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7. 23. 월요일
정우성
첫째와 둘째를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에 맡겼다. 첫 아이를 맡길 때 애엄마는 아직 말을 못하기 때문에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아이는 빠르게 적응했고 그곳에서도 햇살처럼 피어났다. 부모도 부모의 인생이 있는 것이어서 지나치게 육아에 빠지지 말도록 조심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합의된 생각이었다. 아내는 전업주부라서 하루종일 아이를 볼 수는 있다. 굳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도 엄마의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도 엄마의 휴식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에 엄마는 자유를 얻는다. 그 자유시간이 생산적인지 아닌지 그 동안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육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 지나치게 거리감이 없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해롭다. 긴 시간 지속되다 보면 아이의 인생에 엄마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드리워지고 마찬가지로 아이의 중력이 엄마의 인생을 삼켜버린다. 이게 우리가 가장 경계하는 육아법이다.
우리 어른 세대들을 보라고, 굳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잘만 키우지 않았냐고, 엄마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너 왜 그러냐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는 전업주부 엄마를 나무라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시어머니들이 자주 그런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애 아빠인 남편도 그런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름아닌 “엄마”가 자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할 때에는 그만큼의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까닭에 그것을 더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육아의 팔할 이상은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현상이므로 모든 것에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잣대를 드리밀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어린이집은 나름의 잘 짜인 육아법과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한 반면에, 이것을 엄마 스스로 하려면 더욱 많은 노동을 기울여야 할 뿐더러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 엄마의 불안감은 몰입성이 있어서 자칫 과욕을 불러올 수 있고, 엄마(혹은 아빠)의 과욕은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곤 한다. 아이는 슈퍼맨이 아니다. 사실 엄마도 슈퍼우먼은 아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감당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게 있다. 만일 가능하다면 굳이 엄마를 닦달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기술과 정보가 발전함에 따라 육아는 더 쉬워져야 하는데 역설적에게도 더 많은 사회적 보살핌이 필요하게 됐다. 옛날에는 이쪽과 저쪽까지 길이 한 개였는데, 요즘은 그 사이에 무척이나 많은 길이 새롭게 생겼다. 이렇다 보니 이쪽에서 저쪽까지 가는 데 네비게이션을 이용한다든지 여러 사람의 조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경제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당사자의 몫이겠으나, 무엇보다 육아를 위해서 여자가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자주 간관되곤 한다. ‘여자의 낮’은 우리 인류가 가장 늦게 발견한 시간이며, 가장 오랫동안 하찮게 여겨진 시간이었다. 이 시간의 가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현대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하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유아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시점은 사람마다 환경마다 다르겠으나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단어를 이용하여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할 무렵이면 한번 고민해 봄직하다. 맞벌이 부부는 당연히 이보다 빨라도 괜찮다. 그런데 돈이 든다. 적은 돈이 아니라 많은 돈이 든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0~2세까지 보육비를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환영한다. 한달에 40만원 육박하는 비용이 국가의 도움으로 10만원 내외(지역마다 다르다)로 내려갔으니 이것만 해도 얼마나 큰 위안인가. 다만 보편적 복지는 그것을 지탱하는 공적인 시스템이 잘 충족되는 조치가 함께 선행되어야 하는데, 보육에 관한 물적 시스템이 너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지역적 편차도 심하다. 어떤 지역은 어린이집이 많이 있어서 부모가 어린이집을 선택하여 아이를 맡기기가 수월한 반면에 어떤 지역은 어린이집이 너무 부족해서 마냥 대기하고 기다려야만 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숫자는 너무 적고, ‘가정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에 의존하는 바가 지나치게 크다. 민간은 정해진 수가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임대료의 부담과 수익 구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 보육교사의 낮은 임금과 어려운 근로환경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나 맞벌이 부부가 걱정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는 보육 시스템이 시급하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생산성의 문제까지 이어진다. 사회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직접 국민들의 보육료를 지급한다는 것은 명실공히 보육 서비스가 공공분야 서비스임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공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가는 가만히 앉아서 돈을 대주기만 하고 민간시스템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장소의 문제(충분한 어린이집 확보)가 가장 시급하고,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육교사의 지위와 처우 문제 또한 중요하다.
어떤 어린이집을 선택할지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고민해 봤을 문제다. 우리도 고민을 해봤지만 사실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좋은 어린이집을 골라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건 부모의 욕망일 뿐이고 지나친 기대다. 우리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대략 믿는다. 세상에 직업의 종류는 넘친다. 그 많은 직업 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선택해서 이를 생업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또 지식과 경험이 남다를 것이라는 점을 믿는 것이다.
우선 가장 가까운 동네에서 찾는 게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그리고 맡기기 전에 방문해 본다. 엄마와 아빠가 항상 같이 했다(우리 부부는 육아와 가사를 공동으로 행한다는 암묵적 합의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을 습관처럼 같이 한다). 원장 선생님이 갖는 사람에 대한 태도와 예의를 살펴봤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어떤 시스템인지 어떤 것을 먹이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게의치 않았다. 대개 큰 차이가 없다. 그 밖의 사항들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어쨌든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방법은 이론상으로 혹은 경험상으로는 이것저것 있겠으나, 어린이집과 아이 사이에 궁합이 맞아야 하는데 그런 궁합은 단지 요행일 뿐이라는 점이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가정어린이집 A와 B를 고르는 게 문제였다. A 원장님은 적극적이었고, 반면에 B원장님은 말이 별로 없었다. 붙임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A어린이집 아이들의 눈빛보다 B어린이집 아이들이 더 즐거운 듯했다. 그래서 붙임성 없는 원장님의 B 어린이집을 택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이는 즐겁게 첫 어린이집 생활을 보냈다. 이사 때문에 어린이집을 새롭게 알아봐야 했다. C어린이집은 뭔가 세련돼 보였다. 원장님은 의욕도 충만하시고 잘 되는 어린이집 같았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이 원장님 눈치를 많이 보는 듯했다. 원장님이 보육교사들을 하대할 것 같았다. 아이는 생각보다 관찰력이 뛰어나는데 아무래도 좀 마음에 걸렸다. D어린이집은 C어린이집보다 활기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C와 비교가 되는지라 원장님과 보육교사 사이의 분위기를 잘 살펴봤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서 D어린이집을 택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D어린이집은 옆단지 가정집 어린이집이었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원장님과 아내는 거의 친구처럼 지냈다. 틈만 나면 밤늦게까지 마실가서 술이나 차를 마시곤 했다. 가족이 함께 만나고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번도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한 적이 없다.
어린 유아에게는 가정집 어린이집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경험한 것처럼, 어른이 생각하는 공간과 아이들이 느끼는 공간의 크기는 매우 다르다. 유아(만2~3세까지) 정도의 나이라면 흔히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선택은 훨씬 쉬웠다.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영어에만 미치지 않으면 되었다. 지나치게 학습 위주의 유치원이라거나 영어영어영어 하지만 않으면 되었던 것이다. 동네 유치원은 새로 생긴지 1년도 채 안된 유치원이었는데 우리 아이에게 최고의 선생님들을 선사해 준 고마운 곳이다.
첫째 아이는 스무명 이내의 유아만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집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그리고 5살이 되자 조금 더 규모가 큰 민간어린이집에 보냈다. 유감스럽게도 그 민간어린이집은 2주만 다녔다. 아이가 낮잠 자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어린이집 선생님의 태도와 말투가 아이 엄마와 잘 맞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내게는 후자가 언제나 중요했다. 엄마의 마음이 일단 평화로워야 한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면 불화가 초래되고 표정으로 드러나며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이한테도 좋지 못하다. 바로 인근 유치원으로 옮겼다. 유치원은 낮잠을 자지 않는다. 동생은 누나가 졸업한 가정집 어린이집을 여전히 잘 다니고 있다. 아이는 언제나 어린이집에서 혹은 유치원에서 자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첫 선생님을 만난다. 선생님은 아이를 보살 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놀이를 가르치고 여러 가지 지식과 예의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정말로 많은 것들을 배워온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된 말을 배워온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게다가 율동이 섞인 노래도 배워오고,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법이라든지 위생교육도 배워온다. 배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신나게 논다는 것이다. 블록놀이도 하고, 레고도 하고, 체육선생님이랑 신나게 체조도 하고, 물놀이도 하며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도 듣는다. 모든 것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급부로써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부터 응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급부로써 우리 아이들을 잘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쌀쌀맞은 행동이다. 채권자처럼 행동해 봤자 기실 자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감정이 있다. 아이를 위탁하면서 돈을 지급하는 것은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냥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것보다 본질적인 것은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고 여러 모로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아이들도 자기 인생의 최초의 선생님과 최초의 친구들을 귀히 여긴다는 점이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어린 것들에게 귀하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고, 부모가 이들과 대립하면 심리적 불안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나는 내 아이의 부모로서 이런 ‘존재’들에게 더욱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예의를 갖추고 무장을 해제한다.
물론 이들 보육교사들은 나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리다. 지식이나 교양이나 여러 가지 경험도 부모들보다 뒤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가르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며 일러주며 보살펴 준다. 이 사실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내가 알기로 이들의 근로조건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해맑은 웃음으로 맞이애 준다. 그들의 노역에 빚을 졌다.
어린이집은 병균 집합 장소다. 우리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는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저곳 병을 받아온다. 어린이집도 위생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기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유행하는 수족구병 같은 무서운 전염병도 어린이집에서 받아온다. 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다툼의 근원지다. 아이들끼리 물고 물리며 때리고 맞는다. 우리 아이들도 여러 번 물리고 꼬집혀서 상처를 받고 왔다. 이런 일들로 어린이집 문앞에서 항의하고 따지는 부모들도 종종 봤다. 애들 앞에서 말이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글쎄다. 달리 생각해 보면 어린이집에 다녀서 이런저런 병원균과 싸우면서 애들이 건강해지는 것이고, 다른 아이들의 느닷없는 감정표현을 경험하면서 대인관계를 배우는 게 아닐까. 전염병이 돌고 무서운 아이가 생길수록, 어쩌면 우리 아이가 병원균을 옮기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힐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까닭에 엄마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 앞에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하대하는 것(면전에서 그렇든 아니면 집에서 식사시간에 그렇게 하든 말이다)은 아이들의 첫 인간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어머 걱정이 많으시죠? 괜찮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라고 나는 한참이나 나이 어린 선생님에게 습관처럼 말한다. 적어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아이들은 부모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나는 믿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낸다고 모든 육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 몫이 있다면 안에서의 몫도 있는 법이다. 아이들이 밖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선생님 때문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도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나이 어린 유아들은 소유욕이 강하지만 그렇게 경쟁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확실히 달라진다. 같은 반 아이들의 숫자가 많아지기도 했거니와 “정식 수업”이라는 형식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다 보니 누가 똑똑하고 누가 더 잘하는지 드러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경쟁”과 “인내” 그리고 “노력”이라는 단어와 그 뜻을 함께 배우고 돌아온다. 집에서의 몫은 아이들이 갖고 오는 스트레스를 지우고 위로하는 데 있다. 집에서는 경쟁이라는 담론은 완전히 추방된다. 집에서는 여전히 “놀이”와 “환상”이 가득하도록 노력한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늘리면 늘릴수록 집에서는 위로의 양을 늘린다. 이를 위해서 나또한 밖에서의 짐을 내려놓는다.
집에서는 공부하지 않는다. 어린이집에서든 유치원에서든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워오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유치원에서는 날마다 숙제를 내주는데,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어린 것들의 숙제를 챙겨주거나 숙제검사를 하면 공부가 중요하다는 부모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지나치게 시기상조다. 누나는 아직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한글을 읽지 못하지만 괜찮다. 먼저 글을 깨친 친구들과 똑똑한 친구들의 존재를 보는 것도 좋은 배움이다. 덕분에 우리 아이는 남들보다 듣고 말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언어의 묘미를 충분히 누린다. 유치원의 교과내용이 너무 앞질러 나가 있으므로 집에서는 아예 잊게 하는 게 좋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요즘은 어느 유치원에서나 영어를 가르치고 강조하는 게 유행이다. 학부모들이 그렇게 요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와 아내는 직접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공손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집은 영어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영어 단어 숙제는 하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이다. 그래도 영어 수업 시간이 있고 아이는 수업시간만큼은 열심히 한다. 굳이 사교육에 열심을 다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영어를 잘 할 것임은 틀림 없는 일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항상 좋은 것만 배워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아이들과의 인간관계가 있다. 친구들한테서 나쁜 언행을 배워오는 일도 많다. 그런 경우는 가만히 넘어가지 않는다. 그때그때 나무란다. 그리고 누구한테 배웠냐고 묻는다. 아이는 누구한테도 배운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조차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면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는다. 다만, 엄마와 아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밖에서 배워오는 것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들도 머리가 있어서 집에서의 중요한 가치와 밖에서 배우는 중요한 가치 사이에 온도차가 있음을 안다는 점이다 우리는 밖에서의 배움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부모가 귀히 여기는 가치를 쉽게 양보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지식의 양이 증가할수록 – 아이들이 전속력으로 지식을 강요받는 게 문제지만 – 아이들의 환상계가 침식당한다는 점이다. 앞서 여러 번 말했던 것처럼 환상계에서 아이들이 위로를 받고 치유되는 것이라서 지식습득의 빠른 속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바깥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더라도 집에서는 아이의 시계가 느릿느릿 가기를 나는 바란다. 남보다 빨리 치고 나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은가?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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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변리사, <특허전쟁>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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