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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0. 월요일

백골프


 


춘추 전국시대 묵자라는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00926" align="aligncenter" width="216" caption="중국에서 만든 묵자 우표"][/caption]


 


겸애와 반전. 의로운 정치, 이런것들의 기초가 되는 하느님의 의지를 말하면서 앉은 자리가 조금도 따뜻해질 새 없이 동분서주하며 자신의 이상을 펼려고 했던 사상가이며 활동가인 묵자.


 


배고픈 자 먹지 못하고 추운 자 입지 못하고 일해서 힘든 자 쉬지 못한다며 당시 하층민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을 대변하고 특히 일하는 자들의 권리와 그들이 누려야할 기초적인 생활보장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


 


그 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긴 시간 동안 장황하지만 나름 자세하고 자상하게 펼쳐 보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묵자라는 텍스트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묵자라는 책을 통해서이고요.


 


신영복선생님이 그랬던가요? 묵자가 다시 세상에 나오고 세인들의 관심을 받은것을 2천년만의 복권이라고요. 2천년동안 누구의 주의도 끌어오지 못하다가 청대말 필원과 손이양이라는 학자에 묵자 텍스트에 주석이 달아지고 정리가 되고 묵자란 사상가가 조명되었는데 그것을 신영복 선생님이 2천년만의 복권이라고 했습니다/ 무려 2천년동안 지하에서 잠자고 있던 사상가와 그 사상가의 텍스트, 묵자란 사람과 그 사람의 사상은 줄곧 동아시아 역사에 소외 되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묵자와 그의 사상에 대해 공부하러 여러 벗들과 길을 떠나보려합니다, 왜 그럴까요? 난데 없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럴까요? 왜 묵자를 읽어보자는 것인지 분명한 이유를 말하기전에 일단 묵자라는 텍스트는 고전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묵자를 읽어보자, 묵자 여행을 떠나자 그것은 일단은 묵자라는 고전을 읽고 그것과 씨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자는건데 고전, 고전, 고전이라……..


 



 


마르지 않은 샘물이고 인간과 세상, 사회를 이해하고 보는데 있어 시야를 넓게 해주고 지평을 새롭게 해준다는 고전 하지만 정작 그 고전은 아무도 읽어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단 고전은 어렵습니다, 읽기가 쉽지 않죠. 동시대 우리의 언어로 쓰여진 책이 아니기에 아무리 번역을 잘했어도 읽기가 쉽지 않고 또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동서양의 여러 고전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번역이 되질 않았습니다. 제대로 번역을 해도 읽기가 어려운 책인데도요.


 


그리고 읽고 독해하고 이해를 한다고 쳐도 그래 좋은 이야기야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거지라고 의문을 던지면서 책장을 덮기가 쉽습니다. 아무리 고전을 만든 사상가가 훌륭하고 좋은 이야기가 고전에 담겨 있어도 그것이 이 땅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진 문제의식 에 답을 줄 여지가 없으면 고전의 할애비가 와도 그건 그냥 죽은 책일 뿐이죠. 고전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명쾌한 답이 아니더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고민과 문제에 뭔가를 주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읽기 힘들고 시간만 낭비하게 하는 괴팍한 책 그 이상, 이하도 아닐것입니다.


 


왜 고전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뭔가를 주지 못할까요? 고전 자체가 죽은 책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우리가 뭔가에 대해 명확한 문제의식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 있고 아니면 고전에 대한 친절하고 길잡이 내지 고전여행을 위한 길동무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식하고 용감한 이 필자가 묵자란 고전 여행을 위한 길동무로 나섰고 이 길동무, 길잡이와 함께 한다면 묵자를 읽으시면서 뭔가 얻을 것이 있다고 이 길잡이는 감히 자신합니다


 


이 길잡이를 자처한 본인이 생각하기에 묵자란 사상가와 텍스트는 뭔가를 적지 않게 주는거 같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면서 이런 저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씨름하는 우리들에게 명쾌한 답까지는 아니어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와 고민할 거리를 주는거 같다는거죠 또 내가 생각하는 대안에 어떤 자원내지 기초가 될 것들도 주는 것도 같고 거기에 다른 사회구성원을 설득하게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밑천도 많이 담겨 있는 거 같고요. 그래서 묵자를 읽어보자는겁니다, 이런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거 같으니 읽기 쉽지 않고 무뚝뚝해보이다 못해 괴팍해 보이는 고전이지만 같이 읽고 소화해보자는거지요.


 


[caption id="attachment_100930"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유덕화와 안성기가 출연한 '묵공'"][/caption]


 


묵자라는 텍스트는 말그대로 고전입니다. 더구나 원문은 한자로 된 고전이고 그것이 쓰여졌을 시기는 2천년전으로서 그것이 만들어진 또 그것이 만들어간 당대의 역사, 사회문화적 환경은 오늘날과 아주 아주 다르죠. 그렇기에 더더욱이 독해와 소화에 어려움이 따르는데 그냥 저를 믿고 따라오십시오. 이 패기 넘치는 길잡이는 뭔가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당대의 역사, 정치적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해드릴 수 있을거 같고 묵자가 말하는 겸애가 뭔지 그가 말하는 의로움이란게 뭔지 좀 이해 시켜 드릴 수 있을거 같고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답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데 제가 좀 확실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거 같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서점에 가면 동양철학, 동양사상과 관련된 아주 많은 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어째 우리의 현실과 유리된 것들 같아 보입니다. 단순히 동양철학과 동양사상을 소개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해서, 또 그것을 기초로해서 오늘날 우리가 가진 문제의식과 관련된 이야기, 오늘날 정치공동체의 현실에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데 하는 책, 그런 책을 찾아보기 힘들고 그런 책 만들기에 우리가 좀 소홀했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동양철학관련 책을 여러권을 놓고 책장을 넘겨보면 심심하기 그지 없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무모할지 몰라도 자신합니다. 묵자라는 책이 우리 고민에 친절히 말해주고 우리 현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것 같다고요. 자 근거 없는 자신감인거 같아 보일지 몰라도 일단은 이 길잡이를 믿어 보시고요, 조금도 겁 먹지 마시고 부담가지지 마시고 저와 함께 묵자여행을 떠나봅시다. 무모해 보일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이 길잡이, 길동무와 함께요.


 


일단 묵자라는 텍스트를 읽을 때 제가 신경을 써고 중점을 두어서 이야기할 것들을 좀 미리 말씀드릴께요. 간단히 준비 운동을 좀 하신다고 생각하시고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일단 당대의 환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문학과 역사, 철학이 학문의 장에서 어울려서 사이좋게 같이 가다보질 못하니 오늘날 우리가 동양철학과 동양사상을 말하고 논하는데 있어서 역사적접근과 함께 하는 공부와 소화가 아쉽습니다, 당대의 역사를 아우르는 시야를 기초에 놓고 동양철학, 사상을 말해야하는데 그것이 약해서 아쉽다는 것이죠, 물론 철학과 사상은 그 철학과 사상의 내적인 논리로 풀어가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철학과 사상, 그리고 그 사상가는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닐 것이고 분명 그 사상가가 살았던 역사적 현실과 배경이 그를 만들었을 겁니다(물론 사상가와 텍스트가 배경이 되는 현실과 역사에 종속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완결되고 충실한 사상과 텍스트가 나오면 그 사상과 텍스트는 다시 현실과 역사를 만들어가기도 하죠)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가 묵자를 읽을 때에도 묵자를 고민케한 당대의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묵자에 더 가까이 가서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요 또 그래야 묵자를 오늘날의 현실, 대한민국 정치공동체의 현실로 불러올 수 있겠죠. 자 일단은 묵자가 살고 부대꼈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장을 하나 뚝 떼어서 말씀드릴 수도 있고 아니면 묵자의 주장과 중심생각을 말하면서 같이 말씀 드릴 수도 있고요.


 


두번째로 유가와 공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왜 묵자를 이야기하는데 유가와 공자를 이야기 하느냐면 유가와 공자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묵가와 묵자 이야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깊이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caption id="attachment_100931" align="aligncenter" width="500" caption="공자묘"][/caption]


 


사실 묵가사상하면 비주류 이미지를 가졌지만 묵가 역시 유가처럼 동방의 정학이었고 당대의 지배적인 학문이자 사사이었습니다. 이 두 사상은 한비자가 말한대로 춘추전국시대 양대 현학으로 크게 흥행을 했는데 선발주자는 공자였습니다. 공자가 이렇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후발주자로 묵자가 나타나서 공자 선생님 아니올시다, 이런게 아니고 저렇다고 이야기 합니다. 공자 사상에 대해 첫 번째로 반응을 하고 반대를 한 사상가지요. (아주 집요하고 체계적이게) 그렇다면 공자 사상에 대해 뭐라도 좀 알아야 묵자 사상이 더 이해가 쉽고 확실하지 않을까요? 사실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공자를 알아야 묵자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요.


 


그런데 말입니다. 묵자는 단순히 공자 사상에 반대 내지 공격자가 아닙니다, 일단 묵자는 공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입니다, 왜 같은 노나라 사람인 걸 말하냐고요?? 노나라가 낳은 위대한 두 사상가 공자와 묵자, 그들이 단순히 같은 나라 사람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것이고 중요한 것은 같은 토양의 사상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것이죠, 노나라라는 정치 역사적 공간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요. 똑같이 노나라에서 나고 자라 노나라에서 자신의 사상을 숙성 시킨 사람들 둘 사이에 뭔가 닮은 점,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묵자는 유가의 학설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유가의 학설이 맘에 안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었고 그 새로운 사상은 유가사상을 반대하고 공격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유가의 학설 공자의 사상을 전면 부정한 토대 위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나름 유가의 학설과 공자 사상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 내지 보완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상당했죠. 그렇기에 공자에 대해서 더더욱이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공자의 사상 공자 사상의 문제의식, 공자가 말하는 어짊(仁)이 뭔지 그리고 그것들이 가지는 한계와 약점이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죠, 그래야 묵자라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그 사람 사상의 고갱이가 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세번째로 묵자가 사용한 仁, 義, 兼愛, 賢등 그의 사상에 중심에 해당하는 이런 개념과 단어에 대해 단순히 어짊, 의로움, 두루 사랑, 현명함이라고 쓰지 않고 좀 풀어서 설명드리면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런 단어와 개념들이 묵자 아닌 다른 사상가들 사이에선 어떻게 쓰이나를 보면서 더욱 명확하게 묵자가 어떻게 의미를 가지고 저런 단어를 자신의 사상안에서 소화 시켰는지 차별화 시켜 설명해보도록 하겠구요.


 


일단은 겸애 같은 묵자 사상의 핵심이 되는 단어와 개념에 대해선 다른 책들처럼 추상적이거나 돌려 말하면서 감질나게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명쾌하게 설명을 드릴것입니다. 묵자라는 텍스트를 읽었다고 우리가 주변의 벗들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럼 벗들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묵자가 말하는 겸애가 뭐야라고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시 이 책을 읽는 벗들께선 최소한 그가 말하는 겸애는 이런거야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필 수는 있어야겠죠. 제가 그것만큼은 분명히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겸애는 뭐다라고 딱부러지게 말할 수 있게끔 해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묵자선생이 대한민국에 와 있다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조언을 말하고 어떤 대안을 생각해볼까 하는 것에 대해 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대와 오늘날에도 비슷한 모순이 있는지 그리고 비슷한 모순이 있다면 묵자는 어떻게 접근을 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고 어떻게 처방을 내릴 것인지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같이 여행을 떠나는 벗들 모두의 몫이기도 할 것입니다.


 


끝으로요 묵자 사상이 왜 전국시대를 끝으로 사라지게 되었는 지 조금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이 이야기가 끝나면 바로 본격적인 묵자 읽기에 들어가겠습니다.


 


 


1. 준군사조직으로서 가지는 한계


 


묵자 무리를 구성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무인, 무사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로 구성된 묵자 집단 자체가 준군사조직으로서 성격을 가졌겠죠. 거자(巨子)라는 묵자 집단의 우두머리는 보스내지 오야붕처럼 강한 힘을 가진채 조직을 장악하고 움직였으며 거자하의 묵자조직은 엄격한 내부 규율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자체적으로 무력을 소유했습니다. 이렇게 묵자조직은 실제 준군사조직이었습니다, 조정에 출사해서도 칼을 차고 있었고요. 이 묵자의 제자들은 대대적으로 전국시대에 무리를 지어 움직이면서 약소국에 들어가 강대국으로부터 방어를 돕는 활동을 하며 실전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텍스트에 어떻게 무기를 만들고 성을 방어하며 군사조직을 운영해야하는지 상세히 적어두기도 했는데 군사 관련해서 실전과 이론을 모두 겸비한 사람들이었죠.


 


이렇게 묵자무리들은 묵가는 군사조직 내지 군사전문가로서의 성격을 상당히 가졌습니다. 이렇게 준군사조직 내지 군사 전문가집단이 묵자 무리였는데 혼란의 시기 춘추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통일 제국의 공간과 전제왕권시대가 닥쳤는데 정부통치시스템 밖의 준군사조직, 군사전문가집단은 용납될 수가 없었겠죠, 국가의 본질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폭력의 독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데. 국가의 힘이 극대화 된 시기에 이 준군사적인 사상집단은 용납될 수가 없었을겁니다. 이 때 대대적으로 정부의 탄압을 받고 무수히 죽기도 했는데 탄압을 피해 흩어진 묵자 조직은 협객의 시초가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른바 강호에서 놀게 된 것인데 하층민들의 원한을 들어주는 해결사가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강호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장자인데 그 강호를 연것은 묵자 무리들이었습니다.


 


 


2.줄을 잘못 섰다.


 


묵자의 무리는 진나라에 베팅을 했습니다, 열렬한 반전운동가인 묵자집단은 약소국 방어에 힘쓰고 강대국에 가서 침략전쟁의 이익 되지 못함과 의롭지 못함을 이야기하며 설득하고 적극적으로 반전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약소국 방어에 많은 제자들과 조직구성원이 죽어나가고 노력과 들이는 비용에 비해 결과는 형편 없고 정말 밑빠진 독에 물붓는것과 같다는 생각을 그들이 하게 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00935"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전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秦나라로, 韓-魏-趙의 전신 晉나라와는 다르다"][/caption]


 


그렇게 고민하던 그들에게 어떤 한 나라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진시황으로 잘알려져 있는 있는 秦, 묵가무리가 그런 생각을 했었던거 같습니다. 전 중국을 아우르는 하나의 통일 제국이 세워지면 전쟁은 없어질거라고, 그래서 강대국 진에 베팅을 하는데 묵가의 무리들이 진나라로 들어가게 되고 대활약을 해 그들의 통일에 큰 힘이 됩니다.


 


먼저 진나라에서 전문관료로서 활동을 하면서 법의 세부적인 항목을 가다듬고 제국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관중과 상앙, 오기, 범려와 같은 슈퍼스타 재상은 없었지만 여럿이 일선의 현장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중하위 관료들로서 활동을 했죠, 원래 묵가가 말하는 이상적 인간과 현자, 군자는 유가식의 도덕측면에서 수양된 사람이 아니고 현장에서 민들과 직결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형 인사인데 이런 문제해결형 묵가 인사들이 진에서 활약하면서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았죠.


 


이렇게 진에 베팅을 했는데 진이 오래가지를 못했죠, 통일 제국을 세우고 나서 얼마 안가 아주 허망하게 무너졌는데 그러면서 묵가의 무리도 진의 멸망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요새 말로 하면 한방에 훅갔다라고나 해야할까요. 묵자 무리들이 대대적으로 투신을 했는데 그 진이 무너지고 진은 향후 중국 역사에서 죄인처럼 취급받으면서 반성적인 맥락에서만 고찰되는데 진의 멸망은 묵자 무리에게 크게 타격을 주었습니다. 진과 함께 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단순히 진의 멸망으로 인해 묵자 무리가 크게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건 무리이고 여러 가지 같이 봐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진과 관계된 여러 가지들이 묵자 무리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했는데 이건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고요 일단 여기선 묵가의 절멸과 진의 멸망이 직결된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3. 사상자체의 문제………


 


겸애를 주장하는 묵자 사상, 그 묵자사상은 정말 겸애했습니다, 다른 제자백가에게 아낌 없이 퍼주었죠, 다른 제자백가 철학이 만들어지는데 촉매제 내지 원자재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주목하는 관점과 논리적, 합리적인 사유는 순자가 가져갔고, 보편적 맥락에서 인간을 사유하는건 맹자가 홀랑 하고 , 법을 통한 국가 운영과 지배, 관료체제 확립은 법가가 많이 가져갔고요.


 


정말 이렇게 다른 사상가들에게 정말 겸애를 했던 묵자 사상은 겸애하면서 자신만이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묵자만의 장점을 다른 사상가들이 가져가고 배워가고 각자의 사상체계 안에 소화 시켜 자신들의 사상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그러면서 묵가만의 뭔가가, 차별화된 이야기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묵자사상을 부분적으로 흡수를 해 사상 재무장을 한 다른 사상가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묵자 사상에 혹했던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원하는 세상은 우리 철학과 사상안에서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즉 사상의 설득력, 포섭범위가 넓어지게 된 것이죠. 그럼 굳이 묵자사상에 목을 매지 않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렇게 되면서 묵자 사상이 설자리는 너무도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묵가만의 뭔가가 묵가의 만의 독자성이 많이 희석되었기에요.


 


 


4. 원래 대변하는 계급의 문제


 


마지막으로 묵가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은 역시 묵자 사상자체가 하층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유동성이 극대화된 세상에서야 생겨나고 선전되고 어느 정도 먹힐 수 있었지 확고한 질서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죠, 확고한 질서가 잡힌 국가권력의 시대에서는 하층민들을 대변하는 사상이 환영 받기는 커녕 용인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생겨나기부터가 힘들겠죠.


 


분명히 묵자사상은 춘추전국시대만이 가지는 특수성하에 생긴 것입니다. 당대의 무질서함과 극대화된 사회적 유동성, 그로 인해 생긴 틈과 공간안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사상이었고 논리였죠. 당대의 무질서함이 하층민들에게 극한의 고통도 주었지만 그것은 역으로 하층민들을 대변하는 묵자사상이 발아하고 숨쉬고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준 것인데 그러나 진나라와 한나라 이렇게 통일제국 시대, 전제왕권 시대가 열리면서 하층민을 대변하는 사상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은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전국시대가 종식되면서 묵자 철학은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상과 꿈, 그리고 하층민들을 옥죄는 국가와 사회, 정치공동체의 모순이 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을겁니다 묵자가 꾸었던 꿈과 그들이 품었던 희망은 억압받고 착취 받는 사람들이 언제든 생각해왔고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묵자를 다시 소환하고 그의 텍스트 읽기에 나선 것이겠구요. 전쟁이 없는 천하, 모든 사람들이 기초적인 생활을 누리고,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 받고 그들의 권리가 보호되는 세상을 꿈꾸고 희망하는 것은 오늘날, 특히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자 좀 있다가 본격적인 묵자 읽기에 나설 것인데 그 묵자 텍스트는 53편으로 구성되었고요 묵자의 첫편은 친사로 시작합니다, 士 즉 지식인을 親히 즉 가까이하라, 하층민에서 출발한 묵자 집단 스스로가 자신들을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자의식이 생겼고 우리도 국정의 주체로서 대접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 묵자의 첫꼭지입니다, 이 길잡이는 항상 항상 묵자란 책을 펴자마자 보이는 親士를 보면서 가슴설레임을 느낍니다, 하층민들의 희망과 목소리 그것이 단순히 목소리 내지 메아리가 아니라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있그 대변하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들을 당당히 국정의 주체로서 인정 받길 원하면서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는 외침, 그것을 보는데 어찌 설레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설레임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너무 서론이 길었죠. 이제 본격적으로 묵자여행을 떠나 봅시다.


 


[caption id="attachment_100936"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자 이제 묵자!"][/caption]


 


계속


 


 


백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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