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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왕조 가운데 명 왕조는 송나라와 더불어 시원찮은 왕조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 역사에 폭군도 많고 암군도 많지만, 명 왕조에서는 황제 주씨 가문에 뭔 저주가 붙었나 싶을 정도로 기이한 황제들이 연속부절로 출몰하였다.


“명나라는 마지막 숭정제 때 망한 게 아니라 만력제 때 망했다.”는 평가를 들은 신종 만력제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신하들에게 얼굴도 비치지 않고 궁중에서 은둔했던 무책임한 황제였다. 수십 년 조정에서 근무해도 황제의 얼굴도 모르는 신하들이 부지기수였다.


왕국에서 왕이 행방불명됐다는 건, 그것도 신권(臣權)이 강했던 조선 같은 나라가 아니라 철저한 황제 중심의 제국이었던 명나라에서 황제가 30년 동안 ‘파업’했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그 나라의 국운 실종을 의미했다. 백치 황제로 유명한 서진 혜제에게는 악독한 마누라 가남풍이라도 있어서 백치의 대리를 하였으나 (그 대리 역시 최악이었지만) 신종 만력제는 어려서는 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였으니 신하들은 그저 “폐하 용안 좀 뵙시다.”를 부르짖으며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황제가 사라진 동안 신하들은 알아서 나라를 요리하며 배들을 불려 갔다. 나라는 당연히 그만큼 허약해져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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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제(万历帝)


어려서는 똑똑하다 했더니 평생 칠푼이였던 이 황제의 별명은 ‘고려 천자’ 였다. 다른 일에는 무관심 그 자체였던 황제는 임진왜란을 맞은 조선에게는 매우 지성으로 대했다. 수십만 군대를 파견한 것은 물론 조선의 굶주림을 듣고는 산동 지역의 쌀을 긁어모아 보내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덕분에 조선 사람들에게는 세상 없는 은인으로 수백 년 뒤까지 제삿밥을 얻어먹지만, 중국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요령부득의 황제였다. “도대체 고려천자 조선황제다 해 이거. 우리 사람 털어 조선 돕는다 이거. ”


열심히 한 것이 몇 개 더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무덤 만들기에 무척이나 심혈을 기울였다. 후일 정릉이라 불리는 그의 묘에 들어간 비용은 800만 냥, 저 광대한 명나라의 토지세 2년분이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또 사랑했던 아들 주상순, 후일 이자성에게 사로잡혀 사람 고기 술 안줏감이 되는 주상순을 장가보낼 때는 2400만 냥을 썼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을 산더미같이 놓아두고 내팽개친 주제에 뭔가 하나 꽂히면 불가사의한 집중력을 발휘한 이가 신종 만력제였다.


또 하나의 명나라 걸물 황제로 무종 정덕제를 빼놓을 수 없다. 평가는 좀 엇갈리지만, 이 양반의 특기 가운데 특기할만한 것은 바로 ‘유체 이탈’이었다. 그는 “총독 군무 위무 대장군 총병관 주수를 특별히 진국공에 봉하고 매해 쌀 5,000섬을 녹봉으로 주도록 한다."고 포고한 바 있는데 이 ‘주수’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정덕제 자신이었다. 자기가 자기에게 벼슬을 수여하고 녹봉을 주노라 하는 포고를 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수 장군이 되어 황제에게 글을 올리고 황제는 또 황제 입장에서 주수 장군인 자기에게 글을 내리는 기괴한 모습을 즐겨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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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제 (正德帝)


이 ‘주수 장군’이 변방에 출두한다고 하면 그를 맞이해야 하는 명나라 장군들은 머리에 쥐가 났다. 이 양반을 황제 폐하로 대우해서 절을 올려야 하는 건지 동료 장군이라 생각해서 그 정도 대우해야 하는 건지. 분명히 황제인데 장군같이 말하고, 장군같이 놀다가 별안간 황제 폐하로 둔갑하는 이 다중인격의 자유로운 유체이탈은 여러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보시오 주수 장군” 하면 그 때문에, “황제 폐하” 하면 또 그 때문에 목이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덕제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몽골어도 잘했고 산스크리어도 알아들었다고 하니 바보는커녕 꽤 지능이 높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궁궐에 좌정하여 정치를 하기보다는 사방팔방으로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훌륭한 악공이 있다는 소리에 모든 걸 작파하고 서북방 변경으로 탈출(?)하여 한참을 머물렀고 그 후엔 또 강남을 쏘다니며 여자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그는 자금성에 머문 시간보다 외유의 시각이 훨씬 길었고 그만큼 골치 아픈 정치의 시간은 짧았다.


만력과 정덕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오늘날 그들이 하나로 합쳐져 한 몸에 빙의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근심 때문이다.


분명히 대통령인데 "그동안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또 국민의 불안함 속에서 어떻게 확실하게 대처 방안을 마련할지 정부가 밝혀야 합니다.”라며 정부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정덕제 이상의 유체이탈 실력을 볼 제, 국민 수백 명이 수장당한 날을 골라서 해외 여행가는 정덕제도 놀라워할 역마살을 볼 때, 외국어는 잘하는데 자기 나라 사람들 머리를 쥐나게 하는 정덕제의 재주를 오늘날 다시 목도할 때 어찌 정덕제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뿐이랴. 수백 명 물속에 쓸어 넣은 사고의 원인이 된 탐욕과 무능과 시스템의 미비에 대한 제대로 된 규명 없이 그를 조사하자는 움직임에 대하여 “세금 아깝다.”는 분이 자기 아버지 추모 사업에는 그 몇십 배도 아끼지 않는 꼴이 어찌 제 아들 장가보내는 데 몇 년 예산을 꼴아박은 만력의 그것에 꿀리겠으며 평일 근무 시간에 비서실장도 모르게 몇 시간 동안이나 사라졌던 20세기의 대통령의 모습은 황제 폐하 얼굴 좀 보여 주시옵소서 외치던 명나라 신하들의 황제를 빼다박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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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제(槿惠帝)


16세기 무렵 세계적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던 소빙기 기후에 굶어 죽는 백성들이 명나라 천하에 그득하던 무렵, 자기 무덤 파기에 온 정력을 쏟았던 만력제와 온갖 난제 쌓아두고서 난데없는 국정교과서에 올인했던 저 비정상의 혼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며칠 전에는 그분을 두고 웬 뜬금없는 중국인들이 “아름다운 대통령 어머니”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하여 자랑까지 하는 걸 들었으니 이것이 고려 천자 만력의 좀비인가 부활인가.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정덕제건 만력제건 그들은 무능했지만 부지런하지 않았다. 구중궁궐에서 때려 놀건 사방을 쏘다니며 놀건 그들은 무능 그 자체로 나라를 망쳤지 그 무능을 부지런히 발휘하지는 않았다.


아아 만력과 정덕이 부지런하지 않았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명 왕조에 베푼 은혜였거늘 오늘의 빙의자는 유감스럽게도 너무도 부지런하여 “너무 할 일을 못 하고 막혀가지고, 그리고 이렇게 하고 싶다.”고 대통령이 그렇게 애원하고 몇 년을 갖다가 호소하고 하면 “그래 해 봐라. 그리고 책임져 봐라.”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잘못해서 욕을 먹는다면 한은 없겠어요.라고 불평하니 새삼 모골이 송연해지고 식은땀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분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단 말인가. 아아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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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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