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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7. 화요일

논설우원 파토

 

 

 

 

 

 

 

 

 

요즘 날씨가 열라 덥다. 기온이 35를 넘어 40도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이런 나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우원도 열분들도 지쳐 간다. 근데 이 더위 속에서도 한 가지 궁금한 것, 기상청에서 알려주는 기온이라는 것은 과연 우리가 겪는 현실과 삶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걸까.

 

 

 

 

 

기온(氣溫)은 말 그대로 공기의 온도다. 전세계 어디서나 표준 기온 측정은 지표면에서 1.5 미터 높이의 흰색 백엽상(百葉箱) 안에 매달아 놓은 온도계로 이뤄지는데, 이건 직사광선이나 지표의 반사열이 주는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측정된 기온이 일상에서의 더위를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것은 뙤약볕 아래나 뜨거운 바람이 훅훅 불어오는 길거리, 혹은 잔뜩 달아오른 건물이나 집 안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흰 페인트가 태양열을 반사해주고 통풍이 잘 되는 백엽상 안 같은 이상적인 상태는 현실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럼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더위는 어느 정도일까? 보통 맑은 날 백엽상 안의 기온이 30도일때 지표의 온도를 재면 45~50도 정도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요 며칠 외부의 자연 상태에서 우리 머리통이나 등짝의 온도는 50도를 훌쩍 넘어 60도에 근접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땜에 사우나 같은 먹먹한 공기나 온풍기 같은 바람이 느껴지는 거지, 체온이나 마찬가지인 36도 정도로 그런 느낌까지 올 리 없다. 게다가 공기 중 습도가 높아지면 몸에서 나는 땀의 증발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체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덥고 불쾌해진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백엽상 안에서 재는 비현실적인 온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살고 있을까. 그건 이것이 세계 어디서나 같은 조건에서 기온을 재기 위한 기상학적, 과학적 측정의 기준으로 '제정'된 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데이터를 모으고 통계를 내기 위한 형식이고 우리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는 큰 상관이 없다. (체감온도라는 게 있지만 추운 날씨에만 쓰는 공식이지 더운 데는 적용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객관적 기온'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고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겪는 훨씬 더한 더위는 마치 ‘착각’에 '불과'한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에 열라 익숙해져 있다. 허나 그런 것은 없다. 백엽상에서의 측정은 과학자들과 국제 기구간의 합의일 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도를 절대적으로 확정해주는 무엇이 아니다.

 

 

 

 

 

[caption id="attachment_98748"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겨우 이런 녀석이 절대기온을 소유한 신적 존재일 리 없잖아"][/caption]

 

 

 

 

 

근데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과학이 데이타를 다루는 방법, 그 규칙과 우리의 현실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으며 그 한계는 어디까지냐는 점이다. 예컨대 백엽상 안의 35도라는 기온은 나의 실체적 삶과 얼마나 깊이 관련되어 있나?

 

 

 

 

 

고대라면 백엽상 안팎의 기본적인 차이는 여전히 있을 망정 개인마다 온도 경험의 편차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지역에서는 대략 다들 비슷한 조건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과학 기술로 인한 냉방의 개념이 생겨나 있기 때문에 그 차가 아주 커진다. 중앙 공조 시스템 하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구석구석을 채워주는 사무실과 선풍기 하나 없는 판자촌 방 구석의 온도가 같을 리 없으니.

 

 

 

 

 

따라서 백엽상 안의 온도는 단지 하나의 추상적 지표 역할을 할 뿐이고, 개별 조건 하에서 각각의 온도를 모두 재 정확한 팩트를 구하고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의미도 없다. 결국 실재하는 것은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의 주관적 온도뿐이고, 과학적 계측의 결과가 아닌 바로 이게 우리 생활에서 기온의 진실인 거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평균수명 개념이 있다. 이것만큼 우리의 개별적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도 없는데, 그건 우리 주변 사람들 중 이 수명에 맞춰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간단한 팩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병이나 사고로 훨씬 일찍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요, 택도 없이 오래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허나 이 평균 수명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영아 사망률이다. 현대 이전까지 인류의 평균 수명이 30대 전후였던 것은 어른들이 다 서른 살이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태어난 직후나 유아 때 죽는 비율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계산이긴 하지만 한 사람은 80세까지 살고 다른 한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는다면 이 둘의 평균 수명은 40세다.

 

 

 

 

 

이런 접근이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 영유아기를 거쳐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평균 수명이 75세라 해도 지금까지 버틴 우리들 대부분은 그보다 더 오래 산다고 보는 게 맞고, 그럼에도 개개인을 따지고 든다면 그가 몇 살까지 살 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은 평균 수명 역시도 우리의 현실 삶(혹은 죽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통계 지표로서의 의미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내한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통렬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술담배를 멀리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만 먹고 제 아무리 바른 생활을 한다 해도 오십도 못돼서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편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도 별 문제 없이 무병장수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으며 이것은 주변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는 진실이다. 따라서 금욕하는 삶은 나 자신 보다는 금욕하는 사람들의 무병장수의 전체적 확률을 다소 높이는데 일조하는 무엇이다. 나와 관련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과학과 철학의 접근법과 해석은 이렇게 서로 다르다. 과학은 사물을 대상화하고 분석해 적시할 수 있는 사실을 추구하는 반면, 철학은 존재의 속성과 내밀한 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객관성과 보편성, 통계, 계량 가능한 수치를 추구하는 과학에서 주관적 체험이 가진 의미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철학에서는, 사조에 따라, 절대적인 것일 수도 있는 거다.

 

 

 

 

 

이 둘은 세계를 해석하고 나의 입장을 세우는 점에서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덧 과학적인 것을 넘어 기계적 관점에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만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통계적 평균의 전형이라고 할 1인당 GDP, 국민 총생산이 3만불을 넘어서는 것이 나의 개별적인 삶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한들 그걸 믿고 기준으로 삼아 심리적으로 의존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 우월감, 박탈감 등 벼라별 불필요한 감정이 다 생겨나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따라서 이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소위 객관성의 한계와 거기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깨닫고 좀 더 인문적이고 주관적인 삶으로 귀환할 필요가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우원은 지금 그늘진 경기북부 대본영 (아침에 잘 가는 편의점 앞 테이블)의 차양 아래서 적당한 더위와 바람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는, 아마도 평균소득보다 낮은 불규칙한 벌이로 먹고 사는 40대 중반의, 골골하지만 그런대로 건강한 남자다. 이런 구체적인 존재로서의 내게 백엽상 안의 온도나 울나라의 GDP 나 평균 수명 따위는 아주 제한된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물론 열분들에게도 마찬가지고.

 

 

 

 

 

 

 

 

 

 

 

 

 

 

 

 

 

...35도 좋아하네. 100도다.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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