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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누대로 땅을 일구어서 먹고 살아온 전형적인 농경민족이었다. 소유한 땅의 크기는 곧 삶의 터전이고 힘이었으며, 권력의 상징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하층민의 표식을 저절로 달고 다닌 셈이다.


딸린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땅은 과도한 집착과 애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이름은 근대라는 울타리를 넘어오면서 아파트라는 특출한 공간으로 대체되었다. 땅의 크기를 둘러싼 빈부와 권력의 차이는 오늘에도 여전히 유전된다. 단지 농사를 지어 먹던 그 땅의 이름이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위치와 크기가 바뀐 것이다.


우연히 들린 대전 현충원은 잘 가꾸어진 공원 같았다. 집안에 애국지사가 있을 리 없는 내가 현충원에 들린 까닭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신 납골당의 근처에 마침 현충원이 있었고, 조용한 산책을 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이 풍성하다는 누이의 권유에서였다.


하지만 대전 현충원의 입구부터 조성된 일반 사병들의 빽빽한 묘석들을 보고서 산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에 낮은 묘석들의 무수한 이름들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녔다. 좁디좁은 일반 사병들의 작은 묘역들을 살펴보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괜히 무거워졌다. 키 작은 비석의 앞면에는 망자들의 간단한 계급과 성명이, 비석의 뒤에는 그 무덤 주인의 살아온 시간과 그의 식솔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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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 사병이라면 큰 땅을 가지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전쟁이 난 후 자의반타의반으로 거친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했거나 전란이 끝난 후에 죽어서 이곳에 묻혔을 것이다. 묘역의 자리를 가늠을 해보니 겨우 성인 한 명이 쪼그려 앉을 작은 크기였다. 가난한 땅에서 태어난 이들은 나라를 위해 죽어서도 그 몸을 편하게 누울 만큼의 땅을 충분히 얻지 못한 것 같았다.


사병이 묻혀 있는 입구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장교들의 묘역이 나왔다. 그 묘역에는 비석이 크고 한 몸을 온전히 누울 수 있을 만큼의 온전한 땅이 마련되어 있었다. 더 뒤로는 더 크고 안락한 장군의 묘역이 있고, 맨 마지막의 가장 넓고 우람한 터에는 국가수반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 현충원은 1955년에 6.25때 사망한 국군들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6.25때 사망한 국군묘지로 출발한 서울 현충원은 이후 범위를 넓혀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사람들, 즉, 자격(?)을 얻은 애국지사들의 묘역으로 확장되어서 쓰였다. 서울 현충원이 만석이 되자 서울에 땅을 얻지 못한 망자들을 위하여 1985년에 대전 현충원이 만들어 졌다.


국가수반으로는 1965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서울 현충원에 처음으로 안장되었고, 1979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장되었다. 하지만 故윤보선 전 대통령은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과 같이 묻히기 싫다.”는 이유로 서울 현충원 안장을 거절했고, 故노무현 전 대통령도 현충원이 아닌 그의 고향에 묻히기를 소원하여 현충원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다.
 

대전 현충원에는 이미 만석이 된 서울 현충원 대신에 국가수반을 위한 묘 자리 8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절차대로라면 대전 현충원이 마련된 이후의 망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울이 아닌 대전 현충원으로 와야 마땅할 것이다.


묘지를 지키고 관리하는 관리자에게 물어보니, 원칙대로 한다면 최규하 대통령 이후에는 모든 대통령과 장군들은 서울현충원이 아닌 대전 현충원으로 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한 유족들의 특별한 요청에 의한 특별한 법으로, 특별한 망자들은 여전히 대전이 아닌 서울 현충원에 넓은 땅을 허락 받는다고 한다.


심지어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친일 논란의 백선엽 장군도 사후에 대전 현충원 대신 이미 만석이 된 서울 현충원에 장군묘의 자리를 약속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도 이미 만석이 된 서울 현충원에 특례법의 적용을 요청해 없는 자리를 만들었다.


당사자가 생전에 그리 원해서 된 것인지 아니면 그 특별한 후손들의 요청에 의해서 그리 된 것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대전 현충원에는 특별한 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일반 사병들과 힘없는 대통령이었던 최규하 대통령의 묘소만 안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권력과 힘의 크기에 비례하여 망자를 기념하는 장소와 크기가 결정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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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 대통령 묘소


살아서 권력의 커다란 땅을 누리던 자들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특별한 곳에 죽어서도 큰 땅을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살아서 가난한자들은 죽어서도 서울에서 밀려나 지방의 손바닥만 한 땅을 겨우 허락 받는다.


그래서 영문을 모르는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싶냐고. 나는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날리는 바람에 마냥 흩어지고 싶다고 하였지만, 나의 어머니는 그 소리에 몹시 역정을 내었다.





잘모르는숲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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