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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0 비추천0

2012. 7. 23.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이건 뭔가 잘못된 일이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그리고 또 나는 누구인가.


 


세종문화회관 옆에 있는 세종미술관에 도착한 나의 심정은 마치 술에 만땅으로 취했다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깨어난 것 같은 황당함과 난감함의 집합체였다. 심지어 목까지 마르다.


 


현대미술이라고는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보고 왜 닦지도 않은 중고 소변기를 가져다 놓고 예술이라 우기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져본 것 뿐이고, 피카소의 전기를 읽으며 아, 이 사람도 젊었을 때에는 그림을 그릴 줄 알았구나, 단지 늙어서 그림을 못그리게 된 거 뿐이구나 하는 판단을 내리는 오랑우탄과 인류의 중간쯤 어디에 위치한 인식수준을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도대체 내가 왜 낸시랭이라는 현대미술가를 인터뷰하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고 백남준 씨의 비디오 아트를 보면서도 전기요금 많이 나오게 왜 텔레비전을 저렇게 많이 켜놨어~ 하고 중얼거린 적도 있다는 점을 창피함을 무릅쓰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대단히 잘생겼지만 나보다는 조금 못한(편집자 주 : 본인 주장), 그리고 성격은 너불편짱만큼이나 사악한 죽돌 기자의 농간에 마음 착한 내가(편집자 주 : 근거 없음)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하여간 나는 낸시랭을 만나 그녀의 세계는 어떻게 되어먹은 세상인가를 물어보기 위해 거기에 간 것이다. 그것도 장거리 광역버스를 한번 타면 갈 수 있기에 버스안에서 코를 골면서 간...


 


어찌되었거나 낸시랭은 나름 인지도를 확보한 현대미술가이다. 몇가지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다양한 방송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최근에 변...... 희재 선생(나는 소송당하기 싫다.)과 3분 토론을 하기도 했으며 지난 총선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앙”이라는 표지판을 들고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나 못지 않게 많은 악플러들이 따라다니고 있음은 5분간의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영국의 퍼포먼스에서는 현지 경찰에 의해 강제 출국을 당했네, 외국에 나가서 국가 망신을 시키고 있네, 또 린킨 파크와의 공동작업은커녕, 그냥 작품을 베낀 거네, 등등등.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관심을 가질 만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과연 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 예술가는 그 어떤 세계를 그려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 세계를 한번 슬쩍 둘러보고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매혹되거나 별거 없구나 하면서 외면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현대 미술에 이렇다 할 조예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녀의 예술 세계를 본인의 입을 통해 설명을 한번 들어보자는 아주 간편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이번 인터뷰를 실행한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독자들의 “인터뷰하고 나서 글은 필요없으니 사진이나 잔뜩 올려 달라”는 반인륜적인 요청들은 가볍게 무시한다. 사진은 죽돌기자의 저장공간에 간직될 뿐이다.


 




 


인터뷰는 세종미술관 지하1층에서 있었던 팝아트 전시회 현장에서 있었고, 해당 전시회에는 낸시랭의 작품이 두점 출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익숙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작품도 있었다. 맞다. 유명한 개그맨(편집자 주 : 임혁필)이다. 그는 나름대로 미술을 전공한 제대로 된 작가였다.


 


또 반대편에는 유명한 제임스 딘의 얼굴도 작품으로 걸려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이 작품은 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가 본인의 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이다. 흠좀무.


 


하여간 인터뷰는 낸시랭 본인의 작품 앞에 놓여진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마주보고 진행되었다. 이 대목에서 부러워 할 사람들은 마음껏 부러워 해도 된다.


 


얘기는 딴지일보에 대한 그녀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물: 반갑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정치 얘기 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낸시랭에 대한 엇갈리는 의견들에 대해서도 직접 여쭤보고 싶었고, 과연 낸시랭이라는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세계를 그리고 있는가를 여쭤볼 겁니다.


 



 


랭: 편한 대로 하시면 되요.


 


물: 네, 이제 정식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랭: 예, 안녕하세요.


 


물: 딴지일보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랭: 어, 직접적으로 제가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굉장히 유명해서 '딴지일보'라는 그 단어는 알고 있어요.


 


물: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십니까?


 


랭: 지금 제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이것이 대중미술이다> 전시를 하고 있잖아요.


 


물: 네. 맞습니다.


 


랭: 그렇듯이 딴지일보도 대중에 의해서, 대중을 위한, 그러한 미디어라고 저는 느껴지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물: 그러셨군요. 맞습니다. (웃음) 그런데 딴지일보는 다른 일반적인 미디어하고는 달라서, 저희는 인터뷰를 할 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싶어 합니다. 특히 저희 독자들은 어떤 사회적인 룰이나 예절을 지키면서 넘어가는 인터뷰 말고 실제 있는 그대로를 알고 싶어하죠.


 


랭: 네.


 


물: 오늘 인터뷰에서도 낸시 랭이라는 예술가의 세계가 딴지일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랭: 저는 항상 솔직하게 말하니까 그낭 질문해주세요. (웃음)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가 인터뷰를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초장부터 말 많다고 쿠사리 먹었다. 하기사 인터뷰 하러 와서 내가 많이 떠드는 것은 나의 본분을 잃어 버린 몰지각한 행동이다. 말조심 하기로 하자.


 


 


낸시랭의 성장과정


 


물: 미국에서 태어나셨다고요?


 


랭: 네. 그래서 이중국적을 갖게 됐고 우리나라 법에 의해서 만 18세 때 하나를 선택해야하는데, 제가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 당시 미국에서 예일대 페인팅과를 가는 목표를 갖고 있어서, 미국을 선택했어요.


 


물: 현재 미국 국적을 가지고 계신가요?


 


랭: 네. 현재 국적이 미국이에요.


 


물: 네.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니셨고,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다니셨다고요?


 


랭: 아니요. 그거는 사람들이 만들어냈고요. 인터뷰를 제가 수백번을 해도 그대로 전달이 안 되는 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해요.


 


물: 정확하게 써 드리겠습다. 어떻게 학업을 밟으신 거죠?


 


랭: 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다 우리나라에서 졸업했고요.


 


물: 초등학교부터? 유치원은?


 


랭: 유치원부터.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았고, 고등학교 3년만 하이스쿨을 외국에서 국제학교, 인터내셔널 스쿨을 나오게 됐어요.


 


물: 필리핀?


 


랭: 네. 필리핀 마닐라에서 인터내셔널 스쿨을 나왔습니다.


 


물: 그러면 미국에서 출생한 다음에 아주 어릴 때 우리나라에 들어오셨겠네요?


 


랭: 거의 신생아 때. 저희 어머님이 미국에서 20년 넘게 사업을 하셨어요. 되게 여장부셔서, 세계여행 다니시고. 또 원래는 발레리나셨는데, 저희 집안에 삼촌들이 많은데 아들들이, 그 당시에 딸에 있어서 교육적인 측면이나 여러 가지가 너무 남성우월, 남아선호사상, 그런 게 커가지고, 저희 어머니가 굉장히 진취적인 분이셔서 대학교 다니시다가 도미를 하셔서, 미국에서 사시면서 발레를 접고 가신 거예요. 그 옛날에 발레를 하셨어요. 혼자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시고. 미국에 가셔서 사업을 하시고 크게 돈을 버시고 세계여행을 다니시고, 이러다가 한국 왔다 갔다 하시는데, 저희 아빠를 늦게 만나셔서 저를 늦게 낳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무남독녀 외동딸이에요.


 


물: 굉장히 귀여움 받으셨겠네요.


 


랭: 네. 뭐 다 귀하게 자랐겠지만 저도 귀하게 자랐습니다.


 


물: 그러셨군요.


 


이 대목에서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낸시랭에게 전화가 왔다. 난 또 예의바른 사람이니 맘편하게 통화하시라고 한 뒤, 통화내용을 아주 관심없다는 태도로 경청하고 있었다.


 


랭: 어디야? 여기 미술관 들어와서 전시 한 번 쭉 봐봐. 보다보면 나도 있어. 응.


 


아,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신의 작품, 혹은 작품 중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구나.


 


물: 학업과정 같은 경우에는 국내에서 마치셨고, 고등학교 삼 년만 필리핀에 갔다 오신 거네요?


 


랭: 네. 그런데 좀 다른 부분은 학업 말고,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겨울방학 다 외국을 나가 있었어요. 여행을 다니고.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다녔던 친구들이 드물어서 에피소드가 많이 있어요.


 


물: 그거를 한 가지 정도만 짧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랭: 원래 부모님이 함께 다녔는데...


 


물: 보통은 당연히 그렇죠.


 


랭: 저도 그랬지만 나중에는 혼자 다니게 하셔서, 스튜어디스 언니들이 굉장히 이뻐하고 챙기고 거기 가서 놀았어요. 비행시간이 길어가지고 (웃음)


 


물: 당시에 혼자서 항공여행을 한다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인데요.


 


랭: 네. 없었어요. 제 주변 초등학교 친구들도.


 


물: 알겠습니다.


 


초등시절부터 혼자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사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경험은 사회의 경계,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동기들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약간은 부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이십대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을 뿐.


 


물: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다니실 때는 추억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일화 같은 게?


 


랭: 제가 다닌 학교는 영국식 인터내셔널 스쿨이라서, 저희는 교복을 입었어요. 굉장히 역사가 깊고.


 


물: 귀족적이고?


 



 


랭: 예. 귀족적이고 그런 학교여서. 사립학교여서 브랜드 마크가 있는 교복을 입고, 금요일만 저희가 사복을 입어서 패션쇼를 했고, 모두가 다. 저희가 또 소수정예여서 한 반에 스무 명 밖에 안 되어서 모든 반 친구들하고 다 같이 모두가 친하고 그랬었죠.


 


한 가지 제가 기억나는 건, 저도 압구정동에서 굉장히 있는 집, 부잣집 딸로 있었고 그 친구들 중에도 우리집이 제일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니까 거기는 어마어마한 재벌들인 거예요. 애들은 검소하고 그런 걸로 으스대는 건 없지만, 집마다 개인 헬기 있고 차가 스무 대가 종류 별로 넘고, 갑자기 확 차이가 나니까 나름 쫄았었어요. 물질적으로 위축됨이 없었는데, 애들이 워낙 장난 아니어가지고.


 


물: 그럴 수 있겠네요.


 


랭: 네. 그런데 되게 즐거운 학창시절과, 여행과, 여러가지 우정과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물: 그러면 그때 경험이 성인이 된 다음에 아무래도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가지는 데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랭: 그렇죠.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겠죠. 제가 다닌 학교는 굉장히 자유롭고, 그리고 또 학비가 되게 비쌌어요.


 


물: 비쌌겠죠.


 


랭: 그만큼 학교나 선생님진이나 모든 물리적인 것들이 굉장히 고퀄리티였기 때문에...예를 들면 미술실 같은 경우에 붓도 바바라 붓이었어요. 그걸로 쫘르르 준비되어 있었고.


 


물: 고등학생들한테?


 


랭: 예. 그리고 물감이든 모든 재료가 도자기를 굽든 페인팅을 하든 그대로 있었는데, 애들이 어땠냐면 유화를 그리고 나면 붓을 버렸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유화를 쓰고 나면 석유통에 꽂고 가기만이라도 해라. 제발 그걸 그냥 놓고 가지 마라.


 


사실 바바라 붓이라고 하면 붓의 세계에서 명품의 끝을 달리.... 줸장. 내가 바바라 붓이 얼마나 좋은 붓인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하여간 무지 좋은 붓 같다. 그걸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을 우습게 알 정도의 환경을 고등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며, 그런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것이다.


 


물: 다시 국내로 와서 홍대에서 미술대학을 다니신 거죠?


 


랭: 네. 학사, 석사, 서양화과, 회화과 나왔어요.


 


물: 필리핀 인터내셔널 스쿨 같은 데 계시다 국내 일반 대학에 들어오면 힘들지 않았어요?


 


랭: 저는 일단 목표가 예일대 페인팅을 가는 거였고 사실 지금까지도 저한테 미련으로 남아있는 부분이에요. 근데 대학교 말에서 대학원에 걸쳐서 저희 집안이 완전히 몰락, 망하게 되고, 또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생기고. 저희 어머님이 암투병을 오래 하시게 되어서... 저희 어머니가 모든 집안을 이끌어 나가셨는데 어머니가 편찮으시니까 모든 체계가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가장의 입장에 들어서는 거라든지 여러 가지가 함께 닥치면서 굉장히 힘들었죠.


 


물: 힘드셨겠네요. 그 시기가 학부에서 대학원 올라갈 때죠?


 



 


랭: 대학교 4학년부터 3년에 걸쳐서 저희 집이 완전히 몰락하고 망하면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게 됐어요. 그러면서, 처음에는 제가 일루 끌려왔을 때는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어른들이 시집 잘 가라고 이대 영문과를 집어넣으려고 하셨는데, 저는 저의 뜻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많이 싸웠고, 그리고 제가 외동딸이고 어머니가 투병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옆에 끼고 있고 싶어하셔서.


 


물: 멀리 보내기 싫어서?


 


랭: 네. 그래서 저를 일루 끌고 왔어요. 그 부분이 저는 그 부분이 굉장히 싫었고, 그리고 제가 가고 싶었던 예일대를 못 갔기 때문에. 그래, 그럼 엄마아빠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대학원은 예일대에 가야지, 근데 그 시기에는 저희 집이 망해서.


 


물: 경제적인 문제가 생겼네요.


 


누구에게나 그늘은 있다. 낸시랭 역시 부유한 어린 시절과 달리 학부 마치고 대학원을 진학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게 된다. 퍼포먼스를 자신의 장르로 택한 이유도 경제적인 이유라고 한다. 만약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낸시랭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랭: 네. 재정적인 측면으로 예일대를 못가고 뉴욕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현실에서, 제가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도 못한 주제에 가서 퍼포먼스를 보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홍대에서 미술 캔버스만 붙잡고 있는 거에서 다른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설치미술이나 비디오작업이 붐이고 있어 보였어요, 선배들이 하는 게. 카메라 하나 구하려면 몇백만원 들고, 제가 기계치고, 그런 물질적인 측면이 너무 힘들어서, 쉽게 말해서 돈이 없어서, 다른 장르를 하고 싶은데, 우리 선배 이불이나 이윰 선배를 보면서 알게 됐고 또 매튜 바니를 보면서 수억을 들여서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퍼포먼스 작업을 할 수 있지만, 필르밍 작업을 혼자서라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베니스 비엔날레에 저만의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터부 요기니>라는 작품을 선보이게 됐어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초의 퍼포먼스를


 


물: 어떻게 보면 당돌하다고 볼 수 있고 도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 초대받지 못한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가신 거잖아요?


 


랭: 네. 그때 저는 무명이었죠. 막 대학교 졸업하고 첫 개인전 하고, 두 번째 개인전 하고 나서 간 거예요.


 


물: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경우에 초대받지 않은 상태에서 퍼포먼스를 시도하고 그러면 주최 측하고 충돌 같은 것도 생기지 않나요. 그런 거 걱정 안하셨습니까?


 


랭: 저는 저의 어떠한 목표와 꿈 이런 게 결정됐을 때 그대로 실행해요. 난 실행할 거야.


 


물: 아, 예.


 


랭: 그럴 때는 그 외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건 너무나 저한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그러한 성격을 주신 것 같아요. 너무나 Too positive mind 때문에 그런지, 그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았고. 어쨌든 제가 민주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저희 엄마 아빠가 가르쳐 주셨듯이, 법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경우에 어긋나는 일만 하지 않으면 어떤 오해든 모함으로 법정에 서더라도, 그 사람들이 모략을 하더라도, 너는 거기에서 정정당당하게 말리지 않고 나올 수 있다는 걸 심어주셨어요.


 


우리가 변호사나 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법들을 다 외우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제가 아는 예술과 언론은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법으로 그거 하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어린 예술가로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작품을 어디서든, 그게 북한이 아니었다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디테일한 것은 머릿속에 없었어요.


 


물: 그런 거는 고려하지 않았다?


 


랭: 큰 맥락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물: 사실 상 프로필을 보게 되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 퍼포먼스가 거의 세상에 알려진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랭: 그렇게 볼 수 있죠.


 


물: 제목이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그 내용이 개인적인 경험과 연관이 있는 거겠죠?


 


랭: 일단 그때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가 Dreams and Conflict, 꿈과 갈등이었어요. 저도 우리나라 대표로, 마치 국가대표같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된 작가로서 전시를 보이고 싶었지만, 저는 무명이었고.


 


물: 초대를 받지 못했으니까?


 


랭: 각 나라 대표로 나가는 거예요. 그러려면 좀 멀었죠.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고, 그래서 발상을 다르게 해보게 됐어요. 내가 초대받지는 못했지만 나의 작품은 선보일 수 있다. 그래서 비엔날레 주제가 꿈과 갈등이었고 모든 초대받은 전세계 작가들이 자신만의 철학과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거였기 때문에, 저 역시도 그 주제에 함께 맞춰서 작품을 만든 거죠. 저는 초대받지 않은 작가고, 그리고 저의 꿈과 갈등이 저는 그 당시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아서 나도... 그 당시는 그게 정상인 것 같았어요.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런 게 아니지만. 어렸죠.


 


물: 네. 굉장히 젊고 어렸던 시절에 모험적인 시도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랭: 네.


 



 


생소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행사에 초대받지도 못한 상태로 당돌하게 쳐들어가 나름의 퍼포먼스를 한다. 그것도 스스로의 젊은 여성의 몸을 노출하는 비키니 차림의 퍼포먼스를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사람의 세계는 내가 이해할 수 있거나 최소한 그저 공감하며 지켜볼 수 있는 세계의 선을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키니가 문제인 것도 아니고, 초대받지 못한 것도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행동의 방식을 이런 식으로 일탈성이 강하게 기획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사전의 준비도 없었다는 점. 그 즉흥성을 내가 감당하기는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 것 뿐이다. 베니스에서의 퍼포먼스 과정에서도 현지 경찰과의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굳이 캐묻지 않았다.


 


 


터부 요기니 시리즈


 


물: 그 때부터 시작된 터부 요기니 시리즈가 굉장히 길게 지속되었고 작품이 무척 많더라고요.


 


랭: 네.


 


물: 그 작품들을 관통하는 맥락을 뭐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랭: 무슨 질문인지 못 알아 듣겠어요.


 


물: 터부 요기니 시리즈를 여러 작품 진행하실 때 머릿속에 있었던 핵심, 맥락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랭: 터부 요기니는 금기된 요기니구요, 요기니는 사전적 의미로 보면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Angel or Satan 이에요. 천사 또는 악마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어요. 저는 그 앞에 금기된 요기니라는 단어를 덧붙여서 하나의 캐릭터 이미지를 탄생시켰어요.


 


그래서 이 터부 요기니는 신과 동일한 파워를 지니고 있지만, 제가 크리스챤이라 그런지 하나님을 사랑해서 제가 프로그래밍을 하기를, 그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지만 오직 인간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데 쓰는 그러한 힘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제 작품을 바라보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의 꿈을 제 터부 요기니가 다 이루어주는 거죠.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서 이루어주고 죽어요. 그리고 다시 Chain Reaction이 이루어져서 또 다른 터부 요기니로 나타나서.


 


터부 요기니 시리즈는 낸시랭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오래된 시리즈이다. 어찌보면 조악한 것 같기도 한 이 시리즈는 나름대로 낸시랭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게 설명할 필요없이 독자여러분들이 각자 찾아서 한번씩 감상해 보시길 권하고 싶다. 터부 요기니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로봇의 몸체는 뒤에 나올 린킨 파크와의 공동작업에 관한 부분과도 연관이 된다.


 


물: 불교적인 윤회의 의미도 있습니까?


 


랭: 그런 의미를 제가 부여하진 않았어요. 맘대로 생각해도 상관없는데 일단 제 작품의 맥락은 그래요. 터부 요기니는 조금씩 다르게 보여지고 있고, 이렇게 보여지는 의미의 목적은, 제가 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렇게 노력하고 욕망하는 거 같이, 전 세계 사람들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있어요.


 


물: 모든 사람을 말씀하신 겁니까?


 


랭: 전 세계,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길.


 


물: 전 인류의?


 


랭: 네. 하지만 터부 요기니는 그 사람의 꿈을 이루어주고 죽잖아요?


 


물: 그렇죠.


 


랭: 다시 또 태어나죠. 조금씩 다르게. 결국에는 작가는 저의 꿈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어요. 그걸 작품에 의미를 담은 겁니다.


 


물: 알듯 말듯 하네요. 제가 미술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랭: 아니요. 이건 미술이랑 상관없이 저의 작품 내용을 말씀드린 거예요.


 


물: 알겠습니다. 지금도 작품이 이어지고 있나요?


 


랭: 이어지고 있고요. 내가 사랑하는 내 자식과 같은 터부 요기니도 죽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이어지고 있지만, 저를 비롯한 전세계의 예술가들은 무언가 새로운 걸 창조하고 새로운 이즘을 보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판에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물: 그러면 어떡하죠? 새로운 게 없다면?


 


랭: 그렇기 때문에 컨셉이 중요하게 된 거죠. 뒤샹의 변기, 샘이라는 작품을 보이는 그 순간부터 미술이 굉장히 어려워지기 시작했죠.


 


물: 마르셀 뒤샹 말씀하시는 거죠?


 


랭: 그렇죠. 변기를 갖고 와서 샘이라고 지칭했어요. 그 변기를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하나하나 빚어가지고.


 


물: 일종의 레디메이드에서. 기성품이죠.


 


급기야는 뒤샹이 나오고 말았다. 천만 다행인 것은 내가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던 현대미술가가 바로 마르셀 뒤샹이었다는 점. 학창 시절 뒤샹에 대한 보고서를 쓴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무식이 들통나지 않아서 다행... 하지만 뭐 다른 곳에서 충분히 들통이 났을 것이다. 그게 내 세계인데 뭐 어쩌라고.


 


랭: 그렇죠. 이제는 더 고차원적으로 들어가서, 현대미술, Contemporary Art로 들어갔을 때, 그전까지는 풍경화, 인물화, 여러 가지를 하면서... 현대미술 들어오면서 대중들이 함께 같이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 이상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고급미술이라고 칭해지면서, 상위 몇 퍼센트만 즐기는 그런 아트가 됐지만, 이후로 팝아트라든지 여러 장르가 생기면서, 그 중에서 팝아트가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이고 가장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장르로서, 현대미술 장르 안에 들어있지만 유일하게 대중과의 소통을 가장 잘 하고 편안하게 대하고, 무언가 미술에 대해서 잘 몰라도 자기가 작품에 대해 한 마디 씩 말을 던질 수 있는, 굉장히 Friendly한 장르가.


 


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르.


 



 


랭: 그렇죠. 마치 딴지일보 같이요.


 


물: 그렇죠. 딴지일보도. (웃음)


 


랭: 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졸지에 딴지일보는 매우 프렌들리하고 컨템포러리한 미디어로 규정되었다. 이런 충격적인 규정을 이끌어낸 나한테 딴지일보 측에서는 적절한 보상을 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주장만 하고 싶다.


 


 


낸시랭에 대한 비평


 


물: 설명을 인상적으로 잘 들었는데요.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낸시 랭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을 많이 봤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작품들에 대한 기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팝아트 역시도 기술적으로 어느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상태에서 작품세계가 표현되어야...


 


사실 이 질문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실제로 낸시랭의 작품을 들여다 보면, 아니 작품 자체는 퍼포먼스인 경우가 많으니까 작품을 영상으로 옮겨 놓은 사진들을 들여다 보면, 사진으로써의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일부러 촌스럽게 찍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실제로 그런 기술적 완성도의 부족을 지적하는 비평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어떤 역발상적인 의도가 있지 않은가를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매우 단순했다.


 


랭: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물: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랭: 그건 각자의 의견인 거죠.


 


물: 그렇죠. 의견에 불과한 건데. 예를 들어서 퍼포먼스를 하시는데 사진을 찍었다 이거에요. 사진의 구도가 안 맞다든가 색깔이 나쁘다든가 이런 비판도 많이 있더라고요.


 


랭: 어떤 작품도, 다... 현대미술 작품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물: 그렇죠, 정답은 없죠.


 


랭: 이게 잘 그린 그림이고, 이게 못 그린 그림이다, 이게 좋은 작품이고, 저게 나쁜 작품이라는 건 없습니다.


 


물: 없죠.


 


랭: 그래서 그런 질문은 제가 대답하기 힘든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시면 돼요.


 


물: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죠.


 



 


랭: 그거를 굳이... 그 수준에 맞춰서 제가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그걸 질문한 누군가에 있어서 바스키아의 작품은 어떻게 얘기하고 피카소의 작품은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바스키아가 인용된다. 80년대 신표현주의로 유명한 장 미셀 바스키아의 경우는 몇가지 면에서 낸시랭과 연결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바스키아는 철저하게 상업주의에 이용된, 즉 후원자들의 마케팅에 의해 유명세를 타게된 예술가라는 지적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현재 우리사회에서 낸시랭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지적 중 가장 중요한 부분과도 맥이 통한다.


 


물: 그래요. 알겠습니다. 아까 얼핏 말씀하셨는데, 홍대 선배 되시는 이불 선생님 있잖습니까?


 


랭: 네.


 


물: 이불의 작품 세계를 봤을 때는, 제가 몇 몇 미술을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부여주면서 소감을 물어본 적이 있어요.


 


랭: 어떤 걸요?


 


물: 이불 선생님의 작품세계가 굉장히 멋있고 압도적이고, 찬사가 많이 나옵니다. 장기적으로 봐서는 낸시 랭의 작품세계도 그런 수준에 가고자 노력하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요?


 


랭: 질문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직설적으로 편하게 질문해주세요.


 


물: 이불 선생님의 작품 세계하고 본인의 작품세계를 비교한다면?


 


랭: 다르죠. Different.


 


물: 그걸로 끝인가요?


 


랭: 아니면 특정 작품을 놓고 물어보셔야지. 이불 선배님의 작품도 굉장히 많고 저의 작품도 장르마다 굉장히 많은데 포괄적으로 비교를 할 수 있는지...


 


물: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질문을 잘못 택했습니다.


 


랭: 이런 거를 원하신 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불이 낫냐, 낸시 랭이 낫냐?


 


물: 그런 질문을 한 건 아니고요.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셨고.


 


랭: 그러면 제가 이불 선배님 나이가 돼서 그때 작품들이 나오면, 이 연도 때 이불 선배님 나이하고 비교해서 봐도 되겠네요.


 


물: 그렇죠.


 


랭: 아니라면 이불 선생님이 지금 제 나이 때까지 한 작품만 보고 비교평가를 하셔도 재미있을 것 같고.


 


똑같은 홍대 출신이며 낸시랭에 비해서는 한참 선배가 되는 이불의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낸시랭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이불의 작품세계는 충분히 놀라왔으며, 감동적이었다. 낸시랭에게 이불의 작품세계에 대한 언급을 한 이유는 혹시 낸시랭이 이불의 작품세계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반응은 약간은 부정적이었지만 의식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은 나도 궁금하다. 낸시랭이 이불의 연령대에 이르렀을 때, 과연 낸시랭의 작품은 어떻게 변화 발전해 있게 될까?


 


랭: 이렇게 하니까 되게 멋있어요.


 


물: 잘 안 보여요. (웃음)


 



 


이 대화는 이불을 언급하는 질문에 이어 다음 질문을 하기 위해 들고갔던 아이패드를 째려보고 있던 나를 보고 낸시랭이 한 얘기이다. 아이패드, 확실히 된장질에 먹히는 장비다. 잘 안보였던 이유는 전시실 조명상태로 인해 화면이 잘 안보였던 것 뿐이다. 확실히 얘기하지만 노안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은 절대 아니란 말이다.


 


 


린킨 파크와의 공동작업


 


물: 린킨 파크 문제인데, 제가 보기에는 해명의 기회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린킨 파크와 공동작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공동작업이 아니라고 지적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랭: 공동작업 맞고요. 아니라고 얘기를 한 거는 제가 봐서 아는데, 그건 본인들이 중간 걸 상상해서 내용을 만들었기 때문에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죠.


 


물: 작업의 내용이 <리애니메이션>이라는 앨범의 표지에 건담 스타일의 로봇 이미지가 나와 있고, 그 이후에 낸시 랭의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랭: 네. 맞아요.


 


물: <리애니메이션> 앨범 재킷에 들어간 로봇 이미지 작업을 하신 건 아니죠?


 


랭: 아니죠. 저는 했단 얘기 (한 적) 없고요. 그 부분이 바로, 보는 사람들이 내가 공동작업을 했다고 한 건데, 저는 공식적으로 한 거 맞고요. 저는 제가 <리애니메이션> 로봇, 그 페인팅 작업을 했다고 한 적이 없어요. 본인들이 스스로 상상해서 스토리를 만들어서 공동작업을 한 게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죠.


 


물: 그러면 어떤 작업을 하신 겁니까?


 


랭: 저는 그때 워너브라더스 대표님께서...


 


물: 본사요 아니면 코리아요?


 


랭: 코리아요. 대표가 지금 린킨 파크라는 그룹이 있는데, 저는 솔직히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세계적인 락그룹이라고 그러는데, 얘네들의 자료를 다 주셨어요. 이미지 자료를 쫙 주고 이걸 가지고 작품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물: 공동작업의 의미는 그거였군요?


 


랭: 그리고 그들과 공동작업이 됐어요. 어떻게 됐냐면, 저희는 콘서트를 보고, 저는 대표한테 얘기를 했죠. 제가 자료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고 여기에 어디 어디 부분에 이들의 사인이 들어가는 부분을 조형적으로 남겨뒀어요.


 


물: 아, 그러면 린킨 파크 내한했을 때 같이 작업을 하신 건가요?


 


랭: 공연을 보고 우리는 삼원 가든에서 식사를 하면서 만나면서, 작품을 열 몇 개를 쫙놓고, 제가 다 설명을 하고, 이렇게 대표가 얘기를 해서, 너희들 걸 가지고 작업을 하기로 했다.


 


물: 그렇군요.


 


랭: 그러면 공식적으로 공동작업이 맞고, 결국 난 너희들이 손끝이 다 들어가야 공동작업으로 끝난다. 내가 이러이러한 조형적인 빈 칸을 놔뒀다. 여기다가 여기다가 너희의 사인이나 드로잉을 해라, 디렉팅을 했어요.


 


물: 린킨 파크 멤버들이 직접 사인을 한 건가요?


 


랭: 사인과 드로잉을 했어요. 제가 디렉팅한 그 지점에다가. 그 열 몇 개의 작품에다가.


 


물: 그런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 건데, 그걸 린킨 파크와 공동작업을...


 


랭: 그렇죠. 이걸 구체적으로 이런 거를 말할 필요가 있고, 누가 이렇게 말하나요? 엘지와 누가, 삼성과 누가 공동작업 했다?


 


물: 사람들이 공동작업을 했다니까 리애니메이션 표지를 낸시 랭의 작품을 갖다 썼다,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랭: 본인들이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만든 스토리인 거죠.


 


물: 정확하게 설명을 하셨으니까 이 부분은 해명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랭: 안 되도 상관없어요. 사실 팩트 이외의 것들은 다 그냥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기자님, 저는 그렇게 신경 안 써요. 그리고 결국에는 무언가를 알고 싶으면 진실은 나오기 되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게 있어요. 진실을 말해줘도 안 들어요.


 


부연설명을 한다. 린킨 파크라는 유명한 그룹이 있다. 그들이 발매한 앨범중에 “리애니메이션(Reanimation)” 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 앨범의 표지를 멤버중 일인이 직접 작업을 해서 그렸다. 건담과 유사하게 생긴 로봇의 그림인데, 이후 낸시랭의 요기니 시리즈에 그 로봇의 모습이 자주 등장을 하게 된다.


 


한편, 낸시랭은 린킨 파크가 그 앨범의 홍보차 내한하기 전에 워너 코리아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앨범에 관련된 자료를 워너 코리아에서 제공을 받고, 그걸 소재로 작품을 만들게 된다. 그 작품에는 내한한 린킨 파크 멤버들이 직접 사인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남겨져 있었고 그들은 거기에 손을 댔다.


 


사건의 전후는 이런 것이다. 이 과정을 놓고 낸시랭은 리에니메이션 앨범과 관련해서 린킨 파크와 공동작업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얘기를 했고, 사람들은 그 앨범의 표지에 이용된 이미지가 낸시랭의 작품인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오해가 맞다. 낸시랭은 그 앨범 표지 이미지를 자신이 작업했다고 한 적은 없다. 다만 공동 작업이라는 단순한 표현과 린킨 파크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네임 밸류가 뒤섞이면서 마케터들과 소비자들 사이에 과장광고와 오해의 뒤범벅이 벌어진 것 뿐이다. 이후에 낸시랭이 자신의 작품에 해당 이미지를 사용한 것도 린킨 파크 측에서 해당 이미지의 사용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이상 저작권 시비도 소용없어진다. 또한 의혹을 제기하는 소비자들과 의혹의 대상이 되는 유명인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비도 매우 전형적인 메카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별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삼원가든은 내가 아는 그 삼원가든이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면서 배가 고파진다.


 


 


거지 여왕 퍼포먼스


 


낸시랭은 2010년 영국 여왕의 생일에 맞추어 런던에 가서 거지여왕 퍼포먼스를 벌인다. 거기에 대한 질문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랭: 제가 거지 여왕 퍼포먼스를 2010년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에 맞춰서 했어요.


 


물: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과 개인, 국가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랭: 네.


 


물: 어떤 의미로 하신 말이죠?


 


랭: ‘개인이 국가다’가 거지여왕 퍼포먼스의 컨셉이었고, 그 자체가 저의 개인전 작품이었어요.


 


물: 개인이 국가다?


 


랭: 개인이 작품이고 개인이 국가다. 국가라는 단어에 있어서 교육받은 Fixed Idea가 있는데, 국가가 있으면 엄청난 시민들, 백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국가라면 다수의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 틀린 고정관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입장에서야 얼마든지 비틀어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물: 그렇죠.


 


랭: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만약에 당신이 국가라면, 본인이 대통령 왕이고 여왕이고, 본인이 국무총리고 외무부 장관이고, 본인이 시민이고 전부 다인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굉장히 유니크해지겠죠.


 


물: 내가?


 


랭: 그럼요. 근데 제가 영국을 너무 사랑해서, 영국 아티스트도 너무 멋있고 사랑하고.


 


물: 고등학교 생활을 영국에서 하신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랭: 그렇죠. 학교가 영국식 학교였고, 저는 영국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리고 왕들만 많은데, 우리가 가장 먼저 블링블링하게 떠올리는 게 엘리자베스 여왕이잖아요. 저는 엘리자베스 여왕도 굉장히 좋아하고.


 


물: 멋있죠.


 


랭: 네. 그래서 저는 퍼포먼스 할 작품의 나라를 영국으로 정한 겁니다. 전세계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그래서 여왕의 생일을 어떻게 하는지 보시고 윈저 성도 가보시고 하면 어마어마한 럭셔리의 극치에요. 그게 현대의 시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거는 굉장히 대단하고 유일하지 않습니까, 지구상에서?


 


물: 그만큼 럭셔리한 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왕이니까 가능한 거잖아요? 잠깐만 생각해 보면 각 개인이 국가고 굉장히 유니크하다는 걸 강조하는 상황하고, 왕이니까 럭셔리한 거하고 어떻게 연결이 될 수가 있는지?


 


랭: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연결 안 돼요.


 


물: 연결 안 되는 겁니까?


 


랭: 되고 안 돼요.


 


물: 네?


 


이 대목에서 나는 마치 내가 지금 스와힐리어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로 가지고 있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간의 대화는 서로 다른 언어로 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정치권에서도 진보와 보수가 대화할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사투리 정도였다면 여기는 완전히 어족이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랭: 이 뜻은 무엇이냐면요, 여왕이 있잖아요, 여왕은 그러한 또 여왕의 가족들은 어떻게 그런 게 유지가 될까요?


 


물: 사람들의 힘이죠.


 


랭: 아니죠. 세금으로 인해서 그렇게 영위하는 거죠.


 


물: 그러니까 사람들이 세금을 내주니까.


 


랭: 사람들이 그냥 도와주는 건 아니죠. 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세금이 거두어 지잖아요.


 


물: 그렇죠.


 


랭: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되고요. 런던에서 젊은 대학생 친구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현재 그것을 반대하는 많은 여론들이 있어요.


 


물: 럭셔리한 왕실문화를 왜 유지하느냐?


 


랭: 그렇죠. 지금 우리는 이렇게 고생을 하고, 지금 우리나라도 학자금이나 청년들이 힘든 것도 있지만, 저는 그거를 그냥 좋게 봐요. 왜냐면 지구상에서 그런 게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너무나 판타스틱하고, 그리고 동시에 영국이란 나라가 그런 체제를 유지하면서 얼마나 많은 관광수입을 얻고 있는지 까지 생각한다면 상업적인 측면으로 볼 때도 굉장히 높은 퀄리티를 가져간다고 생각해요.


 


자, 그렇다면, 영국 여왕은 영국의 시민들의 세금으로 그거를 다 본인의 권좌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정치적으로 상반된 견해를 모두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그렇게 화려한 왕실문화를 굳이 국고를 소모해 가면서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견해가 있고, 그 견해에 반대하며 왕실 문화가 소모적이지만은 않고 관광수입이나 혹은 상품으로써 생기는 문화의 가치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낸시랭은 이 두가지 상반된 견해를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별은 불필요할 듯 하다. 어차피 그녀의 전문분야는 정치가 아니니까.


 


물: 그렇죠.


 


랭: 그런데 저는 거지 여왕으로 거기를 가서 그 영국 시민들한테 구걸을 해서 받은 돈으로, 같은 거죠. 저는 구걸을 했지만.


 


물: 본질적으로 같다?


 


랭: 같다는 거죠. 세금으로 받는 거나 구걸을 해서 받는 거나 그 맥락이 같다는 거죠.


 


물: 진짜 여왕이든 거지 여왕이든 사람들한테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다?


 


랭: 그렇죠. 다만 저는 거지 여왕이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왕인 거죠. 그렇게 제가 구걸을 런던 곳곳에서 퍼포먼스를 하면서, 런던 거지한테도 돈을 받고, 근데 그 구걸이 그냥 돈 주세요 이게 아니었고요, 그 구걸통 안에 A4용지로 이만큼을 쌓아 가지고 제가 친필로 쓴 걸 복사를 했어요. 제 작품의 의미를. 그걸 본 사람들이 돈을 줬죠.


 


물: 수입은 얼마나?


 


랭: 많았어요. 그걸로 제 국가를, 낸시 랭 왕국을 선포하고 만들겠다는 과정이었는데, 제가 제 나라를 선포한 날이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이었어요. 그때 에피소드들이 여러 가지가 있었고.


 


물: 궁금하네요.


 


랭: 그래서 제가 솔직히 여왕한테 전단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게 사실 가장 큰 마지막 퍼포먼스의 행동방향인데, 구글 들어가서 저희 스텝들이랑. 그런데 접근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것만 드리면 되는데.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철통경비인 거예요.


 


물: 보안이 상당하겠죠.


 


랭: 네. 이렇게 (바리케이트가) 다 있고, 거의 일 미터 마다 경찰들이 있어요. 이것만 넘어서 뛰어가면 어떻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있고 또다시 바리케이트가 있고 경찰들이 있어요. 제가 두 번째 넘을 때는 이미 잡힐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슬펐어요. 아, 인제 어떡하지? 그래서 파이널을 포기를 하고.


 


어마어마하게 관광객들이 많고, 기자들도 많고, 사진작가들도 많고 막 찍는 거예요. 찍는데 의자를 가지고 와서 찍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어요. 저도 안 보이니까 의자 위로 올라가니까 머리만 딱 나오더라고요. 거기에서 제가 그 날만 제가 준비하는 반짝이는 티아라, 왕관을 썼어요. 그걸 쓰니까 햇빛에 엄청나게 번쩍거리죠.


 


물: 눈에 띄었겠네요.


 


랭: 딱 올라가서 제가 이렇게 손을 흔들었어요. 낸시 랭 왕국을 선포한 거죠. 그랬더니 360도로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저한테 집중이 되는 거예요. 지금 엘리자베스 여왕이 말 타고 지나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경찰들이 확 몰려온 거예요. 여왕한테 포커스가 돼야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사람들은 안 거죠. 작품하는 걸 안 건 거예요. 그러니까 다 좋아하고 사진 찍고 그러니까, 딴 쪽으로 시선이 분산되니까 온 거예요. 저를 끄집어 내렸어요.


 


물: 제지를 한 거네요.


 



 


랭: 저만 올라간 건 아니지만 저의 이거(손짓) 하나가 너무 크게 주목을 받게 돼서. 그럴 때는 말 제깍 제깍 들어야 돼요. 외국에서는.


 


물: 그래야죠. (안그러면 총맞을지도 모른다.)


 


랭: 네. 그래가지고 저한테 막 이것 저것 물어보는 거예요. 얘기는 했죠. 다들 올라가서 보는데 나는 왜 안되냐? 안된다고. 그래서 제가 쓰라고 해서 거기 없는 것까지 다 썼어요. 혈액형, 물고기자리, 이런 거 다 썼어요. 웃더라고요. 그러더니 저를 또 어디론가 데려가요. 거기에 또 더 계급 높은 경찰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너 여기서 뭐하는 거냐? 여기서 구걸하면 안 된다. 저는 구걸하지 않았다. 나는 작품을 하고 있고, 전단지를 줬어요. 이걸 읽어보더니 알았다고 가라고. 그래서 제가 경찰들과 함께 낸시랭 포즈로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까 오기 전에 실시간 검색으로, 제가 무슨 강제출국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 경찰들이 저를 공항까지 에스코트까지 다 해줬어요. 그러니까 그게 와전돼서 보도되는 걸 보면 굉장히 신기해요.


 


물: 그런 게 있죠. 그런데 영국의 경찰은 그런 거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거네요.


 


랭: 그럼요. 현대미술의 메카가 런던과 뉴욕 아닌가요?


 


물: 퍼포먼스나 이런 걸 다 이해하는...


 


랭: 네. 작품인 걸 다 알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어요. 다시 저는 가서 했는데, 제가 너무 기뻤던 거는, 제가 제 왕국을 선포하는 것, 개인이 국가다 이 컨셉을 파이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그 부분이 뭐였는지 아세요? 모든 게 지나가고 나면 뒤에 이어서 군병들이 마칭을 해요. 그 순간에 바리케이트를 풉니다. 다 끝나서 푼 건데 희안하게도 마칭을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같이 마칭을 앞에서 했어요.


 


물: 군대를 이끌고?


 


랭: 그렇죠. 왜냐면 엘리자베스 여왕도 그랬거든요. 엘리자베스 여왕은 마차를 타고 간 것뿐이고, 뒤에 얘네들은 앞뒤로 수십 수백명이 따라가는데, 근데 저는 앞에서 행진을 한 거죠. 제가 앞에서.


 


물: 시간 순서가 어떻게 된 거죠?


 


랭: 경찰에 갔다 와서요.


 


물: 갔다 오니까 행사가 마무리 돼가면서 바리케이트가 풀리고 마지막 군대 행진이 있는데 앞장서서 행진을 하셨다?


 


랭: 네. 그래서 바리케이트 다 끝났음에도 행진을 하는데 거기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남아서 저를 다 찍었어요. 다 찍었어요.


 


물: 영향력이 있으셨네요.


 


랭: 그 사람들은 다 제가 작품을 하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는데, 동양에서 온 어떤 소녀 같은 작가가 아티스트인 것 같은데, 저렇게 하는 모습이, 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아는 거죠. 왕관을 했다는 그 자체는 여왕만 해야 하는 건데, 이 코스튬은 거지 복장을 하고, 구걸통을 들고, 코코샤넬(고양이 인형)을 얹어놓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거니까.


 


물: 제가 말씀을 쭉 들으면서 예술적인 부분은 이해가 가는데...


 


랭: 중요한 거 있어요. 개인이 국가다, 왜 그거 안 물어보세요? 낸시 랭 왕국 만들었다고 그랬잖아요.


 


물: 그 얘기를 드리려는 겁니다. 개인이 국가라고 얘기를 하시면서도, 세금을 모아가지고 여왕에게 주는 걸 반대하는 런던의 젊은이들, 그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를 안 하시는 거잖아요?


 


랭: 그들의 의견을 들은 것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저는 좋다 말다 의견이 별로 없고.


 


물: 그건 그 사람들의 의견일뿐이고?


 


랭: 그냥 들은 얘기인 건 거죠.


 


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개인이 곧 국가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왕의 자격으로 하나의 일인 왕국을 선포하고, 이거는 또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거죠?


 


랭: 뭐랑 뭐가요?


 


물: 개인이 국가라는 생각하고, 개인이 개인이면 되지 굳이 왕국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랭: 제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요. 낸시 랭 왕국. 우리 기자님은 기자님 국가 만들고 싶지 않으세요?


 


물: 개인이 국가라는 걸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건가요?


 


랭: 그러니까 작품이죠. 그래서 저는 사랑과 평화와 아트가 가득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어요.


 


물: 사랑과 평화와 아트가 가득한 나라.


 


랭: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면 땅 한 평만 기부해달라고 얘기해서 그게 성사되기를 바랬어요. 그러면 거기에 사랑과 평화와 아트가 가득한 나라를 만들겠다.


 


물: 땅 한 평만 주면. (역시 땅은 중요하다. 영국도 땅값이 만만찮게 비쌀텐데... )


 


랭: 더 많이 주면 더 좋고요. 그게 컨셉이었습니다.


 


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퍼포먼스에 비해서, 영국에서의 퍼포먼스는 굉장히 성공한 건가요?


 


랭: 저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반응을 해서 성공했다는 생각을 하고 반응을 덜 해서 성공이 아니라는 생각은 전혀 없고요. 제가 기획한 작품, 그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계획하고 생각하고 꿈꾼 그대로 현실로 가져와서 완성했다는 거, 거기에 저는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어요.


 


물: 알겠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동양인 소녀가 영국 왕실의 행사를 방해한 것 뿐이다. 혹은 극성팬의 일탈행동일 수도 있고, 정서가 불안정한 한 개인의 기괴한 행동일 수도 있다. 물론 그녀의 의도가 동냥통 안에 A4지에 친필로 적혀 있었고, 그걸 받아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군중 전체는 그 설명서는 받아 보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다.


 


국가적인 행사를 방해한 혐의로 영국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고 강제출국을 당한 건지, 아니면 안전의 이유로 제지를 당했지만 경찰도 이해해준 예술적 퍼포먼스였는지 굳이 가릴 수도 없고 가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일탈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서도 아니다. 그저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게 무슨 행사에 큰 지장을 준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런 튀는 퍼포먼스를 통해 상업적 지명도를 올리기 위한 행동이었는가, 아니면 순수한 예술적 관점에서의 퍼포먼스였는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팝아트와 대중미술


 


물: 국내에서 방송활동을 많이 하시잖아요?


 


랭: 네.


 


물: 특별히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시는 건가요?



 


랭: 제가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는 별명이 있잖아요. 그리고 음주가무의 여왕, 애교의 여왕, 큐티섹시키티낸시 야옹 앙,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방금 질문이 뭐였죠?


 


물: 저도 잊어버렸습니다. (바로 코 앞에서 큐리섹시키티~ 이러고 있는 이 상황에서 안 잊어버리면 그게 이상한 인간이다. )


 


랭: 방금 질문하신 거?


 


물: 방송 출연에 대해서.


 


랭: 아, 그래서 제가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는 별명도 있다는 걸 말씀을 드린 거예요. 낸시 랭 자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저는 모든 분야를 넘나들면서 콜라보레이션 작업, 또 응용해서 뭔가 새로운 씬이나 작품을 펼치고 싶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마음이 있어요. 거기에 첫 번째 선두주자가 된 거죠.


 


물: 케이블 티비 같은 경우는 가치보다는 상업적인 이유로 방송을 하는 곳이 많지 않습니까?


 


랭: 팝아트가 상업적인 거예요.


 


물: 케이블에 출연하는 것도 내 예술활동의 당연한 일환으로 간주하고?


 


랭: 저의 퍼포먼스라고 보시면 이해가 빠르죠.


 


물: 출연 하나 하나가 다 퍼포먼스인가요?


 


랭: 저의 작품이죠.


 


물: 다 작품이다?


 


랭: 왜냐면 우리나라에서 미술계 쪽 아티스트가 방송이나 연예계에서 보여지는 것은 국내에서 최초잖아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방송 출연 하나하나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을 한다. 물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이 있는 그대로 작품이 되기도 한다. 공감이 간다. 아니 오히려, 상업적이건 뭐건 좀더 다양한 예술가들이 방송에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낸시랭이 방송에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예술세계를 방송계에서 인정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 이유는 다들 잘 아실 것이다. 바로 젊고 섹시한 여성이라서 그런 거다. 신기하기도 하고..


 


물: 그 연장선상에서 링에 라운드 걸도?


 


랭: 네.


 


물: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주시요.


 


랭: 제가 격투기 너무 좋아해가지고.


 


물: 실제로 격투기를 좋아하세요?


 


랭: 제가 XTN 채널 밤새고 보다가 자고 그랬는데, 실제로 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얘기를 우리 지인들과 하는데, 그쪽 관련된 이충섭 기자님이 실제로 한 번 보겠냐고 저를 초대해서 가서 봤어요. 봤는데 너무 재미있긴 했는데, 깜짝 놀라서 울기도 하고.


 


물: 무서웠나요?


 


랭: 그냥 좀 아팠어요. 원래 세상이 그런 거를 보여주고 있긴 한데, 그런데 저는 실제로 보니까 선수들이 주인공이긴 한데, 라운드 걸들이 격투기 장에서는 사실 꽃이거든요.


 


물: 그렇다고들 하죠.


 


랭: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너무 엑스트라 같이 보여지는 거예요.


 


물: 가치가 없게, 하찮게?


 


랭: 그냥 엑스트라 같았어요. 이게 하찮은지 뭔지 디테일한 형용사까지는 모르겠고요. 그래서 아, 격투기의 꽃인 라운드걸이 주인공이 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들어서.


 


물: 현장에서?


 


랭: 네. 그래서 그 얘기를 상의하다가, 육 개월 후에 격투기장 갈 때, 기자님이 함께 만든 거죠. 돈 받고 한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돈 많이 받고 한 줄 아는데, 저의 순수한 퍼포먼스 작업으로.


 


물: 오히려 예술가로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으니까 장소 임대료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랭: 모든 사람이 각자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네.


 


격투기 경기가 벌어지는 링위에서 라운드 걸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진행했던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은 낸시랭이 라운드 걸 퍼포먼스를 한다고 하니까 충격과 공포를 유발할 만한 과감한 노출을 기대했었지만, 오히려 라운드 걸 낸시랭은 정장에 가까운 복장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끝 부분의 “모든 사람은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변희재


 


물: 그렇게 방송을 하시다 보니까 이상한 데까지 가셔서, 변희재씨하고 토론하신 적 있지요? 3분토론.


 


랭: 아아, 네.


 


물: 그거 어떠셨어요? 다른 사람들의 반응 말고, 개인적인 소감이.


 


랭: 일단 난 변희재씨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얘기하면서 그렇게 했는데, 녹화는 몇 시간 했어요. 그걸 짧게 이렇게 편집을 하신 건데, 좀 많이 답답했어요. 그리고 본인의 어떠한... 제가 무슨 주치의나 엄마가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본인 인생상담을 저한테 하고 계시고.


 


물: 변희재씨가 인생상담을 해와서 받아주셨다는 말씀인가요?


 


랭: 아니죠. 토론 내용 중에서 말씀하신 중에, 자기가 꿈이 원래는 미학이었고, 엄마가 뭐... 자기 얘기를 주제에 벗어나게 얘기도 많이. 아, 여기까지 오는구나, 이 분이 참 뭔가 힘드신 게 많으셨나보다. 그리고 어쨌든 되게 훌륭한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말은 굉장히 많이 하시는데 본인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모르시는 것 같기도 하고, 서울대 나오셔서 똑똑한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토론을 하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고 있었으니까.


 


물: 상당히 긴 시간동안 얘기를 하셨을 텐데 어떤 사람 같았나요?


 


랭: 그런 생각 안 해서 모르겠어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저는 그 토론, 주제에 있어서 저는 찬성이고 그분은 반대였는데, 저는 거기에 충실했어요.


 


물: 변희재씨와 토론을 하는 게 낸시 랭의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으셨을 수도 있겠어요?


 



 


랭: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었어요. 얘기를 제가 되게 많이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어서. 이건 토론인데 제가 들어드린 입장이 많아서. 근데 얘기가 너무 중구난방이셔가지고. (웃음)


 


물: (웃음)


 


갑자기 이해가 막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온다. 변희재 선생님에 대한 언급은 뭐 대략 더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 한마디로 끝.


 


랭: 더 힘들었죠. 그거를 잘 들어들여야 하니까. 어른이시잖아요, 저보다.


 


물: 강용석 전 의원이나 김재철 사장 등을 상대로 트윗을 하셨잖아요. 그런 트윗을 하실 때는 어떤 생각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랭: 그때 그때 기사를 보고 느끼는 거를 낸시 랭 답게 얘기를 하는 거죠.


 


물: 상대가 권력자이거나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는 거죠?


 


랭: 그렇죠.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해야 하나요?


 


물: 아니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랭: 제가 기자님 생각이 그렇냐고 여쭤본 게 아니라 반문을 한 건 거예요.


 


물: 굉장히 놀랐던 게 김재철 사장이 임기를 사수하겠다고 하는 데 후달림이 느껴진다는 표현을 쓰셨죠.


 


랭: 네.


 


물: 심리적으로 날카로운 지적을 하셨는데, 저도 그 사람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혹시 미술 말고 심리학이라든가 사회학이라든가 공부하신 적이 있나요?


 


사실 이 인터뷰 자체, 이 난감한 모험적 기획이 실현된 이유에는 저 “후달림” 한마디에서 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멘트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비굴하게 사장직에 매달려 있는 김재철의 후달리는 심리를 날카롭게 찍어냈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나 뿐일까? 저 멘트를 보는 순간 난 낸시랭이라는 젊은 여성 예술가에게 뭔가 남다른게 있는거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짧은 인터뷰 한번으로는 그 남다름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고, 이런 힘든 인터뷰를 또 다시 할 생각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이다.


 


랭: 저 하이스쿨 때 싸이콜러지 했었어요.


 


물: 하이스쿨 때 수준을 넘는데요.


 


랭: 제가 뇌가 너무 섹시한가 봐요.(웃음)


 


물: 그런 발언을 한다면 다른 사람이 모르는 반응이 올 수 있지 않나요?


 


랭: 어떤 거?


 


물: 일반인 말고 힘 있는 사람이 전화해서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한다거나.


 


랭: 그런 연락이 온 적이 있냐고요?


 


물: 의미 있는 리액션이 온 적은 없는지?


 


랭: 아직까지 없어요.


 


이 무슨 가카에 대한 불충이란 말인가. 일개 예술가 따위가 이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사회적 어른들을 능멸하는 발언을 막 늘어 놓고 있는데 그걸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 이건 심각한 문제다. 가카를 뫼시고 사시는 분들, 좀더 분발하시기 바란다. 이래서는 안된다.


 


 


돈과 엘리트


 


낸시랭은 여러차례 자신은 돈을 좋아하고, 또 엘리트를 좋아한다고 한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천박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실제로 돈과 엘리트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넘쳐나면서도 아무도 그걸 입밖에 내어 얘기하지 않는다. 천박함에 더해 위선까지 겹쳐있는 그 사람들 보다는 낸시랭의 솔직함이 더 다가온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관대한 일일까?


 


물: 돈 문제와 엘리트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랭: 저는 엘리트 좋아하고요. I love dollar. 돈 사랑해요. (이 I love dollar~ 하는 부분은 육성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 나도 웬지 원화보다 달러가 막 좋아지려고 하는 목소리다. )


 


물: 저도 돈을 좋아합니다. 엘리트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돈을 좋아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천박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랭: 사실은 그분들도 다 속으론 좋아하는데,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면 천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천박하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거를 숨기는 거겠죠.


 


물: 또 반면에 돈이 없어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거죠.


 


랭: 네.


 


물: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동조하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랭: 왜요? 그분들도 돈이 많아져서, 생계가 힘든, 예를 들자면, 그러면 해결되면 좋은 거 아닌가요?


 


물: 문제는 사회에 돈이 무한히 있는 게 아니라, 돈이라는 재화가 한계가 있고 일부는 그것을 가지게 되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도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를 염두해 둔다면 천진난만하게 ‘나는 돈을 사랑해’라고 말하기는 부담스럽지 않나요?


 


랭: 전혀요.


 


물: 전혀요?


 


랭: 우리는 인정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어요. 이 민주주의 자본주의 모든 게, 우리나라 특히 모든 교육도 평준화, 평균, 누가 잘나면 잘났다고 징 때려서 죽이고, 못나면 왕따시켜서 자살시켜요. 뭐가 다 비슷해야지 맘이 편한가봐. 누가 더 잘나고 이러면 안 되나 봐요. 자, 뭘 말하고 싶은 거냐면요, 불편한 이 진실을 받아들여야 돼요.


 


물: 사회는 이런 것이다?


 


랭: 아니요.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해요.


 


물: 다르다가 아니라 불평등하다?


 


랭: 불평등하게 태어나요. 내가 어떤 부모, 어느 집안, 어떤 환경,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는가 자체가 내가 선택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그 원론적인 부분이 거기서 시작되는 게 가장 크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어요. 불평등하다는 거죠. 태어난 거, 시작부터가.


 


받아들이고 내가 만약에 더 우월한 조건들 속에서 더 잘해서,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쥐를 실현하면 되는 거고요. 더 많은 일자리를 본인이 그 잘난 여러 가지 혜택 받은 걸로 부흥시켜서, 그 사람들을 할 수 있게끔 하면 되고. 내가 반대의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불평불만만 하다가 그냥 그렇게 하는 것보다, 할리우드 영화 같이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물: 어떻게 도전해야 합니까?


 


랭: 내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물론 실패랑 좌절이 많이 있겠지만, 어떤 긍정적인 뜻과 이런 걸 해나가게 되면, 다 예상치 못한 기회들과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 엘리트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 주시지요. 엘리트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랭: 누구나 좋아하지 않나요?


 


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죠.


 


랭: 그건 엘리트라고 본인이 생각되는 집단한테 무슨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물: 그럴 수도 있고...


 


랭: 그리고 엘리트라는 자체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본인이 수양을 갈고 닦아야만 되는 그런 상황적인 물리적이든 신분이든 뭐든 자기가 이루어내는 거든, 그런 거 아닌가요?


 


물: 실제로 일반적인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엘리트가 될 수 없다는 관점도 있죠. 운이 따라야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랭: 네.


 


물: 그러면 노력이 많으냐 운이 많으냐를 봤을 때, 노력이 보이는 경우라면 엘리트를 좋게 볼 수 있고, 운이 더 큰 경우에는 저 사람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요?


 


랭: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인이 운이 좋으면 되죠.


 


물: 운이 나쁜 것도 잘못이다?


 


랭: 아니요.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됐다고 하면 본인이 운이 좋아지면 되잖아요.


 


물: 그러니까 엘리트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랭: 그러니까 말이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 노력을 하면 되는데, 노력을 얘기하지 않고, 너는 운이 좋아서 원래부터 그래, 이렇게 얘기를 만들어 나간다면, 본인도 운이 좋으면 되는 거죠.


 


이 부분은 그냥 낸시랭은 이렇게 말했다, 라는 정도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한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엘리트는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고 그렇기에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낸시랭의 의견이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그 의견에 찬성하면서도, 그게 순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된 것은 절대 아니고, 사회적 인프라의 도움이 필수적인 역할을 한 것이므로 엘리트들에게는 보통 이상의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밝혀두는 것으로 멈추겠다.


 


 


마무리


 


물: 굉장히 설명을 직설적으로 잘 해주셔가지고.


 


랭: 저요? 제가 좀 직설적이에요.


 


물: 전달이 잘 되고 있어요.


 


랭: 정말요? 감사합니다.


 


물: 내용이 옳고 그름은, 좋고 나쁨은 독자들이 판단하는 거고.


 


랭: 그렇죠.


 


물: 마무리하는 김에 고양이에 대해서 얘기해주시죠.


 



 


랭: 코코 샤넬이라고 제가 이름을 지었고요.


 


물: 그건 상표죠?


 


랭: 아니요.


 


물: 유명 상표 아닌가요?


 


랭: 디자이너 이름인데요.


 


물: 고양이의 이름을 그걸로 붙인 이유는?


 


랭: 성별은 없는데 제가 암컷으로 정했고요, 좀 더 혁신적인 크리에이티브한 그런 고양이가 되길 바랬어요. 왜냐면 낸시 랭 고양이니까.


 


물: 아까 말씀 중에 얼핏 들었는데, 낸시 랭이 ‘난 실행’하고 관계가 있는 겁니까?


 


랭: 발음이 비슷해가지고 첫 자서전을 낸 게 ‘낸시 랭의 난 실행할 거야’인데, 다들 방송에서 강호동 오빠나 조혜련 언니나 다들 친한 사람들 끼리는 낸시 이렇게 안 부르고 ‘실행아 실행아’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처음에는 기분이 별로였어요. 촌스럽고, 굉장히 컨트리틱하고. 계속 듣다 보니까 어느 순간 들어보니까 낸시 랭, 난 실행, 저는 항상 실행해 왔던 거예요.


 


물: 실행해 왔다?


 


랭: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얻게 되잖아요.


 


물: 제 질문은 낸시 랭이란 이름을 갖고 살다 보니까 나중에 난 실행이 연결이 됐다는 건 좋은데, 이름을 지을 땐 그런 생각이 없었다는 거죠.


 


랭: 그런 건 없었고, 저는 박혜령도 본명이고 낸시 랭도 본명이라고 항~상 말씀을 드리는데, 기자님도 꼭 들어가서 쓰실 때는 낸시 랭 괄호 열고 본명 박혜령 써넣는 것도 정말 어메이징한 것 같아요.


 


물: 그러면 저는 그렇게 써드리겠습니다.


 


랭: 네.


 


물: 한국 이름은 박혜령, 본명은 낸시 랭?


 


랭: 아니죠. 본명 낸시 랭, 본명 박혜령.


 


물: 영어 이름 낸시 랭, 한국 이름 박혜령?


 


랭: 그러면 영어 이름 또 만든 것 같잖아요.


 


물: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 이름을 받으신 거예요?


 


랭: 저희 엄마가 낸시를 지으셨고요, 이중국적이니까. 랭은 변호사 선임해서 인터내셔널한 성으로 제가 바꿨어요. 저의 꿈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려고 정하고서부터 고등학교 때 이름이 중요하다는 점을 경쟁에 밀려서 알게 됐고요.


 


물: 원래 성은?


 


랭: 낸시 박이죠.


 


물: 아, 낸시 박을 낸시 랭으로 바꾸신 거로군요.


 


랭: 변호사 선임해서 글로벌한 성으로 저의 꿈까지 생각해서 바꿨어요.


 


물: 다시 고양이로 돌아와서 고양이 이름이 코코 사넬인데.


 


랭: 코코 샤넬


 


물: 진짜 고양이는 아니잖아요.


 


랭: 고양이죠. 영혼은 살아 있어요. 저한테 코코 샤넬은 쌩떽쥐베리 <어린 왕자>의 장미와도 같은 존재에요.


 


물: 혹시 그 인형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교체해 왔나요?


 


랭: 얘랑 또 하나 있어요. 얘는 삼색이고 다른 애는 크림색 털이 긴 페르시안 고양이, 걔는 가브리엘 샤넬.


 


물: 코코샤넬, 가브리엘 샤넬.


 


랭: 네.


 


물: 둘은 형제인가요, 자매인가요?


 


랭: 아니요. 종자가 달라요.


 


물: 성은 같은데.


 


랭: 그건 제가 정한 거고요, 내가 입양했으니까.


 


물: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 세계를 만들고 싶다, 그 다음 딴지일보 독자들에게 짧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랭: 저는 사랑과 평화와 아트가 가득한 낸시 랭 왕국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수많은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티스가 제 꿈이기 때문에. 그러한 Just be yourself, 자기 자신이 되세요. And dream and go for it 꿈을 향해 나아가세요. 이 컨셉을 제가 늘 외치고 작품에 표현한는데, 그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티스트가 되겠습니다.


 


물: 알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낸시랭은 죽돌 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동영상 인사를 딴지 독자들에게 날렸다.


 



 


이상으로 이번 인터뷰 기사를 마친다.


 


낸시랭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현대 미술에 대한 관점도 무수히 많을 것이며, 그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본 낸시랭에 대한 판단역시도 천차만별일 것이 확실한 판에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행동일 것 같아서 난 낸시랭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임무를 완수하면서 빠지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 험난한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기사까지 작성을 끝낸 나 자신에게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난 진짜 뭐든지 할 수 있구나. 역시 난 대단한 놈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대 미술에 대해 무지한 본 기자를 가르쳐 주고, 또 아이들이 막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몰려 다니는 전시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라 극악의 음질이 되어버린 녹음 파일을 붙들고 완벽에 가까운 녹취를 해준 이동현 필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 기사는 사실 이동현 필진의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 재미있으셔쎼요? 뭐 글은 하나도 안 읽고 사진만 열심히들 보셨겠지만 말이다.


 


이상, 졸라~


 


 


 


녹취

이동현(@Leetreeart)


사진

죽지않는돌고래(@kimchangkyu)


 


이너뷰어

 물뚝심송(@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