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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4. 금요일

논설우원 파토


 


 


공화국은 왕국이 아니며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이 뻔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이게 정말로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한 사람은 많은지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해 공화국의 정치적,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가치를 위해 죽어갔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대통령을 왕에 비유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지금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크게 왕국과 공화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제 왕국은 대개 입헌군주국이지만 여하튼 그 나라들에는 왕이 나라의 수반으로 공식적인 입지와 역할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총리는 실은 ‘총리 대신’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많은 권력을 가져도 나라를 대표하지 못한다. 반면 공화국의 국가 수반은 대통령이고, 이 사람은 국민들 사이에서 선출된다(참고로 독일 등 왕이 없는 의원내각제 체제의 경우 국가 수반은 대개 실권이 없는 대통령이 맡는데, 이 부분은 군주제의 그림자적 측면도 있고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의원내각제하 총리의 특성상 안정된 임기를 갖고 대내외적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국과 공화국, 이 두 체제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머 국민 살림살이나 그 외 실제적인 점들은 엇비슷하거나, 왕국이 더 나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거다. 그러나 왕국은 사실은 공인된 신분제 국가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일반 국민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존재하는, 그리고 그것이 혈통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결정지어 진 곳이 왕국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들에서 왕과 왕족은 실제 권력은 없지만 무한한 권위를 가지며 존경, 나아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다양한 특권을 ‘타고 나며’ 평생 고급스러운 생활과 부, 명예를 즐긴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하는 모든 비용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이 나라들이 21세기에 들어선 현재까지 왕을 모시고 보살피는 이유는 그 나라들에서는 근대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왕과의 협상을 통해 구축됐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왕의 권위와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그에게서 통치, 즉 권력을 양도받는 방식은 영국의 명예 혁명에서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보존된 왕의 권위는 결국 민주적 권력을 왕이 국민에게 허락하고 하사해 준다는 식의, 일종의 시혜적 성격을 갖게 된다.


 


반면 왕의 권력과 권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방식으로 근대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경우는 영국의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혁명으로 많은 피를 흘렸고 이후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제정 등으로 혼돈에 빠지기도 했지만,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왕과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웠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미국과 함께 프랑스는 근대 최초로 공화정을 수립한 나라로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고, 이것은 근대 정신의 철저하고 전면적인 실현, 특히 평등과 주권재민이라는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나라마다 각각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낫다, 잘라 말하는 건 지나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배기 근대정신,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입헌군주제는 기존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이며 완전하지 못한 형태인 것은 분명하다. 반면 공화정은 수천 년 간 반복된 왕과 귀족, 평민 등의 신분 구조 하에서의 반복된 지배와 피지배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설사 아직 현실에서는 찍지 못했더라도 그런 지향성을 명확히 천명한 체제다. 다만 대통령제 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이 국가 수반으로의 권위와 통치 권력을 동시에 갖는 만큼 오용되는 경우 전제군주 시대의 왕 같은 입지에 오르기 더 쉬운 측면이 있고, 특히 후진국에서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 공화정이 도입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이미 왕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사라졌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독립과 자존을 지켜내지 못하고 급기야 일본의 귀족으로 편입된 조선 왕조에 대한 실망감도 크게 작용했었다. 따라서 해방 후 왕정 복귀나 입헌군주제 채택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기왕에 남한에 진주해 큰 영향을 미치고도 있던 미국식 대통령제를 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거다.


 


그 경위야 어찌되었건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천 년이나 지속돼 오던 왕정을 자연스레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오랜 관성, 마인드까지도 쉽게 극복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간 이 나라에서 펼쳐졌던 독재 정치들에는 왕정의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945년 귀국한 이승만은 김구 등 민족통합 세력을 제거하며 남한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미국식 공화정 체제에 익숙한 그였지만 결국 '국부'라는 별칭 하에 왕과 같은 존재로 떠받들어 지고 스스로도 그것을 향유하며 장기집권의 기로에 오른다.


 


당시에는 일반 국민이나 정치인, 관료들 모두 왕과 대통령을 사실상 동일시했다. 대통령의 존재와 목소리에는 무한한 권위가 실렸고, 감히 이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커다란 불경이었으며 주권재민(主權在民) 같은 사상은 헌법에나 존재하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대통령을 계속 왕위에 있게 만드는 선거 제도를 피해갈 수는 없었고, 그래서 온갖 방법을 통해 이 선거를 요식 행위로 만드는 공작이 진행된다.


 


이런 모습은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거쳐 전두환 때까지 대략 계속되는데, 한 가지 우리가 유념할 것은 이 일들이 단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떡고물 욕심이나 개인적 권력욕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관성적인 전근대적 관념 속에서 이 ‘신하’들은 자기 스스로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왕으로 모셔야 했다. 따라서 4.19 때 내무장관으로 사형을 받은 최인규나 10.26 때 김재규에게 사살된 경호실장 차지철 등도, 그들 나름으로는 주군을 보필하는 자신들의 가치에 충실했고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는 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심리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 속에 남아있는 본능적 전근대성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스탈린주의나 주체사상 같은 1인 독재의 정치철학이나 각종 종교에서 보듯 인간은 특정한 인물을 중심에 놓고 그를 숭배하고 의존하며 정신적 안정을 얻는 습성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형태로 발현된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내면의 불안정함을 극복하고 삶의 지지대와 목적을 얻는 것인데, 이런 특성은 과거에는 '충성'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고려나 조선 같은 군주제 시대에는 신하의 덕목으로서 칭송되었다는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충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중국 상(商)나라의 백이숙제(伯夷叔齊) 형제.

주(周)나라의 고사리마저 캐먹지 않겠다며 굶어 죽은 그들의

절개에는 미학적 아름다움이 있지만, 근대적 관점에서

왕조에 대한 이런 집착적 헌신은 자신의 정체성을 전통에

뒷받침된 외부적 권위에 철저한 의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근대정신이 제대로 체화되지 않은 사회 속에서, 그런 국민들 사이에서는 비록 공화제 하에서라 한들 정점에 서 있는 권력자는 자꾸만 사실상의 왕좌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설사 본인이 별 생각이 없어도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나 지지자들이 그 자리로 밀어 올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그에게 의탁하며, 그 결과 개인은 물론 나라 전체가 권위와 권력의 현현인 대통령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대주의적 관념마저 갖게 된다. 따라서 그 인물에게 반대하거나 도전하는 행위는, 그게 야당이던 반체제 인사던 일개 국민이던 좌시할 수 없는 죄악으로 응당 단죄하거나 제거해야 되는 무엇이다.


 


따라서 이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적 민주 공화제의 진정한 실현은 요원한 것이며,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들, 정치인들, 상당수 지식인들 조차도 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느덧 공화제 시행 60년을 살짝 넘긴 울나라의 갑갑한 현실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버젓이 남이 있는, 대통령을 아무렇지도 않게 왕에 비유하는 태도는 바로 이 근대성의 불철저함, 성찰하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간접적 발현인 거다. 나아가 무의식 중에 그 전근대성을 유지 계승토록 만드는 아주 잘못된 습관임은 물론이다.


 


근대정신과 공화제의 발흥국인 프랑스에서는 누군가가 대통령을 왕에 빗대 말한다면 큰 문제가 된다(사실상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에 의해 위임된 권력이다. 자신들의 피와 공화제를 맞바꾼 프랑스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못한 민주적 역사 인식과 근대적 자각의 철저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 황우여의 박근혜 = 여왕 = 빅토리아/엘리자베스 발언(맥락으로 보아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닌이 16세기의 엘리자베스 1세로 보임. 아니면 진짜 바보)은 스스로가 설명했듯이 여권신장이나 여성 정치인 약진의 의미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의미에서 말 그대로 무지와 무식의 소치다.


 


여당 대표던 누가 되었던 공화국의 정치인, 대통령, 권력자를 왕에 비유한다는 것은 주권자인 우리 국민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며, 따라서 당장의 정치 공세 등과는 별개로 이런 행태를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주권자는 우리들이고 박그네던 누구던 우리에게서 그 권력을 잠시 위임 받아 대신 통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법에 명시된 바에 따라 그 특정 지위에 있는 동안에만 통치를 받아들이며, 자유로운 비판과 견제의 권리를 갖고, 필요하다면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릴 수도 있다.


 


건국 때부터 헌법에 명약관화하게 드러나 있는 이 사실들은 도대체 언제나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뿌리내리고 체화될 것인가? 당 대표씩이나 하는 사람이 이 정도의 정치, 역사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현실, 이건 ‘새누리당이 박그네 후보를 거의 여왕으로 만드는 대선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보다 훨씬 내밀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만약 야당 인사나 누군가가 야당 후보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해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와 권리, 근대정신의 향유를 위해 우리 어깨에 지워진 권력의 무거움을 알고, 그 지향점을 깨달아 주권자로 바로 서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설사 농담으로라도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지 말고, 그런 말을 아무 생각없이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들이 은연중에 우리 머리 속에 또다시 심어 놓으려는 전근대성의 그림자를 받아들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지나칠 정도로 깐깐한 입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질곡의 큰 원인이 된 것이 바로 이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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