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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8. 14. 화요일


논설우원 파토


 


 



 


 



 


고대의 역사에 대한 접근 방법은 다양하다.


 


주류 역사학이 선호하는 가장 신뢰성이 높은 방법은 아무래도 문자화된 기록을 근거로 하는 것인데, 이 기록들은 당대의 것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후대의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한 경우도 있다. 이집트의 경우 <사자의 서> 나 <피라미드 텍스트> 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 2권은 후자에 해당할 거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고대의 역사 기록이란 과연 어떤 것이며 우리는 이를 얼마나 신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기록의 개념과 필요성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고대인들은 과거와 현재를 살았을 뿐 미래를 그다지 상정하거나 대비하고 살지 않았으며 변화하는 세계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나 실용적인 필요성이 없는 한 후대를 위해 당대의 삶과 사회상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발상이 드물었다.


 


게다가 고대의 기록은 과장되거나 단편적이거나 시대나 정황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고 그것마저 충분히 남아 있지도 않다. 헤로도토스 같은 사람의 기록마저 그 신빙성이 의심받는 마당에 신화와 비유가 마구 뒤섞이고 앞뒤가 뚝 끊겨 소실된 기록들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상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신화와 비유 부분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를 특정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한 왕이 자신의 광활한 영토를 시찰하기 위해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기록이 어떤 고대 문헌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그 왕의 거대한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원시적인 기구나 글라이더 같은 것으로 조금이나마 비행을 했다는 뜻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법한 미지의 기술이 실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텍스트 만으로는 어느 쪽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며 우리는 현대의 관념이나 상식(선입견일 수도 있는)을 통해 그 기록의 내용을 임의로 ‘결정’한다.


 


따라서 이런 기록에 대한 해석은 결국 주류의 관점에 부합되는 고대사의 재확인이라는 형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위 1의 해석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2나 3의 가능성은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념과 상식, 기존의 역사학이 규정해 둔 타임라인에 위배되는 텍스트들이 발견되었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신화나 수사, 비유로만 치부되고 만다면 그 속에 아무리 놀라운 것이 숨어 있다 한들 발견할 기회 자체를 잃고 말 것이다.


 


 



인도의 고전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등


다양한 텍스트에 등장하는 비행체<비마나>의 그림.


특히 1875년에 발견된 기원전 4세기의 문서


<비마니카-샤스트라> 는 이 비마나의 조종 정보와


장거리 비행시 주의사항, 폭풍과 천둥으로부터의 보호 요령,


태양광 등 자연 에너지로의 동력 전환 등에 대해


매뉴얼에 가까운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은 아무 실체적 근거도 없는 상상의


산물일 뿐일까.


그렇게 단정지을 충분한 정보, 나아가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불확실하고 추상적이며 연구자들 본인도 신뢰하지 못하는 텍스트상의 기록보다는 객관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이 훨씬 중요할 지 모른다. 어차피 상상과 추론과 필터링이 끝없이 적용되고 있는 고대사에 있어서라면 실체를 가진 유물과 유적의 의미를 제대로 읽는 것이 되려 시대의 재구성에 더 객관적이고 유효한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유물과 유적의 경우 재질이나 제작 기술, 형태, 규모, 용도 등을 종합해 그 시대의 문명의 발전 수준을 짐작하게 되는데, 특정한 유적지에서 청동으로 된 무기나 농기구가 다량 출토된다면 그 문명은 청동기를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유물들의 형태나 기술적 완성도를 통해 유적의 시대를 특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기존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져 있는 타임라인에 조합해 넣어 고대사의 퍼즐을 보완해 가는 것이다.


 


허나 만약 발굴된 유적의 특성이 기존의 정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논란이 벌어진다. 석기시대 주거지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세련된 형태의 비파(琵琶)형 동검이 출토되기라도 한다면 거기에 대한 가능한 답은 세 가지일 거다. 해당 유적에 대한 시대 정의가 완전히 잘못 되었거나, 우연한 계기로 후대의 유물이 그 지역의 땅 속에 휩싸여 들어갔거나, 누군가가 일부러 묻은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때 기존의 연구를 통한 정설의 타임라인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배운 것, 연구한 것, 주장하는 것들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고, 또 자칫 동료 학자들의 무시와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들은 가장 보수적인 답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저 시대에는 청동기가 저 지역까지 전파되지 않았으며, 비파형 동검도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저것은 후대의 조작임에 틀림없어. 머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추리가 가진 논리적 함정은 어린애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애초에 저곳에 청동기가 전파되지 않았다는 주류 학설 자체가 청동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발굴 결과에 상당부분 힘입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청동기 유물이 등장하자, 이전에 청동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것은 저기에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상황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으며 대개의 경우는 학자들의 오래 연구해온 주장들이 더 신빙성을 갖는 것도 사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이 엉뚱한 타임라인에 뻔뻔할 만치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경우다. 기록을 중요시하는 학자들은 이때 유물이라는 현실의 물체와 텍스트, 기존의 정설에 근거한 타임라인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2천년 전 바그다드의 파르티아 유적에서 발견된 도자기로 만든 배터리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것이 정말 배터리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전류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이 여러 번의 실험으로 증명되어 있다.


 



약하지만 여기서 전기가 나오긴 한다


 


 


회의론자들은 여기에 대해 만약 전지가 발명되었다면 왜 그 기술이 후대로 계승되지 않았는지, 나아가 왜 전기 문명이 꽃피지 않았는지 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그렇기에 이것은 배터리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문명의 총체성을 방기한 오류다.


 


특정한 기술의 개발은 그 기술이 응용되어 대거 쓰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필요가 충족되었을 때 만이 전수나 확산을 통한 문명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19세기 볼타가 전지를 발명하고 이어 에디슨이 전등을 만들어 밤을 밝히게 된 일련의 상황들은 인류 문명이 이미 동력을 사용한 산업사회로 접어들어 있었다는 배경에 의해 실현 가능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공장의 동력원으로서 증기기관은 불편한 점이 많았고 - 공장마다 석탄을 때는 거대한 개별 장비를 마련해야 하는 등 - 쏟아지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한 야간 작업에는 횃불이나 가스등보다 안전하고 값싼 조명이 반드시 필요했다. 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일궈낸 부를 통한 현대식 대도시의 출현은 태양빛이 없는 밤이 야기하던 이전까지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조명의 필요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전기와 전등은 당대의 시대적 발전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2천년 전 파르티아였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전기를 발견하고 이를 만들어내는 장비를 발명했다 한들 산업화가 전혀 되지 않은 그 사회에서의 쓰임새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일부 연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마도 금 도금을 하는 특수한 작업 정도에만 쓰였을 것이며, 이 따끔따끔한 느낌을 주는 신기한 현상을 통해 불을 밝히거나 모터를 돌리는 따위의 일은 필요도 없고 발상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 시대에 전지를 사용했다는 것 자체는 그리 신기한 일만은 아니다. 전기는 우주에 넘쳐나는 자연 현상이며 특정한 조건과 운이 따른다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연에 이은 경험과 필요에 의해 작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소박한 기술이 생겨나는 것은 어느 시대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그다드 전지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강한 이유는 전기는 현대의 것이라는 강한 선입견과 기존의 역사적 타임라인에 대한 맹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허나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아주 이상한 것이 엉뚱한 타임라인에 뻔뻔하게 놓여져 있는 것, 그중 가장 거대하고도 대표적이면서도 바그다드 배터리처럼 상식을 통해 설명하기는 곤란한 것이 바로 기자의 대피라미드 군(群)이며, 바로 이 점이 우리가 피라미드를 이 모든 스토리의 시작점에 놓아야 하는 이유인 거다.


 


 



기자 시가지에서 바라본 피라미드군.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거대함과 압도적인 존재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전방의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들은 그저 하찮은 장난감처럼 보일 뿐이다.


아 물론 사진찍은 각도 땜에 더 크게 보이긴 한다만.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듯이 쿠푸의 대 피라미드는 최소 4,500년전에 세워진, 물경 200만개의 2톤짜리 석회암 덩어리로 만들어진 초대형 건축물이다(카프레와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역시 규모만 좀 작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 여타의 이집트 유적과는 달리 내외에 상형문자 기록은커녕 아무런 장식도 그림도 없는 이 거대한 불가사의의 삼각뿔 덩어리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의 상식과 관념에 어긋나는 말도 안되는 물체들이다. 우원이 수메르나 기타 다른 고대 문명보다 이집트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주 언급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의 눈과 상식을 조롱하는 이 압도적인 증거물 때문이다.


 


물론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근동 지역, 인도, 중국, 중남미에도 거석 유적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그와 관련된 미스터리 역시 가볍지 않다. 실제로 레바논의 발벡 신전 유적의 경우 현대의 중장비로도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들고 운반하여 자리를 잡는 (lifting, transporting & positioning) 관점에서는 기자 피라미드군을 능가하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발벡 신전의 거석. 왼쪽 아래 사람과 비교했을 때 중간의 바위 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각 1천 톤에 달하는 이 바위 덩어리는 3개가


나란히 횡으로 기단부에 얹혀져 있으며 그 틈새는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다. 좌측 상단의 비교적 작은 바위 블럭들은  로마 시대에 쌓아 올린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서의 총체적 완성도나 보존성, 그 의미의 불가사의를 놓고 볼 때 고대 유적이나 유물 모든 것을 통틀어 기자 피라미드 군에 필적할 것은 지구상에 없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신비함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다른 글들에서 심도 깊게 접근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다시 자세히 언급하지 말도록 하자. 다만 논의의 진행을 위해 포인트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아래는 쿠프의 대피라미드 하나에 대한 것인데 역시 나머지 두 피라미드 관련해서도 관점은 대동소이하다.


 


 


1. 200만개의 바위 덩어리를 145미터 높이까지 쌓아 올렸다. 학계의 주장대로 20년간 매년 겨울 농한기 3개월간 작업했다면 매 1분에 2톤짜리 바위 한개 씩을 정확히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참고로 2톤을 들려면 성인 남자 수십 명이 필요하다.


 


2. 4,500년전 고대에 현대의 마천루보다 훨씬 엄격한 건축 공차를 구현하고 있으며 레이저 측량이 필요한 수준의 정밀함을 달성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내부 대회랑의 양쪽 끝의 넓이 차이는 6밀리미터 밖에 되지 않고 외벽의 자오선과의 평행도는 경도의 기준인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벽보다도 정확하다. 비유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 건축술을 능가하는 이런 기술적 성취는 피라미드 건립을 설명하기 위한 파라오의 절대 권력이나 무한 인력의 수급 등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3. 시신이나 부장품 따위가 전혀 발견된 적이 없으며 무덤으로 쓰였다는 실체적 증거가 전혀 없다. 따라서 용도가 불분명한 건물이다.


 


4. 수백 년 전 아랍의 칼리프 알 마문이 부수고 들어갈 때까지 4천년 간 완벽한 보안을 유지했으며, 내부의 구조 역시 그 용도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5. 다른 대부분의 유사한 시대 유적들과 달리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다.


 


 


원체 유명하고 익숙해서 잘 실감이 안 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기자의 피라미드 군은 우리의 모든 상식과 시대 관념을 역행하고 있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엇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럼에도 버젓이 현실 속에 서 있는 저 거대한 돌덩어리들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왜’‘어떻게’ 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두 질문은 이 거대한 건축물들의 진정한 존재 의미, 용도와 건설 기술에 대한 의문이며, 그것은 이들이 존재하게 된 이유 및 그 언저리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허나 이를 고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압도적인 크기도, 정교한 기술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디자인과 재질이다...


 


 


- To be continued


 


 


논설우원 파토

@pato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