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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어버이연합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버이',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이 나빠진 건 사실이다. 고집불통이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며 노욕에 빠진 사람이라는 인상이 짙어져 버렸다. 거기에다가 '폭력', '선동', '빨갱이' 이런 단어도 저절로 연상된다.


물론 어버이·어르신 중에도 정말 괜찮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뚜렷하게 누군가를 꼬집어내자면 몇몇 짐작되는 분들은 있을 뿐 애매해진다. 술자리에서도 이 지점에서 꽉 막혀 버렸다. 결국 김수환 추기경이나 신영복 선생 같은 분을 애매하게 들먹이며 '어른이 없다'며 찝찝하게 단정 지어 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분명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고민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책이 나왔다. 제목은 '별난 사람 별난 인생'(김주완 저, 도서출판 피플파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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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총 8명이 나온다. 더러는 필자도 아는 사람이고, 더러는 처음 듣는 사람도 있다. 일단 출연(?) 인물부터 살펴보자.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장형숙 할머니

-방배추(방동규) 선생

-양윤모 영화평론가 겸 시민운동가

-김장하 선생

-임종만 창원시청 공무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순재 전 창원 동읍 농협조합장


이 중 채현국, 장형숙, 방배추, 김장하 씨가 바로 오늘 내가 말할 '어른'이다.




"가진 게 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수백만 원이나 수천만 원 같은 작은 돈은 포기할 수 있다. 조금 재산이 있으면 몇억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는 단위가 수백억 원이나 수천억 원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엄청난 재산을 벌었다. 가족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냥 그걸 버리다시피 한다. 기부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줘 버린다. 이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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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이사장을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흥국'으로 시작되는 모든 기업들의 총수였다. '흥국'이란 '채현국이 흥해라'라는 뜻으로 채현국 이사장의 아버지 채기엽 씨가 지은 이름이다. 채현국은 회사 이름 대로 흥했다. 양산 개운중학교, 경남대학교(당시 마산대학교)를 샀으며, 강원 도계 흥국탄광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채현국 이사장은 1960년대 당시 돈으로 매달 200만 달러에 가까운 흑자가 났다고 한다. 1970년 납세자 순위 전국 2위였다. 탄광이 주 수입이었고, 이 외에도 조선(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000톤 단위의 배를 만든 곳이 흥국조선이다), 금융 등 손을 안 대는 것이 없었다. 아마 계속 쭉 흘러갔으면 삼성, 현대 못지않은 대재벌이 됐을 것이다.


1972년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했다. 대한민국은 독재국가가 됐다. 독재란 정치적으로만 자유가 억압된 것이 아니다. 독재란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단어다. 딱 잘라 말해서 이제 대한민국은 박정희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채현국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그 전에 경남대학교도 문교부에 헌납했다(그걸 피스톨 박, 박종규 경호실장이 먹었다. 지금도 박종규 일가가 경남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흥국탄광은 노동자들에게 그냥 나눠줬다. 원래 내 것이 아니니 가져가라고 했다. 나서지 않는 노동자들에게는 몇 년 치 임금을 쥐여줬다. 그중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도망쳐 온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채현국은 그런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을 몰라야 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더라도 못 불지 않겠냐는 것이다.


서울대 친구들을 불러 모아 기업을 그냥 쪼개줬다. 그냥 던져 줘 버렸다. 니가 이사해라, 니가 사장해라. 나는 더는 못하겠다. 그중에 어리숙한 친구가 있었다. 채현국을 몰래 등기이사로 올려놨다. 아마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부도를 냈다. '등기이사' 채현국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렇게 1973년 이후 지금도 채현국은 신용불량자다. 그때 채현국의 나이 38살이었다.


필자는 채현국 이사장이 있는 양산에 가본 적이 있다. 학교 건물 안에 채현국 이사장의 거처가 있다. 요즘 신식 원룸보다 조금 더 못한 5평 남짓한 원룸에 옷가지 몇 벌을 걸어 놓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학교 이사장이니까 학교에서 밥이 나오고 부인이 전 국립대 교수니 연금이 있다. 그리고 잘 나갈 때 민주화 운동가나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막 사줄 때가 있었다. 그런 인사들에게서 삥을 뜯으며(최근엔 좀 유명해져서 전국을 다니며 특강료를 받으며) 통장 하나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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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진주 사람이라면 '남성당한약방'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삼천포 한약방 점원으로 일하면서 19살에 전국 최연소로 한약종상(현 한약업사)이 됐다. 그리고 남성당한약방을 차렸다. 명의로 소문나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돈을 벌었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정도였다. 돈을 그냥 '쌓았다'. 그리고 쌓은 돈은 그냥 뿌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줬는지 본인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짐작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음으로 양으로 알려진 바만 해도 진주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것, 진주지역 개혁언론이었던 진주신문 운영비 지원한 것, 문형배 판사 등 수많은 지역 인재와 시민단체가 그의 지원을 받은 것 등이 있다.


왜 그랬는가 물으니 "아픈 사람과 사회적 약자에게 돈을 벌었으니 돈을 되돌려 준 것뿐"이라고 한다. "똥을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고 한다.


수없이 정치에 나서라고 해도 나서지 않았다. 얼마나 나서지 않았는가 하면 평소 안면이 있던 저자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국장 외에는 제대로 인터뷰 한 사람조차 없다. 모두들 돈은 받았지만 김장하 선생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돈 버는 건 최고의 마약이다', '돈은 똥이다' 이 어른들이 엄청난 돈을 벌고도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


장형숙 어른.jpeg


올해 90인 장형숙 할머니. 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좋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주소를 알아내 그 사람에게 손편지를 보낸다. 저자 김주완 국장도 이렇게 편지를 받아서 알게 된 어른이다.


"자연을 벗 삼은 농부님들의 수고 덕분에 아직 먹고 살고 있군요. 이름도 생소한 '크라우드 펀딩' 수고 많이 하셔요. 나는 늙어서 동참할 기력도 없지만 박수 치고 자랑하고 싶답니다." 


-2014년 5월. 자연농법 농사펀드를 하는 남산골 농원 조관희 씨가 받은 편지


이런 편지를 정확히 언제부터 써 왔는지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한다. 적어도 10년은 더 됐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 10통이 넘게 보내기도 했다니 최소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할머니의 편지를 받은 셈이다.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요? 편지라도 써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면 보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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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황석영 선생과 함께 조선 3대 구라라고 하는 방배추 선생. '스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가 백기완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민주 인사들과 어울리다가 1974년 박정희 정권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받고 나올 때 이빨이 그냥 우수수 빠졌다고 한다. 41살 때부터 그는 완전 틀니로 살고 있다. 민주화 유공자 이런 것에도 등록하지 않았다. 필자가 보기엔 그저 '협객'으로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고초로 여긴 것 같다.


후배들이 회사를 차려 주기도 했다. 중국에서 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잠시 좋은 차도 몰고 다녔다. 그때 그의 모친은 길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모친은 방배추 어른에게 '이놈아, 사기 치지 말고 살아'라고 했다. 그 길로 회사를 다 때려쳤다. 안면이 있던 유홍준 문화재청장 재임 때 경복궁 지도원(사실상 경비)을 했다. 경복궁 경비가 끝난 후 채현국 이사장이 있는 효암고등학교 학교 지킴이를 했다.


"일을 많이 하고 잘난 사람은 돈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은 적게 주고, 아주 못하는 사람은 퇴출시킨다? 이건 노예의 노동이야. 노예들끼리 잡아먹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이는."


"태어날 때 신체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이 있잖아요. 무능력하니까 굶어 죽어야 하는 거야? 그래도 똑같이 먹어야지.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고 아무리 고조할아버지라도 혼자 살면 떡 한 덩어리만 줘요. 아무리 천하고 지위가 낮아도 식구가 열이면 열 덩어리를 줬죠. 이게 우리나라의 분배원칙이에요."


방배추 어른의 지론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어른들이 얼마나 진중하고 사려 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 '사람에 대한 예의'가 살아 있었다.


이 책 덕분에 필자는 오랜 숙제를 덜어버렸다. 이제 술자리에서 '아직 어른이 있다'고 증명할 수 있게 됐다. 





임종금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