도는 남지 않았을까 하는데, 어쨌든 엄청난 비율의 인구가 싸움판에서 죽어나갔다.


 


이제 끝이다. 어차피 인구의 절대 다수는 전투와 약탈에서 이익을 얻을 일이 없다. 국가가 어떻게 될 지는 테무진이 알아서 해 줄 테고, 이제 평화롭게 먹고 살 일만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은 ‘나담’을 했다. 나담이란 몽골의 축제를 뜻하는 말인데, 다른 곳의 축제와는 좀 다르다.


 



 


나담은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몇 종목의 스포츠 대회를 연다. 활쏘기는 기본. 물론 말타기 시합도 빠질 수 없다. 씨름도 당연히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것은 바로 몽골식 폴로이다. 말 타고 채로 공을 때려서 골인시키는 그 폴로를 말한다. 아, 그리고 폴로라는 특정 스포츠를 제도화한 게 영국이지, 폴로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초원의 유목민들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고.


 


뻥 뚫린 광활한 초원에서 수백 명의 전사들이 말을 타고 엎치락뒤치락 쫓고 쫓기는 것이다. 시합 시간은 최소 몇 시간은 된다. 관중들은? 역시 말을 타고 길게는 수 킬로미터씩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구경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등 위에서 숙면을 취하는 몽골인들이니 간식을 씹으며 편하게 응원했을 것이다. 참으로 호쾌한 스포츠다.


 



 


참고로 요즘 몽골에서는 말 폴로 대신 야크(소의 일종) 폴로를 많이 한다. 타고 다니는 동물의 속도가 느려야 좁은 경기장 안에서 시합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TV로 볼 수 있기도 하고.


 


이렇게 놀다가 대낮부터 술과 고기를 진탕 먹는다. 이젠 원수도, 적대부족도 없어졌으니 멱살 잡을 일도 없다. 모두가 흥청거리는데 드디어 테무진이 나타난다. 테무진은 모전(양털 펠트) 깔개 위에 서 있고, 그의 심복들(아마도 네 마리 개와 네 마리 말)이 밑에서 그를 받쳐 올리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추대된' 군주라는 뜻이다.


 


심복들이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테무진을 잔치판의 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그 다음 퍼포먼스는 테무진의 멋진 상상력을 보여준다. 바로 '영기 교체식'이었다. 초원의 최고지도자는 각자 창대 끝에 말총을 달아놓은 영기(툭 tug)를 갖고 있다. 이 영기에 대한 제 3편 '아버지를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설명을 잠깐 가져와 볼까.


 



영기는 영어로는 보통 'war banner', 즉 '군기'로 번역된다. 물론 군기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몽골에서 영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영기는 사령관이나 칸 등의 지도자들이 쓰는 물건으로, 그 사람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다. 즉 '군대'나 '가문'보다는 어떤 '한 사람'을 상징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엔 일종의 무속신앙이 녹아들어있다. 영기는 그 사람의 영혼과 인격을 대변한다. 영기의 소유자가 죽으면, 그 사람의 혼을 머금는다.



 


영기가 '군기'로 번역되고 심지어 아시아에서도 군기처럼 표현되는 이유는 뻔하다. 워낙 전쟁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쟁터마다 휘날리는 칸들의 영기는 전쟁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초원에 단 하나의 영기만 휘날리게 될 터. 테무진은 원래 검은색을 쓰던 영기의 색깔을 바꾸는 파격을 선보인다.


 


백마의 말총으로 만든, 흰 영기를 등장시킨 것이다. 지금껏 있었던 검은 영기가 전쟁과 증오를 뜻한다면, 전통을 뒤바꾼 흰 영기는 평화와 화합을 상징한다. 흰 영기는 테무진의 초원통일 목표가 폭력의 종식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물증이기도 하다.


 



 


테무진을 상징하는 흰 영기는, 역시 흰 아홉 개의 영기에 둘러싸여 운반된다. 많은 역사가들은 이 아홉 개의 영기가 아홉 개의 부족, 즉 모든 부족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왜 겨우 아홉 개인가? 초원에는 백 개가 넘는 부족과 씨족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언어권, 문화권, 출신 인종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역시 불충분하다. 무엇보다 그 아홉이, 대체 뭘 뜻하는지 어느 사료에도 나와있지 않다.


 


필자의 해석은 이렇다. 몽골 초원의 수(數) 관념은 예로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연도를 양띠 해, 말띠 해 식으로 십이간지로 표현하던 걸 봐도 그렇다. 모든 부족과 출신 집단을 표현할 수 없다면, 중국인들의 완전수 9를 상징적으로 차용해 오는 걸로 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즉 9개의 영기가 각각 뜻하는 대상은 애초에 없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9는 완전수이므로 그저 '모든'을 뜻한다.


 


영기 교체식은 평화의 시대가 왔음을 알림과 동시에, 테무진 자신은 어디까지나 '여러분 모두의 지지로 칸이 된 사람'임을 강조하는 퍼포먼스였다. 몹시도 예의 바른 모습이다. 이렇게 새로운 군주가 탄생했다.


 



 


테무진은 칭기스칸이 되었다.


 


 



 


우리는 칭기스칸 대신, 그의 본명인 테무진을 쭉 쓰도록 하자.


 


테무진은 잔치판에서 천호장부터 발표했다. 건국 직후 천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들 먼저 정한 건데... 왜 군사 개편부터 한 걸까? 이는 주민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사영웅 테무진은 군사로 나라를 세운 만큼 군 편제를 사회체계에 적용했다는 기존 학자들의 설명이 있긴 하다. 버뜨, 이걸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정주문명에서 거주 및 소속의 단위는 당연히 지역에 귀속된다. 성(城)이나 city, 도 구 동 군 구 읍 면 리 애비뉴 스트릿은 모두 공간의 개념이다. 일정한 거주 지역이 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 최소한의 생활 단위는 '같이 이동하는 무리'이다. 정주문명의 '동네'에 해당하는 이 단위를 '아이막'이라 한다.


 


아이막에서 분대, 즉 아르반이 나온다 하자. 아르반 열 개가 모이면 백호대인 자우트, 자우트 열 개가 모이면 천호대인 밍간이 된다. 이 천호장들의 이름을 발표한다는 것은, 정주문명으로 치면 백성 여러분이 살 구(區)나 동(洞)을 정해준다는 뜻이다. 당연히 맨 처음 알려주는 게 상식이다.


 



 


발표된 천호는 모두 95개. 지정된 T.O가 다 들어맞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거칠게 계산하면 9만5천 명의 군사가 있었을 터. 이 밍간들은 테무진의 개와 말들이 지휘하는 만호대인 '투멘'에 배치된다.


 


이제 테무진은 법령을 반포하기 시작한다. 글타. 하나의 거대한 유목문화권이던 초원이 단일한 국가가 되었으니, 관습적으로 행해져오던 의리나 염치 따위를 법으로 정해 고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테무진의 법에 따르면 15세부터 70세까지의 모든 건장한 남성은 죄다 전사다. 군사국가의 면모가 느껴진다. 역사학자들도 스파르타를 연상시킨다며 "역시 정복자 칭기스칸!"하고 놀라는 모양새다. 그치만 역시 이것도 테무진이 쌈박질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이전까지 초원에서 전사계급은 명예로운 신분이었다. 그 밑으로 양치기와 염소치기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모든 남성이 다 똑같은 전사라는 건,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모두 평등하고 명예로운 백성이 됐다는 뜻이다. 그럼 가축은 누가 치는가? 모두가 각자 돌보는 거다. 모든 남성이 전사라는 건 곧 모든 남성이 양치기라는 거고, 다시 말해 누구나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는 동등한 인격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몹시 군사적으로 보이는 테무진의 신생국 이면에는, 실은 혁명적인 평등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초원사람들은, 생전 처음 접하는 이 ‘법’이란 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 마디로 좀, 깼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그렇게 하기로 하면 하는 거지... 무슨 보편적 대원칙이라는 거, 모든 인간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률이라는 거 들어본 적도 없고 이해도 잘 안 갔을 것이다.


 


그래서 테무진은 초원 바깥에서 문자와 책을 끌어왔다.


 


테무진은 지난 24편 '초원통일'에서 첫 등장한 몽골의 초대 재상 타타통아에게 새로운 문자를 만들라고 지시해 두었었다. 새로운 문자라... 분명 엄청난 과업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처럼 전혀 새로운 형식의 문자체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타타통아는 위구르 문자를 초원 사람들의 발음에 맞게 조금 손 봐서 개량했다. 위구르 문자의 '몽골 버전 업그레이드'를 실시한 것. 그러나 역시 보통 일은 아니다. 세계사를 통틀어 몇 안 되는 '문자 발명가' 반열에 이름을 올린 타타통아의 학문적 수준은 역시 알아줘야 한다.


 


몽골 문자는 일종의 알파벳, 즉 표음문자다. 서역, 그리스, 중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표음의 기본적인 골격은 그리스 알파벳을 탄생시킨 지중해 연안에 뿌리를 둔다. 아랍어의 영향을 받아 서체는 글자가 모두 한 줄로 이어지는 필기체다. 때문에 생긴 걸 보면 아랍어와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한문처럼 세로로, 위에서 아래로 쓴다.


 



몽골 문자로 쓴 서예작품


 


글이란 걸 듣도 보도 못한 대부분의 초원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테무진이 말하면, 그게 문자가 되어 종이에 적힌다. 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입 밖에 내자마자 사라지고, 머리로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이에 글을 적으면 한 번 말한 게 거기 붙박이로 있다. 실로 경이로웠을 것이다. 초원 사람들에겐 너무 경이로운 나머지, 아예 배우고 쓸 엄두가 나지 않아 몽골 문자는 금방 사라지고 말지만...


 


그래서 몽골 역사상 최초의 책은 바로 테무진의 대법령이다. 학자들은 이 대법령 혹은 최초의 책을 표기법에 따라 '야사', '야싸', '자사', '자삭' 등 약간씩 다른 발음으로 부른다. 우리는 이걸 보다 섹쉬한 발음으로 '얏사'라 부르기로 하자.


 


얏사는 표지가 푸른 색으로 되어 있는 책이었다. 테무진이 직접 썼으면 좋았겠으나... 위에서 설명했듯 그는 문맹을 탈출하는 데 끝내 실패했다. 그래서 타타르족을 멸망시킬 때 동생으로 입양한 타타르족 소년(물론 지금은 소년이 아니다) '시기 코토코'에게 서기를 맡겼다. 테무진이 말하면, 시기 코토코가 기록한다. 그러면 법이 된다. 자연스럽게 시기 코토코는 초대 대법관이 되었다.


 


참고로 테무진은 자신이 만든 나라의 법적 체계를 단번에 완성하지 않았거니와,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법학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특히 성문법이란 걸 이해한 사람도 아니다. 죽을 때까지 수정하고 첨부했고, 얏사는 향후 20년 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제 이 법을 살펴보자. 몽골 건국 철학의 기초가 담겨 있다. 얏사의 본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얏사에 있었던 몇 개의 항목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를 긁어모아도 테무진의 새로운 나라를 이해하기엔 충분하다.


 


그리하여 그 내용은...


 


 



 


- 어떤 몽골인도 다른 몽골인을 노예로 삼을 수 없고, 어떤 몽골인도 다른 몽골인의 노예가 될 수 없다.


: 다시 말해 노예제를 완전 폐지한다는 뜻이다. 테무진은 ‘노예제'니 ‘폐지'니 하는 형이상학적 언어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저렇게 노가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몽골인은 몽골족이 아니다. 통일된 초원에 사는 인구 전체를 부르는 말이다.


 


- 전면적이고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다.


: 단연 세계 최초다. 테무진이 믿는 부르칸 칼둔과 영원한 푸른 하늘은, 그 개인의 신념일 뿐이다. 모든 종교를 장려하기 위해 목사나 승려 등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세금과 군역이 면제된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언어와 관습, 출신으로 인한 차별은 금지된다.


 



 


- 여성을 빼앗거나 재물을 주고 사와 결혼할 수 없다. 즉 약탈혼과 매매혼을 강력 금지한다.


: 이제 결혼하려면 초원의 전통대로 데릴사위 노릇을 몇 년 해서 장가를 들어야 한다. 연애결혼을 할 게 아니라면... 여성을 재산으로 간주할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해, 결과적으로 비약적인 여권 신장이 이루어졌다.


 


- 살인, 강도, 절도, 폭행, 강간, 간음 등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상식에 반하는 행동은 당연히 금지되었다.


 


- 가축을 훔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다. 남이 잃어버린 가축을 발견하면 반드시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도로 간주된다.


: 이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긴장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유목민에게 가축은 재산의 거의 전부다. 개인의 재산은 철저하게 안전이 보장된다.


 


- 초원의 모든 야생 동물을 백성이 공동 소유한다.


: 따라서 누구도 함부로 사냥할 수 없다. 정해진 사냥철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동물들이 새끼를 낳고 기르는 기간을 보장해주어 초원의 식략-백성의 공동자산-이 풍요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누구도 식량으로 먹을 만큼 이상의 짐승을 사냥할 수 없다. 사냥한 짐승을 도축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명기해 놓았는데, 이는 자원의 낭비를 철저히 막기 위해서이다. 초원은 모두의 것이니까.


 


- 지금부터 몽골에 서자, 사생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 수십 년간 남성이 여성을 약탈하고, 수많은 남성이 죽었다. 그러다 보니 전사 하나가 몇 명의 여성과 결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아버지 없는 아이가 많다. 과부와 결혼하면 피 안 섞인 아이들도 따라오는 법이고... 족보가 개판이 되는 거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차별이 존재할 수 있는 것. 테무진은 어떤 아이던 현재 속한 가정의 '적자'라고 못을 박았다. 나라의 모든 애들이 평등해야, 평등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법이다.


 



 


얏사에 법령으로 기록되었는지는 확인 된 바 없지만 분명히 실존했던 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게 있다.


 


<굶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 백성의 생존은 국가가 책임진다.>


 


끝내 재혼에 실패한 과부와 양부모를 찾지 못한 고아들, 연고 없는 노인들이 많았다. 국가는 이들의 생활을 책임진다. 테무진이 칭기스칸으로 추대되고 수십 년 후, 유럽 교황의 특사로 초원에 온 한 선교사는 몽골 조정에서 매일 아침 3만 명 분의 하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목격했다. 고아들은 식사뿐 아니라 가축이나 옷 등의 현물로 '연금'을 지급받았다. 이를 '고아 수당'이라고 한다.


 


글타. '계약의 인간' 테무진은 약속과 의리를 개인과 국가로까지 확장시켰다. 그 결과 수백 년 진보의 역사를 훌쩍 건너뛰어, 13세기 초원에 난데없이 복지국가가 출현해버렸다.


 


 



 


그런데 복지를 하려면 재정이 있어야 한다. 이 재정이란 바로 테무진 개인의 지갑일 수밖에 없다. 테무진이 생각한 국가가 얼마나 세련되었든, 일반 백성들의 관념 속에서 울루스(나라)는 곧 테무진이다. 이들은 국가라는 추상적 대상에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칸인 테무진에게 각자 세금을 낸다. 일전에 설명했던 유목민의 전통 '10분의 1세'다.


 


테무진은 자신에게 고인 전 백성의 재산 10분의 1을, 다시 국가 경영과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 군주의 자리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다. 여기에 먹고 입는 것은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이 생활 습관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테무진은 이후 죽을 때까지 누더기를 입고, 일반 백성들과 같거나 그 이하의 식사를 하며 산다.


 



 


우리는 지금 13세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모든 주변 문명이 야만의 땅이라 무시하던 험한 초원을 배경으로. 칸이란 칼과 활을 든 무서운 정복자, 보호가 아닌가? 국가라는 틀 안에서 군주조차도 일반 백성과 같은 의무를 진 '계약자'라면, 대체 그는 어떤 군주일까? 국가란 곧 그의 사유 재산이 아니었던가?


 


아니다. 나라는 모두의 것이다. 그래서 테무진은 자기가 법을 만들어 놓고, 법의 권위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선언한다. 그는 자발적으로, 역사상 최초로 법의 제약을 받는 군주가 되었다.


 


몽골제국은 테무진이 불과 19명의 부하들과 함께 쫓겨갔던 발주나 호숫가에서 태동되었다. 사회계약이라는 그릇 안에 다양성과 관용을 담은 20명의 '근대적 시민결사체'는 겨우 3년 만에 초원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로 확장되었다. 테무진이 '모전 벽의 사람들'로 부르는 문화공동체 개념은 타타르족을 정벌하는 시기에 구상했다. 이 이야기는 17편 '배신의 계절'에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중요한 부분이니 꼭 읽기 바란다.


 


스스로를 법 아래로 내린 테무진의 결정은 충격적일 정도로 진보적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혁명의 마침표라 할 만하다.


 


사실 칸이 자기가 만든 법령 몇 개 어긴다고 사회에 별다른 문제가 생길 리는 없다.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하지만 테무진의 셋째 아들 우구데이의 회고에 따르면, 테무진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다. 계약의 인간 테무진에게 약속은 그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런데 테무진이 만든 법에는 무시무시한 이면이 있었으니...


 


 



 


얏사에는 하나라도 법령에 저촉되면 저지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사형>이라는 조항이 있다. 하도 사형이라는 말이 반복되어서, 훗날 몽골에 정복당하는 아랍문화권에서는 사형을 '얏사'라고 부를 정도였다. 왜 이랬을까.


 


첫째, 초원에는 감옥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들에게 감옥을 짓고 관리하는 건 생뚱맞은 일이다. 엄청 불편하기도 했을 테고. 둘째, 가두는 형벌이 없다면 줘패는 방법이 있을 텐데...


 


본래 전통적인 태형의 목적은 나쁜 놈을 아프게 하는 데에도 있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드넓은 초원에 사람이 뚝뚝 떨어져 사는 초원에서는 누구 하나 궁뎅이 맞는다고 구경꾼들이 모이진 않는다. 말 타고 달려가서 구타를 집행하고 오는 것도 영 번거로운 일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사형 이하의 형벌은, 당시 초원의 생활 방식에 당최 들어맞지가 않았다. 칼잡이가 출동해 목을 쓱 베고 오는 게 가장 합리적이긴 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사형이라니 좀 심하지 않은가? 인간인 이상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오해를 풀기 위해 무리하다가 원치 않는 잘못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기는 1206년 겨울, 초원. 타타르족 출신의 청년 '셰쿠'가 아이라크(마유주)를 마시다가 동년배 '오구즈' 군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치자.


 


"이 타타르족 패잔병 고아 출신 같으니!"


 


셰쿠도 가만 있진 않아서...


 


"오구즈 넌 나이만 과부의 자식 아니냐, 이 사생아 놈아?"


 


"얼씨구 이런 미친 놈을 봤나. 마귀(전통 토템)를 믿더니 돌았나 본데, 주께서 용서치 않으시리라!"


 


그리하여 셰쿠와 오구즈는 주먹다짐을 했다. 주먹이 더 센 셰쿠가 오구즈를 때려눕히고, 그러고도 분을 삭히지 못해 오구즈의 모자를 빼앗아갔다. 오구즈는 오구즈대로 화를 풀 방법이 없어 모자를 빼앗긴 보복으로 셰쿠의 새끼 양을 훔쳐다가 바베큐를 해 먹었다. 그리고 둘 다 걸렸다.


 


두 사람은 사형을 몇 번씩이나 당해야 한다. 상대의 출신을 모욕했고, 종교 얘기까지 나왔다. 이거 법령 위반이다. 거기다 셰쿠는 폭행에 모자 강도, 오구즈는 가축 절도를 저질렀다. 그럼 감옥도 태형도 없으니 두 젊은이를 즉각 사형한다...?


 


그런 일은 없다. 테무진은 삼진아웃제와 비슷한 절차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셰쿠와 오구즈는 경고를 먹고 훈방조치된다. 이게 첫 번째 절차다. 그런데 오구즈가 가축 절도를 또 저지르면? 그러면 상황이 좀 더 심각해져서, 오구즈는 근신을 해야 한다. 돌산에 가서 국가 소유의 염소를 치거나 초원 외곽의 황무지에 가서 낙타를 관리하는 식이다. 일종의 유배인데, 유배라고 부르기도 뭐 한 것이 기껏해야 몇 개월 고생하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구즈가 세 번째로 가축 절도를 저지르면? 이때도 국가는 바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오구즈가 속한 공동체, 즉 가족과 친지들이 포함된 '아이막'에서 그가 과연 사형을 당해 마땅한지 판단하게 한다. 미니 쿠릴타이가 열리는 것이다. 오구즈가 웬만큼 막나가는 문제아가 아니라면,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사람들인데 인정상 죽여도 되는 놈이란 결론이 나오기 힘들다. 우리 오구즈, 또 살아남는다.


 


<경고 - 근신 - 공동체 회의>의 순서를 따르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걸린다면... 그 때는 누구도 오구즈를 쉴드쳐주기 힘들어진다. 그 이전에 오구즈가 같은 잘못을 네 번이나 성실하게 저지를 정도로 정신이 나가기도 힘들다.


 


그런 탓에 테무진의 신생 울루스에서 사형 집행 비율은 극도로 낮았다고 추산된다. 이후에도 몽골제국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을 때만 사형을 집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원나라에서 백 년간 집행한 사형 건수는 송나라 시절에 1년 간 처형된 숫자보다 적다. (몽골 사람들은 죄인들을 고문하거나 모독하는 짓을 싫어했으며, 능지처참이나 화형 같은 화려하고 잔인한 처형 퍼포먼스를 혐오했다.)


 


무엇보다 테무진이 새로 건설한 울루스에선 네 번 이상 죄를 지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다같이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다. 물론 그런 세상에서도 범죄는 일어나지만, 초원 사람들은 몇 세대 동안 전쟁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참이다. 약탈과 살육이 삶의 기본 전제였다. 여기서 벗어난 해방감을 지금의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다.


 


한편 <몽골비사>를 보면, 오논 강가에서 '건국 파티'를 벌일 때 나라를 함께 세운 공신들에게 '아홉 번까지 죄를 묻지 않는다'는 대목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대단한 특권 같지만 일반인도 서너 번은 기회가 있는 만큼 큰 차이는 없다. 면책 횟수가 5~6회 더 많을 뿐이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선 똑같다.


 


나는 테무진이 칭기스칸이 된 이후의 초원이 이상국가라든지, 유토피아였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초원은 여전히 거칠고 가난한 세계였다. 그러나 테무진이 초원을,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국가와 지역 중 백성에게 가장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세상으로 만든 건 분명하다.


 


이 나라, 그러니까 몽골의 정식 명칭은 뭘까.


 


 



 


새 나라의 이름은 아무래도 테무진의 출신부족인 몽골족에서 따오는 게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테무진의 칭기스칸 등극에 의해 출범한 나라의 국호는 '예케 몽골 울루스'이다.


 



 


'예케'는 '크다'는 뜻이다. '울루스'는 독자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백성, 혹은 그 백성이 모인 집단을 뜻한다. 울루스는 원래 다양한 형태의 사회집단을 의미한다. 나라뿐 아니라 부족, 씨족, 부족연합체도 울루스라고 한다. 그래서 앞에 '예케'라는 말을 붙여 사이즈를 키워 놓은 것이다.


 


예케 몽골 울루스의 말뜻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예케라는 형용사가 수식하는 명사가 몽골일까, 울루스일까? 몽골이라면 그 뜻은 '위대한 몽골', '대몽골국' 정도가 된다. 울루스를 수식한다면 '위대한 몽골 백성들' 혹은 '모든 몽골인' 즈음이 될 것이고. 이런 고민은 울루스라는 말의 뜻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라인가, 백성인가.


 


그런데 만약 13세기 몽골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그는 위의 논쟁을 보고 어이없어 할 것이다. 그에게 울루스는, 그냥 울루스다. 울루스가 그냥 울루스인 이유는 백성과 나라가 애초에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초원 유목민들은 국가를 지역적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초원에 깃발을 꽂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내 나라다"라고 한들, 거기 살던 사람들이 가축떼를 몰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다. 훗날 테무진은 호라즘을 정벌하면서 전 백성을 서역에 데리고 갔다. 나라 전체가 이동한 것이다. 유목민들은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백성이 있는 곳이 국가이며, 더 간단히 말해 백성이 곧 국가다.


 



 


그래서 예케 몽골 울루스는 '대몽골'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냥 '몽골'이라고 하면 된다. 이제부턴 '몽골인'과 '몽골족'을 헷갈리지 말자. 몽골족은 테무진을 배출한 작은 부족에 불과하다. 몽골인은 테무진이 칭키스칸으로 등극할 당시에 초원에 살던 유목민 전체이며, 예케 몽골 울루스의 국민이다.


 


수많은 인종과 부족 출신 유목민들이 한테 모여 '몽골인'이라는 새로운 민족이 탄생했다. 신생국가의 신생민족.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시아 대륙을 피로 물들이면서 역사상 보기 드문 애국심과 결속력을 보여준다.


 


 



 


나는 역사에 기록된 예케 몽골 울루스의 출범을 볼 때마다 복잡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신분 제도가 철폐되고 복지 사회가 구축되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며 다양성이 존중 받고 모든 구성원이 먹고 사는 기본권을 갖고 태어나며, 군주조차 법의 권위에 복종하는 사회. 평화와 상생을 당연한 가치로 전제하는 평등한 사회가 뚝딱 생겨나 백 년 이상 지속되었다.


 


1cm 어치의 진보에도 숱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대한민국에 사는 나로선 테무진과 몽골인들의 질주가 부럽고 의아하다. 물론 예케 몽골 울루스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신흥 군사대국'이다. 몇 년 후면 가공할 폭력집단이 되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국가가 집단이기주의의 결집체라면, 예케 몽골 울루스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겐 정의로운 나라였다.


 


문맹의 전사 테무진은 어떻게 상식을 넘어서는 도약을 할 수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그가 문맹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의 보편적인 문화 수준과 동떨어져 있었다. 문화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생만 죽도록 한 대신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다. 초원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체해야 할 문화적 기반이 워낙 얇았다.


 


테무진은 포로 생활도 해 보고 폭삭 망해도 봤다. 평생에 걸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다. 삶 자체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따라야 할 것처럼 구는 관습과 오래된 사고방식이 실은 별다른 실체도 없는 뜬구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다.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라는 것도 노예로 태어났으면 비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순 허구다. 초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처럼 여겨지는 혈통도 허울일 뿐이다. 테무진은 몽골족에게 여러 번 배신 당했지만 살면서 만난 친구들은 그에게 끝까지 충성했다.


 



 


'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테무진이 지도자 노릇을 하면서 깨달은 '제대로 된 세상'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좋은 사회란 종묘와 사직이 바로 서고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어여삐 여기는 사회도 아니고, 유럽식으로 신의 종으로 선택받은 군주가 교황을 보위해 정의를 지키는 사회도 아니며, 모든 카스트가 톱니바퀴처럼 각자 자신의 신분과 역할에 몰두하며 오래된 시스템을 굴리는 사회도 하니다.


 


좋은 사회란 그저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다. 테무진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로 했다. 초원 사람들이 보기에 테무진의 생각은 그들에게 매우 좋았다. 그래서 지지했다. 하여 그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었다. 그게 전부다. 진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진보란 한반도의 수질이 좋아지고 금광이 발견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끼리 정한 규칙이 더 합리적으로 발전하는 것에 불과하다. 별다른 물질적 기반이 필요 없다. 테무진이 칭기스칸으로 등극하면서 초원 야생동물의 번식력이 갑자기 더 좋아진 게 아니듯이. 다수가 사회를 더 좋게 만들기로 합의하면, 세상은 생각한 그대로 좋아지게 되어 있다.


 


진보란 지난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더 좋은 세상은 언제나 우리 발 앞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것을 먼 신기루로 느낀 나머지 붙잡을 생각을 못 했던 건지도 모른다.


 


약자가 짓밟히고 비겁한 자가 승리하고 기득권이 야합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세상의 진리가 아니다. 고쳐야 하고 고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 근거 없는 희망이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너무 지친 나머지 테무진이 가졌던 순진함을 상실한 게 아닐까. 현실을 바꾸기 위해 먼저 몽상가가 되는 것은 어떨까. 밑져야 본전이지 않은가.


 


 



 


시리즈 내내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테무진은 세계를 정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초원 바깥 문명에 관심이 없었고 외부 세계도 초원을 신경 쓰지 않았다. 흰색 영기를 채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국운을 건 전쟁은 특히 그랬다.


 


몽골은 신흥 군사대국이었다. 병력이 10만 명도 되지 않았지만 전원이 초정예 기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세계 정복의 기수가 아니라 초원을 지키기 위한 국방군의 개념이었다. 직업 군인이 아닌 이상 모두가 현역이자 예비군이이었다.


 


노인이 된 테무진은, 다 이루었다. 당시까진 그랬다. 자신에 세운 나라에서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걸 보다 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과 3년 후 흰 영기는 전시를 상징하는 검은 영기로 교체된다. 그 후로 오랫동안 초원 사람들은 흰 영기를 보지 못한다.


 


이제 곧 악마의 손길이 테무진과 그의 나라를 부를 것이다. 예케 몽골 울루스는 세계 최대의 제국이 될 것이다. 그 미래를 아무도 모르는 1206년의 초원은 흥겨운 잔치판이었다.


 



 


 




 


 


<테무진to the칸>을 마치며


 


독자 늬덜은 분명 화가 날 거다. 화 내라. 난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1편에 내가 쓴 내용 그대로 드래그 앤 카피해 보여주도록 한다.


 



본 시리즈 <테무진to the칸>은, 테무진이 어떠한 과정에 의해 칸이 되었는지까지를 다룬다.


물론 … 칭기즈칸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정복자로 설정하고 문명 대 문명의 대결을 벌이게 되는 <칸to the월드>까지 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까지 쓸 지는 내 맘이다.



 


내가 뱉은 말 그대로 테무진이 칭기스칸이 되는 대목까지 썼다.


거기 분명히 적혀 있다. '내 맘'이라고.


 


어쨌든 나는 독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누구도 날 뭐라 할 수 없다. 유 노? 암 언터쳐블. 언더스탠? 응?


 


이제 <칸to the월드>시리즈는 없을 예정이다. 왜? 내 맘이니까.


 


그러나.


 


만약 700개의 리플이 달리면 시즌2 <칸to the월드>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테무진to the칸>시리즈를 끝내면서 본 기자가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다. 첫째는 댓글란을 통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고 소중한 지적을 해 주셨던 ‘히스토리아’님. 히스토리아님 덕분에 심각한 오류를 수정할 수 있었고, 역사에 대해 더 깊은 고찰을 해볼 수 있었다.


 


고로 히스토리아님의 댓글은 100개로 친다.


 


두 번째는 편집장님. 나는 편집장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마빡업데 업무를 대신 했는데, 그런 날 마침 <테무진to the칸>이 업데이트 되는 날이면 일고의 고민 없이 기사 박스를 대문짝만하게 걸어 놓았다. 또한 마감을 어긴 적이 몇 번 있었다.


 


편집장님의 댓글 역시 100개의 위력이 부여된다.


 


뱀발이지만 카인도 첨부한다. 이 연재물 기사 편집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너무나 수고를 많이 했으므로, 고마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댓글 2개의 효과를 투척한다.


 


참고로 700개의 리플이 달려야 하는 기한은 기사가 나간 후 정확히 일주일 후다. 다음 주 목요일 업데시간까지다. 한 독자가 복수의 리플을 달 경우 차감으로 그치지 않고 0개 처리한다. 욕플, 악플은 치지 않는다. 밍숭맹숭한 댓글도 계산되지 않는다. 선플만 센다. 꼭 센다. 두고 봐라. 쓰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리플 700개는 사실 채워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따라서 이때 나는 면죄부를 얻어 홀가분해진다. 내가 바라는 시츄에이션이다. 만약 700건이 넘어간다면?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시즌2 <칸to the월드>를 써야 하겠지만,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에 대한 이유가 생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강제력이 생기는 거다.


 


그래서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댓글 700개다. 억울해도 별 수 없다. 쓰는 사람은 나거든. 어쩔래.


 


...그래도 연재가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사실 그동안 개인적으로 험한 일이 많았거니와, 딴지일보 기자로서도 경황이 없었다...


라고 말한들 그건 결국 핑계일 것이다.


 


지난 주 일요일부터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수요일부터는 회사에 나오지 못했고, 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했다. 온 몸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테무진 생각을 했다. 애초에 테무진을 쓰기로 한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영웅이 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테무진에 매달렸지만, 연재를 시작하고 일 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


 


몇 개월 간 마지막 편을 쓰지 못하고 내놓고 있던 테무진을 떠올린 건 목의 종양이 부어 호흡 곤란이 왔을 때였다. 테무진이 타이치우드족과 싸울 때, 적장 제베의 화살에 목이 꿰뚫려 쓰러진 대목이 생각났다. 테무진은 다음 날 일어나 전투를 지휘했고, 제베를 부하로 받아들였다.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무엇일 것이다. 소독된 공간에 누워 항생제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건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짓이었다.


 


나는 21세기를 편하고 안전하게 살며 테무진의 인생을 조망한다. 이것은 고생도 과업도 뭣도 아니다. 테무진은 내가 편하게 글로 떠드는 그 인생을 직접 살아냈으니, 아프다는 건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이 마지막 편의 대부분은 병원 응급실에서 쓰여졌다. 인생은 승패의 게임이 아니다. 내가 신선이나 현자가 못 되는 이상 관조의 대상도 아닐 테고. 삶이란 그저 행위의 연속일 것이다. 무언가 유의미한 것을 계속 해 나가야 하고, 하고 있어야 할 테다. 적어도 내 자신은 스스로에게 점수를 줄 수 있길 바란다.


 


그럼 댓글 700개를 기대, 혹은 우려해보겠다.


 



 


 


- 끝 -


 


부편집장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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