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9. 화요일
잡부기자 카인
본 기자의 개인적 고백으로 시작하겠다.
본 기자, 20대의 10년을 뚜렷한 직업 없이 보냈다. 학생이라는 직업조차 부차적인 인생이었다. 그럼 뭘 하고 살았느냐 하면,
음악을 하며, 혹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며 살았다.
현실 언어로 번역하면, '무일푼 백수'가 된다.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건 뭔 소리냐고? 그 배경은 하나다. 생활고. 본 기자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뮤지션 및 뮤지션 지망생들의 삶이 유사했다. 어느 정도 자리매김에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본 기자와의 차이점이라면 재능의 유무와 노력의 양, 그리고 자기 상황을 냉철하게 살필 수 있는 지혜였다.
재능과 노력이야 한 명의 뮤지션으로 자리잡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지만, 도저히 돈이 벌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 통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본 기자는 스물한 살 때부터 독립을 시작해야 했고, 때문에 학자금 외에도 생활비가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음악을 시작했으니 개인 라이브러리가 되어줘야 할 음악, 작업 도구가 되어줘야 할 장비와 악기 등을 스스로 마련해야만 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급박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통찰력 따위 개나 준 시간이었다.
당시 본 기자의 법적 신분은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인문학 전공자로서 얻을 수 있는 단기 알바 자리는 학자금+생활비를 대기에도 모자랄 때가 많았다. 학교와 일터만 오가는 일이 많아지고 대출에 대한 유혹이 강해졌다. 등록금과 물가는 점점 올라갔다. 임금도 몇 번 떼어먹혔다. 초반 2~3년은 휴학을 병행하며 어느 정도 버텼지만, 휴학을 다 써버린 2000년도 중반부터는 일터에서의 피로 때문에 쓰러져 있다가 등교를 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학과에서는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놀리고 있었고, 음악 동료들은 '넌 음악을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없잖느냐'고 지적했다. 이미 장비니 악기니 CD니 하는 고민은 주메뉴가 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본 기자의 당시 생활과 매우 흡사한 자료 사진. 내가 랩을 왜 했을까.
학자금 대출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의 자격 요건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못 갚을 공산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변 동료들을 보면 자명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그 생활들. 나도 그들도 약간의 환경이 다를 뿐 생활은 대동소이했다. (아직도 학자금 대출을 다 갚지 못한 아외로워 기자를 보면서 그때의 결정이 옳았다고 애써 자위하곤 한다.) 2000년대 중반, 본 기자의 동료들 중 일부가 데뷔 앨범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중 몇몇이 명성 면에서는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본 기자와 다를 게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다를 게 없는 이유는 이러했다. 앨범도 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본 기자와 달리 앨범을 냈으니 최소한의 수입이라도 들어와야 하는 그들에게, 정말로 '최소한'의 수입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본 수입은 결국 CD와 mp3 음원에 대한 저작권료일 수밖에 없는데, 이게 쥐꼬리 수준이었다.
물론 해가 변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긴 했다. 언더그라운드 시장도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갖추어갔고, 뮤지션 자신들의 이름값도 조금씩 올라갔다. 파티나 공연을 기획하는 젊은 기획자들도 거품이 왔다가 빠지고 하는 시기를 겪으며 점차 성장해갔다. 곡 판매로 인한 저작권료와 적긴 하지만 공연의 출연료 혹은 수익금 등으로 간신히 집세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니까, 일부만 그랬단 말이다.
구조는 만들어졌으되 그 구조를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다수가 아니었다. 대다수의 뮤지션들과 뮤지션 지망생들은 별도의 직업을 가지거나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했다. 그나마 구조가 생긴 후의 그들은 사정이 나았다. 구조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인생 삽질을 하던 본 기자의 또래와 본 기자의 선배 또래들은 둘 중 하나였다. 죽을 고생에 갖가지 발버둥을 다 친 후에 간신히 살아남거나, 아니면 버텨내지 못하고 시장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재능이 특출나지도 않았던 본 기자가 후자였을 것은 짐작하기 쉬울 것이다. 한창 실력을 성장시켜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했으니. 그러다 결국 본 기자는 군대 포함 10년 동안의 발버둥을 그쳤다. 대학에선 짤렸고 음악에는 사직서를 냈다. 모아놓은 돈은 전무했다. 너불 편짱께옵서 실패자의 오오라를 감지하셨다. '이 색히 인생이 망했군. 말 잘 듣겠는데?' 이 과정을 거쳐 독자 열분덜은 본 기자를 딴지일보에서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편짱님의 예측이 옳았는지는, 노코멘트)
지금까지 써놓은 수기에서 알 수 있듯, 이런 경험은 일반적인 경험이다. 본 기자가 좀 못나서 더 못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더 잘난 뮤지션들도 이런 상황을 겪어왔고 또한 겪고 있다. 현재형이란 말이다.
이제 음악을 '비장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닌 산업의 측면으로서 바라보자. 본 기자를 비롯한 꽤 많은 사람들이 개고생을 해야 했던 이유가 이 산업 구조와 연관이 있으니까.
실제로 현장에서는 "우리 몇 년 있으면 구걸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자조 섞인 대화, 자주 오갔다.
그 구조가 가리키는 근본 원인 중에서 하나는, 턱없이 적은 수입에 있다. 이 수입 문제가 해결되어야, 창작자들은 다음 작품이나 공연 프로그램 등에 투자를 할 수 있고, 여기서 또 수익이 발생하여 다음 사이클로 이어져야 한다. 이게 상식적인 순환이다. 그런데 현재의 구조는, 그게 안 되는 건 아닌데 굉장히 어렵게 된다. 거의 희망고문 수준이다.
카피 레프트(Copy Left)의 세계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산업 사회의 성립 이후 음악은 카피 라이트(Copy Right)를 준수하는 유통 구조를 만들어갔다. 본 기자 개인은 카피 레프트의 논의가 완료되어 그 구조가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실현되길 꿈꾸고 있지만, 그건 '제3의 길'만큼이나 아직은 뜬구름 단계다. 아직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고 자본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는 저작권 제도는 현재 선택 가능한 유일한 구조다.
현재의 유일한 밥줄.
저작권은 현재 뮤지션들의 기본 수입이고, 공연 등의 저작인접권 역시 그러하다. 저작권을 중심으로 하는 이 모든 '창작자의 권리'는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그 반대급부로 받는 경제적 대가다. 이 대가를 통해 뮤지션은, 그리고 그런 뮤지션을 제작하는 제작사는, 사회에서 생존과 발전을 꾀하게 되고 새로운 음악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거다. 이게 음악을 산업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보통 정리다. 90년대까지는 이런 구조가 강고했다. CD라는 매체를 통한 유통 구조를 이용해, 메이저는 메이저대로 언더그라운드는 언더그라운드대로 자기 구조를 만들어두었다.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게임판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게임판을 뒤흔들게 될 mp3라는 신매체가 발흥하던 1999년, 본지에는 음악전문기자 크리티카의 이름으로 '[비판] MP3를 말한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mp3와 인터넷 기술로 인한 유통의 혁명적 변혁에 집중한 글이다. 그 중에서 일부를 가져와 보자.
이런 연유로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세기를 맞아 이젠 음반산업의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즉, 아티스트 자신이 하나의 레이블, 음반사, 배급회사가 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한 음악유통 및 판매야말로 기존 공룡들이 지배하던 음반시장의 틀을 깨버릴 수 있는, 아티스트와 팬이 직접 만날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전망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90년대의 CD 시장 기반의 구조에서의 갈등은 배급사-제작사-아티스트 사이의 수익 분배 문제였고 한국의 경우 역시 동일했다. mp3가 출현하고 이게 유료화로 전환되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유통배급사의 역할이 줄어들어 아티스트와 리스너,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게임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세 번째 플레이어인 이동통신사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이 바닥을 접수한다!"
음악이 유통되는 구조를 보면, 대략 셋 정도의 주체가 보인다. 창작, 유통, 서비스.
창작자는 직접 생산을 하는 아티스트와 생산에 필요한 재화를 지원하는 제작사가 된다. 제작사, 즉 레이블이 지원하여 아티스트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형태다. 물론 이 창작자를 정확히 나누자면, 곡을 만들어내는 저작자와 이를 부르고 연주하는 실연자와 생산 작업을 지원한 제작자, 총 셋으로 다시 나뉜다. 싱어 송라이터라면 저작자와 실연자를 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건 미뤄두도록 하자.
유통자는 이를 배급하는 도매업자의 역할을 한다. 유통을 맡은 주체는 창작자에게서 권리를 위임 받아 음악 상품이 최대한 많은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홍보와 배급에 주력한다. 공급가를 통해, 서비스업자가 너무 싸게 팔지 못하게 견제하여 창작자의 이익을 보장하거나 반대로 횡포를 부리는 창작자도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서비스. 이게 90년대까지만 해도 주체로서 기능을 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소비자에게 음악이 판매되는 바로 그 공간, 과거에는 CD샵이요 현재에는 유통사, 특히 이동통신사다.
현재 가장 큰 음원 사이트는 모두 이들의 자회사다.
주체로서 기능이 없었다는 말은 곧 권력이 없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음악 산업의 수익을 놓고 벌이는 게임에 참여했다는 말은 권력이 생겼다는 의미다. 이동통신사는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로 등장했으며, 그것도 전례 없이 강력한 플레이어였다. 삼국지가 성립이 되긴 했는데, 이게 불균형의 삼국지다.
인터넷 환경이 강화됨에 따라 모바일에서의 음악 소비가 급증했다. 이게 게임 환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핸드폰 자체가 이전의 CD샵과 같은 소매점이 되었다. 이 때문에 모바일을 장악하고 있던 이동통신사가, 소매점을 장악한 플레이어로서 게임판을 뒤흔드는 강자가 된 요인이다. 이렇게 급부상한 이동통신사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각 국가의 mp3 시장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분수령이 된다.
미국의 경우엔, 냅스터와 mp3.com 등의 무료 다운로드 시장에 대한 공포가 운명을 결정짓는 열쇠였다. 2000년대 초반의 미국 무료 다운로드 시장(?)은 한국의 전성기와 비교해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다. 대학가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P2P가 형성되어 있었다. 게임판 바깥에 있는 거대한 몬스터가 있었던 셈이다. 덕분에 이동통신사가 일찌감치 양보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배급사는 이동통신사와 무료 다운로드 시장을 상대하며 창작자들과 밀접하게 유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이동통신사가 서비스하게 되는 소매가를, 배급사가 창작자를 대신해 혹은 창작자가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해갔다. 합리적이다.
유럽이나 대부분 아시아의 경우엔, 이 당시만 해도 '시장'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무료 다운로드가 등장하지는 않았다. 인터넷 환경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뎠던 탓이다. 때문에 아직도 오프라인 CD 시장의 비중이 큰 편이고, 인터넷-모바일의 mp3 시장에 천천히 대응할 수 있었다. 이곳의 구조는 아직 발전중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인터넷 환경이 가장 급변한 나라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가 정책 자체가 IT 환경 발전에 복무해줄 정도였다. 그 여파로 오프라인 CD 시장은 자고 일어나면 반 토막 되는 형국으로 줄어갔고 mp3 시장은 유료/무료 할 것 없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버렸다. 특히 무료 다운로드, 이건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저작권법을 타고 넘나들며 미국 부럽지 않은 네트워크를 형성해갔다.
불법 다운로드 환경은 미국과 한국이 같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게 모든 걸 결정지었다.
그런데 한국의 음악 산업 주체들이 보여준 모습은 미국과 사뭇 달랐다. 변화 속도가 미국보다 빨랐던 탓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유료 mp3 시장이 태동하던 시기, 아직 오프라인 CD 시장이 완전히 죽지 않고 제법 그 규모를 자랑하던 시기, mp3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려던 이동통신사들이 국내 유수의 기획사들을 불러모은다.
한국 음악 시장의 현재는, 그리고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mp3 전송사용료 개정안'의 문제 또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배급사들은 급변하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필이면 또 IMF 직후의 여파 속에서 몇몇은 도산하고 몇몇은 대기업에 팔려가는 중이었다. 때문에, 소매점에 해당하는 이동통신사가 중간 단계를 뛰어넘어 창작/생산 주체인 기획사들과 미팅을 잡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정확히는 이동통신사들이 설립한 mp3 서비스 업체가 불러들인 거지만.
여기서 서비스 업체가 제시한 수익금 분배율은 거의 반반에 달하는 비율이었다. 소비자가 곡 하나를 600원 주고 다운 받으면, 그 중 반을 서비스 업체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배급사-제작사-저작자-실연자 등이 나누는 거였다.
과거엔 소량의 소매점 마진이 빠진 후, 수익을 놓고 이런 주체들이 아웅다웅했다. 이게 지금까지의 게임 형태였지만, 이들 모두를 압도하는 이동통신사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얼핏 봐도 어이가 상실될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당시 유수 기획사들이 삽질을 한다. 이걸 받아들여버린 것이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CD 시장에 대한 은근한 불패 신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mp3는 토벌해야 할 불법 마적단일 뿐, 새로운 가능성의 시장이 아니었다. 되돌이켜 보면 당시 기획사들은 상당수가 8, 90년대의 조폭 자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주먹다짐 경영 문화, 그러니까 단순무식쟁이들이 아직 살아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장 구조의 디폴트가 정해져버렸다. (이 시장 구조를 세팅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회사는, SK의 음원 서비스 자회사인 멜론이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배급사와 기획사 다수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후발 주자로 게임의 전면에 등장한, SM, YG 등의 새 얼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앞선 회사들이 삽질해서 만들어놓은 최초의 불평등 구조가 점점 더 고착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모바일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여기에 국민들의 세금과 대기업의 자본이 마구 투입되고 있었다. 저항은 어려워 보였고, 그래서 그들은 적응해야만 했다.
이제 배급사는 유명무실한 플레이어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이제 제작사와 서비스 업자를 연결해주는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다. 한 번 물갈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배급사의 힘은 얼마나 많은 음원 계약을 따내어 인프라 네트워크를 얼마나 넓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시장 상황을 서비스 업자인 이동통신사가 조직해버린 상황에서 강력한 배급사들이 등장할 기회가 전무했다.
제작사와 뮤지션들은 힘없는 배급사를 통해 강력한 서비스 업자들과 이어졌고, 힘겨운 게임을 해야만 했다.
이런 식이 되어갔다.
그러나 수익의 반 정도를, 게다가 가장 넓은 시장인 모바일 시장에서는 2/3를 서비스 업체가 가져가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이 가져가고 남은 반 토막 수익을, 창작자들이 나눠 가져야 했다. 앞서 잠깐 설명했듯, 창작자 또한 단일한 주체가 아니다. 거기엔 투자한 제작사와, 창작한 저작자와, 부르고 연주한 실연자가 얽혀 있다. 이 셋이 남은 반 토막을 다시 나눈다. 셋을 합친 수치상으로는 반보다 조금 더 많이 가져가게 되지만, 결국 이를 셋이 토막토막 나눠야 했다.
거기다가 서비스 업체의 '헤드'인 이동통신사들이 배급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배급에 제작까지 손대는 로엔은 SKT의 자회사다.(얼마 전엔 아예 자회사가 아니라 합병설까지 제기되었다.) 덩치 큰 강자들이 배급사 세계에 출현하게 되자 네오위즈와 벅스는 합병을 단행했다. 이런 식으로 도매와 소매, 유통 중의 두 주체가 한 플레이어에게 장악되었다.
결국 창작 주체의 입장에서는 2 대 1의 게임이 된 것이다. 삼국지로 치면 1강인 위/진에 대해 함께 동맹 전선을 맺어야 할 촉과 오가 분리되고, 아예 촉나라가 위/진에 합병이 된 상태인 것. 삼국지의 역사는 이후 오나라가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당연히 창작자와 제작자들은 싸움이 힘들 수밖에 없다.
현재의 최종 게임 형태
CD 시장은 소규모로 줄어들고, mp3 음원 시장은 대기업에게 장악 당한 상태. 이게 2000년대 후반부터 제작사와 뮤지션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시장 상황이다. 가뜩이나 음악은 유사한 규모의 자본과 노동이 필요한 다른 예술 문화 장르에 비해 단가가 낮다. 무형으로 간주해도 상관없는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다매(多賣) 전략을 취하는 게 당연한데, 혹은 언더그라운드처럼 소품종 다량 생산을 가야 하는데, 워낙 박리(薄利)다 보니 다매도 소품종도 제대로 먹히질 않는다. 애초에 분배 받는 파이가 너무 적다. 생존 유지 이상의 무엇을 하기가 힘들다.
자, 우리 총수가 작곡가라 치자. 어느 날 괜찮은 리듬과 멜로디가 떠올라 뚝딱뚝딱 곡을 만들어냈다. 다행히 총수는 김용민 교수에게 좀 배워놔서 여러 장비와 프로그램도 다룰 수 있어 편곡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작사는 너불 편짱이 해줬다. 이제 총수와 편짱은 이 곡의 작사/작곡가로서 저작권자가 되었다.
그 남자 작곡, 이 남자 작사
총수와 편짱은 이 곡을 누구 줄까 하다가, 본 기자에게 준다. 본 기자는 때는 이 때다 하여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이 곡을 디지털 싱글로 만든다. 기타만은 세션을 쓴다. 본지의 논설우원 파토 선배. 이제 본 기자와 파토 우원은 실연자다.
그리고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러니까 보컬과 기타를 녹음하는 스튜디오 사용료, 기타리스트에게 지급될 세션비, 곡을 믹싱하고 마스터링할 엔지니어에게 줄 페이, 앨범을 디자인해줄 디자이너, 활동 계획을 관리해줄 매니저, 사무를 처리할 A&R, 배급사와의 계약 등등을 처리한 회사가 있다. 딴지일보는 그럴 여력이 없으니, 대강 다른 제작사라 치자.
제작사는 배급사와 계약을 맺고 음원 배포 업무를 넘긴다. 배급사는 이제 각 이동통신사가 운영하는 각 음악 사이트에 음원을 유통한다. 최대한 많이 팔릴 수 있도록 협상도 하고 샤바샤바도 한다. 나름 홍보도 해본다.
이제 총수의 곡이 시장에 나와 팔려나간다. 편의상 정가인 600원이라고 치자. 소비자가 총수의 곡을 600원 주고 사면, 여기서 저작자의 몫은 9%다. 54원. 그럼 이걸 작사해준 편짱과 5:5로 나눠야 한다. 저작자의 1/2인 총수의 몫은 한 번 다운로드 당 27원이 된다. 제작사로부터 받을 작곡비 1, 2백만 원은 그렇다 치고, 이 곡을 판 수익으로 한 달 생활을 하려면 얼마나 팔아야 할까. 한 2만 다운로드를 기록해야 대강 1인 가구의 최저 생계비인 50만 원을 넘는다.
그나마 9%를 받는 저작자이니 망정이지, 5% 받는 실연자인 본 기자와 파토 우원은? 기타리스트야 세션비 주고 퉁친다 쳐도, 곡의 주인으로 알려지는 가수는 그 이상의 다운로드 판매가 이루어져야 한다. 반 정도이니 4만. 그런데 이 2만과 4만이란 숫자는 '한 달 최저 생활' 정도에 그치는 숫자다. 이 사람들이 곡에 쏟은 노동 가치는 계산되지 않았다. 따라서 저작자와 실연자가 제대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려면 2, 3배는 넘는 10만 다운로드는 팔려야 수입이라고 얘기를 해볼 수 있다.
제작사 입장을 보자. 그들은 40%를 가져간다. 240원이다. 그런데 들어간 돈은 어쩌나. 매니저와 A&R 등 직원들 월급에, 세션비에, 작곡작사비에, 스튜디오 비용에, 엔지니어 비용에, 홍보비에... 근데 10만 다운로드를 팔아봐야 2천 4백만 원이다.
그럼 이동통신사는 얼마를 가져가냐고? 다운로드의 분배율은 46%니까 276원을 가져간다. 이익 당사자 중 가장 많이 가져간다.
CD 판매가 주가 되던 90년대에는 이렇지 않았다. 일단 만 원 하는 CD 하나 팔면, 가수에게 대강 천 원은 돌아갔다. 음반 10만 장을 팔면 실연자인 가수에게 돌아오는 돈이 1억이다. 앞서 총수 작곡 편짱 작사 카인 노래의 곡은 싱글 한 곡이지만, 이런 식으로 10트랙을 만들어 앨범 하나를 만들었고 이 10곡이 전부 1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실연자인 본 기자에게 돌아오는 돈이 3천만 원이다. 물론 그러고 땡이지.
이거, 총수니 편짱이니 파토 우원이니 이름을 붙여봤지만,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으면 혹은 홍보가 엄청나지 않는 한은... 본전 간신히 뽑는다.
행사 별로 못 뛰고 공연 페이 많이 못 받는 언더그라운드라면... 더더욱 푼돈이 되어간다.
이런 모양이니 메이저 시장은 다양한 가수를 키우기보다 아이돌에 치중하게 된다.
가뜩이나 메이저 시장의 가요는 제작 비용과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만큼 판매량도 많지만 빠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아이돌 그룹은 다른 형태의 가수에 비해 투자비용과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지만, 예능/뮤지컬/드라마/영화 등 음악이 아닌 다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그런 방향에 맞추어 트레이닝을 시키는 시스템이 현재 정착되어 있다. 또한 아이돌은 한국 시장을 넘어 다른 나라로 진출 또한 가능하다. 물론 아이돌 시장마저 포화 상태가 되어 최근 기획사들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대박을 터뜨려야 회사가 성장할 텐데, 한 곡 팔아 200원 남짓 받아서는 그게 힘들다.
본디 작은 시장을 상대하는 언더그라운드는 생존 자체가 힘들어진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다양한 '몸부림'을 친다. 공중파도 뚫어보고, 아이돌 가수의 세션 등의 '알바'도 뛰어본다. 곡비를 아끼고 분배금을 높여보기 위해 '강요된 싱어 송라이터'의 길도 간다.(물론 꼭 이런 동기만 있는 건 아니지만) 엔지니어비는 최대한 깎아 본다. 여차 하면 자기가 엔지니어링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몇 번 사운드 상태를 말아먹기도 한다. 앨범 디자인 같은 건 친구나 친구의 친구 등 인맥을 이용해본다. 모든 공연에 페이가 나오지도 않지만 일단 최대한 많은 공연에 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레이블이 없다면 몇백만 원의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빚을 지게 된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레슨 등의 사교육을 하는 모습,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연히 메이저 시장의 음악은 아이돌 연예 활동의 옵션 정도로 격하되어 갔고, 투자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질적 불균형이 발생해 혼란이 생겨났다. (현재 언더그라운드가 아마추어 씬으로 오인 받는 요인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음악 팬들이나 관심 좀 있는 대중들에게는 전파 되었다...만 정책 결정을 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계층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그들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든다는. 이게 뭔 소리일까. 계속 따라와보라.
대기업의 서비스 업체들이 주도한 시장 구조로 인해 굴레에 묶여 버린 창작 주체들. 하지만 이들에게 가해진 가장 묵직한 펀치는 이제 오게 된다.
현재 mp3 음원의 공식 단가는 600원선이다. 이 가격은 2000년대 초중반에 형성된 가격으로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는 게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이게 정가다. 그리고 현재의 시장 규모에서 이 정가대로 판매가 이루어지면, 저 분배 요율로도 어느 정도 재투자 재생산을 꾀할 수 있는 파이 크기가 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단가 600원의 파이가 아니었거든. 더 작았거든.
이게 바로 정액제와 할인율의 마법이다.
음원 시장은 셋으로 나뉜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와 모바일이다. 모바일은 벨소리/통화연결음인 바, mp3 원음을 자르고 변환시켜야 한다는 구실로 분배 요율을 20% 이상 더 받아가는 분야이니 포기한다고 치자. 그럼 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남는다. 서비스 업체의 네트워크에 접속한 상태로 음악을 듣고 마는, 일종의 대여와 유사한 개념인 스트리밍. 아예 mp3의 소유권을 구매하는 다운로드. 그런데 이 둘로 mp3를 서비스할 때의 상품 제도가 문제가 된다.
첫째, 정액제. 한 달에 돈 얼마만 내면 무제한 사용이 가능하다. 아주 간간이 다운로드 정액제도 있긴 하지만 주로 스트리밍에 적용된다. 이 덕분에 스트리밍은 월 3천 원의 저가 서비스로 고정되었다.
둘째, 할인제. 서비스 업체는 5곡 이상, 30곡 이상, 100곡 이상 씩의 '묶음 상품'을 내놓고는 이를 구매할 때 할인을 시켜줬다. 얼마나? 최고 90%.
오타 아니다. 놀리는 거 아니다. 100곡 이상의 묶음 상품의 경우 무려 90%를 할인해준다. 평균 비율은 81%다. 현재의 할인율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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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할인된 가격이다. 평균 6, 70원의 다운로드 가격, 월 3천 원의 정액제. 이런 거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어떻게 될까. 게다가 한국은 무적의 P2P, 그 유서 깊은 공유의 역사가 있다. P2P에 이어 무료 공유의 기치를 든 토렌트라는 신흥 강자도 있다. 이런 무료/불법 공유에 매우매우 싼 mp3 단가가 합쳐지면... '음악은 싼 것'이라는 무의식이 형성된다.
또한, 앞서서 예를 든 경우를 보자. 저작자, 실연자, 제작자가 얼마씩 가져가고... 이게 다 초토화가 되어버린다. 정가는 한 곡에 600원인데, 이게 100원 짜리로 폭락해버렸다면? 가뜩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인해 모바일 환경이 매우 강화되어, 스트리밍으로 소비하는 형태가 대부분이 되어가는데 다운로드 가격마저 이렇게 되어버렸다. 10만 다운로드 이상을 팔아야만 그 고물 랭글러에 기름 좀 먹여줄 수 있는 형편의 작곡가인 총수는, 그리고 집에 선풍기 살 3만 원도 없는 본 기자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위의 그래프에서 스트리밍의 평균 저작권료가 0.2원이라는 부분을 보자. 졸라 기적적인 대박을 쳐서 천만 명이 스트리밍으로 들었다 가정해도, 그 돈이 2백만 원이다. 그나마 이 경우, 작사자인 너불 편짱과 반으로 나눠야 하니 총수가 받는 돈은 100만 원. 가수인 본 기자도 0.1원을 적용 받아 100만 원, 만약 파토 우원과 나눈다면 또 적어진다. 회사가 그나마 1200만 원. 물론 이건 천만 명 스트리밍 가정이다. 결국 시장이 메이저든 언더그라운드든, 일단 다른 돈 나올 구석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결과가 나온다. 메이저 기획사는 다양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돌에 우선 베팅한다. 언더그라운드는 시장이 줄어드니 진입 장벽이 낮아져 아마추어티를 못 벗은 사람들까지 돌아다녀 다시 시장의 질적 저하를 불러온다. 악순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이게 침체기의 임재범, 박완규 같은 가수들이 힘들었던, 그리고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적우가 무명 시절을 매우 가난하게 보내야 했던 이유의 구조적 원인이다. 왜 그 가수들이 그리도 '나는 가수다'에 관심을 보였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고.
임재범, 박완규, 적우 등의 고난 스토리는 사실 기형적 구조의 결과다. 이겨내서 멋진 게 아니다.
게다가 당장 분배 받을 돈만 문제인 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앞서도 말했지만, 인식이다.
할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액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서비스 업체가 지불을 해준다. 이건 뭐 당연한 거다.(잘 안 해주려 드는 업체도 있다는 루머가 있긴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을 하향평준화 한다.'는 반론에는 무력해진다. 대기업들은 이 반론에 대처하지 않고 스리슬쩍 빠져나간다.
이런 제도를 창작/생산자들이 좌시할 수 없지만, 정작 유통 시장에서 힘겨루기를 하며 이런 제도를 막아내야 하는 배급사는 힘이 없거나 아예 저쪽의 자회사다. 물론 창작 주체들이 항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 '명분'이 있었다고.
"대한민국 IT와 모바일의 환경 발전을 위해 음악 서비스가 필요하다."
싼 음악 서비스를 이동통신 상품의 픽업 상품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였다. 조국의 IT 환경 선진화를 위해서 말이다.
아시아경제의 2009년 기사. SKT는 멜론의 할인 제도를 픽업 상품 삼아 신규 가입자를 끌어들였다.
참고로, 현 로엔 엔터테인먼트(멜론 서비스사) 신원수 사장은 SK 그룹의 전무직에 있다. 그 정도 대접을 해줘야 하는 자리란 의미다.
시작은 SKT였다. SKT가 먼저 자사의 이동통신 가입자들에게 자기네 자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 업체의 스트리밍/다운로드/모바일 상품을 싸게 제공해주었다. 이 픽업 상품 내지는 사은품은 소비자를 영입하는 동시에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얼마 뒤 결국 KT도 이를 따랐다. 이동통신 3대 회사 중 1위와 2위가 이렇게 나오자, 소비자 인식은 바닥을 쳤다. 이제 mp3는 핸드폰 개통하면 싸게 들을 수 있는 저가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액제가 적용되고, 할인이 팍팍 되고, 핸드폰 개통 서비스에 포함되어 따라온다. 첨언하자면, 2011년 상반기의 스트리밍 매출 중에서 정액제 매출 비중은 97%에 달했다. 자연히 창작 주체들에게 돌아가는 분배의 양이 낮아졌다. 이 상태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창작 주체들의 아우성이 정치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분배도 적게 해주면서 다운로드 단가도 스트리밍 사용료도 낮게 잡아? 살려달라, 여기 사람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법, 잔매에 장사 없다. 딴지일보 최고 미남인 죽지않는돌고래 기자도 며칠 밤 새면 카인처럼 된다.
일단, 오래도록 뮤지션들과 기획사들이 외쳐댔던 내용들이 뿌리를 내렸다. 분위기가 꽤 조성된 것이다. 행동에 나서도 이상하지 않은 정도로.
또한 창작 주체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저작권자들의 수익 형태가 양극화의 끝까지 왔다. 2010년 자료에 따르면 1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저작권자는 0.4%로 54명에 불과했다. 비, G-Dragon 같은 아이돌 싱어 송라이터나 원로 작곡가 이호준 씨 같은 거물들이 여기에 들어갈 거다. 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도 13.2%에 불과했다. 나머지 1만여 명의 저작권자들, 그러니까 본 기자의 옛 동료들이 포함된 사람들의 평균 수입은 486,000원이었다. 단위가 얼마냐고? 연 단위다. 1년치 연봉이 486,000원이란 소리다. 월별로 환산하면 약 4만 원이다. 1년치 다 모아도 한 달 최저생계비가 안 된다. 그런데 이건 9%는 받는 저작자들의 경우다. 5% 받는 실연자는 더 심각하다. 뮤지션들의 분노가 끝까지 차오를 만하다.
씨바 1년 모아도 한 달 최저생계비가 안 돼...
그리고 무엇보다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신호는, 역시 통계에서 왔다.
음원 서비스의 신규 가입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와 궤를 같이 하여 가장 비중이 높은 '묶음 다운로드 상품'의 이용자도 처음으로 하락하거나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게 2011년 초의 상황이었다. 성장세가 둔화된 것, 즉 시장의 성장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곧 이동통신 시장 또한 양적 성장 역시 한계에 근접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애초에 음악 산업의 희생을 요구했던 명분이 IT 강국 건설의 핑계였으니.
2009년에 피크를 친 후, 증가세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월 정액 가입자 증가를 통한 시장의 확대는 장기적 시장 규모 한계"
이러한 통계 자료의 분석이 끝난 2011년 하반기, 창작 주체인 셋 - 저작자, 실연자, 제작자의 세 협회가 행동에 나섰다.
첫 스타트는 통칭 음저협,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가 끊었고 다른 두 단체,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와 한국음원제작자협회가 뒤를 이었다. 이 세 단체는 저작권상생협의체라는 공동 단체를 만들어 이렇게 외쳤다.
"이제 인터넷/IT 환경을 키우기 위해 음악 산업을 부수화한다는 식의 명분은 힘을 잃었다. 이미 한국은 IT 강국이며 이동통신 시장도 음악 시장도 모두 클 만큼 컸다. 이젠 우리가 원래 받아야 하는, 상식대로의 수익을 달라!"
...라고, 문화관광부에 외쳤다. 이동통신사와 그 자회사인 음원 서비스 업체가 아니라.
응? 우리 말인가?
옳은 공격 방향이었다. 창작 주체 전체가 단체 파업(!)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이미 게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이 시장 구조 변화에 나설 리는 없다. 음악3단체는 2011년 말과 2012년 초에 걸쳐 정부를 호출한다. 법으로 이 불판 좀 갈아달라고, 징수규정 개정을 정식으로 신청한 것이다. 그때까지 모아놓은 자료와 그때까지 쌓인 울분을 투척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3단체는 꽤 노력했다. 개정 신청안 제출 후에도 지속적으로 의견제출이 이루어졌다. 문화부에만 30여 건이 추가로 들어갔고, 이는 대부분 인터넷 공시를 통해 수집된 아이디어들이었다. 선봉에 선 것은 3단체였으나,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메이저의 최고층에 있는 SM, YG부터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레이블까지 수십수백의 제작사가 뭉치는 장관이 벌어졌다. 한국 음악사 최초의 움직임이다.
연대한 제작사들의 '브레인'들이 모여 갖가지 아이디어들을 정리하여 문화부와 저작권위원회에 '음악제작자 관련단체 공동의견서'를 쏘아넣었다. 사실상 이 문서가 뮤지션과 제작자들의 바람을 온전히 담고 있었다. 3단체가 이를 요약/정리해내어 4월에 있었던 공청회에 들고 나온 대안의 핵심은,
종량제였다.
이와 유사한 제도다. '천 원 내면 백 곡 들을 수 있다' 식의 요금제다.
어차피 서비스 현장에서 묶음 형태의 상품이 사라질 수는 없다. 모든 음악 상품을 곡/앨범 단위의 단품으로만 판다는 것은 마케팅 상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무제한'의 권한을 소비자에게 넘겨버리는 정액제는 결코 안 된다. 3단체는 '이만큼의 시간 내에 맘껏 들으셈'이라는 정액제 대신 '이만큼 수의 곡을 들으셈'이라는 종량제로의 전환이, 소비자에게 익숙한 소비 패턴을 완전히 거스르지 않으면서 서비스 업체의 이익도 어느 정도 배려해주는 적절한 합의점이라고 간주했다. 같은 묶음 상품이니까. 어찌 보면 대량 다운로드 묶음 상품에 자유도를 추가하여 스트리밍으로 바꾼 형태의 상품이니 서비스 업체에서도 받아들이기 쉬울 거라는 판단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스트리밍에서는 종량제가 제시되고, 다운로드에서는 묶음 상품에 적용되는 할인율을 낮추는 안이 제시되었다. 주된 전선은 스트리밍에서 짜여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인 서비스 업체(=대기업)는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바뀔 경우의 시장 충격을 우려했다. 무료 다운로드라는 불법 시장 또한 규모가 충분한 상태에서 섣부른 전환은 시장 규모를 줄이는 결과가 될 거라는 반론을 폈다. 그래서 이들의 공략점은 정액제의 고수였다. 종량제 자체를 반대했다. 이동통신 판매의 끼워넣기 상품, 픽업 상품으로서의 음악 상품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액제를 마지노선으로 삼았다.
공청회에서 두 대안이 충돌했다. 3단체측의 '종량제 실시'와 서비스 업체측의 '현행 정액제 고수'의 싸움이었다. 3단체는 창작주체의 권리와 현 실태를 근거로 내세웠고, 서비스 업체는 시장 안정과 소비자 심리로 맞섰다.
"종량제 하자!" vs "집어치워!"의 충돌.
물론 전선이 종량제 전환 vs 정액제 유지에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쟁점인 할인율의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최대 90% 선은 일단 부정되었다. 그렇다면 최대 할인율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최초 공청회에서는 67%, 즉 2/3가 마지노선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공청회에서 서비스 업체측의 정액제 사수 의지가 생각보다 강고했다. 결국 3단체는 공개 회의에서 한 발 물러서는 전술적 선택을 했다. 최대 할인율을 80%로 올려서 제시하는 대신, 서비스 업체측이 정액제 의지를 약간이나마 물려주기를 요구하는 정치적 결정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비스 업체는 물러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물러남은 없었고, 여기서 음제협 쪽이 다소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한 수를 던진다. '홀드백 제도'의 신설이다.
이대로 논의가 끝나버리면 문화부의 판정이 어떻게 날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종량제로의 전환이 안 되고 정액제 유지가 되거나 종량제-정액제의 공존이 이루어진다면, 최소한 '우리'가 종량제 서비스를 선택할 권한이라도 얻어내야 한다는 판단이 음제협 내에서 제기되었다. 그래서 수면 위로 떠오른 제안인 '홀드백 제도'는 이렇다. 저작권자가 원할 경우, 그의 신규 음원은 무제한 스트리밍과 묶음 다운로드 상품에서 제외된다. 오직 종량제 및 단품으로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3단체의 연합에 균열이 생겼고,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다른 음악계 관계자들도 제각각 다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지배적인 평가는, "정액제가 엄존하는 상황은 곧 서비스 업체가 여전히 압도적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고, 그 상황에서 홀드백 같은 건 의미가 없다"였다. (즉, 번역하면 '제작자협회가 헛발질했다'가 된다.)
그리고 심판인 문화부는, 계속 팔짱을 끼고 이 첨예한 대립을 지켜보고 있었다.
본 기자가 만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화부가 기계적인 토론 진행자의 역할에만 머물렀다."고 증언했다. 물론 그들의 주관적인 평가이고 전부 다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 인사가 어느 편인지에 따라 맥락의 의미는 정반대였지만. 창작주체 쪽에서는 주로 볼멘 소리였고, 서비스 업체 쪽에서는 주로 느긋한 뉘앙스였다. 본 기자는 여기서 문화부의 저울이 논의가 이루어지던 당시 어느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애초에 문화부가 기계적 중립 태도를 지킨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물론 3단체의 인사 중에서는 이런 얘기를 사람도 있었다. 가장 큰 대기업인 로엔이 문광부에 제출한 매출액과 그 비율 자료, 이 자료에 대해 문광부의 별도 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로엔이 국세청에 납입한 금액만 조사하면 쉽게 크로스체크가 가능한데, 그냥 로엔의 자료를 받아들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슨 소설을 쓸 수 있을까?
mp3 유료화의 1등 공신, 현 음악 산업 구조의 세팅자, 대기업 SK의 자회사, 배급과 서비스를 모두 하는 (주)로엔 엔터테인먼트...의 로고.
문화부의 판정, [음악 전송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이 발표되자 문화부가 누구의 편이었는지 드러났다.
스트리밍 종량제 제안은 받아들여졌지만, 정액제가 살아남았다. 두 제도가 판매 현장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느 쪽이 승자일지는 뻔하다. 무제한이라는 혜택이 걸린 정액제일 수밖에. 따라서 종량제 제도의 경쟁력을 살려주려면 정액제의 가격을 높여야 하지만, 그런 방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근거는 "소비자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라는 서비스 업체의 주장이었다.
할인율 조정은 최대 75%로 결정이 났다. 최초 공청회안인 67%와 후의 수정안인 80% 사이의 평균인 듯하다. 추정형을 쓴 이유는, 아무리 찾아도 이 수치에 대한 근거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대가 75%니 다량상품에 따라 할인율이 차등 조정되는데, 30곡 미만의 묶음 상품에는 50%가 적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50%의 근거 또한 찾을 수 없었다.
홀드백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액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나아가 현실적 문제가 있다. 본 기자는 공공연히 "우리는 홀드백 제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서비스 업체 인사를 두 사람 발견했다. 그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본 기자가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 술자리에서, 통화 중에 그렇게 대놓고 말하고 있으면 근처에 있던 본 기자,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홀드백을 이용하는 저작권자나 제작사에 대한 보복 조치도 예상할 수 있다. 쉽다. 그냥 메인에서 내려주면 된다. 그 정도로도 해당 음원에 대한 접근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가뜩이나 음원 시장 활성화로 인해 싱글이니 미니 앨범이니 하는 형태로 한 주에도 수십 개 음원이 쏟아져나오지 않는가. 핑계는 무궁무진하다. 편집 의도라고 하면 된다. 메인 화면의 편집권은 해당 서비스 업체에 있는 것 아닌가.
분배 요율을 맞춰낸 것은 3단체측의 성과이긴 했다. 글타. 제도를 치면서 그 와중에 요율을 좀 조정하는 성과를 올렸다. 서비스 업체 대 창작주체의 분배 요율이 기존에는 스트리밍의 경우 57.5:42.5였고 다운로드의 경우 46:54였다. 이걸 일괄적으로 4:6으로 맞춰냈다. 분배 받는 파이를 60%로 키운 것이다. 물론 선진국 수준인 3:7에는 아직 닿지 못했지만. 그런데 이 성과조차 미완이다. 왜냐. 모바일 분배 요율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62:38이다. 서비스 업체가 62%를 가져간다.
이건 분명 성과다. 그러나 모바일이 빠진 것은 분명 아쉽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음원시장에서 가장 큰 매출을 내는 것은 이 모바일 서비스다." [음악 산업백서 2011]의 서술이다. 반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통계에서는 2009년 기준 온라인 시장 규모가 3599억 원인데 반해 모바일 시장 규모가 765억 원으로 집계되어 있다. 보고서에서는 스마트폰 확대로 인해 시장 규모가 역전되었다고 분석한다. 본 기자는 후자의 자료가 더 신뢰도가 가지만, 어쨌든 모바일의 분배 요율이 그대로라는 것은 문화부가 서비스 업체-대기업을 배려해준 결과로 볼 수 있다. ([음악 산업백서 2011]에서는 이 62%에 대해 "플랫폼 운영비, 비용청구 수수료, 서비스사업자 마진, 디지털저작권관리(DRM) 라이선스 비용, 모바일 콘텐츠사업자 수수료 등이 포함된다."고 살짝 실드를 쳐주는데, 여기서 모바일 콘텐츠사업자 수수료를 제외하면 일반 온라인 음원 서비스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매우 당황스러운 실드다.)
결국, 전체적으로 구도는 반쪽 성공이지만... 홀드백은 현실적 이유와 정액제로 인해 사실상 무의미하고, 또한 정액제와 맞붙게 되는 종량제의 성적표가 처참할 것이 예상되니, 서비스 업체-대기업의 승리가 된다.
할인율과 분배 요율을 어느 정도 고쳐내 수입이 늘 것으로 기대해 볼 수는 있다.(물론 반대로 불법 무료 다운로드로 소비자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안을 궁극적인 목표에 가닿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도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자면 정액제가 사라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단체는 핵심 전선에서 패배한 셈이다.
정액제 유지의 의미는 그렇게 무겁다.
이런 패배를, 3단체를 비롯한 창작 주체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애초에 핀치까지 밀렸다고 판단되어 감행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3단체를 탐탁치않아 하는 뮤지션들도 많았고, 3단체의 연합 자체에도 균열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모두들 이 전쟁에 의욕을 갖고 뛰어들었고 희망을 갖고 지켜보았다. 패배가 결정되었을 때의 멘붕은 심했지만 그만큼 분노 또한 치솟았다. 특히 자신들의 생계가 달렸다고 체감하는 언더그라운드의 분노는 상당하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파업, 그러니까 음원 서비스 중지를 요청했다. 정원영, 김도훈 등 유력 작곡가들을 중심으로 메이저-언더의 유수 뮤지션들도 집단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3단체와 별도의 협회인 '범음악생산자협회'라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는 선봉인 3단체를 응원하는 정도였던 이 단체도 나섰다. 여기엔 꽤 많은 저작/실연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이런 메이저 뮤지션들과 거리가 먼 세계에 있었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조금씩 이 협회의 행동에 참여해가고 있다. 여기에 3단체도 함께 한다. 더하여, 연예제작자협회까지 연대에 참여했다. 다른 곳에선 홍보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링크)
이들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고 이의 신청과 시위 등 여러 활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2차전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영화에서는 스크린 쿼터 때가, 만화에서는 청소년보호법 때가 있었지만, 음악계가 공동 행동에 나서는 모습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 음악계에서 최초다.
언제나 투쟁은 현실적으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인다. 대부분은 계란이 무참히 박살나지만, 끈덕진 투쟁은 가끔 바위를 깬다. 물론 이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다. 하지만 최소한 49첩 반상 먹는 사람과 밥그릇에 밥만 들어있는 사람이 벌이는 밥그릇 싸움을, 함부로 폄하할 수 있을까? 생존 이상을 할 수 없는 음악계는 언제까지 연예 산업의 들러리 노릇을, 혹은 홍대쯤에 갇힌 대안 음악 정도에나 머물러 있어야 할까?
산업 구조의 불균형은 깨야 한다. 균형화된 구조에서는 더 좋은 상품이 생산되니까. 그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이익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산업 구조 바깥에 있지 않다.
물론 종량제가 산업 구조 문제를 고쳐줄 궁극의 이상향은 아니다. 이상적인 구조로 가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하지만 최소한 상식 수준에 근접하는 분배만 받아도, 뮤지션들은 더 다양하고 더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얻게 되고, 제작사는 그런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줄 자본력을 얻게 된다.
음악하는 게 원래 배고픈 게 아니다. 잘 사는 나라 치고는 한국이 꽤 이상한 거다. 충분히 배고프지 않으면서 음악할 수 있고, 현재도 열심히 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밥만 안 굶는 정도라서 문제지...) 다만 미래는 없다.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극소수며, 그나마도 음악으로는 모으지 못한다.
어쨌든 유례 없는 전쟁이 음악계에서 벌어졌고,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럼, 이 싸움은 이제 어떻게 될까?
싸움을 벌일 게임판 자체가 불리하다 보니 승산은 없어 보이지만 이 연대는 흥미롭고, 언젠가는 터질 싸움이었다.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유의미한 성과를 내길 바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카피 레프트 구조가 완성된다면 차라리 그런 쪽이라도 바라보고 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카피 라이트 외에는 기댈 곳이 없지 않은가.
혁명은 너무 멀고, 당장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싸움의 지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 지점은 정액제와 할인율이고, 산업의 구조와 얽혀 있으며, 당신들이 응당 법적으로 받아 마땅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하는 기형적 시장의 문제점이다. 또한 이 시장 구조는, 정치가 그리고 대기업이 어떻게 국가 제도를 이용해 음악을 삥뜯어왔는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본 기자는 계속해서 이 싸움을 주시할 것이다. 또 뭔가 캐내고 짚어볼 것이 나온다면, 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직 음악 하는 친구와 동생들의 미래에 가슴이 먹먹한 빈털털이 잡부기자 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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