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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2. 목요일

딴지조기축구단장 필독


 



 


독자 늬덜은 울릉도대학교 오징어심리학과를 아는가.


 



소신지원의 예


 



강원대학교에도 개설된 오징어심리학과의 위용


 


울릉도대학교 오징어심리학과의 정말 놀라운 사실은, 울릉도대학교도 없고 오징어심리학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유머 내지는 도시전설은, 인지도가 충분치 않은 대학들이 생존하기 위해 박사과정에나 어울릴 법한 별의별 응용 분야를 학부과정에 학과로 유치하는 세태를 반영한다.


 



통일교 계열 학교인 선문대학교의 순결학과 소개


 


가끔 현실은 상상보다 더 초현실적인 법. 사실 선문대학교에는 ‘순결학과’라는 게 진실로 존재한다(어떤 면에선 진정 ‘순수학문’이랄 수 있다.). 오징어에게도 심리는 존재할 수 있다. 오징어도 꿈을 꾸며 덩치가 1mm 만하던 플랑크톤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맥주를 마시며 햇볕에 마른 오징어씨를 찢을 때 그 분의 살아 생전 성격이 궁금할 것 같진 않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순결이란 <그 좋은 걸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정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 빈약한 상상력으론, 그 사실을 깨닫는 데 4년의 커리큘럼과 그에 해당하는 등록금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다. 물론 거기 다니는 학생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중요한 걸 배우고 있을 가능성은 열어놓는 게 예의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어떤 현실은 상상보다 더 초현실적이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 오징어심리학과보다 창조적이고 희소성 있는 독립 학문이 존재했다. 바로 ‘퍼거슨 심리학과’이다.


 



퍼거슨, 플리즈 love 지성 팍!


 


알렉스 퍼거슨. 영국식으로는 퍼거슨 ‘경’. 스코틀랜드에서 1941년 탄생. 한 성질 하는 명감독으로, 1986년 감독으로 부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조련했다. 잉글랜드 축구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 인물인데, 트레블이란 리그 우승, FA컵 우승, UEFA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동시에 쓸어 담는 걸 이르는 말인데...


 


그런데 왜? 왜 퍼거슨인가. 퍼거슨은 능력 있는 인물이긴 하다. 자수성가한 부자이며, 유명인이다. 그런데 그 정도 성공한 아저씨들은 우리나라에도 득실댄다. 더욱이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 어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우리의 식생활(특히나 맥주를 섭취할 때)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오징어가 퍼거슨보다 훨씬 중요하다. 오징어에게 심리가 있다면, 그게 얼마나 중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퍼거슨의 그것보다는 비중이 높아야 할 것 같다.


 



 


 



 


퍼거슨 심리학과의 7년여에 걸친 역사는 박지성에 대한 국민적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박지성을 사랑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나도 2002 월드컵 이후 박지성의 꾸준한 팬이었다. 박지성은 지지 받지 않는 게 이상한 선수다. 촌스러운 외모와 과묵함은 플레이의 성실함과 맞물려 보는 이를, 말 그대로 성실하게 응원하게 만든다. 현존하는 아시아 최고 커리어의 현역 선수이며, 마침 우리나라 국민이다.


 


박지성은 그 촌스러움 때문에 우리 자신으로 치환된다. 플레이스타일과 이미지만 놓고 보면, 이 각박한 시대에 노력과 우직함이 재능을 이긴다더라는 동화(童話)의 산 증인이다. 물론 박지성은 놀라운 재능의 선수이며, 영민한 두뇌의 소유자지만 말이다. (간단하게 세 가지만 떠올리면 된다. 그의 외국어 학습 능력과 상대 수비수의 반칙을 유발하는 정교한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삼각 패스.)


 



 


한국인이 박지성을 사랑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그에 대해 따로 할 말이 엄따.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기 힘들 만큼 촌스럽다면, 그걸 나쁘다고 욕할 건 아니지만, 촌스러운 건 촌스럽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한 남자의 사랑이 아무리 뜨겁고 진실할지라도 ‘아침에 그대가 지은 밥을 먹고 싶어’ 라든가 ‘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줘’ 따위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의 프로포즈를 한다면 눈앞에 있는 여자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할 말은 없단 얘기다.


 


우리는 박지성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팀 맨유에 입단한 그가 자랑스러웠다.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시골 수재의 이야기와 구조는 같다. 다만 맨유에 입단하는 게 하버드에 입학하는 것보다 대략 만 배는 힘들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여기서부터 공교롭게도 변방 심리, 변두리 사고방식이 발동된다. 맨유에 가서 자랑스러운 것 까지는 좋은데, 이제 우리는 맨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우리의’ 박지성이 칭찬 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과한 나머지 박지성에 대한 현지의 반응이 빅뉴스가 되어 오프라인과 인터넷을 강타한다.


 


예를 들어 영국인 빅 존슨 군(19세, 맨체스터 거주)의 집에 놀러 오기로 한 그의 여자친구가 십 분 정도 늦는다고 하자. 존슨은 그 시간 동안 맥주를 홀짝이면서 축구 사이트에 댓글이나 한 줄 쓰기로 한다. 마침 박지성 얘기가 나오길래, 또 박지성이 전날 골을 기록한 경기를 열광하며 봤길래 선심을 쓰기로 한다.


 


“박지성 너무 저평가 된 거 아냐? 난 그가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봐.”


 


그러면 빅 존슨 군이 대략 두 시간 후 소파에서 어깨를 맞대고 있는 여자친구의 속옷 색깔을 궁금해 하고 있을 때, 한국의 박지성 팬들과 스포찌라시 기자들은 존슨의 고마운 말씀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존슨님이 여친과 함께 콘돔을 찾으러 집안을 뒤지고 계실 때쯤 그의 말씀은 급속도로 퍼져서 우리를 기쁘게 하고, 우리를 안심시키고, 지성이는 사랑 받는다는 우리의 믿음을 재확인해준다. 다음날 존슨이 어제 자기가 무슨 댓글을 달았는지 기억도 못하고 있을 때 한국의 스포찌라시엔 이런 제목들이 달린다.


 



<“지성, 아시아 최고 선수” 현지 팬도 반했다>


<역시 박지성! 영국 팬심 녹였다>


<“지성, 저평가 된 선수”>


<[전문가 칼럼]박지성, 왜 저평가 되었는가>



 


그런데 퍼거슨 같은 명감독이 선수의 가치를 몰라볼 리 없으므로, 지성은 앞으로 더욱 크게 쓰임을 받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는 퍼거슨 심리학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우리는 영국에 사는 한 아저씨의 심리 상태를 관측한다. 물론 퍼거슨 씨의 진짜 속내는 중요하지 않다. 박지성이 사랑 받는다는 사실을 어서 빨리 확인하는 게 관건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안 된다는 공포에 다름 아니다. 이 변두리 의식은 타인, 잘난 타인의 시선에 의존해야 하는 절름발이다.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긍정할 수 없다는 건 심하게 말해 장애다. 좋게 말해봐야, 더럽게 촌스러운 거고.


 


시골이 서울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에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 걸까. 박지성은 우리를, ‘축구의 고향’에 사는 퍼거슨과 현지 팬들은 우리보다 잘난 타인 - 정치적인 버전으로는 필시 미국 - 을 대변한다. 사실 퍼거슨 심리학은 빙산의 일각이다. 별 것 아니지만, 수면 밑의 거대한 덩어리의 존재를 시사한다. 못사는 나라 못사는 국민의 심리적 DNA가 수십 년 세월을 살아남아 퍼거슨 심리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유전형질의 다른 버전은 무수히 많다. 한국을 방문한 유명인을 세워두고 “당신이 보기에 한국은 어떤가요?”, “서울은 어땠나요?”라며 눈동자를 반짝이는 기자들의 모습은 외국인들을 의아하게 한다. 물론 그 유명인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지만, 예의상 좋은 말을 해주게 된다. 그럼 우린 또 그걸 받아 적고 좋아한다.


 



<방한일정 끝낸 자이언트 존슨 “한국 발전상 놀라워... 후진국들 배워야”>



 


인간은 아직 꼬리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 않았다. 꼬리가 없어도 꼬리뼈는 거기 있다. 마찬가지로 변방 의식 DNA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점은 실은 우리가 그만큼 구리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꼬리 없다 하여 균형을 못 잡는 거 아니듯이.


 


퍼거슨 심리학의 원조는 구한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종과 대소신료들은 아관(러시아 대사관) 사람들이 우리 조정을 어떻게 봐줄 지, 미국 대통령이 우리를 좀 동정해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 결과가 을사조약이라는 점에서 처절하리만치 안쓰럽긴 하지만, 이 심리학 분과(分科)는 그래도 대한제국의 마지막 보루이긴 했다. 국가의 안위를 기댈 곳이 외국 높으신 분들의 마음밖에는 남지 않았었으니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우리가 우리를 긍정하고, 우리의 스스로의 확신에 의해 박지성을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퍼거슨 심리학이 존재했던 게 마땅하다면, 나는 이 사례를 십분 참고해 ‘김태희 심리학’의 창시자가 될 수 있다. 퍼거슨이 훈련시간에 박지성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을 보아 그가 박지성을 마음에 두고 있으며 향후 박지성의 입지는 탄탄대로일 게 확실하다면, 비슷한 논리로 김태희가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것은 본 기자가 TV를 통해 자신을 볼 거라는 사실을 알아서이지 않겠는가. 그녀는 사실 어떤 경로로 나의 존재를 알아, 나를 사모하게 된 게 아닐런지. 베개에 내 이름을 붙여 매일 밤 끌어안고 자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을 테고... 창시자와 연구자, 권위자와 자라나는 새싹이 모두 나 혼자라는 문제가 있지만 그럴수록 김태희 심리학의 희소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그녀가 본 기자만을 향해 미소지을 가능성, 제로는 아니니까.


 


 



 


그러나 이제 다 틀렸다. 퍼거슨 심리학은 한때 유럽을 열광시켰던 골상학의 말로가 그러했듯이 순식간에 폐기되었다. 문득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제 사람들은 퍼거슨에 아무 관심이 없다. 우리의 박지성이 퀸즈파크 레인저스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나는 음험하게도 우리나라 스포찌라시와 축구팬들이 어떤 호들갑을 떨어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뒤져봤다. 물론 구질구질한 언사(言事)야 세상 어디에나 있다. 일부 맨유 광팬들은 도탄에 빠졌고, 맨유가 그 동안 헌신해온 박지성을 배신했다는 정신분열적 반응도 있다(맨유는 고아원이 아니다. 연봉은 왜 존재하는 걸까?).


 


허나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할 만한 심리학적 물결은 없다. 스포찌라시의 박지성 관련 기사 대부분은 놀랍게도 정상의 범주에 포함될 수준이다. 왜 그럴까? 모든 게 지극히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맨유가 박지성의 식사에 찬 밥을 많이 내놓기 시작한 건 그가 박지성이라서가 아니라 축구선수라서다.


 


박지성은 만 31살이고, 축구선수로서는 고령이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전성기가 지나면 기량은 당연히 떨어진다. 세계 최고레벨의 팀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고, 자신의 가치를 재평가 해줄 만한 다른 팀을 찾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퀸즈파크 레인저스라는 건 정말이지 순리라고 할 만큼 자연스럽다.


 


박지성 이적은 전성기가 지난 A급 선수 이적의 전형적 표본이다. 박지성의 플레이스타일은 프리미어리그에 맞춰져 있다. 그가 프리미어리그를 원했을 거라는 것도 상식. 상위팀에서 하위팀으로 간 것도 상식. 비록 하위팀이지만 세계 최고 리그에서 장기간 생존해온 훌륭한 팀이라는 것도 상식(프리미어리그는 유명 리그 중 팀 사이의 전력 차이가 가장 적은 리그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퀸즈파크가 비싼 돈 주고 모셔온 대어(大漁)에게 등번호 7번을 내준 것도 상식. 이적 조건도 상식. 박지성도 퀸즈파크도 맨유도 다 상식대로 행동했다.


 


상식의 종합선물세트를 마주한 우리는 실망할 것도 열광할 것도 없이 평소처럼 박지성을 응원하면 된다.


 



기왕이면 함께 응원하면 좋은 일이겠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갑자기 이렇게 침착해졌을까. 왜 마크 휴즈(퀸즈파크 레인저스 감독) 심리학은 등장하지 않으며, 런던 화이트시티(퀸즈파크 레인저스의 연고지) 시민들의 생각은 맨체스터 공업 단지 거주자의 그것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도 이제 촌티를 벗어서? 아니 설마 꼬리뼈가 그렇게 빨리 사라질 리가.


 


꼬리뼈의 생존력을 믿는다면 이 침착함의 이유를 간단히 찾을 수 있다. 퀸즈파크 레인저스는 맨유만큼 대단하지 않고, 마크 휴즈는 퍼거슨만큼 잘나지 않았다. 자기 내부의 확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먹고사는 감정은 빈곤하다. 변두리는 서울과 비교하니까 변두리가 되는 거다. 비교하는 사람은 스펙이 확실한 사람에게 이쁨 받길 원한다. 덜 잘난 사람한테는, 딱 그만큼 심드렁하다.


 


박지성을 향한 우리의 가난한 사랑 노래는 결과적으로 들을 만 해졌다. 진보란 껍데기만으도 실현되는 법이고, 우연에 의해서도 성취되는 법이다. 나는 일단 오징어 심리학에 비견될 만한 학문이 당분간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로 한다. 안녕, 퍼거슨.


 



퍼거슨심리학과가 이런 유수의 명문학과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해 안타깝다.


 


그렇다. 이 기사는 퍼거슨 심리학의 회고담이다. 본 기자, 김태희를 놓아 보내야 하는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양심껏 외친다. 우리 태희 양에게는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 쪽팔리게 살지 좀 말자.


 


 


딴지조기축구단장 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