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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잠깐.


첫째, 지난 기사를 다시 읽어보니 호해가 진시황의 둘째아들로 되어 있었다. 머리에 마가 끼었는지 헛소리를 써 놓았다. 호해는 진시황의 18번째 아들이다. 쿠데타, 2인자, 언더 독, 둘째 등이 한 이미지를 형성해서 생긴 현상 같다. 둘째인 남동생과 지지고 볶는 사이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참고로 아래 사진에서 탁자 밑에서 출몰하는 놈이 동생이다. 저 연극에서 발명가의 애견으로 나왔다. 동생을 개 같은 놈이라고 편하게 부를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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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마천의 <사기>등 주요한 역사적 기록에서는 진승이 본명인 승이 아니라 자(字)인 섭(涉)으로 되어 있다. 사마천이 정리한 그의 일대기명(名)이 <진섭세가>다. 같은 사람이니 헷갈리지 말도록 하자. 다만 독자제위와 나의 편의를 위해 이 연재에서는 쭉 진승이라고 쓰겠다.   
아 참 그리고.


원래 마빡 일정상 한 주가 늦춰지면 2회 분량을 쓰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내 사정 때문에 휴재가 됐다. 나와 가족의 건강이 악화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엔 초인기, 대화제, 극고퀄 팟캐스트 방송 <안알남 :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도 결방했다. 어찌나 아팠는지, 이 글을 쓰는 현재 이틀간이나 술을 참고 있다. 이번 휴재는 천재지변-인체지변?-이므로 독자여러분들도 십분 이해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여 2주를 쉬었지만 휴재 2주+연재 1주=3회 분량이 아니라 2회 분량을 썼다.


아아, 어떤 독자들은 너무나 마음이 아픈 나머지 심신의 보약이 되는 선물을 보내주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는 그런 거 필요 없다. 여러분의 진실만으로도 나는 배부르다. 필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야말로 독자가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이 연재물의 저자가 그 무엇보다 먼저 미모로 평가받고 싶은 필독이라는 사실만 염두에 두신다면 나는 만족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거늘, 부귀와 영화를 욕심내 무엇 하겠는가? 엄존하는 진리 앞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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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승이 진성을 함락한 사건은 난세가 시작되는 기점이었다. 농노들이 “호미와 가시나무를 잘라 만든 창”을 들고 시작한 난리는 진 제국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이었다. 이세황제 호해에게 반란 소식이 들이닥쳤다.


나는 역사가 100년이 넘은 남자고등학교를 나왔다. 90년대 남고의 선후배문화는 군사적이고 집체적이었다. 내 모교는 거기서 빠질 학교가 아니었다. 서클 선배들의 소집명령에 한 명이라도 비면 모인 후배들이 굴러야 했다. 시키는 대로 곱게 나와 있는 후배는 괘씸죄의 대상이 아닌데도 당장 기분이 나쁘니 눈앞에 있는 놈을 굴리는 것이다. 그러나 호해는 고교 선배가 아니라 황제였다.


호해는 알자(謁者 군주에게 소식을 전하는 전령)가 불쾌한 소식을 알려왔다는 이유로 옥리에게 넘겼다. 처형을 피했더라도 고문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대로 고해봐야 인생만 망친다는 인식이 퍼지자 다음 알자는 진승/오광의 난을 축소 보고했다.


“쥐나 개처럼 도적질을 하는 무리일 뿐입니다. 군수와 관리들이 쫓아가 체포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거의 소탕되었으니 근심할 거리가 못 됩니다.”


그러자 호해는 기뻐했다. 황제가 제국에 닥친 환란을 대면하지 않고 숨어버림으로써, 제국 자체도 식물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전제군주제에서 입지전적인 업적을 쟁취한 군주가 남기는 문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군주는 모든 문제해결을 자기 자신으로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한 사람만 바라보는 시스템. 그런 환경에서 등극한 평범한 후계자. 이 조합은 군주의 문제처리 능력에 과부하를 주면서 국가를 휘청거리게 한다.


입지전적인 창업군주를 가진 왕조가 평범 이하의 2대나 3대 군주를 만나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은 흔하다. 왕조가 지속되기 위해서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조건이 있다. 창업군주를 포함해 2명 이상의 군주가 비범하면 된다. 한 세대 안에 체제가 안정될 수는 없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태종 이방원-세종대왕의 3대(代)가 있었기에 지속 가능했다(정종 이방과는 없는 셈 치자).


호해는 ‘군현제’로 대변되는 제국 단위의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제를 지탱하기에 모자란 인간이었다.



2


호해는 전혀 가망이 없는 인물이었을까?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잔혹한 성품의 명군은 의외로 많다. 궁궐에서 몇 명이 죽든 백성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소개할 일화는 후대의 평가와 다른 호해의 일면을 보여준다.


진시황 때부터 진나라 궁궐에 살던 우전(優旃)이라는 광대가 있었다. 왜소증 환자(난쟁이)면서 노래실력이 있던 그는 진시황의 재미난 수집품 중 하나였다. 실력 있는 개그맨이기도 해서 연회의 감초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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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7년 출토된 진한시대의 작품 격고열창도용(击鼓说唱陶俑)


천하를 통일한 후 궁궐에서 큰 연회가 열렸을 때였다. 황제와 귀족들이 안락한 실내에서 잔치를 즐기는 동안 경비병들은 비바람에 떨며 보초를 섰다. 이 모습을 본 우전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물었다.


“쉬고 싶지 않나?”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우전은 잔치가 떠들썩해질 때를 기다려 경비병들에게 소리쳤다.


“이것들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우전은 진시황보고 들으라고 일부러 기고만장하게 소리쳤다.


“너희들이 키가 장승처럼 커봐야 뭐하는가? 방패를 들고 고생이나 하고 있잖은가? 나는 비록 난쟁이지만 이렇게 편하고 쉬고 있다!”


진시황은 자신의 천하통일에 함께 한 병사들이 공정하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황제는 경비병들을 교대로 근무시키도록 했다. 우전은 진시황의 망상을 바로잡은 일도 있다. 진시황은 레크레이션을 위해 개인 정원, 동물원, 사냥터를 겸하는 공간을 조성하려고 한 적이 있다. 무려 수도 주변 일대로서, 중요한 요새를 모조리 포함하는 규모였다. 대략 경상남도 정도 되는 크기다.


백악관의 전문가들이 가장 고생하는 일 중 하나가 대통령 정신 차리게 만들기이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되면 만화 수준의 유치하고 허황된 공상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 비교적 지적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빌 클린턴은 에어포스 1(1호 공군기 : 미 대통령 전용기)처럼 각 탈것에 전용 1호를 부여하는 놀이를 계획했었다. 1호 헬리콥터, 1호 호버크래프트, 1호 모터보트, 1호 자전거…. 물론 이 병신 짓이 현실화되는 일은 없었다. (선진국의 지도자와 중동 독재자의 차이는 멀지 않다. 둘 다 인간이다.)


누군가는 말려야 한다. 진시황의 경우는 우전이 나섰다. 그는 광대답게 기쁘게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날짐승이며 들짐승이며 잔뜩 가져다 풀어놓아야겠습니다. 자 그럼 외적이 쳐들어올 때 순록과 사슴이 뿔로 놈들을 물리치면 되겠군요?”


정신을 차린 진시황은 계획을 곧바로 취소했다.


호해의 망상도 창조적이었다. 그는 궁궐과 수도의 성벽 전체에 옻칠을 하려고 했다. 우전이 목숨을 걸고 나섰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사실은 황제께서 말씀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먼저 주청을 올리려던 참이었지 뭡니까.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은 죽어나겠지만 뭐 어쨌든 예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매끄럽게 옻칠을 하면 적병들이 죄다 미끄러져서 성벽을 오르지 못할 거 아닙니까? 옻칠을 하는 거야 쉽습니다.”


이어 결정타를 날린다.


“다만 옻칠을 한 제품은 그늘에서 건조를 시켜야 하는데, 성벽 전체가 들어갈 만한 건조실을 건설하는 게 문제겠네요. 자 이제 그 비용을 해결하시면 되겠습니다.”


우전의 말뜻을 알아차린 호해는 껄껄 웃었다. 그는 자신의 사치스런 계획을 당장 취소했음은 물론 우전의 신변도 건드리지 않았다.



3


우전은 실력 있는 개그맨이었다. 기록을 위해 축약된 2200년 전의 말이 번역돼서 건조해 보이지, 실제로는 호해를 신나게 웃겨가며 그의 결정을 유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해의 태도를 보면 철저한 엉망진창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서 승상 이사가 왜 호해를 지지했는지 알 수 있다.


이사는 기득권 쟁취에 성공한 야심가였지만 그래도 제국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옆에 붙어 호해를 지도하고 가르치면 제국을 굴릴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조고였다. 황제가 정치를 하지 않고 놀면 ‘생활비서’인 환관의 힘이 강해진다. 조고는 황제를 차지하기 위해 호해를 안락하고 퇴폐적인 내실(內室)에 고이 모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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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호해는 황제가 되면서 한심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인생이란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최고급 마차. 즉 속도도 빠르다.)가 달려가는 모습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순간이오. 귀로 듣는 것이든 눈으로 보는 것이든 좋은 것은 다 누려보고 싶소.”


조고는 호해의 욕망을 확실하게 충족시켜주며 그를 정사에서 떼어놓았다. 그는 훌륭한 핑계를 마련해주었다.


“황제란 너무나 존귀한 존재라서 일반인이 그 모습을 보아서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조고는 첫째, 권력에 대한 희구가 강했다. 제국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영향력이 중요했다. 둘째, 그는 환관이다. 사람은 자신이 성공한 방식을 신봉하며, 그 외의 가치엔 눈을 돌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조고는 1인자의 총애와 궁중 암투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 인물에게 제국은 으레 관리와 군인들에 의해 자동적으로 굴러간다는 인식이 생기기 쉽다. 즉 제국은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배경이다.


그렇다 해도, 조고가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인간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반면 이사는 진승과 오광의 난이 황제의 정신을 차리게 할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반란을 수습하는 일은 곧 반란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이사는 호해에게 다음과 같은 행동변화를 촉구했다.


1) 정무에 복귀할 것
2) 아방궁 건설을 포함, 무리한 토목공사를 중지할 것
3) 법률, 부역, 세금을 완화해 백성들의 불만을 줄일 것
4) 반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제국의 역량을 동원할 것


호해는 이사의 간언을 씹어 넘겼다. 황제와 황제 외부의 연결고리는 조고였다. 호해는 조고의 말만 듣고, 그에게만 명령을 하달했다. 제국은 조고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4


진승과 오광은 진성을 점령함으로써 제국에 대항하는 근거지를 마련했다. 반란은 1차 성공했다. 이제 다음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정치행위가 필요했다. 또 하나는 조언자였다. 반란군 병사들은 진승을 구세주처럼 바라보았지만 진승 자신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군사적, 정치적 식견을 끌어올려야 한다.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는 것, 바로 ‘사람’이다. 진승은 인기 있는 사회적 명사에 목이 말랐다. 진 제국의 체제가 공공의 적이라는 공감대는 이미 천하에 퍼져 있었다. 진승이 진성을 함락시키는 시점에서 이미 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곁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진승과 오광은 혹여 ‘그 두 사람’이 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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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장이(張耳)’와 ‘진여(陳餘)’였다. 제국에 대항하는 반체제 인사로, 두 사람의 이름은 협객의 상징과도 같았다. 진 제국이 수립된 후 홀연히 실종된 장이와 진여. 제국은 그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장이는 천금, 진여는 오백 금이었다. 생사도 확인할 수 없이 전설처럼 전해지던 장이와 진여는 놀랍게도 진승이 차지한 진성에 있었다. 둘은 진성 관아의 문 앞에서 진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장이. 바로 유방이 젊은 시절 맨발로 찾아가 식객 노릇을 했었던 그 인물이다. 장이는 젊은 시절 일명 ‘신릉군’ 위무기의 식객이었다. 신릉군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외침으로부터 약소국인 조국 위나라를 지켜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진나라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조국에 죄를 짓고 조나라를 구원하기도 하는 등(그래서 조나라에서는 슈퍼스타였다.) 일세의 풍운아였다. 그런 인물의 식객노릇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야깃거리다. 이미 노인이었던 장이는 신릉군의 식객 중 거의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유방은 신릉군의 광팬이었다. 애초에 장이를 찾아가 비벼댄 것도 신릉군의 체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장이는 어떻게 명사가 됐을까? 그는 협객들이 늘 그렇듯이 배포가 크고 남자답다는 평을 들었지만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였다. 장이는 원래 위나라 수도인 대량(大梁) 사람이었는데, 죄를 짓고 조국을 탈출했다.


어떤 죄였을까? ‘사내대장부’로 평가받은 그의 명성을 생각해 보건데 절도나 사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은 매우 마초적이었다. 진승, 오광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장이는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었다. 계산에 따라서는 80세를 넘겼을 수도 있다. 오래도록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지능범보다는 강력범이 되는 게 낫다. 아니, 사람을 패거나 죽이는 짓은 나은 정도가 아니라 남자다움의 징표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 수컷을 평가하는 데 있어 ‘욱하는 성질’뿐 아니라 수습하는 능력도 중요시했다. 만약 혈기를 참지 못하고 사람을 패 죽인 후, 그대로 잡혀 저자거리에서 사형당한다면 그저 살인범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령껏 사라져 소문을 만든다면 비로소 협객으로 쳐줄 수 있다.



5


장이는 지금의 하남성 일부인 외황(外黃)이라는 곳에 숨어들었다(외황은 정확한 소속이 정해지지 않은 국경지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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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된 곳이 외황


그는 인기인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지성과 담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비록 유랑생활 중이지만 인맥을 넓힐 수 있었다. 외황에는 동네마다 있는 부유한 지역 유지가 있었다. 당연히 협객들이 손님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이 집안에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부자의 딸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로 유명했는데, “남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좋은 집안 미녀가 왜 겨우 머슴에게 시집갔는지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머슴은 하는 일에 따라 등급과 세경이 천차만별이다. 중세시대 집사와 조선시대의 마름(머슴들의 총 지휘자)은 요즘으로 치면 고용 CEO로, 지역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작농, 농노들은 지주나 영주의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다. 좋은 주인보다는 좋은 집사나 마름을 만나는 게 생활수준에 보다 직결된다. 미녀의 남편도 능력이나 수입이 상당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밑에서 일하는 중요한 인재였을 가능성이 제일 컸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미녀는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폭력 남편이었을까?- 신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녀는 자기 때문에 열이 뻗쳤을 아버지의 근처에 숨기로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빈객에게 ‘의탁’했다.


‘의탁’했다라. 어쩐지 몸을 맡겼다고 해도 될 정도의 느낌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지만 빈객과 어떤 식으로든 정을 쌓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빈객은 도망자 신세인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신이 현명하고 능력 있는 남편을 찾는다면, 장이가 적임자요!”


빈객은 이혼수속은 물론 그녀를 장이와 재혼시키는 일까지도 도맡아 처리했다. 이 시점에서는 미녀의 부자 아버지도 사건 내역을 모두 알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전 사위보다 이름 있는 인물에게 딸을 시집을 보내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던 데다가, 장이는 집도 절도 없는 처지였기에 데릴사위로는 이상적이었다.


장이는 재혼상대가 돼 줬다는 이유로 장인에게 두둑한 연금을 받아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됐다. 그는 중원 천하에서 한 가닥 한다는 사내들을 불러 편안한 잠자리와 맛깔 나는 주안상을 대접하면서 인맥을 넓혔다. 그 와중에 유방 같은 불한당도 끼어들어와 비벼댔지만 장이는 사람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유방은 한 번 맛을 들이더니 맘대로 쳐들어와 어떨 때는 몇 개월씩 술과 잠자리를 해결하고 가곤 했다. 유방은 장이가 베푼 대접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장이의 명성이 높아지자 위나라 정부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위나라는 장이의 범죄기록을 말소해주기로 했다. 거기에 더해 외황 지역의 수령으로 임명했다. 장이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외황의 종신 사또가 됐고, 국토가 좁아 고생이던 위나라는 주인 없는 지역(혹은 분쟁지역)을 합법적으로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장이의 장인은 국가적 단위의 명문 귀족이 됨으로써 사위에게 주었던 연금을 수천 배로 되돌려 받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진나라가 수도 대량을 함락시켜 위나라를 멸망시키기 전까지는….



6


진여 역시 대량 출신으로, 장이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잘 한 케이스다. 그는 젊은 시절 국경을 넘어 조나라로 놀러 다녔다. 고대의 협객들은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방을 돌아다니면 사건사고를 일으키든, 이야깃거리를 남기든 인지도가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아들이 없거나 변변찮아 데릴사위 감이 아쉬운 부자들의 눈에 띄게 마련이다.


진여는 장이의 베스트프렌드였다. 장이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그는 처음에는 장이를 아버지처럼 모셨다. 그러다가 나이와 신분을 초월해 ‘문경지교(끈끈한 우정을 상징하는 말. 이 사자성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각자 알아서 찾아보시자. 세세하게 설명하기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를 맺었다. 신릉군의 식객이었다가, 이제는 천하에서 식객을 받아주는 장이였다. 새파란 젊은이가 그런 장이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진여는 이미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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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장이 (우) 진여


조나라의 쟁쟁한 부호 중 하나가 진여를 냅다 픽업했다. 유학에 일가견이 있을 정도로 명석한 유명인인데 밑천은 없다! 딸을 시집보내 집안을 넘겨주기에 이만한 사내가 있을까? 진여 역시 장인의 돈으로 풍족하게 명사가 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더없이 좋았지만...


위나라가 멸망하자 두 사람은 다시 협객이 되어야 했다. 그래도 진나라가 다른 나라를 추가로 멸망시키느라 정신이 없던 몇 년의 시간을 벌었다. 장이와 진여는 요령껏 가족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위나라 일대를 저인망처럼 긁어 두 사람이 위나라를 대표하는 명사임을 확인한 진나라는 그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던 것이다.


현상수배자가 된 장이와 진여는 서로에게 의지해 진성으로 숨어들었다. 가난했을 때 천하를 주유하던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둘은 진성의 성문 보초로 위장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의 기지는 대단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수배 전단을 열심히 붙이고 다니면서 관리들의 눈을 속였다.


위기도 있었다. 한 번은 진나라 장교가 되도 않는 트집을 잡아 진여를 두들겨 팬 적이 있었다. 진여는 참다 참다 반항하려고 벌떡 일어났는데, 옆에 있던 장이가 그의 발뒤꿈치를 밟았다. 장교는 쓰러진 진여를 신나게 밟았다. 한바탕 스트레스를 푼 장교가 사라지자 장이는 진여를 뽕나무 밑으로 데려가 혼냈다.


“우리가 처음에 뭐라고 약속했는가(어떤 각오를 하고 도망생활을 시작했는가)? 약간의 분을 참지 못해 고작 시골의 하급 관리에게 죽으려고 작정한 것인가?”


진여는 장이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렇게 굴욕을 참아가며 훗날을 도모하려는데 진승, 오광의 난이 일어났고 뒤이어 두 사람이 위장 취업한 진성이 진승의 손에 떨어진 것이었다.



7


진승은 귀족문화를 싫어했지만, 소위 말해 ‘배운 사람’이 자신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았다. 장이와 진여에게는 정치적 식견과 인맥이 있다. 그들을 거느리게 된다면 날개를 다는 격이다. 장이와 진여 콤비가 살아서 진승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적으로 유리한 뉴스다.


장이, 진여를 공짜로 손에 넣은 진승과 오광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을 차례였다. 사실 진승은 너무나 갑작스런 성공에 앞으로 어떻게 반란을 전개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던 참이었다.


진나라 관리와 군사들을 갈아 마신 진성의 사내들은 진승을 영접하면서,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께서는 스스로 나서 갑옷을 입으시고 날카로운 무기를 들어 부하들을 이끌고 흉악한 진나라를 벌하셨습니다.”


진나라의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천하에 선언한 인물이라는 뜻.


“그리고 초나라의 사직을 다시 세우고 망한 것을 다시 세우고 끊어진 것을 다시 이으셨습니다.”


민초들의 희망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의례적인 아첨이다.


“그 공덕을 보건데, 당연히 왕이 되셔야 합니다. 천하의 장군들을 부리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면 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어서 초나라 대왕의 자리에 오르십시오.”


자, 이 사람들의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진승은 장이와 진여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두 ‘문경지교’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한 번 들어보자.


“진나라는 인간 사회의 법도를 무시하고 남의 나라와 그곳의 왕조를 절멸시켰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인력을 소진시키고 백성들의 재산을 탕진하게 했습니다. 장군께서는 참지 못하시어 눈을 크게 뜨시고 용기를 발휘하시었사옵니다. 만 번 죽을지라도 한 번 살겠다는 각오로(만약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천하를 위해 잔인하고 폭력적인 진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


여기까지야 의례적인 말머리다. 다만 진성의 토착 주민들보다 말솜씨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자.


“그런데 오늘 진성을 점령하고 나서 왕이 되려고 하십니다. 스스로 왕위에 오르신다면 개인적 야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천하에 들키는 꼴이 되고 맙니다. 왕이 되는 일은 훗날로 미루십시오.”


훌륭한 분석이다. 개인적인 야심은 훗날에 충족하면 된다. 지금은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일어난 정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면 된다.


“왕이 되는 일을 뒤로 미루십시오.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십시오. 동시에 한편으로는 진나라에게 망한 여섯 나라에 사람을 보내 왕조의 후예를 찾아 다시 왕으로 세우십시오. 그러면 진나라를 제외한 천하는 장군의 당(堂 한 편의 무리)이 됩니다.”


일개 장군의 지위를 유지하라. 대신 임명권을 쥐고 멸망한 6개 국가의 왕조를 다시 세우라! 그러면 명분을 갖게 된다. 부활한 6개 국가의 왕들은 진승의 임명에 의해 지배권을 부여받는다. 배신하면 공신력을 상실하고 일개 도적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6개 국가가 ‘진승의 승인에 의해’ 부활하면 진나라는 병력을 6개 방면으로 분산시킬 수밖에 없다. 국토를 소유하지 않은 군사집단인 진승의 무리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어디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이 있는 서쪽으로.


“장군께서는 서쪽으로 진격하시면 됩니다. 진나라가 6개 국가로 토벌군을 보내면서 병력이 분산되는 동안, 6개 국가는 (국가의 정통성이 바로 진승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장군께 원군을 보내게 됩니다. 진격하는 길에 성에 틀어박혀서 장군께 대항하는 수비군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 6개 국가의 유민들이 알아서 내부 쿠데타를 일으켜 제국의 관리와 장교들을 씹어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나라 수도 함양을 차지한 후, 진나라 왕조를 없애버리고 제국의 수도에서 천하를 재정비하십시오. 망했다가 부활한 제후들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시고 진나라의 그것과는 다른 관대한 정치를 펼치십시오. 그러면 자연히 대업을 이루실 것입니다.”


대단한 분석이지 않은가? 장이와 진여가 그저 결혼을 잘 해서 스타가 된 게 아니다. 그러면 부활한 제후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공식화하기 위해서라도 진승을 천하의 제 1인자로 추대할 것이다. 그때 가서 못이기는 척 황제가 되건 패왕이 되건 선택하면 될 일이다. 두 사람은 마지막 발언으로 못을 박았다.


“이 좁은 진성 땅을 거점으로 왕위에 오른다면….”


그렇다면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너도 나도 독립해 개인플레이를 펼칠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진승 본인이 외쳤지 않은가? 왜 나는 진승처럼 죽창을 들고 일어서면 안 된단 말인가? 이러면 진승은 자신이 벌려놓은 장기판에서 일개 장기 말이 될 뿐이다. 이런 저런 왕들 중 하나, 단지 가장 먼저 왕이 된 인간에 불과하게 된다.


이렇게 정확한 족집게 과외를 받고도 진승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기어이 진성에서 왕위에 오르고 말았다.



8


왜 그리 급했을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그의 일갈처럼, 그의 일차적인 목표는 본인의 성공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한 야심을 가지고 그의 칭왕(稱王 스스로 왕위를 주장함)을 논하려 하면, 명석한 그가 갑자기 7살짜리 어린애처럼 보인다.


<나 빨리 성공할래애애애…!!>


생각해 보자. 갓 반란을 일으킨 여러분에게 10만 명의 병력이 있다고 치자. 당신의 직위를 장군이라고 한다고 10만 명의 부하들이 당신을 무시하는가? 당신의 칭호를 장군에서 왕으로 바꾸면, 자동적으로 병력이 늘기라도 하는가? 그럴 리가 없다. 아프리카 내전지역에는 별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많다. 자잘한 군벌들이 자기 모자에 별을 너덧 개 씩 달고 다닌다. 별을 육십 개 쯤 모은들 미군 중령이 지휘하는 전투력에 미치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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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에게는 장이와 진여가 이해하기 힘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초나라의 기치를 걸고 일어났고, 항연의 이름을 사칭했다. 자신이 벌려 놓은 프로파간다에 책임을 져야 했다. 초나라가 되살아났다고 선전해 놓은 이상 가시적인 국가적 실체를 제시해야 한다. 그 일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영 부담스럽다.


둘째, 진승과 오광을 포함한 중원의 백성들 거의 전부는 진나라의 전제군주적 군현제가 위대한 인류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진시황과 이세황제의 야욕은 백성들의 생활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2200년 후의 우리는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인류문화를 얼마나 큰 폭으로 끌어올렸는지 잘 안다. 원래 훈수가 쉬운 법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수를 읽기 힘들다.


당시 백성들이 시스템의 설계도가 아니라 사용자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이다. 당연히 체제 저항적이 된다. 동시에 비교적 살기 좋았던 전국칠웅 시대를 그리워하게 된다. 과거지향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제국은 나쁘고 왕국이 옳다. 진나라에 대항하는 왕국들이 있던 시절을 되찾으려면, 왕국을 세울 기회가 있을 때 세워야 한다. 인간의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채라면, 먼저 진나라를 주멸하라는 주문은 멀게 느껴진다. 일단 왕국을 세워야 진나라를 물리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이리라. 아주 자연스레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또 쓰는 독자여러분과 내가 그때의 진승이라면 장이와 진여의 계책을 바로 수용하는 지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진승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장이와 진여를 차지하고도 그들의 두뇌를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정한 평가지만 지성의 차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차라리 두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승은 지금보다 더 인정받았을 것이다.



9


진승은 왕에 오르면서 국호를 ‘대초(大楚)’에서 ‘장초(張楚)’로 바꿨다.
(→ 이것이 초한쟁패의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의 통설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대초와 장초는, 아무리 기록을 들여다봐도 국명을 선택했을 때의 뉘앙스가 다르다. 특히 <자치통감>에서는 ‘칭(稱)대초’, ‘호(號)장초’라고 분명히 다른 한자로 기술되어 있다. 두 한자는 모두 ‘일컫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국명을 바꾼 게 아니다. 칭(稱)은 정식으로 이름 짓는 것에 가깝다. 반면 號(호)라는 한자는 어떤 말이나 발음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모양새를 뜻한다.


號(호)는 문맹인 평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별칭이라고 볼 법하다. 더불어 이 글자는 ‘크게 부르짖다’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나는 ‘장초’가 대초의 애칭이자 별칭이라고 본다. 평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선전용 국명이다. (나의 생각도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지해주시기 바란다.)


왜 張(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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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이란 한자는 중국과 한국에서 워낙 흔한 성씨라 원래의 의미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지만, 생동감을 자랑하는 글자다. 한자가 원래 상형문자라는 사실은 모두들 알 것이다. 張처럼 굳이 상형이 아니라 두 자(자)가 합쳐진 한자라 할지라도, 고대 중국인들은 글자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張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전달한다.


- 그릇이나 연못, 우물 같은 형상을 상상해보자. 안에 담을 수 있는 내용물(물이든, 술이든, 피든, 그 무엇이든)의 부피가 한정된 꼴의 사물이다. 이 안의 내용물이 점점 차오른다. 차오르고 차오르다가, 콸콸 솟아 넘친다. 넘쳐나는 내용물이 사방을 적시고 덮으며 한없이 퍼진다.


이것이 張(장)이 표현하는 이미지다. ‘장초’는 진나라에 대항하는 민중의 의지와 분노가 끓어 넘쳐 천하를 뒤덮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정말이지 기가 막힌 네이밍이다. 진승과 오광의 프로파간다 능력에 대해선 지난 편에 썼다. 두 사람의 감각은 보면 볼수록 보통 수준이 아니다. 가난에 신음하던 하층민 출신인 두 사람은 어떡해야 민중을 자극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귀족이 아무리 재수 없어도, 그들의 지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지략과 병법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동/선전 능력만으로 진행된 거사는 치명적인 한계를 품고 있었다.



10


진승이 왕이 되자, 천하의 군과 현들이 장초의 반란에 호응해 독립했다. 어떤 군현은 군수와 현령이 주민들의 뜻에 따라 이세황제를 배신하고 독립했다. 대체로는 주민들이 현지에 파견된 진나라 관리들을 때려죽이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했다.


만약 진승이 장이와 진여의 의견을 따랐다면 모든 독립지역은 자연스레 ‘명목상’ 그의 휘하가 된다. 로컬 커뮤니티가 ‘명목상’ 배신할지라도 천하의 명분은 진승에게 있다. 그러나 진승이 왕이 됨으로써 천하는 각자 다른 야심을 품고, 아니 일단은 살아남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독립하고 분열했다. 다름 아닌 진승 본인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우리는 옛 초나라, 그러니까 진짜 초나라의 심장부인 회계군으로 시선을 돌려보도록 하자. 악의 축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옳다. 그 저항의 선봉을 지지하는 것도 맞다. 맞는데...


항연의 진짜 아들인 항량의, 그리고 그의 진짜 적손자인 항우의 입장이란 것이 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상황이다. 항량은 이미 반 진나라/초나라 부흥 전쟁의 준비를 마쳤다. 항우는 절륜한 카리스마와 괴력을 내뿜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대초’ 혹은 ‘장초’라는 짝퉁이 갑툭튀했다. 수장은 두 명(진승과 오광)인데, 듣자 하니 하나는 항량 본인의 아버지인 항연이란다. 그렇다면 부소라는 나머지 하나도 가짜임이 분명할 터.


‘사짜’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린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진승/오광의 난에 참여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잖은가. 초나라 부흥의 선봉인 항씨 가문의 수장, 항량은 지극히 당연한 판단을 내린다.


“일단 지켜본다.”


인력, 재력, 배경, 병법 실력 모두를 가지고 있는 항씨 집단이야 숨을 죽이고 사태를 관망할 여유가 있다. 그러나 유방의 고향인 패현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패현은 대단한 곳이 아니다. 주민 대다수가 소박한 농민인 일개 현이다. 홍수처럼 불어나는 반란군이 하루 이틀에 휩쓸어버릴 수 있는 동네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유방은 망탕산에서 한가로운 산적 두목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 편 <거병(擧兵 군사를 일으킴)>에서 계속. 이번 편에 거병 편을 쓰려 했지만 도무지 지면 상...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안알남이 남녀상열지사의 고민까지 해결해주게 되었다. 사연풀이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중이다. 지난 회 타로점 특집에 이어 이번에는 걸그룹 아이돌을 통한 21세기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이야기한다. 어떤가. 만사를 제쳐두고 듣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 모든 교양은 남얘기다. 넌 이미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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