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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4. 목요일

너클볼러


 


들어가는 척 하며… 아니 들어가며…


 


들은 척’이란 대개의 경우는 고의로, 아주 드물게는 착오에 의해 어떤 곡을 전혀 듣지 않았음에도 들은 것처럼 행세하는 모든 행위의 통칭이라 정의할 수 있다. 도박판의 판돈이 원금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듯 어떤 유형이로든 들은 척을 시작하게 되면 그 결과는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사람들의 지위에 대한 집착은 곧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함에 있다고 분석했다. 어쩌면 들은 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또는 이 이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요컨대 들은 척의 성공 여부가 가져다 주는 득실은 개인이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기대감과 정확히 비례하는 그 무엇이라 하겠다.


 



'척' 계의 코란.


 


대부분 딴지 독자 제위들께서는 ‘척’ 보고 알아챘을 것이다. 위 서문은 바로 트위터 플픽과 실제의 모습과의 싱크로율 백뿌로를 자랑하는 너부리 편집장의 불후의 저서, <<읽은 척 매뉴얼>>의 서문을 ‘책’을 ‘곡’으로, ‘읽은’을 ‘들은’으로만 바꾼 바로 그것이다. <<읽은 척 매뉴얼>>이 무엇인가? 서문이 좋으면 본론이 개판이라는 ‘용두사미즘’마저 과감히 부정한 위대한 저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척’계의 코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척’을 아우르는 경전인 바, 서문의 감동이야 이루 말할 나위가 없겠으나, 트위터 플픽과 실제의 싱크로율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요지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너무 그러지들 말자. 외로운 게 싫다고 호소하지 않나. 그게 정 싫으면 실제로 함 보고 말하자. 그리고 사람 너무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하는 거 아니다. 더욱이 연재될 지 안 될 지 모를 본 시리즈, 대놓고 <<읽은 척 매뉴얼>>의 왕창 오마주인 바. 이 기획이 모두 다 너부리 편집장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 이해하고 또 이해하자.


 


어떤게 플픽이게?


 


3천만을 위한 매뉴얼.


 


5월 14일자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11일 기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2천672만 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 5천255만 명의 50.84%로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이거슨 언제든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어wp낄 수 있는 사람 수가 무려 2천672만 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 매뉴얼은 바로 2천672만 명, 아니 반올림해 3천만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단순 감상자는 물론이요, '옆에 있는 아리따운 여인 귓구녕에 이어폰 한 짝 대뜸 꽂아 넣기'등의 응용기술을 시전하는 고급사용자들을 위한 매뉴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듣고 느낀다는 본질적인 기능을 뛰어넘어 ‘척’계의 경전 <<읽은 척 매뉴얼>>를 베이스로 하여 연인 사이에, 친구 사이에, 동료 사이에, 듣보 사이에 다양한 응용기술을 가미할 수 있는 음악계의 초연히 등장한 하이브리드 ‘본류’이자 그 어떤 쉐프도 듣도보도 못한 극강의 레쉬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 가슴 떨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이고, 위대한 등장과는 달리 사용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등장하는 뮤지션, 혹은 곡들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 관련된 곡들을 음미하듯 감상한다. 얼마 전 우리 쉐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음식의 맛은 말이죠. 미각보다 후각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해요’ 그렇다. 와인의 진정한 맛도 와인 잔에 코를 쑤셔 넣고 ‘큭큭’해야 느낄 수 있듯 먹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각과 미각을 총동원하여 맛의 본질에 접근하듯, 한 곡 한 곡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복기하며 듣는다. 일종의 청각을 통한 이미지프로세싱, 득도의 과정인 것이다.


 


소개한 곡들을 앨범을 사거나, 제값(?)주고 다운받아 스마트폰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듣는다. 자신의 나와바리에서는 이어폰이나 오디오를 통해 틀어놓고 들은 척을 하거나, 음식점이나 술집 같은 공개된 장소의 경우, 학습한 곡들이 나올 때 잽싸게 들은 척 하시면 된다. 행여나 자신의 들은 척을 뛰어넘은 내용들을 나오게 되면 긴장들 마시고 이어폰을 잡아 빼거나, 잽싸게 ‘더 좋은 곡 들려줄께’라는 멘트와 함께 다음트랙으로 넘기면 된다. 공개적인 장소에선 갑자기 '똥 마렵다'는 핑계가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한 대응방법 되겠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성공은 보장 못한다.


 


드디어 딴지 뮤직에서 본격적으로 제공하는 들은 척 매뉴얼의 시작을 가열차게 알리는 바다. 5월은 가정의 달. 살짝 늦었지만 - 뭐 언제 우리가 따박따박 시기 맞추고 그랬던가 ? 가정의 달 특집이자, 슈퍼스타 추모 특집이다. 그래 봐야 <읽은 척 매뉴얼>의 대놓고 오마주이면서 뭐 그리 대단하게 호들갑이냐고? 그게 궁금하신가? 그 이유는 우리 함께 ‘진실과 사실 사이의 촘촘한 경계’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싫음 말고…


 


자. 그럼 이 영광스런 시작의 주인공은 바로... 팝의 황제. 상처입은 영혼 마이클 잭슨 되시겠다.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1958년 8월 29일 - 2009년 6월 25일)


 


시작하기 전에...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락앤롤 명예의 전당 기념 콘서트에 등장한 스티비 원더. 비비 킹, 스모키 로빈슨, 스팅, 제프 벡과 같은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과 함께 자신과 함께하는 뮤지션의 히트곡을 불렀다. 제프 벡과 스티비 원더와 함께 부르는 'Superstition'을 상상해보라. 뭐가 막 벌렁벌렁 그런다. 스모키 로빈슨이 내려가고 올라온 존 레전드, 스티비 원더는 존 레전드의 피아노에 맞추어 마이클 잭슨의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른다. 2절을 후렴을 부를 즈음 그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불과 몇 달 전 세상의 떠난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이 사무치도록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 그렇게 소울의 신은 팝의 황제에게 또 다시 작별인사를 건냈다.


 


마이클 잭슨의 1982년작 'Thriller'의 프로듀싱에 참여한 슈퍼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2009년 마이클 잭슨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뛰어난 아티스트는 발소리 나지 않는 고양이 같은 우아함으로 무대를 누볐고, 음반업계의 기록을 경신했으며, 세계 전역에서 문화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어디 그뿐인가. 혹자는 마이클 잭슨이 있었기에 오바마의 당선도 가능했다고도 한다. 단일앨범 1억 1,000만 장(2위 AC/DC의 [Back In Black] 4,900만 장), 10장의 정규앨범 통틀어 7억5천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의 보유자. 그래미 19회,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13회, 빌보드 어워드 40회 수상. 13곡의 넘버원 싱글 등. 11살의 나이 'I Want You Back'으로 최연소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뒤로 늘 정상에 있었던, 더 떠들어봐야 내 주댕이만 아픈 그야말로 저스트 팝의 황제. 이런 슈퍼스타의 경우, 무지막지한 필모그래피에 대해 어설프게 들은 척 했다가는 자칫 조때는 결론에 '어서옵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이 매뉴얼을 달달 외운다할 지라도 결코 ‘임진모 선생’이나 ‘배철수 선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여 이런 경우 '들은 척'의 정도가 아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는 거다.


 


마이클 잭슨. 그를 직접 보고, 들은 세대들에겐 당연 그의 이전에도, 그의 이후에도,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팝의 황제 그 자체이겠으나, 그를 보고 듣지 못한 세대들에겐 서서히 낯선 이름이 되고 있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마이클 잭슨을 모르다니’라며 호들갑 떨지 말자. 누군가에겐 ‘문워크’는 양준혁의 홈런 쒜레머니(할라면 제대로 하든가)로 기억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 말이다.


 



문워크를 모독한 양준혁의 쀍스텝


 


마이클 잭슨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09년 6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힘들게 복귀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계속된 성형으로 인한 부작용과 결혼 실패, 아동 성추행 혐의 등으로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에 깊은 상처를 입고 난 뒤였다. 아마 그의 음악을 먼저 접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성형 부작용으로 인해 마스크에 얼굴을 숨기고 다니는 흉칙한 정신이상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언론은 마스크와 모자 속에 숨은 그의 모습을 헤드라인으로 뽑아냈다. 팝의 황제가 팝계의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클잭슨 사망 3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5월은 가정의 달.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몇 곡 함께 들으며, 많은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느라 정작 자신은 외로웠던 슈퍼스타를 떠올려보자. 세계가 인정한 슈퍼스타였고, 동시에 가장 불우한 아들이기도 했던 마이클 잭슨. 입이 슬슬 간지러워들 지시는가. 그래도 참자. 매뉴얼 정독 후 들은 척해도 늦지 않는다.


 


 


들은 척 매뉴얼


 



PLAYLIST


 


1. Billie Jean (Thriller. 1982)


2. Beat It (Thriller. 1982)


3. Thriller (Thriller. 1982)


4. Bad (Bad. 1987)


5. The Way You Make Me Feel (Bad. 1987)


6. Man In The Mirror (Bad. 1987)


7. Black Or White (Dangerous. 1991)


8. You Are Not Alone (History. 1995)



 


마이클의 음악에 맞추어 춤도 출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음음음'도 할 수 도 있다. (제인 폰다)


 


위의 7곡은 마이클 잭슨의 수많은 히트곡 중, 그러니까 춤출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음음음'도 할 수 있는 흑과 백, 동과 서를 넘나드는 완벽한 크로스오버 트랙 중, 메가 히트곡 정도가 되겠다. 이 정도의 히트곡으로 들은 척은 가능하다. 거기에


 



'Beat It'의 기타는 밴 헤일런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의 작품.


'Black or White'의 기타 인트로는 건스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쉬의 작품.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에서 방영된 흑인 첫 뮤직비디오.


'Human nature'는 몇 년 뒤 여성 3인조 SWV의 'Right Here'로 샘플링되어 인기를 끔.



 


이런 내용들을 겯들인다면 들은 척은 더욱 감질날 수 있다. 더불어 초기 앨범은 퀸시 존스, 후기 히트작 'Dangerous'는 블랙스트릿의 멤버이기도 한 테디 라일리가 프로듀싱했다는 사실들을 뜬금없이 던져 먹혀들어간다면 당신은 순식간에 짝퉁임진모선생정도의 대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선곡을 가지고 들은 척을 했다가는 ‘폴 메카트니가 작곡해준 Girlfriend 같은 곡은 어떻냐?’는 질문에 ‘폴메카트니가 뭐요?’라 되물음으로서 허망하고 개망신스럽게 종결될 수도 있다. 들은 척의 백미는 모르는 부분에선 과감히 침묵을 지키다, 들은 척이 가능한 미묘한 구녕을 파고들어 대화를 완벽히 주도한 뒤 홀연히 빠지는 ‘치고 빠지기’ 전술에 있다. 일단 마이클잭슨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면 차분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 던진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 잘못 만나믄 천하의 마이클도 조때는 거죠.’


 


이제 청중들은 ‘이게 뭥미’스럽게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이제 무대는 당신의 것. 시원스럽게 들은 척을 시전한다.


 


 


들은 척의 세부스킬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나자, 팝계는 그를 추모하고, 동시에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건과 오해들로 그가 성취한 음악적 업적마저도 듣보 취급 당했기 때문이었다. 판권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던 폴 메카트니도 ‘잭슨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 자체가 곧 특권을 누린것이다’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런 추모와 재조명의 분위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욕을 처묵는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바로 마이클 잭슨의 친아버지 조 잭슨이었다. 아들 마이클 잭슨이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카지노를 들락거리고, 대놓고 죽은 아들의 판권 장사를 하겠다 떠들어대고, 아들의 재산 일부를 자신에게 달라는 소송을 내고 자빠졌기 때문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능력 밖의 일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부모를 고르는 것이었다.


 


'나는 벨트로 채찍질을 했을 뿐이다. 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리는 것은 몽둥이로 후려 치는 것을 말한다.'


-조 잭슨. 2005년 AP와의 인터뷰중-


 


마이클 잭슨은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클라니넷 연주자임과 동시에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고, 아버지는 크레인 기사이자, 밴드 팔콘스의 기타리스트였다. 아버지 조 잭슨은 만개하지 못한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자신의 자식들을 통해 이루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리만족의 도가 지나쳤다.


 



못난 애비상 수상자, 조 잭슨.


 


자신의 대리만족을 이뤄줄 만큼의 재능이 자식들에게 있다고 판단한 조 잭슨은 찬장 구석에 숨겨놓은 자신의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 악기를 구입한 뒤 자식들에게 악기와 함께 지옥훈련을 선사한다. 마이클 잭슨은 훗날 오프라 윈프리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는다.


 


'8살 때부터 쉼 없이 일했다.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 토할 것 같았다'


 


채찍을 들고 앉아 아이들을 연습시켰던 아버지, 그로 인해 느꼈을 가족의 공백, 고통스런 기억, 순식간에 오른 스타의 자리, 하지만 음악적, 사회적 명성외에 마이클 잭슨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다. 19살 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쥐를 사랑해요. 쥐를과 놀 때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같아요"로 밝혔듯, 그의 정신은 이미 깊은 상처로 다시 회복하지 못할 심각한 외상을 입은 상태였다. 세상에 그 많은 것중에 하필 쥐라니... 앨범 Dangerous까지 끊임없이 성공하고 인정받았지만, 그의 피부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하얗게 변해갔고, 그의 코는 인공적인 실리콘 구조물이 되어갔으며, 두 번의 결혼에 실패했고, 2003년엔 아동성추행 혐의로 고소 당하게 된다.


 


아동성추행 혐의는 팝의 황제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무죄였다. 하지만 상처가 깊었다. 자신의 개인 테마파크인 네버랜드에 아이들을 초대해 같이 놀고, 같이 자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오해를 더욱 부풀렸다. 온몸이 벗겨진 채 아버지에게 폭행당했던,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러나 떨쳐버리지 못했던 그에게 아이들은 그가 받지 못한 것을 대신 해주고픈 셀프힐링의 대상이었을 지 모른다. 유년시절의 상처는 그렇게 또 깊게 배어만 갔다.


 



한편으론 너무나 외로운 모습


 


마이클 잭슨은 어떻게든 재기하려 했다. 그의 외모와 기행을 놓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기 바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복귀 준비를 했다. 그렇게 팝의 황제가 힘겹게 다시 돌아오려 노력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럽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게 된다. 복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This Is It]에만 힘겹지만 최선을 다하는 마지막 모습이 담담하게 담겨져 있을 뿐이다.


 


늘 아버지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어온 팝의 황제는 어릴 때와 너무 바뀐 얼굴을 한 채 떠났다. 스타가 되믄 뭐할 것이고, 기네스북에 오르믄 뭐할 것이냐. 집 앞마당에 테마파크를 만들어놓고 식후땡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믄 뭐할 것이냔 말이다. 팬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You Are Not Alone' 노래를 불러도, 정작 자신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아 씨바 안타깝고 불쌍하다.


 


어릴 적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오줌을 저렸던 아버지를, 마이클 잭슨은 끊어내지 못했다. 몸서리치게 두려워했으면서도 자신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아버지 덕에 잭슨5도 가능했고, 마이클 잭슨도 가능했다. 하지만 옳지 않았다.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뭬리카.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트럼펫을 선물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피아노를 하길 바랬다. 허나 아들은 트럼펫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개인교사를 초청해 아들을 후원했다. 아들은 훗날 그 유명한 줄리어드 음대에 합격한다. 그러나 최고 명문대에 합격한 아들은 클래식과 백인 위주의 수업 대신 찰리 파커와 같은 대가들과의 클럽 세션에 몰두했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에게 줄리어드 음대 자퇴를 선언한다. 아버지는 순순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 자신의 것을 가져라'는 신념을 전했다. 그 아들은 훗날 음악사에 신화로 새겨졌다. 그 아들은 바로 '마일즈 데이비스'다.


 



재즈계의 뤠전드. 마일즈 데이비스


 


사실 스티비 원더의 아버지도 살짝 난봉꾼에 가까웠다. 하지만 스티비 원더에겐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한 줄기 빛을 느끼게 해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197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휩쓴 스티비 원더는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이 분의 의지가 오늘날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1984년, 한큐에 그래미 8개 부문 수상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 잭슨은 수상소감에서 이게 다 '간' 때문 아니, 아부지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스티비 원더와 같은 어머니도 없었다. (조 잭슨을 막기에 어머니는 너무 나약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슈퍼스타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다. 세상은 슈퍼스타의 외로움을 토닥여주지 못했고, 한때 슈퍼스타는 괴물이 되기도 했다. 힘겹게 괴물로 덧칠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슈퍼스타는 안타깝게도 복귀가 아닌 부고소식을 전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 추모 3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일그러진 얼굴의 이슈메이커가 아닌, 상처입고 아파했던 팝의 황제로 잠시나마 기억하며 대단원의 들은 척을 갈음하도록 하자.


 


근데... 이게 무슨 가정의 달 특집이냐고? 이 글을 보고도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소심한 독재자' 타입입니다. 끄~~읏


 



추신.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절, 이불 뒤집어쓰고 몰래 들으며 위로받았던 곡이 바로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였다. 테이프가 늘어질 대로 늘어지도록 힘들 때마다 듣고 또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 별 것 아닌 글을 힘들 때 같이 해준 그와 그의 음악에 바친다.


 


사족.


본문 중 '폴메카트니가 뭐요', 당신은 '소심한 독재자' 타입입니다 이 두 개의 뜬금없는 멘트들의 저작권은 본지 필진 '춘심애비' 님에게 있다고, 춘심애비(@miiruu) 님 본인이 강력히 주장한다.



 


딴지뮤직 수석 쉐프 '너클볼러'


트위터 : @Knuckleballer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