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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지났지만 우리 병원에서도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진 것은 큰 이슈였다. 첫 번째 대국 때 나는 수술을 하고 있었는데, 쉬는 시간 모든 의사들이 휴게실에 모여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을 보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부분 바둑을 볼 줄 몰랐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네 번째 대국이 끝나고 구글 딥 마인드 관계자가 기자 회견을 했다. 그 때 한 외국 기자가 '고도의 정밀함과 집중력이 필요한 의학적 분야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고 한다. 관계자의 답변은 '의학에서의 인공지능의 접근은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 정도였던 것 같다.


사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정확하다 해도 인간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의학에서까지 인공지능을 사용하기는 어렵다. 컴퓨터가 뻘 짓을 할 가능성이 백만분의 1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람은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미 의학계에서는 병의 진단과 치료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있다.



영상의학과(radiology, 방사선과)에서의 인공지능


아마 일반 사람들에게 방사선과(영상의학과. 밑에서는 마구 혼용할 것임)는 좀 낯선 과(department)일 수 있겠다. 내과·소아과·산부인과·피부과 등처럼 환자를 직접 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영상의학과 의사를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병원 내에서도 영상의학과 스텝들은 환자가 아닌 의사만 상대한다.


방사선과에서는 X-ray, CT 그리고 MRI 등을 찍었을 때 그것을 리딩(reading)하는 일을 한다. 내가 레지던트 할 때만 해도 환자가 배가 아파서 오면 외과 의사가 내려와서 배를 눌러 보고 맹장염인지 아닌지를 진단했다. 배 막 눌러보고,


“누를 때 아파요? 뗄 때 아파요?”


라고 물어봤다(뗄 때 아픈 게 맹장염이다). 1년차가 눌러 보고 조금 있다가 4년차가 내려와서 또 눌러보고 어떨 때는 스텝이 와서 또 눌러 보기도 했다. 이렇게 누워 있는 환자는 계속 눌림을 당해야 했다. 잘해야 간단한 x-ray 사진을 찍고, 변비인지 알아 보고.


여자 환자라면 먼저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보고, 난소의 낭종이 있는 지 알아 본 뒤 어느 과에서 치료를 할 지 정하곤 했다. 응급실에 배 아픈 환자가 오면 다른 과 끼리 막 싸우고 그랬다. 참고로 막 이렇게 싸우고 있으면 정리는 응급실 의사가 한다.


암튼 엄청 골치 아팠는데, 지금은 아주 간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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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아픈 환자가 오면 무조건 CT를 찍는다. 그러면 무슨 병인지 다 드러난다. 다른 곳이 이상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응급실에서 CT나 MRI를 찍는다. 맹장염 진단을 손으로 했을 때는 80% 정도 확률로 맞는 게 엑설런트라고 여겨졌지만(20%는 괜히 수술 하는 셈이다. 이것도 유능한 스텝이 진단했을 경우에 한 해 그렇다. 그러니까 과거 15년 전 맹장 수술을 한 사람 중 30%는 잘못 수술을 한 것이다), CT는 99% 이상 정확하다.


물론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CT 찍는 것은 바로 할 수 있지만 리딩은 훈련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 모든 의사들이 같은 CT 사진을 보고 99%의 진단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에서 ‘이상’해 보이는 부위가 너무 작거나 명확하지 않아서 오진을 해 쓸데없는 수술을 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다음 날 아침에 영상의학과 과장님이 오셔서 결정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아파서 소리 지르거나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을 때 혹은 여러 이유가 있을 땐 밤에 바로 수술하기도 한다.


오진율은 영상의학과 의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수술 하는 의사(surgeon)가 좋은 영상의학과 의사를 만나는 것은 복이다. 내 동기의 경우, 영상의학과에서 췌장암이라고 진단해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사망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암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수술할 필요가 없는데 수술을 한 것이다. 물론 수술하는 의사 본인도 책임이 있겠지만 방사선과 의사의 잘못된 진단과 환자의 죽음에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능한 방사선과 의사가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방사선과는 병원에서 엄청나게 중요하다. 모든 분야에서 MRI, CT 혹은 PET-CT(양전자 컴퓨터 단층촬영기. 암 초기에 암을 가장 정확하게 찾는 검사법) 없는 병원은 상상할 수가 없다. 만일 방사선과 의사가 이상하게 리딩(reading)을 한다면 수술 하는 의사(surgeon)는 엄청난 어려움에 처한다. 필요 없는 수술과 검사로 인해 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더 높아진다.


사실 이런 촬영(MRI, CT 등)은 병원 수입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실제 의료비용에는 수술비 보다 검사비가 더 많다고 한다. 진단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다.


방사선과의 전공의에 대한 인기도 하늘을 찌른다. 내가 전공의 때는 그 큰 병원에 오직 1명이 지원을 해서 존재감이 미약했지만(아무나 지원 할 수 있는 과였다) 지금은 최고 성적의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다.


반면 인공지능이 가장 대체를 잘 할 수 있는 과가 바로 방사선과(영상의학과)다. 현재에도 IBM의 ‘왓슨’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고, 미국의 MD 앤더슨 병원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다. 실력은 거의 영상의학과 레지던트 수준이라고 하는데 맹장염의 경우 95% 이상 진단한다고 하고, 암은 83% 정도 진단한다고 한다.




다시 위에서 언급한 응급실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유능한 영상의학과 의사라고 해도 밤이고 낮이고 병원에 상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전문의가 없을 수 있는 시간에도 병을 진단할 수 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고, 환자의 응급실에서의 대기시간을 줄이고, 불필요한 검사를 생략하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의료비 절감에 도움을 줄 것이다.


더욱이 의사의 경우 환자의 컴플레인에만 너무 집중하여 다른 진단을 놓칠 수도 있는데(맹장염 환자임을 의심하여 그쪽만 보다 보면 신장이나 간의 이상을 놓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곳의 이상 소견도 놓치지 않고 진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모든 병원 차트가 전자화가 되어 있어 환자의 모든 데이터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병의 진단이 더 정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밖에 인공지능이 영상의학과를 대신 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를 보자.


1) 환자와의 교감에 있어서


인공지능이 병의 진단과 치료에 큰 역할을 하더라도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은 결국 사람인 의사가 할 수밖에 없다.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고 부작용이 무엇인지는 구글을 찾아도 알 수 있지만, 이를 축약해서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시키는 일은 의사의 몫이다.


하지만 영상의학과는 이런 과정이 필요 없다. 수술의 경우 외과 의사가 보호자나 환자 스케줄을 신경 써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영상의학과와는 상관이 없다.


2) 의학적 돌발 상황


환자를 진단하다보면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단만 하는 영상의학과에서는 돌발 상황이 없다.


3) 인공지능이 '뻘' 짓을 할 때


기본적으로 수술을 하는 의사들도 어느 정도 영상 사진을 볼 수 있다. 컴퓨터도 가끔씩 뻘 짓을 할 수 있는데, 이 때 수술하는 의사가 더블 체크를 해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이 역시 인공지능이 영상의학과를 대체할 또 다른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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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과는 영상의학과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전공의 지원에서 만날 꼴찌만 하는 산부인과에서 1등하는 영상의학과를 시샘하는 글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수술까지 대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로봇 수술이 사람의 수술을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로봇 수술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한다. 마징가 제트의 쇠돌이처럼 기구를 조정하는 건 의사다. 의사 없는 로봇 수술 기계는 쇠돌이나 훈이 없는 마징가나 로보트 태권 브이라고 보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신해서 수술까지 하는 것은 좀 어렵다. 수술실 내에서 병변을 확인하고 반응을 하여 최적의 수술을 하는 것은 그냥 사진으로 진단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술 중에는 돌발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이를 바로 해결해 주지 않으면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또 수술과 치료에 있어 생기는 의사와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도 인공지능은 할 수 없다.


영상의학과보다는 우리 산부인과가 더 나중에 망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다. 그래야 10년 정도 더 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딸들 대학 갈 때 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raksumi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