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히야신스님 추천0 비추천0

2012. 8. 1. 수요일

히야신스님


 




은행업에 대한 정부 통제


 



독점재벌 규제


철도, 전신, 전화에 대한 정부규제


 



1일 8시간 근무


 



국민발의권


 



여성투표권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제도들은


한때 너무도 당연하지 않았다.


 



 


100년전에 한사람이 이를 줄기차게 주장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지도 모른다.


 



 


이름은 들어보았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당시 무명의 36세 신출내기인 그는 연설 한번으로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뽑혔으며,


거의 대통령이 될뻔했다.


그리고 그의 "황금 십자가 연설"은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훌륭한 연설중 하나로 꼽힌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a.k.a. 라이온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의 통화제도에 관한 우화로도 읽을수 있다.


애초에 OZ란 말자체가 금의 무게 단위인 온스의 줄임말이다.


허수아비는 농부, 틴맨은 산업근로자들, 황금길은 금본위제도, 동쪽의 마녀는 동부의 은행가,


어느든지 데려다 줄수 있는 마법의 은구두(영화에서는 루비로 바꾸지만) 는 은본위제를 뜻한다.


 


브라이언은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겁쟁이라고 매도되었는데,


그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로 특별출현한다.


 



 


황금길(금본위제도)만 따라가면


마법의 나라 오즈로 갈수 있을까?


 



"금본위제도 추종자들에게 요구합니다.


노동자의 이마를 가시 돋친 면류관으로 찌르지 마십시오.


인류를 황금의 십자가에 못박으면 안됩니다"



 


브라이언은 인민당과 민주당 공동 후보였으며, 그는 인민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인민당은 오늘날 포퓰리즘이란 말의 유래가 되었다.


 


 


포퓰리즘



포퓰리즘:


포퓰리즘(populism)은 '민중의 필요나 소망을 대변하는 정치 사상이나 활동' 이라고 담백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저주에 가까운 말이 되었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타락 현상이다.


-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인기영합주의 정도가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의 일반적인 용례가 되겠다.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인기영합주의의 좋은예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인기영합주의의 좋은예 2


 


 


강도귀족의 시대


 


1929년 상위 0.1%가 미국의 전체 부의 20% 보유했다.


역사는 그 시대를 이렇게 부른다.


 


"강도귀족의 시대"


 



 


강도귀족 Robber baron


 


처음에는 중세유럽에서 자신의 영지를 지나가는 여행자를 약탈하던 귀족을 의미했다.


 


20세기초에 여기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철강왕 카네기,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 철도왕 밴더빌트 등의 악덕 기업가들을 지칭하는 말로 바뀐것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선도자는


사회주의를 권고하는 지식인이나 선동자가 아니다.


밴더빌트, 카네기, 록펠러의 족속들이다.”


-조지프 슘페터-



 


당시의 시대정신은 유럽에서는 공산주의를 낳았고,


미국에서는 인민당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농민들과 인민당


 


당시 농민들은 대체로 은행 빚이 많았다. 특히 신개척지인 서부 농민들이 그러했다.


농산물이 풍작이면 가격폭락으로 손해를 보고, 흉작이면 흉작때문에 손해를 보았으니 빚이 불어나기만 했다.


특히 동부산업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남서부의 농민들은 유일한 장거리 운송수단인 철도에 의지해야 했다.


철도회사는 이를 악용하여 각종 횡포를 부렸다.


 



 


농민들은 높은 은행이자 부담을 덜고, 농산물 가격안정 대책을 정치권에 호소했지만,


기존 정치권이 농민의 요구를 들어줄리가 없었다.


최대 스폰서들이 바로 금융기관과 독점재벌들이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모여서


1890년 캔자스주-도로시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서 모든 모험이 시작된곳- 에서


처음 인민당이 창당 되었다.


 


인민당은 금융가, 철도회사, 부패한 정치인 행정관료들을 적으로 선언했다.


또한 저리융자, 은화를 포함하는 화폐정책,


철도회사 국영화, 주민발안제, 주민투표제, 노동시간단축 등등의 강령을 채택했다.


브라이언은 민주당의 후보였지만 그의 주요 정책은 모두 인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20대 절정에 달했던 빈부격차는


뉴딜정책과 2차대전을 거치고야


차츰 완화되었다.


이른바 중산층과 상류층의 간격이 좁아지는 대압착시대, 황금시대였다.


 




 


그러나 1980년대 공화당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빈부격차는 1920년대 수준으로 돌아왔다.


 



 


경제학자 엠마뉘엘 새즈와 토머스 피크티는


1913년부터 세무자료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총소득중 상위1퍼센트의 몫이 1928년과 2007년, 최고치에 달했다.


 


지금 미국은 사회주의가 창궐하던 바로 그때,


강도귀족의 시대와 비슷해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월가를 비롯한 전세계에서는


21세기판 인민당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좌우에 상관없이 분노에 차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인민당과 민주주의


 


브라이언과 인민당은


국민과 대중을 무시하는 사회를 문제삼았다.


인민당이란 이름 자체가 대중들이


정계에서 대우 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상을 나타낸 것이다.


 



 


민주주의 발상지, 고대 그리스에는 제비뽑기로 공직자를 뽑았다.


모든이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부여하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데모스는 민중, 인민이라는 뜻.


크라티아는 (사람들이 모인 결과로 나오는) 힘


그 말이 합쳐져


데모크라시(민주주의)라는 말이 생겼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민중, 인민에게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피선거권은


돈이 많거나


유명하거나


엘리트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다.


 



 


일반 민중은 4-5년에 단한번,


투표소에 가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투표이후에 정치란 코끼리가 교미하는


걸 지켜보는 것과 비슷하다.


볼만은 하지만, 무얼 어떻게 해볼수는 없다.


무력하게 거대한 코끼리들이 몸을 뒤트는 걸


지켜보는 것이 전부이다.


 



 



"국회의원이 되는 건 쉬워요.


좋은 고등학교 나올 필요 없이 고등학교 졸업 후 사법고시 패스하고


판사를 하면 되요~


공부를 쪼금 열심히 해서 연수원 상위 10%안에 들어 판사를 하면 되고


집권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서 여당의 텃밭에서 집권여당 공천을 받으면 되요.


그리고 나서 공탁금 2억만들고 선관위에 찾아가면 되요"


-개그 콘서트 사마귀 유치원 중-



 


 


인민당의 실패


 


인민당은 인민들이 대우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경제질서, 정부의 부패, 독점을 공격하고


이를 개혁하는 많은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개월 후에는 금본위제 대 은본위제(복본위제) 라는 쟁점에 묶여 버렸다.


7월에 "우리는 지배층에 도전한다"라는 외침으로 시작한 공격전이


11월에는 화폐문제에 대한 방어전으로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


 


은본위제(복본위제)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여기에 묶인것은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농구경기에서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의 체력소모는 수비쪽이 훨씬 크다.


공격권을 빼앗기고, 방어전으로 들어가는 순간 대세는 이미 정해진 것이다.


 


아무튼 은본위제는 왜 그리 중요한 문제였을까?


 


 


1873년의 범죄



오랫동안 미국은 은화를 통화의 기본으로 했다.


애초에 달러라는 말이 보헤미아의 Thaler라는 은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1873년 은화의 주조가 금지되었다.


그러자 통화량이 줄어들어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1880년에서 1896년까지 미국의 물가는 23% 하락했다.


농민들은 동부의 은행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상황에서 실질적인 빚은 증가했다.


 


사람들은 1873년의 은화주조 금지조치를


1873년의 범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873년의 범죄를 다루는 재판이 열렸다면….(중략)


역사라는 법정에서의 유죄판결은 적절할 것이다.


그 운명의 글귀를 생략한 것이 그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의 화폐역사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밀턴 프리드먼, 화폐 경제학-


(신자유주의 대부, 니들이 생각하는 그 밀턴 프리드먼 맞다)



 


브라이언과 인민당의 주요정책인 은본위제는


은화달러를 부활해서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시도하려 했다.


이는 농민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농민들은 주로 남부와 서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기득권 세력은 이를 교묘히 지역주의로 몰고갔다.


인민당은 전체 인민의 당이 아니라 남서부 세력을 대변하는 지역정당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동부의 노동자들과 연대는 막혀 버렸다.


 



 


이러한 '지역주의로 몰기' 전략은 백년뒤 한국에서


호남대 영남이라는 구도로 재현된다.


독재 대 민주의 대결이 호남 대 영남의 대결로 바뀐 것이다.


 


인민당이 지역정당으로 주저앉으면서


브라이언은 공화당에게 패배한다.


이후 2번 더 대권에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 경제, 정치사에


굵직굵직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역사에 의해 브라이언보다 더 완전하게 정당함을 입증받은 정치가는


일찍이 없었다. 1890년대초부터 신세기(20세기)에 이르기까지


브라이언이 시종일관 주장했던 계획들은 하나씩 하나씩 항목마다


모두 법령집에 올랐다.


그의 계획을 비난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입법화된 것이다."


-헨리 콤모저-



 


 


인민당의 유산


 


오늘날 미국에서 독자적인 인민주의 세력은 없다.


하지만, 인민주의적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은 많다.


특히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민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수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 특정한 사상이 아니다.


근대 민주주의 탄생시 'democracy'는 귀족정이나 전제정의 반대말에 가까웠다.


 


이렇듯 통치형태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democracy는


민주주의보다는 민주정이라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냐 아니냐는 어떤 특정한 사상을 택하는가 보다는


인민이 실제로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인민 대부분이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건 더이상 민주정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제대로 된 민주정을 가지고 있는가?


 


 


히아신스님

트위터 : @krowzerthe2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