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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7. 24. 화요일


화성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 후보의 슬로건이자 책 제목인데 한마디로, 놀랍다! 이 짧은 문장에 일거리, 비정규직, 저출산, 복지, 삶의 질, 행복... 같은 한국 사회의 애환이 다 담겨있지 않은가. 시어(詩語)처럼 함축적이지만 추상적이지 않고, 정치적인 냄새도 풍기지 않지만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카피다. 딱 듣는 순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표' 된장찌개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며, 팍팍하고 빡빡한 삶을 사느라 그동안 잊고지냈던 소중한 것들(진정한 내 삶의 가치, 행복, 가족, 친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한다.


 


굳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찾자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이 슬로건과 손학규 후보가 딱히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그래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정치인들의 그것보다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들과 함께 모여서 오붓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저녁,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저녁, 애인 또는 아내와 편한 마음으로 쇼핑이나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저녁, 내가 좋아하는 취미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저녁... 그것은 단순히 저녁이라는 시간 개념을 넘어, 고단하고 피곤한 삶에서 유일하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여유'이며, 그것이야말로 '닥치고 전진'만을 강요당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간절한 바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내세운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은 식상한 느낌부터 든다. 2002년 월드컵 때의 '꿈은 이루어진다'같은 붉은악마의 문구도 생각나고, 여기저기서 베껴온 냄새도 많이 나는데... 사실, 표절 시비를 떠나 그냥 생각해 보더라도 꿈이나, 우리들 그런 거 잊고 산 지 오래 아닌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꿈이라니.


 


사람들은 안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다른 (많은)누군가의 꿈이 처참히 뭉개져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뭉개질 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그래서 얼핏 보면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선거에 관한 한 야당보다 한 수 위라는 소리를 듣는 박근혜 측에서 왜 이런 슬로건을 들고 나왔는지는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내가 아는 걸 전문가인 그들이 모를 리 없을 테니까. 슬로건을 만든 장본인도 아니고, 그쪽 캠프에 있는 사람도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마도 부동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현재 어떤 악재가 일어나도 박근혜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는 '붙박이' 지지층은 대략 40% 정도로 보이고, 아직까지 부동층은 25% 내외로 보이는데, 그러면 이 부동층에서 10% 이상만 더 가져오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가카가 워낙 정치를 잘하신 탓에 이 부동층이 여권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까칠한' 부동층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여권과 박정희로 상징되는 박근혜의 보수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덜어내는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진보적 성향을 내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마도 정치적 성향을 철저히 배제한 '꿈' 같은 '뜬구름 잡기식' 슬로건이 필요했으리라 본다. 야권에서 주장했던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정책 이슈들을 가로채기하면서 자신의 정치 색깔에 물타기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너무나 문재인다운, 문재인스러운


그럼 이쯤에서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을 보자.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내세운 건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는데, 얼마 전엔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으로 바뀌었다. 처음 슬로건에 대한 평이 안 좋아서 급히 바꾼 것인지, 원래부터 순차적으로 계획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둘 다 그게 그거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는, 딱 문재인다운, 문재인스러운...


 



 


어느 그룹의 이미지 광고인 '사람이 미래다'와 비슷하기도 한 이 슬로건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그래,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쩌자고?' 였다. 한마디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 게다가 참여정부 때의 '사람 사는 세상'과도 차별성이 없고,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부동층을 어필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람이 먼저다'는 메시지는 '문재인'이라는 이름 석 자 안에 이미 들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사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고 사람이 움직이는 게 아닌데... 게다가 이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원래부터 야권 성향의 사람들일 터, 아직 결정하지 못한, 아니 투표를 할지도 미지수인 그들을 움직이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는 부동층을 잡기 위해 자신의 보수 색깔까지 지우는 꼼수까지 쓰며 공을 들이는데, 절반의 지지율 밖에 안되는 문재인은 왜 그렇게 느긋할 수 있는 건지...


 


물론 슬로건이란 게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대선에서 극히 작은 부분인 것은 맞다. 그보다는 공약이나 정책 등이 더 중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이번 대선처럼 정책이나 공약으로 박근혜와 차별화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그리고 마지막까지 박빙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선거에서는(안철수를 비롯해 야권이 연대한다는 전제하에) 단 1%의 차이에 의해서도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권자의 감성적 메시지를 자극할 수 있는 단 한 줄의 슬로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 또한 맞다.


 


따라서 문재인의 슬로건은 바뀌어야 한다. 문재인 사람 좋은 거, 남자답고 점잖은 거, 겸손하고 청렴하고... 그래서 사람을 중요시하는 거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거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부동층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문재인에게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문재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몰라서가 아니니까. 그들은 '좋은 사람' 문재인이 아니라 '좋은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그가 갖춘 부드러움에 뭔가 강하면서도 새로운 이미지를 더해 '믿음직한 리더'의 이미지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불안함'을 털어낼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이 미처 몰랐었던 문재인의 새로운 모습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문재인에겐 어떤 슬로건이 필요한 걸까?


 


첫째, 문재인의 강한 카리스마 이미지를 어필 할 것.


둘째, 정치적 중립 지대에 있는 부동층을 대상으로 할 것.


셋째, 무엇보다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


 


그래, 안다. 말이 쉽지,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할 만한 슬로건 만들기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 '그래, 그렇게 잘 알면 네가 한번 해보지 그러느냐?'는 소리도 나올 거라는 거.


 


그래, 그래서 직접 한번 만들어 봤다. 근데 슬로건을 소개하기에 앞서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필자는 이십몇 년 전 대학 총학생회 선거 한두 번 뛰어본 거 말고는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는 거. 그리고 지금은 지방 학원에서 잡일이나 거들고 있는 상태라는 거. 한마디로 별 기대하지 말고 그냥 심심풀이로 봐달라는 거다.


 


 


나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표시


운전을 한 지 얼마 안 지나서였다. 여름휴가를 가는 길이었으니 아마도 이맘때쯤. 차량이 몰리는 피크 시간을 피해 보고자 잔머리를 굴려서 늦은 밤에 출발한 탓에 동틀 무렵에야 강원도의 어느 산 중턱을 달려가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사방에 안개가 깔리면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처음 해보는 장거리 운전, 그것도 험한 내리막길에서 만난 새벽 안개는 나 같은 초보운전자에겐 마치 저승의 문턱으로 안내하는 구름다리 같아 보였다.


 


잔뜩 긴장한 탓에 온몸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핸들을 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는데, 그 순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앞에 가던 고속버스부터 시작해서 뒤, 옆, 마주 오던 차들까지 한순간 모두 비상깜빡이를 켠 것이다. 짙은 안개가 낀 새벽녘, 불과 1미터만 옆으로 빠져도 천 길 낭떠러지인 비탈길에서 나와 남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깜빡, 깜빡 모두가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 운행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자 감동, 그 자체였던 것이다.



 


비상깜빡이는 언제 켜는가? 물론 위급한 순간이다. 앞차가 급정거해서 자신도 피치 못하게 서야 할 때, 혹은 사고가 났거나 사고위험이 있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뒤차나 옆 차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또 눈이나 비, 안개 등으로 시야가 좋지 못할 때도 내 차의 존재를 다른 차들에게 확인시키고, 뒤에 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상깜빡이를 켠다. 한마디로 비상깜빡이는 위기의 상황에서 나와 상대방을 동시에 보호하고자 하는 공동체적 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또한, 감사나 사과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 끼어들기를 했을 때 양보를 해준 운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깜빡, 깜빡. 그리고 추월 시 미안하다는 의미로 깜빡, 깜빡. 운전자들은 창밖으로 손을 들거나 비상깜빡이를 켜는 것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그래서 갑자기 끼어든 차를 향해 '저런 쥐새끼 같은 놈' 하고 욕을 하다가도 그 차가 비상깜빡이를 한번 켜준다면 이내 화가 풀리게 되고, 고맙다는 표시로 비상깜빡이를 켜준 운전자를 만나면 '매너있는 사람' 이란 생각에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비상깜빡이를 통해 운전자들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상깜빡이는 좌, 우측 깜빡이를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작동하는 기능이다. 좌·우,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렇다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중립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좌, 우측 두 가지를 모두 아울러서 완전히 새로운 기능(비상등)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보와 보수, 좌,우 대립이 극심한 지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대통령의 자질이 아닐까?


 


 


 


비상깜빡이를 켠 대통령


대한민국은 위기다. 경제는 IMF 때보다도 어렵고, 정치는... 그냥 말을 말자. 그렇다고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잘 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없기에 이 땅의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한 가정의 가장과 엄마가 목숨을 끊는다. 따지고 보면 현재 부동층이 많은 것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이 문재인보다 앞서고 있는 것도, 현 정치에 대한 높은 불신과 함께 '누가 되든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비관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렇게 당장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사람들에겐 그 어떤 '이념' 이나 '꿈'보다, 그리고 '사람'보다 '사는 게' 먼저다. 우선은 살고 봐야 신념도 갖고, 꿈도 꾸고, 사람도 살필 것 아닌가.


 


따라서 앞으로 당선될 대통령은 현재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최고급 리무진 뒤에 앉아서 손이나 흔드는 근엄한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앞에서 차를 운전하며 국민을 안심시키고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모범운전자가 되어야 한다. 그 길에 좌, 우 깜빡이는 중요하지 않다. 비상깜빡이를 켠 채 국민과 소통하며 서로서로 믿고 의지한 채 조심조심 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새 안개는 걷힐 것이고 마침내 희망이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될 것이니.


 


'비상깜빡이'를 문재인의 슬로건에 사용하면 어떨까? 비상깜빡이와 문재인? 일단 첫 느낌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비상'이라는 이미지가 안정되고, 착하고, 모범적인... 그동안의 문재인 이미지와 상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문재인에게 필요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이 지니고 있는 올바른 이미지에 비상깜빡이가 지니고 있는


 


- 현재의 나라 상황이(민생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위기의식의 전제하에


- 그래서 뭔가 비상 상황에 맞는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조치(경제민주화, 복지 등)가 필요하다는 의미


- 그러면서도 일방 독주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통해서(국민과의 소통)


- 좌,우 이념대립이 아닌 단결과 화합의 장으로 나아가겠다는


 


메시지가 잘만 더해진다면 괜찮은 그림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대통령과 비상깜빡이라는 조합이 우리의 정서상 좀 생뚱맞다거나, 너무 추상적이라서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는 약점도 있다. 점잖은 문재인에겐 너무 튄다는 부담감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상깜빡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고, 문재인에 대한 호감은 이 호기심에서부터 생겨날 수 있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대부분 투표권이 있는 운전자들이 출, 퇴근하면서, 영업을 다니면서, 여행을 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비상깜빡이를 켠 차를 보게 될 것이고, 그들 중 상당수는 또 비상 상황에서, 혹은 감사나 사과의 의미로 직접 비상깜빡이를 켜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평상시라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그때, 문재인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생각에 잠길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이 슬로건은 아직 미완성이다. '비상깜빡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만 있을 뿐, '비상깜빡이를 켜고, 문재인과 함께', '비상깜빡이를 켠 대통령', '대한민국 비상깜빡이'... 몇 가지 생각은 해봤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완성되기 위해선 좀 더 많은 사람의 노력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보완한다면 좀 더 나은 슬로건이 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감성이 이성을 이끈다?


선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은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인데, 이는 후보자가 가진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그래서 그런지 대선이 다가올수록 각 후보의 슬로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그 어떤 공약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인 것이다. 실례로 5년 전 이명박 가카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실제로는 '경제사범 대통령'이었지만) 이 슬로건 앞에 전과 15범이니, BBK 사건이니 하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이성적' 주장은 모조리 묻혀버렸으며, 그 결과 나라 꼴은 모두가 아는 대로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그래서 슬로건 같은 감성정치에만 몰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들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나 분석들이 간과되는 폐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에서 감성으로 변화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법, 피할 수 없다면 뒤에서 부정하는 것보단 적절하게 이용하는 편이 낫다. 어차피 선거란 승리를 위해 싸우는 전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은 당장 슬로건부터 바꿔야 한다. 일부에선 무난하다는 평가도 있다지만, 한참 뒤처져있는 후보에게 무난하다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 아닌가. 이렇게 계속해서 '무난하게'만 가다간 '무난하게' 망하고 말 것이고, 결국 '박근혜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다행히 대선까지는 5개월이 남았고, 지금은 내부 경선 중이니 새 슬로건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그럴 의지만 있다면.


 


필자가 생각해본 '비상깜빡이'가 문재인 후보에게 참고라도 된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이건 어차피 이그잼플일 뿐이니까. 하지만 문재인 캠프 사람들이 이것만은 꼭 알아줬으면 한다. 슬로건 하나, 공약 하나, 인터뷰 하나까지 박근혜 캠프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확실하게 준비해서 '깐깐한' 부동층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이 게임은 해보나 마나라는 거. 그래서 결국 우리는 박근혜에게 다시 '가카'라는 호칭을 쓸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거.


 


그런 상황이 너무 끔찍해서 남들은 피서지에서 물장구나 치고 있을 한여름날,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 더위와 싸우고 모기에 헌혈하며 허접한 글을 써본다. 그러니 좀 후지더라도 심한 욕은 삼가달라는 부탁 말씀을 드린다.


 


 


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