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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1. 목요일

정치불패 맹물

 

 

 

 







 
 

참조할 반론 기사

 

[고찰] 박정희를 평가하자

 

 

 

 

 

 

 

 

박정희 시절을 보는 관점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던 시점과 박정희가 총 맞고 죽은 시점 양쪽의 한국 사회구성체의 토대가 동일하다고 보는 거야.

 

 

 

 

 

박정희가 정권을 탈취할 때의 한국은 자본제적 생산관계가 지배적 생산관계로 확립된 사회가 아니었어. 박정희가 죽었을 때의 한국은 자본제적 생산관계가 확립된 “신흥공업국”이었지.

 

 

 

 

 

 

 

전쟁 직후와 공업화 상태의 환경/구조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럼 지금은?

 

 

 

 

 

그래서 그 두 시점 사이의 변화는 단순한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문제가 아니야. 어설프게 경제학 교과서 들춰본 애들은 거기 나오는 노벨상 수상자 이름 몇 개 늘어놓으면서 박정희의 역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우기지. 그런 주장을 하는 애들은 철저하게 시장만능론자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있는 거야. (이런 주장이 김대중/노무현의 성과도 별 거 아니고 명박이가 망친 것도 별 거 없다는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데, 그 때에는 적용 가능해. 적어도 80년대부터는 자본주의 성장이론을 갖다 붙이더라도 그럴 만한 토대가 확실히 되니까. 시장만능주의자의 주장이 맞는지는... 스스로 생각해봐.)

 

 

 

 

 

그 두 개의 다른 토대 사이의 전환/변환을 보려면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봐야만 해. 왜 그러냐면, 그런 토대의 전이의 역사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보니까, 각 국가의 전환시점의 특징들에서 어떤 패턴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는 거야. 일단 후발 산업국들은 대충 지배계급(19세기 말의 독일, 러시아, 일본)/정부(20세기 신흥공업국)가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하나의 패턴이라고 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정부/지배계급의 선택이 동일한 것도 아니라고. 그래서 장하준 같은 제도적 접근이 토대의 전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장하준 식 접근의 한계는 바로 그거야. 특수성에 천착해서 일반성을 경시하게 된다고. 이건 역사적 접근이 필요할 때에는 장점이지만, 사회과학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지. 사회과학이 “과학”이라고 우쭐대도 내비두는 이유는 일반성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 관련되는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일반성을 설명한 '150년 다 되어가는 책'의 내용이 아직도 적용가능해.

 

 

(꼭 읽지도 않은 놈들이 낡은 이론이라고 무시하는데, 150년 전에 현재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설명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금 얼마나 바뀌었는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과연 사회과학의 “과학”이 뭔지에 대한 감이 올 거야.)

 

 

 

 

 

더구나, 이제 한국이 세계자본주의의 일부로 편입된 상황에서는 특수성을 디벼봐야 소용없어. 과거에 했던 그런 뻘짓 중에 하나를 예로 들어주면, 80년대 신흥공업국의 성장동력을 연구한다면서 “아시아의 4마리 용은 전부 다 유교 문화권인 걸 보니, 유교가 자본주의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라고 결론내리던 삽질이 있었어. (그거 100년 전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던 건 다 알지? 종교/문화하고 자본주의적 성장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송병락(서울대 교수)과 이원복의 이 저서는 90년대 출판됐다. 여기서도 동북아의 유교 윤리가 자본주의와 결합해서 어쩌구 하는 소리가 나온다.

 

 

 

 

 

지금 21세기의 한국 자본주의는 특수성을 파악해서 이해하는 시절은 지났어. 특수성 파악은 박정희 시절의 변화 연구에나 써먹을 만한 접근법이지

 

 

 

 

 

지금은 아냐. 딴지 오는 사람들이 외우고 있을 만한 말을 인용하자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자본의 힘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체제니까 자본주의 일반론이 더 적절하지. 지금 현재의 한국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해야 할 것은 사회”과학”이라고. 21세기 현재의 시점에서 조선로동당 김철수가 말하는 내재적 접근방법은, 아직도 봉건왕조국가인 김씨조선에나 적용가능한 거야.

 

 

 

 

 

 

 

한반도 북쪽의 흔한 김씨조선 왕조 랜드마크.

 

 

 

 

 

현재 한국경제에 대한 장하준식 접근은 그 일반론에 주석으로 덧붙일 만한 부분일 뿐, 일반론을 대체할 부분은 아냐. 예를 들어, 장하준식 접근법을 써야 적절할 것 같은 것을 들자면, 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이 아직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매달려 맨날 야근이나 시키는가 하는 거.

 

 

 

 

 

마지막으로 다른 데서의 쟁점을 덧붙이면…

 

 

장하준이 “박정희의 사회주의적 경제관에 주목한다”라는 구절 때문에 덧붙이는 건데, 인도에서도 그런 싸움질 해. 인도에서 박정희를 모형으로 경제개발을 하는데 박정희 모형의 핵심이 뭐냐라는 싸움질을 한 적이 있어.

 

 

 

 

 

 

 

그러고 보면, 등소평(!)도 '박정희 모델 도입' 운운 한 적이 있다. 그 모델, 재평가해야 다를 게 뭔가?

 

 

 

 

 

한 패거리는 '정부주도의 사회주의에 가까운 집행'이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하고, 다른 패거리는 정부는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기업의 자율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창의성의 발현이 중요한 요인이었다라고 주장을 해. 그리고 싸워.

 

 

 

 

 

한국인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우는 거 같은데, “자율성”을 강조하는 패거리는 그 이유가 이래.

 

 

"인도나 한국이나 2차대전까지는 식민지였고, 자본주의가 이식되고 이런 거 다 똑같았다. 심지어 50년대까지 인도가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 그런데 60년대 들어서 인도는 자빠지고 한국은 잘나갔다. 왜 그런가 보니까 60년대부터 인도는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썼더라. 이거 이제 보니 경제개발에 아주 나쁜 거구나."

 

 

 

 

 

뭔가 묘한 감정이 생기게 하는 싸움이지.

 

 

 

 

 

 

 

싸우지 마~ 우린 그 자율성 때문에 망해가~

 

 

 

 

 

 

 

 

정치불패 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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