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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9. 월요일

논설우원 파토


 


 


본 우원, 바보 됐다. 정동영 이 양반 안 나온단다.


 


민주당 경선에 꼭 나올 줄 알고 한 인터뷰, 마지막에 이제는 나와도 좋겠다 운운하고 은근히 지지하는 분위기까지 풍겼는데, 대자연 친구들이 와서 동영상도 찍고 했는데.


 



그 이너뷰 기사


 


암튼 안 나온다고 하고 좀 전에 기자회견도 했고 우원은 어젯밤 12시 좀 넘어 아이폰 뒤적거리다가 뉴스로 이미 확인했다. 아씨바.


 


그런데 사실 기분은 좋다. 왜?


 



출처 : 오마이뉴스


 


그건 이 양반이 소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정치인들의 문신과도 같은 마인드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그들에게 당연스레 요구하는 거지만 이걸 떨쳐내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건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도 다를 바 없다. 단순한 권력욕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인으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에 나올 정도가 되면 일단 그 동안 만들어 놓은 세계관과 펼치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 훌륭한 것이든 아니든 여하튼 있다. 이것을 발현하고 실행에 옮겨보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두 번째는 주변. 정치인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개중에는 그 정치인이 당선되고 성공해서 뜻을 펴는 모습을 보고픈 단순 지지자들부터, 그의 정치 행위와 관련해 먹고 사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형의 인간군상이 포함된다. 그들의 요구 혹은 필요를 저버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은 사람의 네트워크를 먹고 사는 존재인데 혹시라도 실망해서 떠나 버릴 수도 있고, 기대가 클 수록 배신감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마인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필수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로 개인적으로 당장의 경륜이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구, 나아가 권력에 대한 욕구도 넘어설 수 있는 고차원적인 무엇이 필요하다. 더 높은 목표던 희생정신이던 장기 전략이던 뭐던. 그리고 그것에 실제로 복무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도 필요하다. 이만한 것을 갖기가 이미 열라 어렵다.


 


두 번째는 주변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제길, 국회의원 and/or 대통령 되는 줄 알고 밀었더니 안 나간다네. 괜히 헛고생 했네. 이따우 생각을 가진 자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면, 그런 분위기로 지지자나 보좌진, 참모진의 네트웤이 형성되어 있다면 안 나갈래야 안 나갈 수가 없다. 정치인으로의 기본 정체성이 이 사상누각 위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 위에서 누각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하찮은 모래알들이라도 계속 붙잡고 있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걸 극복했다면 그건 그가 적어도 이 두 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실존적, 현실적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울나라 정치의 현실과 수준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담에 기분 좋은 이유는, 그가 지난 3년 넘게 보여왔던 모습이 이번 대선에 다시 출마할 명분을 쌓기 위한 얄팍함은 아니었다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의심했던 것 아니냐...?


 


지난 인터뷰에서 우원이 직접 그 문제를 물어봤지만, 그래서 아니라는 답을 듣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좀 찝찝한 건 남을 수 밖에 없다. 이 느낌은 모든 수사와 명분을 넘어 '출마했다'는 사실 자체가 남기는 부분이다. 그의 말마따나 피선거권이 사라진 것 아니고, 승패 여부를 떠나 경선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지난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3년간 그래도 될 만한 자격을 몸으로 체득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뭔가 찝찝한 거다. 뭐 이제 나와도 좋겠지만 결국은 이거였구나. 세상이 그렇지 뭐. 이런.


 


그런데 이 '세상이 그렇지' 부분이 깨지면 우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뻔한 공식이었는데 그 공식이 무너지고 그 인물만이 제시하는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다. 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자신의, 또 우리들 대부분이 가지는 경험적 예측가능성의 수위를 넘어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 물론 여기서 시니컬한 생각도 가능하다. 어차피 이번에 떨어지면 끝이니 안 나가고 말자는 계산일 뿐이라는. 그 외에도 벼라별 형태의 정치공학적 분석이 가능할 거다. 가장 흔한 그림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그와 연계해 대선 후 당권을 노리는 등인데, 좀전 기자회견에서 경선 중 아무도 특별히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건 또 아니다. 그리고 다음을 위한 노림수일 뿐이라는 지적도, 그 ‘다음’을 위해서는 다시 5년 반이 흘러야 된다. 울나라처럼 격변하는 정치 지형도 속에서 그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기회가 온다는 확신 따위는 가질 수 없다.


 


정동영의 경우라면 다음 5년도 현장을 그렇게 누비고 다녀야 할 지 모른다. 그런다고 그 고생 끝에 대통령 자리가 보장되는 건가. 이번 안철수의 경우에서 보듯 어떤 신성이 어떻게 등장하고 정권이나 체제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극단적으로는 대통령 중임제가 만들어져서 다음 대통령이 8년 이상의 집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 그런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버틴다는 거, 얄팍한 기회주의 따위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정치인들이 잘 못하는 일인 거고.


 


암튼 이래서 그의 불출마가 가지는 정치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 게다가 이제는 사람들이 정동영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이번 대선을 노린 게 아닌가 하는 마음 속의 의심 없이, 혹은 대선 나가려 하니 빨아준다 같은 주변의 눈치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리고 설사 다시 이 모든 것이, 지난 3년간의 활동과 강남 낙선과 대선 불출마까지 전부 일종의 쑈라 한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진정성과 쑈를 구분해야 할 의미도 논리도 사라진다. 더 이상 쑈를 할려면 정동영처럼 하라는 말도 이 수준에서는 무의미하다. 혹시 이렇게 언젠가 대통령이 되어 장기집권의 독재자라도 되려는 거라면 모를까. 머 그 경지까지 가면 의심병이 타진요의 수준에 이르는 거고.


 


암튼, 전체적 맥락에서 우원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정동영이 얼마나 순백의 진정성을 가진 인물인지, 나아가 타고난 큰 그릇인지 뭔지 우원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스스로 큰 사람이 되어 보고자 하는 꿈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저 산등성이에 조각된 큰바위 얼굴을 보면서 좀 부족하더라도 한 번 닮아보려는 선택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렇다면 거기 대고 '하지만 넌 진짜 저 바위가 될 수는 없어.' 라고 빈정대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오늘 새벽 1시가 다 되어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갈 것처럼 이너뷰 해놓고 안 나가게 돼서 미안하다는 거였다. 늦은 밤이긴 했지만 목소리는 좀 지쳐 있었고 먼가 겸연쩍은 느낌이 전해졌다. 미리 시나리오를 짜 놓고 그것을 순차적으로 실행한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다. 심지어 좀 자조적으로 '자주 흔들렸다'는 말까지 했다.


 


머, 어차피 우원은 하늘에 짱박혀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위대한 바위보다 지상에서 흔들리며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열분들은 어떠냐?


 


...정 의원님. 언제 소주 한잔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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