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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괴물?

2012-08-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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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6. 월요일

필독


 


 


1


 


몇 년 전, 나는 마지막 남은 20대를 미친 듯이 낭비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과 현실로부터 쉼 없이 도피하면서, 그것을 젊음의 특권이자 낭만으로 윤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낙천적이고, 대책 없이 게을러져 버리는 성격의 인간은 태국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수 있었다.


 


중소기업을 때려치우고 학원 강사 일을 했다. 그 외 십 수 가지 일을 하다가 십 수 번 때려치웠고, 책을 냈고 여지없이 망했다. 그러다 타로 점 보는 법을 배웠는데 신기랄지 독해력이랄지, 여하튼 ‘용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어서 말 그대로 돗자리를 깔았다. 그때부터였다. 귀신을 본 건.


 


타로카드 몇 장을 배열법에 따라 쭉 깔고 각각의 그림을 조합하다보면 문득 구체적인 그림이 매직아이처럼 떠오른다. 그 이미지를 언어화하면 맞은 편의 손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맞아요, 맞아요”를 연발했다. 나는 모른다. 내가 용한 이유가 뭔지. 타로점으로 생계를 해결했으면서도 타로점은, 내 과학적 상식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신기가 붙으면서 귀신이라고 불러야 할 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나만의 착각이나 환상이었을 수도 있고, 기면 상태의 내가 현실과 꿈을 혼동하면서 본 내 머릿속의 이미지와 소리일 수도 있다. 물론 내 감각이 느끼기엔 더없이 확고한 사실이지만.


 


귀신은 별로 무섭지 않다. 아니 무섭지 않다기보다는, 무서울 순 있어도 사람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진 않는다. 그랬으면 전두환이 28만원 가지고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을 수가 없을 테니. 그러나 귀신을 본다는 것이 그리 편한 경험은 아니다. 봐도 별 것 없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안 보는 편이 낫다. 나처럼 매일같이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설 필요는 없는 거니까.


 


나는 타로점을 보며 긁어모은 현금으로 아무 목표도 없이 태국에 갔다. 거기서 시간을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방콕에서는 오전 늦게 일어나 현지인 식당에서 값싼 식사를 하고 초저녁까지 글을 썼다. 나는 로마의 독재자인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갈리아 지도자-그 유명한 <갈리아 전기>에 등장한다-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 그 원고는 아직도 내 컴퓨터 하드에 고이 잠들어 있다.


 


초저녁이 되면 방콕의 번화가를 쏘다녔다. 한국인들과 어울리기도 했고, 외국인들과 섞이기도 했다. 안 되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만나는 여성들마다 싸구려 작업을 걸었다. 지금 그녀들의 이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무책임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한 번,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열정적인 사랑을 했지만 그 이야기는 묻어두련다. 섬에 가서는 대마초와 맥주에 취한 북유럽 놈팽이들과 어울렸고(물론 이놈들도 집에서는 착한 아들 딸들이었을 것이다.), 이 친구들이 헝가리 녀석들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어쩐지 헝가리 패거리들과 친해졌다. 유럽에는 헝가리 남자들은 싸움을 잘 하고 매서우니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


 


[caption id="attachment_98688" align="aligncenter" width="275" caption="태국 여행자의 거리, 카오산 로드"][/caption]


 


태국의 삶은 편했다. 도심이나 정글이나 해변이나 덥고 습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욕심이 없으니 괴로울 게 없었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금은 날 긴장시키는지라, 나는 국제 전화와 메일로 국내 한 인터넷사이트에 고정 칼럼 자리를 얻어서 매월 들어오는 고료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방콕 북부의 한 소도시에 눌러 앉게 되었다. 이 소도시의 이름은 ‘깐짜나부리’이다.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를 골라 콰이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두 달 계약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그 콰이강이다. 연합군 포로들의 강제 노동으로 건설된 시설물-다리라든지, 군사보급로라든지-도 남아 있다. 여행객들이 길어야 며칠 묵고 거쳐가는 단촐한 관광지였다. 더없이 좋았다.


 


 


[caption id="attachment_98689" align="aligncenter" width="240" caption="이것이 콰이 강의 다리"][/caption]


 


게스트하우스에서 나는 이 나라 저 나라 여행객들에게 점을 봐주면서 용돈을 챙기곤 했다.


 


사실 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타로점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카드의 이미지들이 웅성 웅성 뒤섞여, 하나의 영상으로 떠오르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동시에 나는 귀신들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한국의 귀신은 태국까지 따라오지 않는 법인가. 마치 카드의 신비를 한국에 버려두고 혼자 도망친 느낌이었다. 태국에서 갖고 다닌 그 덱-카드 한 벌을 ‘덱’이라고 한다-은 제 혼을 한국에 두고 온 빈 껍데기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깐짜나부리에 와서 카드는 그 힘을 급속도로 회복하더니 한 달이 지난 후부터는 의뢰인의 인생을 무섭도록 알아맞혔다. 이놈은 마치 전 세계 사람들의 가정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 같았다. 타인의 삶을 조심스레 드러내는 게 아니라, 낚아 채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배를 갈라 해부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위화감이었다.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이렇게 정확해도 될까 싶었다.


 


 


[caption id="attachment_98691" align="aligncenter" width="252" caption="당시 내가 사용했던 유니버설 웨이트 타로 덱"][/caption]


 


점은 정확할수록 좋다. 그러나 타인이 내게 점을 본다는 이유 만으로, 그 사람의 비열한 치부까지 그토록 정확하게 알아도 되는 걸까. 바람을 피우고,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보다는 부정을 들킬까 걱정한다는 것. 그걸 성공적으로 숨길 수 있을까 궁금해서 점을 보면서도 내 앞에서는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배우자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는 척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사실까지 단박에 알아버리는 것. 그래도 되는 걸까.


 


자랑 같지만 내 타로는 웬만해선 틀리지 않으며, 더 까놓고 말하면 내 자신도 의아할 정도로 정확하다. 그러나 그 소도시에서처럼 구체적이었던 적은 없다. 의뢰인의 인생이 부검당하는 시신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점을 볼 일이 없으면 타로 덱을 여행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2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태국산 몰트위스키-꽤 맛이 좋았다. 태국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름은 ‘BLUE’.-에 취한 채 칼럼을 쓰고 있었다. 발코니였고, 몇 미터 아래에는 콰이 강이 검게 흐르고 있었다. 뭍과 물의 경계인, 게스트하우스 1층 마당 끝에선 연꽃 잎들이 느린 물살에 흔들리고 서로 부딪히며 나지막히, 권태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 모니터에 들러붙은 날벌레 사이로 활자를 이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caption id="attachment_98705" align="aligncenter" width="194" caption="블루도 좋지만 이거 추천한다. 100pipers. 태국 가는 사람들, 괜히 수입 위스키 찾지 말고 이거 드시라. 잘 만들었다."][/caption]


 


순간,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 잎이 일렁이고 있었다. 무언가가 물 밖으로 나왔다. 무언가가... 이윽고 구름이 도망가며 달빛이 내리자 나는 녀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마뱀이었다.


 


시뻘건 바탕에 검은 얼룩이 온통 지저분하게 번져 있는 물도마뱀. 몹시도 추한 생명체였다. 둔탁한 비늘은 화상을 입은 짐승의 피부처럼 이지러져 있었고, 기름기 낀 작은 눈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무언가를 탐욕스럽게 먹고 다녔는지 희끄무레한 배는 불룩 쳐져 땅에 끌릴 듯 했다. 퉁퉁한 몸과 어울리지 않는 빈약한 다리. 빈약한 다리에 어울리지 않는 강인한 네 발. 갈쿠리 같은 검은 발톱. 불규칙하게 돋아난 검은 돌기가 머리부터 길다란 꼬리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처음에 나는 녀석의 콧구멍과 눈을 구분할 수 없었다. 지저분한 얼룩과 돌기 때문이었다. 달빛이 밝아질수록, 놈은 더 추악해졌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꼬리가 반대편으로 함께 움직였다. 독에 젖은 채찍 같았다. 얼굴에선 긴 혓바닥이 들락거렸다. 혀는 검은 색이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시인이라면, 그 도마뱀은 시를 쓰다가 시상이 막혀 내뱉은 욕지거리였다. 신이 화가이고 다른 생명체들이 화폭에 담긴 그림이라면, 그놈은 결국 갈색과 녹색 중간쯤으로 귀결되는 물감통이었다.


 


한 마디로 녀석은 창조주의 배설물이었다.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 같았다. 인간의 편협한 기준으로 따지면 추한 생명체야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왜 그렇게 위화감을 느꼈을까. 생김새 만큼이나 엄청난 녀석의 덩치 때문이었을까. 놈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미터가 넘었다. 여기가 코모도 섬도 아니고, 하여간 도마뱀이 도달할 수 있는 상식적인 크기가 아니었다. 생김새도 크기도, 함부로 주조된 피조물이었다.


 


 


[caption id="attachment_98692" align="aligncenter" width="275" caption="이 코모도 도마뱀은 녀석에 비하면 미남이다"][/caption]


 


그때 세상에는,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추한 생명체와 그걸 바라보는 나 밖에는 없었다. 도마뱀은 자신의 땅을 둘러보는 지주 마냥 여유롭게 마당을 ‘순찰’하더니,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저 도마뱀이 만약 내가 있는 발코니로 기어올라 온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나. 혹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 일도 벌어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다음 날 나는 게스트하우스 프론트에 놓인 컴퓨터로, 느려 터진 태국의 인터넷을 감내하며 내가 알고 있는 생물학 지식을 재확인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파충류, 특히 도마뱀 종류는 밤에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뭍에서 시간을 죽일 때는 주로 낮으로,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나는 전날 밤의 도마뱀을 금세 잊었다. 여느 때처럼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예쁜 태국 누님이었다-에게 수작을 걸며 한낮을 보냈고, 저녁부터는 글을 썼다. 결과적으로 나는 놈을 잊을 수 없었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또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마뱀은 매일 밤 나타났다. 가만 보니 녀석은 달과 모종의 교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달빛을 피부로 감상하는 것 같았는데, 이유는 달빛에 제 몸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보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이 길고 검은 혀만 쉭쉭 날름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모형처럼 정지되어 있는 파충류 특유의 몸뚱아리와 묘한 대비를 이뤘다. 탐욕스럽기도 했고 무감정해 보이기도 했다. 모든 게 불쾌했다.


 


어느 날 밤에는 낮에 트럭 노점에서 산 빨갛고 매운 태국 소시지를 던져줘 보기도 했는데, 도마뱀은 그런 것엔 관심 없었다. 심지어 소시지가 녀석의 머리를 맞춘 적도 있었지만... 나도 도마뱀에 무관심해졌다. 밤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그게 녀석의 전부였다. 강의 물결 소리나, 밤바람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동남아시아의 황토빛 강에 대해 모종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메콩 강으로 대표되는, 끝없이 이어지는 그 탁한 물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그 안에 무엇이 살아서 꿈틀거리는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뒤로 메콩 강에서 수영을 한 적이 없다. 한 번은 메콩 강에서 배를 타고 가다 사람 얼굴보다 큰 공기 방울이 수면에서 부글거리던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필시 폐어가 숨을 쉬러 수면에 올라온 것일 텐데, 대체 얼마나 큰 물고기면 그 정도 기포를 낼 수 있는 걸까. 우리는 가끔 해외 토픽을 통해 누런 강 속 세계를 짐작할 뿐이다. 이를테면 상상할 수 없이 큰 민물 가오리나 메기 따위를 통해.


 


[caption id="attachment_98694" align="aligncenter" width="275" caption="메콩 강의 메기"][/caption]


 


 


… 물론 이 얘기는 이렇게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3


 


아무리 늘어져 있길 좋아하는 성격이라도, 하루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깐짜나부리에서 뒹군 지 두 달이 가까워왔을 때, 나는 산책이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깐짜나부리에서 찍을 수 있는 관광지는 모두 섭렵한 지 오래였으므로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다. 어쨌든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caption id="attachment_98706" align="aligncenter" width="276" caption="깐짜나부리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에라완 폭포"][/caption]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체인을 푼 자전거를 내게 건네주면서 물었다. 어디 가? 그냥 여기저기. 특별한 목적지는 없어? 없어. 주인장은 짐짓 심각한 척 목소리를 깐다. 음... 그리고는,


 



유 슈드 낫 고 투 데어


 


데어? 웨어?(이봐 아저씨, there 앞에는 to가 붙지 않는다고.)



 


주인장은 짧은 영어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제스쳐를 동원했다. 그의 처절한 영어+바디랭귀지인즉슨 이랬다. 깐짜나부리 시내도 여느 지방 소도시처럼, 강남 같은 바둑판 구조가 아니라 일자 형태로 되어 있다. 즉 기본적으로 강가 전망을 따라 세워진 숙소들에서 나와 왼 쪽으로 가느냐 오른 쪽으로 가느냐, 크게 둘 중 하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쪽으로 가던 시내는 금방 끝났다. 왼쪽으로 쭉 가면 포장 도로가 끝나고 교외가 시작된다. 그건 나도 안다. 교외가 시작되는 지점에 한적한 불교 사원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봤다. 문제는 불교 사원이 있는 삼거리(거리라기보단 오솔길이지만)에서 왼 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어처구니 없었다.


 


거기에 괴물이 있으니까.


 


[caption id="attachment_98695" align="aligncenter" width="281" caption="메콩 강의 민물 가오리"][/caption]


 


나는 웃었다. 태국 사람들은 장난을 잘 친다. 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한 번 쯤은 걸려들게 마련이다. 이미 구력이 있는 나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정말이냐, 오 이런 무서울 데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하며 장난을 과장스레 받아주었다. 하지만 주인장은 자전거를 채가는 내 어깨를 잡으며 몇 번이나 다짐했다. 나는 진지해. 괴물은 정말로 있어. 괴물이 너를 먹는다. 잡아먹는다.


 


그래, 그렇겠지. 나는 자전거를 타고 게스트하우스 문 밖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내달렸다. 역시나 사원에 다다랐다. 나는 자전거를 사원 문 앞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적. 벌레 소리. 주변의 자욱한 정글. 뜨겁고 습한데도 을씨년스러웠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원은 조잡한 시멘트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멘트는 원래는 목조였어야 할 태국의 전통 사원 디자인을 거칠게 모방하고 있었다. 역시나 조잡한 시멘트 불상들이 시멘트 불단 속에 앉아 있다. 그 앞에 갖다 바친 밥과 반찬은 신나게 썩어가는 중이었다. 시멘트 지붕마다 칠해진 총천연색 페인트는 태국의 전통적인 색감을 모방함과 동시에 모욕했다. 조각조각 갈라진 것이 햇볕에 말라 비틀어진 고무 같았다. 무료해 보이는 스님 두어 명이 황량한 흙 바닥을 쓸고 있었다.


 


더운 공기가 차렷 자세를 취한 듯 딱 멈춘 가운데 문득 맹렬한 매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권태에 이데아가 있다면 이 풍경이리라. 세상의 권태는 이곳에 모두 집합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가지 말라는 그 오솔길 내리막길을 향했다. 페달을 놓자 오래된 자전거가 흙길을 덜그덕더리며 내려갔다. 내리막이 끝나자, 자전거도 멈추었다. 나는 자전거를 길가 나무에 세워 놓고 사진기를 꺼냈다. 찍을 건 딱히 없었지만, 뭐라도 건져야 쓰잘 데기 없는 산책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터였다.


 


십 여 분 간 사진을 찍고 담배를 피웠다. 공기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내리막이 끝났을 때를 기준으로 저 멀리 앞에는 민가의 지붕 몇 개가 보였다. 작물을 수확하는 논이 있을 것이고... 시내든 연못이든 물가가 있을 것이고. 오른쪽으로는 수풀이 있었다. 나무들은 키가 컸다. 말이 수풀이지 몇 미터만 안으로 들어가면 완연한 정글이다. 왼 쪽으로는 저수지가 있었다.


 


작은 저수지였다. 말이 작지 저수지는 저수지다. 집 몇 채 넓이는 된다. 그것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역시 작은 저수지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건지 인공적으로 조성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보다는 저수지가 풍기는 분위기가 중요했는데, 한마디로 저수지는 그 일대에 드리운 권태의 진원지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녹색으로 점철된 물을 본 적이 없다. 녹조현상에 시달리는 물과는 달랐다. 수면에는 개구리밥이며 물옥잠이며, 하여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수생식물이 가득 떠 있었다. 수면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는데, 그나마 이파리들 사이로 보이는 물 빛은 숫제 검은 색이었다. 수면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고요했다.


 



 


주변의 더운 습기는 모두 저 뜨뜻한 물에서 발생하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어딘가 불편해졌다. 한 모금 마시면 신종 질병에라도 걸릴 듯한 물이다. 점액질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물비린내가 풍겼다. 죽어있는 물이고, 다른 한 편으로 생명이 폭발하는 물이었지만 양쪽 모두 비슷한 의미에서 기분이 나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민가 쪽에서, 대여섯 명의 태국 아이들에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아뿔싸, 여기는 관광지도 시내도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아이들이 관광객의 주머니를 탐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녀석들의 구걸은 지독하다. 물론 당신이 돈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야 한다고 강조하긴 한다. 그게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곤경에 빠지긴 매한가지다. 주지 않기도 야박하거니와, 줄 때까지 쉽게 놔 주지도 않는다. 만약 돈을 조금 쥐어주면? 그러면 여러분은 봉으로 낙점. 녀석들은 여러분의 지갑이 텅 빌 때까지 일 킬로미터 정도는 너끈이 따라온다.


 


한 녀석은 이미 내 자전거를 신기한 문명의 이기인 듯 만지작거리고 있다. 물론 순 연기다. 태국 시골 애들도 자전거가 뭔지는 안다. 아마 집에 오토바이 한 대씩은 다들 있을 걸. 내가 자전거를 타고 냅다 튀는 걸 막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이 녀석들, 숙련된 경험자들이다. 그런데 다른 경험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모두들 몸에서 물 비린내가 났다. 눈의 흰자위는 모두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꾀죄죄한 런닝 셔츠 차림이었고, 모두 식칼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도 떼는 아니었다. 모두들 파리 스무 마리씩을 몰고 다니고 있었는데, 허리 춤에 찬 민물고기들 때문이었다. 천엽을 나간 애들이었다. 탁한 물에서 자맥질을 했으니 눈이 충혈된 것이고, 고기를 잡자마자 내장을 따야 썩지 않을 테니 칼을 들고 다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외국에서 붉은 눈에 칼을 든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다.


 


 


4


 


실랑이는 몇 분간 계속되었던 것 같다. 대체 이 애들을 어떡하면 떼어낼 수 있을까. 이 영악한 놈들은 내 영어를 못 알아 듣는 척 하면서 내 진을 빼고 있었다. 그렇다고 팰 순 없지 않은가? 칼을 들고 있으니 더 가혹하게 패야 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한 두 방쯤 찔릴 수도 있고... 이 자식들은 거의 성공하고 있었다.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지갑 안의 수십 달러 정도는 기꺼이 희생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아이들은 날 내버려두고 걸어온 방향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한 번 쯤 뒤돌아, 내 모습을 확인하면서.


 


다는 다시 정적과 권태 속에 남겨졌다. 의심했어야 했다. 왜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졌는지. 그러나 나는 지쳤고, 날은 더웠다. 나는 불쾌한 밀고 당기기에서 이긴 셈 치기로 했다. 나는 그저 투쟁 끝에 찾아온 평온을 즐기기로 했다. 사진 가방과 지갑을 확인했다. 없어진 건 없었다. 사방을 살펴보았다. 사원 쪽. 정글. 아이들이 사라진 방향. 그리고 저수지.


 


저수지.


 


저수지 수면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천천히, 삼각형을 이루면서 솟아 오르고 있었다. 공기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 느끼한 비린내, 기름이 끼인 듯한 비린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피라미드 꼭지점을 따라 올라가던 물풀 몇 개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나는 봤다. 거대한 눈알 하나를. 파충류 혹은 양서류, 그것도 아니면 어떤 민물고기의 검고 기름진 눈알을. 내 머리보다 더 커서, 그 축축하고 미끌대는 표면으로 내 얼굴을 이지러이 비춘 눈알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그 알 수 없는 존재의 눈이 현실이 아닌 영상인 것 마냥 그저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순간을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그 때의 나에게 어서 빨리 도망가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곤 한다. 언제나 비명인 그 외침.


 


그것의 눈꺼풀이나 이마는, 수생 식물을 뒤집어 쓴 탓에 확인할 수 없었다. 온통 검은 그 눈은 죽어있는 듯 움직임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생기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눈이었다. 표정 없는 눈. 큰 눈. 나는 아직까지 그것보다 거대한 눈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아련한 소리가 들렸다.


 


뜻은 알 수 없지만 태국 말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원 쪽이었다. 주황색 가사를 입은 태국 스님이 나를 향해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어서 이쪽으로 뛰어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먼 곳에서 들리는 라디오 소리처럼, 내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나는 다시 거대한 눈을 바라보았다. 점액질의 수면은 이제 완연한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었다. 눈은 계속 나를 쳐다본다... 이제 저 눈의 주인은 점액질을 뚫고 물 밖으로 튀어나올 참이다.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여기에 괴물이 있다고 했다.


괴물은 나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했다.


저것이 양서류이건 폐어이건 뭐건, 다른 쪽 눈은 아마도 반대편에 있으리라.


눈의 크기를 보아 아마도 저것의 온 몸의 크기는...


 


… 나를 한 입에 집어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내 계산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코끼리를 제외하고 내가 실제로 본 어떤 생명체보다 컸다.


 


 


[caption id="attachment_98697" align="aligncenter" width="265" caption="아프리카의 폐어"][/caption]


 


그리고 내 머리는 양서류나 폐어가 뭍의 먹이를 잡아먹는 영상을 복기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혀나 입으로 한 순간 낚아채 다시 물로 들어간다.


 


‘저것’의 입 안을 상상했다. 어쩌면 바로 1초 후에 내 삶이 끝날 공간. 내가 실종될 검고 축축하고 냄새날 그곳.


 


유체를 이탈한 생존 본능이 급작스레 되돌아왔다. 숨 막히는 공포가 온 몸을 짓눌렀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너무나 두려워 코피가 날 것 같았다. 눈 앞이 노랗다.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발을 땠다가는, 서 있던 자리에 방광을 내려두고 달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대로 오줌을 주루룩 쌀 것 같았다. 그러나 저 괴물은 언제 아가리를 내밀어 덥석, 하고 나를 물어 저 더러운 물 속으로 내 존재를 지워버릴까? 어쩌면 0.1초 후에?


 


움직이지 못한 그 1초 혹은 2초는 지금도 내게 지옥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치 영원 같다... 그러나 나는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단말마를 내지르고는, 스님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내 평생 그렇게 빨리 뛰어본 적은 아마 없으리라. 항문을 통해 쏟아진 내장을 다리 사이로 끌며 뛰는 듯한 그 저릿저릿한 기분은 지금 떠올려도 치가 떨린다.


 


나는 뛰면서, 용케도 거대한 눈알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눈알은 나를, 어쩌면 아쉽게도 멀어져 가는 먹이를 주시한 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원 정문이 있는 고개에 다다라 쓰러지듯 스님을 껴안았다. 스님은 내 팔을 단단히 쥐고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따라 그곳을 보았다. 눈알은 한동안, 아마도 십여 초 동안 저수지의 피라미드를 유지하며 솟아 있더니, 떠오를 때처럼 천천히 물 밑으로 내려갔다. 요동칠 준비를 하던 공기가 다시 멈췄다. 고요가 돌아왔다.


 


 


5


 


게스트하우스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주인 양반은 자전거 값을 청구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자전거는 누군가가 찾아서 되돌려 준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그날 노천 카페에서 맥주와 위스키를 미친 듯이 들이켰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넋이 하체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손실된 넋을 알콜로 보충했고, 서양인 커플과 태국인(라이브 카페 연주자)에게 괴물을 봤다고 떠들어 댔다. 태국인은 서양인 커플과 달리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제 정신이 아닌 내가 팁을 넉넉하게 줬기 때문일까?


 


 


[caption id="attachment_98698" align="aligncenter" width="359" caption="영화 <콰이 강의 다리>"][/caption]


 


그 뒤로도 밤마다 커다란 도마뱀을 봤다.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칼럼을 썼고 갈리아 지도자를 생각했다. 베르킨게토릭스. 그의 이름이다. 슈퍼-워리어-킹, ‘초전사왕’이라는 환상적인 이름의 주인공. 약관 이십 대의 나이에 온 갈리아를 통일하기까지, 그는 짙은 프랑스의 숲 속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카이사르에게 일생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안겼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결국 패배해 카이사르의 포로가 되었을 때는...?


 


내 타로 카드는 날이 갈수록 예리해져서 이제는 폭력적일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타로카드를 여행 가방 가장 안쪽에 넣고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술에 취해 새벽까지 글만 썼다. 밥도 하루 한 끼밖에 먹지 않았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으니 식사를 한 끼 이상 챙기기도 주체스러웠다. 베르킨게토릭스 이야기 중 그때 썼던 부분은 정념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두서가 없고 중언 부언이 심해 써먹을 데가 하나도 없다. 그때는 어떤 기운에 빠져 알아채지 못했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쓰레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신기한 것은 프랑스의 자연림을 끝도 없이 묘사한 부분이다. 나는 프랑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프랑스의 숲을 트레킹한 사람이 원고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소설의 배경을 면밀히 탐사한 것으로 아직도 믿고 있다. 내가 지금 읽어도 의아하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주인공은 정처 없이 수 년 간 숲을 헤매며 아무런 서사적 인과관계 없이 돌연 영웅으로 성장한다. 생동감 넘치는 동시에 허술하기 그지없는 그 서사는 설득력이 넘치기도 하고 전혀 없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대목을 다시 읽을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시 원고를 꺼내지 않는다.


 


 


6


 


태국에서 프랑스의 숲에 도취되어 있던 그날 밤. 나는 콰이강이 다시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연 잎이 넘실댔고, 물이 주르륵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도마뱀이었다. 아니 도마뱀이어야 했다. 그러나 내 몸은 그것이 도마뱀이 아님을 알리듯, 이상한 신호를 내는 것이었다.


 


물가 쪽의 몸, 오른 쪽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 위화감이 어찌나 강한지, 몸 내부의 동력이 아니라 외부의 인력이 내 몸의 털을 잡아당기는 듯 했다. 서늘한 정전기. 서늘하면서 미끌거리고 비린내 나는 강력한 정전기에 몸 오른쪽이 마비되는 듯 했다. 심장이 뛰었다. 나는 그 두렵고 무거운 공기를 애써 외면하면서 흡사 반항하듯, 베르킨게토릭스의 이름을 쓰고 있었다.


 


'베르킼ㅋㅋ키ㅣㄴㄴㄴ게토토틱릯 ㅅㅅㅅㅅㅅㅅ …....'


 


그러나 나는 그것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추한 도마뱀임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어서 안심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보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잠시 숨이 멎는 그것을.


 


그건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의 형상을 한 무엇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태국 여성의 몸. 그것은 도마뱀처럼 팔다리를 양 옆으로 빼고, 손바닥과 발바닥을 시멘트 마당에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도마뱀과 마찬가지로 한 발자국 씩 움직일 때마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온 척추를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마당을 배회했다. 정상적인 사람에겐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나는 그것의 모든 것을 봤다. 나체였다. 물에 젖은 연갈색 피부에 흐트러진 머리. 머리칼과 더러운 물풀들이 온통 뒤엉켜 있었다. 바닥을 향해 늘어진 유방이 바닥에 이리저리 끌렸다. 그 자세 때문에(도마뱀의 뒷다리 모양새를 생각해보라.) 활짝 벌려진 다리 사이로 보이는 무성한, 젖은 음모와 거기 들러붙은 수초 뭉치.


 


이런 묘사를 야하다고 생각하진 말기 바란다. 내 평생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것이며, 저수지의 눈알 외에 내가 그토록 공포를 느꼈던 적도 없다. 그것이 걸을 때마다 젖은 머리칼과 물풀이 어깨며 등짝 따위에 부딪히느라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장 몸서리쳐지는 건 눈이었다. 흰자위가 없는 무감정한 검은 눈.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마뱀처럼 날름 대는 혀는 인간의 것이었다. 창백한 얼굴은 무언가 억울한 듯, 인상이 밑으로 쳐져 있었다. 그것이 얼굴을 내가 있는 쪽으로 돌렸을 때, 그리고 내가 몇 미터 아래에 있는 그것의 검은 눈을 마주 볼 때 느꼈던 공포는 도무지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저것이 나와 눈을 마주친 거라면? 날 주시하고 있는 거라면? 그러나 흰자위가 없어 알 수 없지만 그런 거라면... 벽을 타고 내게 득달같이 기어 올라오면? 그러면 나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상상력이 날 짓밟아 죽이고 있었다.


 


그것은 도마뱀처럼 달빛 아래 정지해 있더니, 이윽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7


 


다음날부터 나는 깐짜나부리를 배경으로 하는 구전을 수집하고 다녔다. 괴담도 있었고 구전도 있었는데, 모두들 단순한 이야기였다. 나름대로 종합해보면 이렇다.


 


그 유명한 콰이 강의 다리 밑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물속의 큰 짐승들은 2차 대전 때부터 사람을 먹기 시작했다.


 


저수지의 괴물은 사람을 많이 잡아먹은 것으로, 사람들이 유인해 가뒀다.


 


저수지의 괴물은 사람을 많이 먹어 그 넋을 가두고 있으므로, 언젠가 넋들이 환생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죽일 수 없다. 그 괴물에게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콰이 강의 다리 입구에도 과거 우리나라에서 신수(신령목)를 모시듯 오색 띠로 치장을 해 놓은 나무가 있다(이건 내가 직접 봤다.). 물에서 죽은 넋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caption id="attachment_98700" align="aligncenter" width="194" caption="바로 이 나무다."][/caption]


 


물속 짐승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은 환생하지 못하고 물에 사는 동물처럼 행동하는 물귀신이 된다.


 


물론 저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장담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어쨌든 나는 저 모든 것을 진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고, 서둘러 깐짜나부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내 방 발코니까지 기어 올라온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번엔 열 살 가량의 소년이었다. 그것의 표정을 보건대 내 방 내부와, 나를 몹시 신기해 하는 듯 했다. 그것은 호기심을 느꼈을 지 모르겠지만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는 다음 날로 미니버스(라고는 하지만 걍 봉고차다)를 예약해 방콕으로 이동했다. 타로카드는 다시 바보가 됐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힘을 잃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일들이 초대 받지 않은 손님처럼 내 기억 속에 침입한다. 그 때마다 들숨과 날숨이 거칠어지고, 내 마음은 불안하게 떠 다닌다.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폭염에 찌든 월요일, 원고를 내놓지 않아 나를 외롭게 만든 수뇌부와 필진들의 배려로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를 쓴다. 독자여러분들에게는 납량특집이지만, 내게는 지워지지 않는 일생의 공포다.


 


믿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이고, 그 진실을 어떻게 수용하는지는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태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꼭 강조하고 싶다. 이들에게는 믿거나 말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믿어라. 콰이 강에서는, 물을 조심하라.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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