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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8. 17. 금요일

펜더


 


 


Ⅷ. 나의 이야기


 


 


1. 모든 걸 잃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그 덕분인지 돈을 벌었다. 한때 사람들에게 성공의 기준이 되던 억대 연봉도 찍어봤다. 별거 아니다. 돈 많이 쓸 거 같지? 억대 연봉 찍어도 쓸 게 없다. 버는 만큼 나가는 구멍이 있다. 당시 내 기준은 간단했다. ‘대한민국에서 성공의 기준은 돈이다. 우선 돈을 벌자.’ 돈을 벌면 벌수록 내 삶은 피폐해졌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돈과 내 삶을 바꿨다.


 


 



 


 


모든 걸 잃었다. 집, 차, 재산…… 모든 걸 날렸다. 플러스알파로 빚도 따라왔다. 허탈했다. 그리고 황당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날렸을 때의 심정을 아는가? 돈이 삶의 절대적 가치인 상황에서 돈을 잃었다면, 모든 걸 잃은 거다.


 


그 시점과 동시에 ‘글’이 나오지 않았다.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던 글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3~4년간 무리하게 글을 쓴 반작용이었다. 어느 순간 끊고 나에게 휴식을 줬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몸을 망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빚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선배 작업실 한구석에 소파를 이어 붙여서 잠을 청했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돈을 벌었다. 빚을 갚아야 했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생활비를 보내야 했다. 그러다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 무리하게 일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것이다. 과로였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 하루 날을 잡아 정형외과와 내과, 피부과를 돌고 나서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으며 일했다. 주중에는 빚을 갚기 위해, 주말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죽고 싶었다. 살아갈 의미가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하면 욕밖에 할 말이 없었다. 문자를 보내도 욕이었다(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사과한다). 가족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갉아먹는 존재로 생각했다. 아내가 내 인생을 말아먹은 여자로 보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 모든 게 내가 선택한 결과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날 둘러싼 모든 것들이 증오스러웠다.


 


어느 순간 노숙을 하고 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지낼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를 포기한 것이다. 사는 게 싫었다.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 생활에서 튕겨져 나온 뒤 남은 건 비참함뿐이었다. 그렇기에 삶을 부정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자기부정, 위악, 자학에서 시작했다. ‘멀쩡하던 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마!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너희 탓이다.’ 그렇게 시작한 노숙 생활은 짧은 기간이지만 16년간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많은 걸 알려줬다.


 



  • 첫째, 과거에 잘나가지 않은 사람은 없다.

  • 둘째,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

  • 셋째, 바닥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참 단순하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이다. 부연 설명을 해줄까?


 


첫째, 과거에 잘나가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숙자들이 처음 그 무리(?)에 합류할 때 망설이고 쭈뼛거리는 게 보인다. 잘 차려입은 옷, 싸구려 스킨로션 냄새, 번들거리는 얼굴, 한눈에 봐도 초보 티가 난다. 이들은 대부분 찜질방에서 넘어온 케이스다. 인생의 막다른 벽 앞에서 저항하다가 고시원이나 원룸 생활을 전전하고, 마지막이 찜질방이다. 이들에게 찜질방은 심리적인 마지노선이다. 그러다가 찜질방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우면 슬슬 지하철역이나 역사를 찾기 시작한다.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이렇게 들어온 이들 가운데 과거에 사장을 해보지 사람이 없다. 다들 한때 잘나간 이들이다. 그 과거의 기억이 오늘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스며들듯이 노숙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술과 담배. 고단한 삶을 잊게 해주는 이 싸구려 위안을 통해 이들은 잠깐 고통을 잊는다.


 


 



 


 


그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삶이 있고, 그건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그 안에서도 ‘사회와 규칙’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무리를 만들고 살아가는 동안 절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타까운 건 그들의 과거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지나온 과거가 오늘의 발걸음을 붙잡는 걸 이렇게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없다. 자포자기를 넘어 자신을 학대하는 이들(이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노숙의 삶이 몸에 스며든다), 그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다. 과거를 기준으로 오늘을 보고, 내일을 예측한다. 그게 과연 올바른 예상일까?


 


둘째,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 짧은 노숙 생활을 경험한 뒤 나는 교회를, 아니 한국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상당 부분 지워냈다(물론 일부 대형 교회에 대한 반발은 여전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밥을 주고 뜨거운 물을 주었다. 겨울에는 이 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 의지가 있고 자존심을 버리고 제대로 울기만 하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 널렸다. 당신의 고민이나 고통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주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의지만 있다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의식주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이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는 찾아보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이 널려 있다. 그걸 찾지 않는 당신의 자존심과 사회적 편견이 문제지, 의외로 도움의 손길이 많다. 당신들이 최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지하철 역사의 노숙자들에게 뻗치는 손길이 그 정도다.


 


울어라. 그리고 찾아라. 그러면 도움이 찾아올 것이다. 설사 가진 걸 모두 잃더라도 당신에게는 의지할 곳이 있다. 당신이 모르거나 모른 척할 뿐, 의외로 많다. 의지하고 싶다면 의지하라. 아니 꼭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셋째, 바닥은 없다. 자신이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이 바닥이다. 노숙자가 바닥일 것 같지만, 그 밑에도 바닥이 있다. 바닥은 자기가 설정한 곳이다.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바닥에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당신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사람도 널렸다. 문제는 당신의 의지다. 노숙자들에게 자활의 길을 알려주기 위한 시도가 무수히 많다. 그 시도와 기회를 붙잡는 사람(소수다)도 있고, 뿌리치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주위에 널린 게 희망이다. 찾아라. 그리고 울어라. 우리 사회가 삭막해 보이고, 각박한 세상이라 말하지만, 찾아보면 당신의 울음을 들어줄 사람들이 꽤 많다. 찾아서 울어라. 그러면 당신에게도 희망이 찾아온다.


 


그리고 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잘 살기 위해서? 아니 잘 죽기 위해서였다.


 


 


2. 죽기 위한 노력들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떠돌이가 됐다. 가족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날 용서할 수 없었고, 이 세상을 용서할 수 없었다. 노숙 생활에서 얻은 교훈? 유감스럽게도 그 교훈은 한참이 지난 뒤에 날 찾아왔다. 봄볕 좋은 어느 날, 노인정 정자 처마 밑에서 찾았다. 그럼 이때는? 어떻게 하면 최고의 시위성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돈이 기준이 된 세상에서 돈을 잃어버렸으니 남은 건 죽음밖에 없었다.


 


계속 걸었다.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걸었다. 산을 타고, 고개를 넘고, 대학교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걸었다. 걷지 않으면 잊히지 않았다. 저녁이 되면 술을 마셨다. 술값을 벌기 위해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술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의사는 더 이상 수면제를 처방해주지 않았다. 술에 취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친가나 처가 식구들은 말했다.


 


“젊은 나이에 그런 것이니 다시 떨치고 일어서면 된다.”


 


이런 위로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른다. 세상이 어떤 곳인데……. 그들의 위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게는 술밖에 없었다. 피폐해지는 나 자신을 보며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이대로 가면 내 인생이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벌써 망가졌다.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비명횡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죽음에 슬퍼할 사람들이 떠올랐고, 무언의 시위성이 누굴 향할지 알았기에 쾌재를 불렀다. 한편으론 이렇게 죽어가는 내가 한심해 보이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관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취해서 자고, 일어나면 다시 술을 찾았다.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단절됐다. 사람이 싫었다. 초라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할까?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인간관계는 망가지고, 망가진 인간관계를 보며 술 마시고, 술을 마시다 보니 인간관계는 더 망가지고……. 점점 일상에서 멀어졌다.


 


어느 날 사우나에 갔다. 거울 속에 낯선 사내가 있었다. 노숙자? 아니 노숙자보다 심한 몰골이 보였다. 뱃살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덜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으면 내 관은 어떻게 만들지? 특제품으로 사와야 하나? 상조 회사 사람들이 염할 때 무던히도 비웃겠구나. 화장할 때 나만 더 오래 타는 게 아닐까? 그건 좀 그런데…….’


 


 



 


 


《삼국지》의 동탁이 생각이 났고, 북벌을 말하다 급작스레 죽은 효종의 재궁(梓宮 : 임금의 관을 높이 부르는 말)이 좁아 널판을 이어 붙인 역사가 떠올랐다. 아는 게 죄다. 술을 끊고 나를 다시 돌아봤다. ‘죽더라도 제대로 죽자.’


 


천생이 글쟁이였던 나 자신이 그렇게 한스러운(?) 적이 없었다. 죽음과 자살에 관계된 책을 사 모으고, 영성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긍정 심리학’ 쪽 책은 물론, 사이비 냄새가 나는 책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내 죽음을 합리화하고, 내 시위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내 죽음에 논리성을 부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했다. 이 책에 쓴 방법은 대부분 그때 내가 준비하고 실행한 것이다. 여전히 낮이 되면 걸었다. 걷는 내내 어떻게 죽을까, 자살이란 뭘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희열이 느껴졌다. ‘아, 이렇게 하면 제대로 죽겠구나.’ ‘이렇게만 하면 제대로 엿을 먹이겠구나.’ ‘이제 이 구질구질한 현실과 멀어지겠구나.’ 기준을 만들고, 방법을 확인한 다음, 내 인생을 하나씩 대입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후회 없이 자살하기 위해 준비한 기준들이 오히려 자살을 막아서는 것이다.


 


자살 사유서를 쓸 때쯤 되면 이런 혼란은 극에 달한다. 결국 술병을 들고 아파트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늘어나는 술병과 정비례해서 자살하려는 의지가 커졌다. 앞을 바라보니 막막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한때 잘나간 시절이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난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길바닥에서 자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술에 취하면 아무 곳에서나 엎어져 잤다(이 습관은 지금도 내 몸에 붙어 있다). 삶을 방기하고 싶었고,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포기했다. 이때부터는 죽을 방법만 생각했다. 약으로 죽어야 할지, 연탄가스로 죽어야 할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산에 올라가 목을 매다는 방법도 고민했다. 날을 잘 세운 회칼 하나를 구해서 손목을 그어볼까 고민하다가, 손목은 백날 그어봐야 별 효과도 없다는 말을 듣고 단념했다. 산에서 목을 매다는 방법은 까마귀나 까치가 내 눈을 파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포기했다(이후 내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수면제는 구하기도 힘들지만, 효과도 확신할 수 없기에 일찌감치 논외로 쳤다. 남은 건 투신이다.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가방에 술병을 가득 넣고 고층 건물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뛰어내릴 자신이 없었다. 수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상념을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셨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면 난간 아래쪽을 바라봤다. 취기가 싹 사라졌다. 그럼 다시 마시고, 취기가 돌면 난간 아래쪽을 바라보길 수차례.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따뜻한 아침 햇볕이 내리쬐면 위장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육체의 발버둥이라고 해야 할까? 살기 위해 다시 해장을 하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사우나를 찾아 나선다. 죽기 위해 사는 아이러니한 일상이 계속됐다. 자살예방센터의 얼굴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내 기준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확인했다. 분명 난 죽어야 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자살예방센터의 얼굴 없는 목소리가 내게 해준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세요?” 새벽 3시를 넘어가던 때였고, 아내에게 유서 비슷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내가 있는 곳? 분당의 한 오피스텔 8층 난간 위였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이어졌다.


 


“선생님, 이 전화 끊고 나서 뭘 하실 거예요?” 말할 수 없었다.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삶의 의미가 없었다. 현실이 지옥 같았다. 빚은 계속 덤벼들었고, 도무지 탈출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각자의 기준과 기대로 날 바라보았다. 당장 돈을 주지 않으면 삶 자체가 이어지지 않는 가족은 내 삶의 짐이었다. 3년째 보지도 않고, 돈만 보내는 사이니 명목상 가족일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죽으면 “돈 나올 구멍이 사라졌네”라는 아쉬움만 말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내 선택에 후회했고, 내 삶에 절망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는 그 와중에도 삶을 말하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잘 겁니다.”(‘잘’인지 ‘살’인지 발음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그날 나는 잤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내는 그날 밤 분당의 오피스텔을 다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미안했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3. 점심을 고민할 정도면 살아도 된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리고 글을 쓴다. 3년간 방황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죽음은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다.”


 


배우 차인표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자살이란 선택지는 없다.” 멋진 말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인생은 어떤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꿋꿋이 이어나가는 것이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 포기다. 인생이 아니다. 그러나 수양이 덜 돼서 그런지 이 말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한때 난 많은 걸 가졌다. 아니 가졌다고 생각했다. 좋은 집이 있어야 하고, 좋은 차도 있어야 했다. 남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간판도 있어야 했다. 그걸 다 가진 줄 알았다. 그리고 일순간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공황이라고 해야 할까?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던 것들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나니 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난 껍데기로 산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나다. 내가 사라진 뒤의 세상은 ‘종말’과 다를 게 없다. 나는 이런 나를 학대하며 살았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나 자신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이 책 앞에서 ‘3시’를 말했다. 내 고민과 고통이 남의 시선 때문인지, 시간에 얽매인 것인지, 시도해봤는지 당신들에게 물었다. 그 이전에 나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나 남의 시선이 두려웠다. 남의 시선에 날 끼워 맞춘 다음 남의 기준에 ‘행복’하다는 걸 찾았고, 그 행복의 기준을 쟁취하기 위해 날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모든 걸 잃었을 때 나는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됐다.”


“난 언제나 과거 잘나가던 시절(서푼어치 자존심을 채울 수 있던 시절)을 기준으로 오늘을 바라봤고, 내일을 예상했다. 그 기준으로 오늘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암흑이고, 내일은 지옥이었다.”


“나에게는 다시 일어날 힘도 있고,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고, 과거의 기억이 날 괴롭혔다.”


 


남의 시선을 떨쳐내자, 문제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진리를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고통의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았으나, 그 시간도 영원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걸 바꿨다. 그 흐름을 믿고 탈출을 시도했다. 나는 조금씩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언제나 ‘죽음’이 따라붙었다.


 


“기왕 죽을 목숨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죽자. 자살은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는 히든카드다.” 내 뒤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는 전제 아래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삶의 변화는 놀라웠다. 영원할 것 같던 인생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살아 있다. 그리고 살아갈 것이다. 친구 녀석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할 정도면 아직 살 만한 거야.”


 


짧은 울림 긴 여운이라고 해야 할까? 대수술만 세 번 받은 놈이다. 중환자실과 응급실, 수술실을 제 집 드나들듯이 한 놈이다. 녀석은 몸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고, 조금만 무리해도 약을 먹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술 같은 건 생각도 못 한다. 같이 사우나에 가면 배 여기저기에 바둑판처럼 수술 자국이 보인다.


 


“점심을 먹는다는 건 적어도 5000원 이상 쓸지 말지 고민할 여유가 있는 거고, 뭘 먹어도 소화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의미잖아.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아직 살 만하다는 거야.”


 


5000원짜리 점심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경제력과 멀쩡한 몸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녀석은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 이런 녀석에게 아무 제약 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 녀석 기준에서 난 아직 살 만한 놈이다. 그 기준에 맞게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생각이다. 한때 자살을 꿈꾼 내게 친구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말했다.


 


“오늘만 봐, 오늘. 내일은 없어.”


 


그 녀석에게는 내일이 없다.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기억 때문인지, 자동차 가득 각종 약을 싣고 오늘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즐긴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여행을 하고, 취미도 가장 많다. 자수성가로 사업을 해서 돈도 가장 많이 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대수술 한 번에 수명이 5년씩 줄어든다고 치면, 난 50을 넘기지 못할 거야. 남들보다 덜 사는 만큼 더 즐기다 죽을 거야.”


 


하루하루 목숨 걸고 돈을 번다. 또 하루하루 목숨 걸고 즐긴다. 그 녀석은 몸속에 시한폭탄을 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타이머가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에서 녀석은 약으로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다. 그런데도 녀석은 언제나 밝다. 등 뒤에 죽음이라는 녀석이 쫓아오기 때문에 지친 기색을 보일 수 없다는 논리다. 죽음을 각오한 자의 삶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죽음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순간,

당신 눈앞에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난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직 사람이 ‘덜’ 돼서 그런지 이 말을 일상에 그대로 대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저 ‘좋은 말’이라 생각하고 넘길 것이다. 죽겠다는 생각으로 실천에 옮겨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과거의 상처, 지금도 이어지는 현실의 고통,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막막함, 아닌 걸 알면서도 비교되는 남과 나의 경쟁……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부자유가 다시 죽음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 유혹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네 앞에 놓인 수많은 고민과 고통을 일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어. 포기하면 편해.”


 


이보다 큰 유혹이 있을까? “인간은 자살과 노력 사이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는 폴 포르(Paul Fort)의 말처럼 우리는 노력할 수 없거나 노력하기 싫어서 자살을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삶에 의미를 두었다면 노력에 방점을 찍고 죽을 각오로 살자는 교과서적인 멘트를 날리며 자기 인생을 독려할 것이고, 자살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르네 크르벨(René Crevel)의 말처럼 자살을 인생에 하나뿐인 고상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뭐가 정답인지는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른다. 왜? 우리는 미래를 모르고, 그 불안감은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의지로 미래를 극복하고, 노력으로 미래를 개척하자는 판에 박힌 주장으로 당신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안다.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면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젖어든 어둠의 그림자, 그 그림자의 문제다. 이 그림자는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떼어내기 힘들다. 특히 한국과 같은 현실에서는 그 확률이 훨씬 희박하다.


 


“마음을 고쳐먹어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살면 되잖아?”


 


수없이 되뇌어보지만, 홀로 있을 때나 난해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문득문득 치고 올라오는 이 어둠의 그림자, 유혹을 막아낼 수는 없다. 당신 마음 한구석에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고민한 기억과 흔적이 있다. 그리고 이 기억과 흔적은 틈만 보이면 언제든 다시 치고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도, 죽으라고 권유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 마음 한구석에 있는 유혹의 그림자,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라. 마음을 활짝 열고, 당신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유혹의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목숨을 포기하고 죽음의 유혹을 받아들이려 한 적이 있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런 유혹을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죽음의 유혹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정말 내가 죽어야 하는 상황인가, 지금은 죽을 상황이 아닌데

너무 힘들어 도망가려 하는 것인가?”


 


죽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포르의 말처럼 인간은 자살을 통해 모든 걸 포기하거나, 현재 상황을 헤쳐가기 위해 노력하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그 선택만 하면 되는 문제다. 언제나 그렇지만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신중한 선택을 위해서는 면밀히 관찰해야 하고, 다른 선택지와 비교해야 한다. 당신은 이런 선택의 고민을 한 적이 있는가? 죽을 것인가, 노력할 것인가? 간단한 선택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일생일대의 결정 앞에서 당신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신중해야 한다.


 


“죽음을 선택했다면 그 역시 인정하고 납득한다. 다만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얼마나 고민했는지 자신할 수 있는가?”


 


죽음을, 아니 ‘자살’을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보라. 죽음을 직시하고, 면밀히 관찰하고, 신중하게 고민하라. 이런 관찰과 고민이 묻어나는 자살이라면 타인에게 인정받을 순 없지만(어느 정도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시킬 순 있을 것이다. 변명과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변명과 자기 합리화 과정이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을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과정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과 번뇌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생략된 자살이란 의미 없는 죽음일 뿐이다. 선택을 위한 고민과 번뇌, 이 글이 당신의 선택을 도왔기를 기대한다.


 


 



 










 


본 연재물은 책으로 정리되어 9월경에 출판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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