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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 보면 부끄러운 기억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그 날의 사건이 있기까지의 나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한 점 없다고 자만하며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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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 오는 날의 출근길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집에서 내려오는 마을버스 안에서였다. 발가락의 그립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깨닫고 발밑을 내려다보았을 때, 아…. 난 살면서 한 번도 내 발이 그런 참담한 지경에 처해있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온 것이다. 무려 왼발은 쪼리, 오른발은 오픈토 플랫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다시 갔다 오면 20분 가까이 소요되고, 그러면 당연히 지각을 하게 된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형편이라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슈어홀릭의 숙녀라면, 아니 적어도 수치를 아는 한 인간이라면 백이면 백 집에 들러 갈아 신고 나왔을 것이다. 나는 개근상에 집착하던 초등학생을 벗어나지 못한 건지, 그냥 좀 늦겠다고 연락할 융통성이 없는 것인지, 이처럼 잔혹한 출근을 4대강을 향하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게 된다. 

 

그나마 굽 차이가 없다는 점에 위안하려 노력해보지만 좀처럼 평정을 찾을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이런 상황은 내 인생에 생전 처음 벌어지는 일이다. 어째서 내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이런 참담한 일을 겪지 않고 편안히 여생을 마치지 않느냔 말이다. 지금의 내가 과년한 숙녀, 그 중 대부분은 화장을 하지 않고는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 집단에 속해있다는 점에서 믿을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이 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대체 오늘은 지금까지의 내 하루와 무엇이 달랐던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잠이 덜 깨서 멍했고, 뭔가 챙기느라 분주했고, 비가 와서 정신도 없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듯 서른도 되기 전에 벽에 똥칠을 하고 만 것인가. 나는 이 순간에도 내가 처한 상황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지적 성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내게 제법 익숙한 일이었다. 특별까지는 아니어도 특이하다는 것이 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었고,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때론 사는 게 매끄럽지 않았지만 적어도 남과 차별화된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지금 느끼는 당혹스러움의 정체는 내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처음으로 남들처럼 평범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상황은 웬만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부끄러움의 수준, 그 이상이었다. 버스에 같이 탄 어떤 아줌마가 내 발을 보더니 저 미친 여자는 누구인지 얼굴까지 훑어 올라온다. 하지만 뜻밖의 이지적인 용모를 확인하고 혼란에 빠지는 눈치다. 마침 맨 뒤 구석 자리가 비어 으슥한 그쪽으로 앉는다. 옆에서 책을 읽던 남자는 무심코 내 발밑을 쳐다보고 흠칫하더니 좀처럼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이쯤 되니 나도 좀 의기소침해진다. 한 쪽 발을 슬그머니 다른 발 뒤로 감춰보지만 숨겨질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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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구석에 앉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여정이 만만치 않다. 내가 출근하는 곳은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 주변인 데다, 회사에 올라가려면 외제차가 수십 대 전시된 거대한 고급 자동차 전시장 안을 통과해야 한다. 살면서 딱히 누군가를 부러워해 본 적 없는 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부러워진다. 적어도 모두가 짝 맞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

 

문득 이 순간 전 세계에 짝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궁금해진다. 혹시 나 혼자는 아닐까? 외롭다…. 신발도 암수가 다정해야 하는 법. 이동통신 고객센터에서 보내온 커플요금 해지문자로 하여금 차였다는 통보를 받았던 때 만큼이나 실연스럽다.


왜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는가. 네발로 기어 다녔으면 두 쌍 중에 한 쌍쯤 짝 안 맞는 정도는 티도 안 났을 텐데. 아, 인간은 너무 진화해 버리고 문명은 지나치게 발달해 버렸다. 모두가 맨발로 다니던, 짝맞는 신발을 신는 게 이상하던 그때로 돌아가면 안될까….


그렇게 약해지는 마음을 애써 다 잡는다. 열 맞춰, 짝 맞춰 같은 통념은 거부하고 야멸찬 세상, 취객처럼 살다 가겠다는 나 아니었던가.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간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당당한 현대 여성답게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갑자기 영구처럼 짝짝이 양말신은 발을 포토메시지로 보냈던 한 남자가 생각났다. 왜 이따위 것을 보내나, 추잡함에 혀를 찼던 것도 잊고 핸드폰으로 발밑을 찍는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사진을 첨부해 문자를 보냈다.

 


 "내가 이긴겁니다."

 


나란 인간은 승부욕은 없지만 웃기고자 하는 욕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만은 지양해왔던 개그 철학에 위배되는 행위이긴 했지만 숨은 의도는 이러하다. 보다 큰 아픔으로 작은 상처를 잊어보려는 심정, 남자한테 치부를 까발려서 여자임을 포기하고 아예 바닥까지 가보자는 자포자기의 심정, 나의 굴욕이 큰 웃음으로 누군가의 활기찬 아침이 되지 않겠냐는 희생정신.


이윽고 답 문자가 도착한다.

 


 "대단하십니다."

 


언뜻 칭찬 같지만, 비아냥으로 패배감을 숨기기에 급급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승리감에 마취되어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되는듯한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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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보지 않도록 최대한 재게 발을 놀려서 사무실로 향한다. 흔히 만화에서 볼 수 있는 @모양으로, 신발은 그릴 필요가 없다. 도착하자마자 대뜸 슬리퍼를 빌려달라고 하니 순박한 여직원은 내 발을 쳐다볼 생각도 않고, ‘젖었나 봐요.’ 하며 물티슈와 휴지까지 건네준다. 하긴 보통 인간의 상상력은 거기까지다. 그 누구도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오늘은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사람을 만날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서둘러 슬리퍼로 갈아 신고, 짝짝이 신발을 둘둘 싸서 가방에 쑤셔 넣은 나는 완전한 평정심을 되찾았다. 오히려 호기 어린 심정까지 된다. 하하, 모닝글로리로군.


나는 이 한 시간의 출근길이 내 인생 최단시간, 최고의 인격성장을 이룬 순간임을 확신한다. 이젠 인도엔 카레밖에 볼일이 없고, 길 가다가 누군가 도를 아냐고 묻지도 못할 것이다. 딱 봐도 다 알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모든 걸 잊고 일에 전념하려는데, 아버지한테서 생전 안 오던 전화가 걸려왔다. 현관에 짝 안 맞는 신발 한 켤레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신고 나간 거냐?”


 

하며 확인 사살을 하고 껄껄 웃으시는데 어찌나 행복하게 들리던지, 전에 없이 큰 효도를 한 기분이었다. 덧붙여


 

 “요즘 유행이냐?”


 

하고 물어보신다. 아….

 

이와 같은 무용담을 주위에 얘기하니, 자기도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간증이 이어진다. 그런 오욕의 순간이 비단 한사람의 인생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구나…. 사람들이 털어놓는 각자의 숨겨왔던 비밀에 숙연해진다. 어렸을 때 똥을 밟았던 경험도 있었고 시험 기간 때 하이힐과 운동화를 짝짝이로 신고 등교했던, 나와 흡사한 사연도 있었다. 과연 신발을 똑바로 신지 않는 행위는 인류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 같다.

 

빨간 립스틱이라도 발라서 패션으로 밀어붙이지 그랬냐는 각계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하지만 자칫 무리수를 두었다간 비 오는 날의 미친 여자라는 심증만 더욱 굳어질 터…. 나는 울 아빠도 인정하는 패셔니스타, 사람들도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작히 좋았을까.

 

말해주지도 못해 난감해하던 시민들의 표정이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살다 보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대비자세와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보다 타인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관용적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편집부 주


위의 글은 독투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톡투불패 및 자유게시판(그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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