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7. 02. 월요일
취재팀장 죽지않는돌고래
지난 기사 [범죄]홍석동 납치 사건 – 내 아들을 납치한 것은 강도살인범입니다 [단독]홍석동 납치사건2 - 살인강도 납치단에 대한 열한가지 사실들 [단독]홍석동 납치사건3 – 살인강도 납치단, 총상. 그리고 마지막 기회 [범죄]홍석동 납치사건4 – 강도살인납치단 리더 최세용의 주장, “나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
<납치단 일당, 김성곤 - 지난 5월 현지에서 검거>
김성곤.
지난 5월, 납치된 필리핀 교민과의 몸싸움 중 일어난 오발사고로 총상을 입은 납치단 주범 중 하나. 그는 필리핀의 찌는 듯한 더위에 썩어가는 다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병원에 들렀다가 현지에서 검거된다.
필리핀 대사관 측에 따르면 강도 살인범이자 납치단의 일원인 김성곤은 현지 경찰을 매수하여 유치장에서 빠져나온 전력이 있는 만큼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의 검거 소식을 들은 홍석동 씨 부모님은 아들의 생사에 대한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경찰청과 필리핀 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김성곤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양쪽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확답을 들은 후, 필리핀행을 준비한다.
먼저 출발하기로 한 나는 비행기표 예약을 끝내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홍석동 씨의 부친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이렇게 된 마당에 아내까지 잘못되면 나는 살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못 알아오셔도 좋습니다.
내 아내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경찰 고위간부 앞에서도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는 때때로 약주를 한 채 전화기에 대고 흐느낀다. 그리고 ‘석동아, 석동아, 내 아들아’라며 연신 외친다. 그럴 때면 무어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현지의 지인에게 부탁한 자료에 의하면 최세용 일당은 지금까지 알려진 살인, 납치, 폭력 등의 범죄는 물론, 마약에까지 손을 뻗쳐 현지에 진출한 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하며 납치단의 전과를 확인해 본 결과, 마약(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이 눈에 띄었고 현지에서는 교민의 현금을 강탈한 뒤, 집까지 불태웠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들에게 조금만 안 좋은 소리를 하거나 위협을 끼친 이들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를 하는 인물들이라 현지에서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현지 지인은 말했다.
‘납치단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로 봐선 분명, 딴지일보에 올라온 기사를 읽고 있고 그 기사를 쓴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어떤 방식으로든 접근해올 테니 대비해라.’
현재 한국에서 수감 중인 납치단 막내 김원빈의 진술에 의하면 최세용 일당을 따르는 필리핀 조직원들이 존재하며, 국내에서 그들에게 정보를 넘기는 조직원들이 있으나 아직 정확한 실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리핀행에 대한 별다른 걱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때때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외딴 나무집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엎드린 내가 보인다. 인기척이 없는 그곳을 풀숲에 숨어 뷰파인더로 보고 있으면 깡마른 체구의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타나고, 곧이어 렌즈 정중앙이 총알에 관통한 듯, 부서진다.
그리고 꿈에서 깬다.
홍석동 씨 부모님이 필리핀행 표 예약을 끝내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경찰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김성곤이 부모님과 만날 의향이 있었는데 딴지일보 기사를 읽고 만나지 않는답니다.’
<6월 8일 본지 기사 中>
경찰청의 주장은 6월 8일 금요일, 본지를 통해 올라간 기사 <[단독]홍석동 씨 납치사건3 - 살인강도 납치단, 총상. 그리고 마지막 기회(링크)>를 감옥 안의 김성곤이 읽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홍석동 씨 어머니는 따져 물었다.
‘아니, 철저히 수사한다고 접촉을 다 막는다고 하셨으면서
감옥 안에서 어떻게 인터넷을 한답니까.’
전화를 한 경찰은 얼버무렸다. 김성곤이 기사를 읽은 후, 홍석동 씨 부모님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그가 오늘(6월 11일)마닐라에서 세부로 송치되기 때문에 현지로 와도 소용이 없다고 전했다.
필리핀 대사관과 경찰청의 주장에 의하면 김성곤을 철저하게 외부통로와 차단시킨 상태다. 아직 잡히지 않은 최세용 일당과 검거된 김성곤의 접촉을 막고, 증언대에 선 피해자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다.(본인이 만난 피해자 중에서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작년 12월에도 김성곤이 마닐라의 한 PC방에서 검거되었다가 현지 경찰을 매수해 풀려난 경력이 있는 만큼, 전화는 물론, 다른 납치단원들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이다.
그런 환경에 있어야 할 김성곤이 인터넷으로 딴지일보 기사를 읽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것도 감옥 안에서.
필리핀 대사관과 경찰청의 주장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모순이 발생한다.
김성곤이 기사를 읽었다는 주장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그를 외부통로와 철저히 차단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의미가 된다. 아직 잡히지 않은 최세용 일당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외부통로를 차단했다는 주장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딴지일보의 기사를 읽는 것이 불가능해야 한다.
즉, 어느 쪽도 사실일 수 없다.
모른다. 경찰청과 필리핀 대사관이 입으로만 피해자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며 실제로는 현지에서 검거된 김성곤의 송치 소식을 당일 아침에야 알 만큼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른다. 국회의원 친척도 아니면서 국가기관인 자신들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자들이 귀찮아서 거짓말을 했을지.
모른다. '밝혀져서는 안 될 어떤 이유' 때문에 김성곤과 홍석동 씨 부모님의 면담을 애써 막으려 하는 것인지.
그렇게 경찰청으로부터 전화가 온 당일, 김성곤은 세부로 송치되었고 홍석동 씨 부모는 물론, 나의 필리핀행도 좌절된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경찰청과 필리핀 대사관에 대해 '더욱' 뿌리 깊어진 불신뿐이다.
허탈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김원태 PD는 이러한 경찰청과 필리핀 대사관의 행태를 꼭 기사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다음에 필리핀으로 가게 될 때를 대비해 믿을 만한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고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몇몇 궁금증을 해결할 자료들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방송 카메라에 코디라도 있지 기자님은 혼자 아닙니까.
이 사건은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세부로 가시게 되면 밤에는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이미 필리핀행이 좌절된 마당에 남은 것은 많은 기대를 걸어주었던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 용기를 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그들에겐 갚지 못할 빚을 진 느낌이다. 나로서는 그런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세상에 나설 용기가 없다.
감금되었을 당시, 피해자들이 들은 납치단원들의 대화에 의하면 여성 피해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사건이 가진 끔찍함 때문인지 아직 여성 피해자로부터 제보는 들어오지 않는다.
납치한 남성 피해자들을 상대로 잔혹한 폭력을 일삼은 것도 모자라 금품을 강탈하고 강제로 성행위를 시킨 그들이 여성 피해자들과 관련하여 웃으며 나눈 대화에 대해선, 아직은, 기사화하고 싶지 않다. 차마, 용기를 내달라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6월 19일, 저녁 10시쯤 홍석동 씨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종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강도살인 납치단 행동대장 김종석.
납치단 주범 중, 가장 잔혹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납치한 사람의 입에 총구를 쑤셔넣고 목에 정글도를 들이대며 협박하는 살인전과자. 검거된 납치단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납치단 막내였던 김원빈조차도 그에게 무수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저녁 9시 40분 경, 홍석동 씨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홍석동 씨가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 날짜는 2011년 9월 11일. 그리고 김종석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첫 금품요구는 2011년 11월 17일. 당시의 통화는 본지의 기사로도 공개된 적이 있다.
즉, 마지막 통화 이후, 7개월만에 전화가 온 것이다.
<첫 번째 기사에 공개되었던 김종석과 홍석동 씨 어머니의 통화내용>
나는 홍석동 씨 어머니에게 김종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윤철완 씨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되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현재 2명, 그 두 명 중 한 명이 윤철완 씨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에 홍석동 씨 가족에게 연락해 금품을 요구하고 바로 윤철완 씨 가족에게 전화를 한 걸 보면 이번에도 그쪽으로 전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김종석의 전화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홍석동 씨 부친에 의하면 김종석은 술에 취해 있는 듯했고 통화 도중 욕지거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협상이 잘 되지 않는 듯하자 다시 연락을 끊었다.
김종석이 7개월만에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보아 다시 재정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언론에 자신의 정보를 흘리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보아 딴지일보에 올라오는 납치단 관련 기사를 체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 납치단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은 딴지일보뿐이기 때문이다.
현지 정보에 의하면 김종석의 내연녀는 5월 초에 만삭이었다. 그러면 지금쯤 아이가 태어났을 테고 재정적인 압박은 더욱 심해졌으며 김성곤이 잡힌 후의 심리적 불안감도 극에 달했을 거라고 추정된다.
김성곤은 추적이 불가능한 루트를 이용했는지,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윤철완씨 가족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6월 21일 목요일 아침.
나는 출근을 하고 편집부 직원들과 사무실 1층의 벙커 1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박병준(필명 : 게으른수다쟁이) 기자가 가까이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고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진하고 시원한 커피 맛이 더욱 좋은 날이었다.
이윽고 전화를 끊은 그는 해외로부터 제보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본명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휴대폰으로 '죽지 않는 돌고래'라는 필명을 쓰는 기자를 찾았으며, 납치사건과 관련해 중요한 제보가 있으니 바꿔달라고 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회사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왜 굳이 본지 기자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을까.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박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 것일까.
박병준 기자는 지금은 회의 중이니 10분 후에 본인이 직접 전화를 다시 걸겠다 말했다고 내게 전하면서,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건네받은 번호에서 ‘63’이라는 숫자가 눈에 띄었다. 필리핀의 국가번호다.
휴대폰으로 바로 전화를 걸까 하다가 느낌이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특히 짧은 웃음소리) 박 기자의 말에 지하의 사무실로 내려와 전화기를 들었다. 박 기자에게 말을 전해 듣고 다시 전화를 거는 10분 사이, 현지의 지인들과 관계자 및 피해자들이 해준 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납치단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로 봐선 분명, 딴지일보에 올라온 기사를 읽고 있고 그 기사를 쓴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어떤 방식으로든 접근해올 테니 대비해라.’
'반드시 복수를 하는 녀석들이다'
'일반인들의 개인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직과도 관련되어 있다'
무수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홍석동 납치사건'은 실제 현재진행형인 끔찍한 범죄이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살인, 납치, 폭력에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마약까지 손을 대는 범죄자라고 할 지라도 그 기사를 쓰는 언론사 소속의 기자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직접 전화를 걸어 바꿔달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할 리 없다. 설마하며 그가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제보하신 분, 계십니까?’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 수백 번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 정말로 만나고 싶었지만 절대 만나서는 안 될 남자.
취재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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