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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하다 따끈한 기사 하나를 봤다. 예측은 했지만, 상당히 놀라운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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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도, 내 선배가 신입생이었을 때도 전문연구요원 폐지에 관한 얘기는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욱이 요즘 박사과정 중인 이들에게서 들려오는 T.O 감소 관련 얘기 역시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했다.


내가 놀랐던 건 세부 내용이었다. 3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기업체 산업기능요원 2018년부터 단계적 규모 감소, 2023년 최종 폐지


-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2019년 완전 폐지


- 2019년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폐지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정부출연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의 T.O 일부 증가. 그러나 연구소 소속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역시 단계적 감소 후 2023년 완전 폐지


개념 자체가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전문연구요원도 석사냐 박사냐에 따라 나뉘고, 산업기능요원이라는 개념까지 들어오면 도긴개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념을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


우선 산업기능요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산업체요원’이나 ‘병역특례(줄여서 병특)’로, 특정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대학생에게만 열려있는 제도는 아니다.


2014년에 개정된 병역법으로 인해 산업기능요원과 관련된 혼란이 한 차례 있었다. 신체등급 1~3급(현역 입대 대상) 판정을 받은 대학생들이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원할 수 없게끔 변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산업기능요원은 신체등급 4급의 대학생과 신체등급 1~3급이면서 마이스터고/특성화고를 졸업한 고졸 학력의 청년만 지원할 수 있다.


산업기능요원은 과거 여러 병역비리 사건에서 등장하며 폐지와 유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속해왔다. 대학생 T.O가 사실상 없어진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산업기능요원의 상당수가 IT 업체나 스타트업 업체에 근무 중이며 이 업체들이 대학생들의 비선호 직장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런 변화가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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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능요원 당시, 부실복무 논란으로 재입대했던 싸이


오늘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산업기능요원이 아닌 ‘전문연구요원’이다.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두 가지 케이스로 나눌 수 있다.


1. 연구소 근무 전문연구요원: 정부출연연구소 및 기업부설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전문연구요원. 엄밀하게 구분하면 두 연구소가 나뉘어야 하지만, 본질은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같은 케이스로 분류. 2023년까지 존속


2. 박사과정 대체복무: 군 직접 복무나 연구소 근무가 아닌, 본인이 소속된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군 복무를 인정받는 형태. 2019년 완전 폐지 예정


연구소 근무 전문연구요원은 조금 여유가 있다. T.O는 지속적으로 줄지만 어쨌든 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사과정 대체복무인데, 현재 공과대학이나 자연대학의 상황에 비춰볼 때 박사과정 대체복무의 급격한 폐지는 필연적으로 후폭풍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를 학부생/석사과정/박사과정으로 분류할 경우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1) 학부생


공과대학/자연대학 학부생 중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뜻이 있는 경우, 애초부터 박사과정 대체복무를 계획한다. 이걸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 비난하기는 힘들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저학년에서 배웠던 개념들이 심화되는 공과대학/자연대학의 특성상 2년의 군복무는 학업에서의 단절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1~2학년인 학부생들은 조금 낫다. 현재 3~4학년이면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이들의 경우, 약 10년 정도의 수학 플랜을 짜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3학년 후반부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각종 연구실과 컨택하고, 경력을 쌓아 대학원으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박사과정 대체복무 제도라 할 수 있다.


만일 이 제도가 사라질 경우 현재 3~4학년 학생들은 매우 애매해진다. 연구소에 근무하려면 물리적으로 박사를 끝낼 수 없으며, 석사를 끝내고 연구소로 향할 경우 본인의 연구에 있어 경력 단절이 이뤄지니까. 현역 입대할 경우 셈이 더욱 복잡하다. 3학년 이후 입대해 2년을 군대에서 보내고 오면, 당연히 4학년 수업에 있어 큰 손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현역 입대를 선택할 경우, 우수한 자원들이 국내 대학원이 아닌 해외 대학원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대체복무라는 제도를 위해 상당수의 우수한 자원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처음부터 유학을 생각하는 경우엔 극초반에 병역의 의무를 완수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복무가 사라진다면 굳이 국내 대학원을 선택해야 할 명분이 사라진다. 말 그대로 그들을 옥죄고 있던 사슬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두뇌 유출’이 본격화될 확률이 높다.



2) 석사과정


현재 석사 진학생의 경우 두 가지 케이스로 분류할 수 있는데, 병역의 의무를 이수한 진학생과 병역의 의무를 이수하지 않은 진학생이다. 전자의 경우 이번 일과 무관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후자의 목적은 심플하다. ‘박사과정 대체복무’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것이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석사과정을 끝낸 후 연구소에 취업해 대체복무할 수도 있지만, 미필 석사과정의 상당수는 이러한 루트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일부 석사과정 학생이 연구소에 취업하긴 하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연구실과의 트러블로 인해 박사과정을 포기하는 학생들이다. 원칙적으로는 현역 입대도 가능하지만 석사 졸업 후 현역 입대를 하기에는 취업 시장에서 그들이 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석사과정 학생 역시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당장 2019년부터 박사과정 대체복무 제도가 폐지되면, 대체복무를 전제로 박사과정을 생각했던 석사과정의 학생이 대거 연구소 전문연구요원으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소 지원을 준비했던 기존의 학생들과 겹쳐 석사과정 역시 제도의 변화에 따라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3) 박사과정


박사과정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 현재 박사과정 대체복무와 연관된 제도를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박사과정 대체복무 규모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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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박사과정 대체복무요원 선발 규모


2016년 고시된 계획을 보면, 올해 박사과정 대체복무 제도의 선발 규모는 약 700명이다. 이는 또다시 전기(4월 선발)와 후기(9월 선발)로 나뉘는데, 전기와 후기가 7:3 비율로 구성된다. 또한, 전체 규모 중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의 선발 비율 역시 7:3이다.


결코 큰 규모라곤 볼 수 없다. 매년 상당수가 박사과정 대체복무에 불합격하고 있으며, 선발되지 못한 인원이 누적되어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에 대체복무가 전격 폐지될 경우, 불합격된 이들은 완전히 ‘내몰리는’ 상황에 봉착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행 제도를 기준으로 할 때, 박사과정을 수학하는 이들은 만 28세까지 군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 현역으로 대학교에 입학해 휴학 한 번 없이 성실히 박사과정까지 밟을 경우 한국 나이로 29~30살이 되는데, 이들이 2018년까지 대체복무와 관련된 길을 찾지 못한다면? 원칙적으로는 곧바로 현역 입대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일까? 현재 나온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 박사과정 대체복무로 배정된 인원은 약 1,000명. 만일 이 수치가 ‘2018년부터 대체복무를 시작하는 인원’이라고 해석하면, 박사과정 대체복무 폐지까지 남은 기간은 대략 2년 반 남짓이다. 현실적으로 대체복무 폐지의 여파를 완화하기에 충분한 기간은 아니다.


이해는 한다. 인구절벽 현상은 가시화되고 있고, 병역 자원은 일정 시기 이후부터는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유지되는 수천 명 규모의 자연계 병역특례를 없애야 하는가. 이것은 보다 신중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사실 수천 명이 추가 입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더욱 문제인 건 이 사안에 대해 국방부가 과학계 및 이공계와 별다른 교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보면 과학기술계의 강도 높은 성토를 볼 수 있다. 단순한 ‘쪽수’ 논리에만 매몰된 국방부의 선택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가 예측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학원 진학률이 높아지고 국내 기술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한국이 보유한 기술이 세계 최강인줄 아는, 말 그대로 국뽕 낭낭하게 말아드신 분들이 꽤 많다. 명심하시라. 우리는 아직 과학 분야에 있어서는 노벨상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국가이며, 그토록 좋아하시는 전자 제품들의 핵심기술 역시 외국 지분이 상당수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논리에 의한 국내 대학원으로의 유인책 제거는 과학기술계의 기초 붕괴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성게매니아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