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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를 얘기하면서 내가 홍상수 얘기를 했었지요? 둘이 비슷하다고 하면 비웃을 사람 많겠지만 나에게 둘은 비슷해요. 왜냐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왠지 나인 것 같고, 더욱이 남에게 보이는 내가 아니라 내가 숨기고 싶은 나인 것 같고, 또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고, 우리의 현재인 것 같고, 우리의 과거였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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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소회를 말하면서 어쩌면 우리랑 아일랜드랑 그리 똑같을까 감탄했던 것처럼 '인간은 못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는 훈계를 들은 주제에 며칠 뒤에 똑같이 그 말을 남에게 뱉는 영화 <생활의 발견> 속 김상경에게서 나는 내 모습을 봤었거든요.


이번에 개봉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리고 벌써 막을 내렸는지도 모르지만) 켄 로치의 영화 <자유로운 세계>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자유로운 세계>는 내게는 오히려 뻔한 얘기였다는 게 맞을 겁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을 거예요.


직업소개 회사의 비정규직인 싱글맘 앤지가 성희롱을 일삼는 간부한테 대들다가 간단히 일자리를 잃은 뒤 배운 일이 도둑질인데 내가 해 보자 하고 친구와 더불어 용역회사를 차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이용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부모님에게 맡겨 놓은 아들과 빨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수를 두게 되고, 급기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돈을 빼돌리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외국인들이 근근이 살아가는 터전까지 쑥대밭을 만들게 된다는 영화의 스토리는 이른바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독종 시어미 된다'는 한국 사회의 경험 법칙이나 '맞은 놈들이 더 때리더라'는 대한민국 군대의 전설에서 크게 벗어난 얘기가 아니니까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 살아남는 것이 상식인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스멀스멀 왕거미가 척추를 타고 오르는 듯 징그러운 현실감을 피할 수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저는 앤지의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싱글맘에 비정규직인 딸의 아이를 맡아 기르고 있는 아버지 말입니다. 그 아버지는 딸에게 묻죠. "너 그들에게 최저임금은 주고 있는 거냐?" 그리고 앤지의 사업이 불법임을 지적하면서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아들 곁에서 살라고 훈계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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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의 수혜자였을 것이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노조를 지녔던 나라의 은퇴한 노동자로서 자신의 딸이 다른 나라에서 온 불쌍한 노동자들의 등을 치려고 발버둥 치는 게 불쾌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그 정당한 훈계는 잘 먹고 잘살자는 딸의 욕망 앞에, "내가 명령을 하지 누구도 내게 명령하게 하지 않겠다."는 딸의 이데올로기 앞에 삼복날 개꼬리처럼 힘을 잃어요.


오버일 수도 있고,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나, 또는 선배, 나아가 한때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탑을 쌓기 위해 모래 한 알 정도는 올려놨다고, 그만큼은 했다고 내심 자부하고 살아가는 세대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파쇼에 저항하고 불평등에 항거하며 이런 세상은 아니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그 과거를 부정하고 올드 라이트의 품에 나무늘보처럼 붙어버린 뉴라이트들이 아니라 뽀다구나게 살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앤지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더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니까 그래요. 그 과정 속에 함몰되어가는 우리들을 보아서 더욱 그래요.


국제중학교 설립에 반 넘게 반대하지만 내 아이가 국제중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반을 넘는다는 정신 분열적인 여론조사가 있었지요. 아마 그 변수에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넣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 학교를 채우는 아이들이 대부분의 될 것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내 아이는 그 부류에 넣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애써 잊고 있는 거죠. 성희롱당하고 맥주 한 잔 끼얹었다고 해고되는 불안한 비정규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월급 반 투자해 가며 파출부를 뛰거나, 마누라랑 생이별해 가며 인간에서 기러기로 종의 전환을 이루는 비극을 마다치 않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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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타까운 건 우리들의 자녀들은 결국 앤지의 상사보다는 앤지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거겠죠. 더 안타까운 건 나 자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앤지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일은 남이 해 줄 일이고, 어쨌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아이를 앤지의 상사로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들쥐처럼 몇 마리의 들쥐만 살아남을 암초만 삐죽이 고개를 내민 바다를 향해 돌진하고 있잖아요. 내 새끼는 저 암초 위에 안착하리라 믿으며 말입니다. 이쯤 되면 1980년의 미 8군 사령관 위컴이 신들린 예언자 같아요. 어쩌면 그런 적확한 표현을 구사했을까.


내가 늙었을 때, 선배가 지팡이를 짚을 즈음이면 아마 아이들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우리 아이들이 앤지가 되어서 (그나마 선배의 아이들이나 내 아이들이나 교육의 혜택은 조금 더 받았을 테니까) 그보다 못한 이들에게 우리가 볼 때 부당하고 불공평하며 불법적인 일들, 젊은 날의 우리가 저항했던 그 행동거지를 보일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너 최저임금은 주고 있니?"


"그들도 인간이야. 그에 마땅한 대접을 해 줘야 해."


"사람을 이용해서 돈벌이하지 마"


과연 우리 애들이 저 말을 들으면서 어떤 웃음을 짓게 될까요. 전두환의 유일한 치적이라 할 파쇼적인 사교육 금지령 덕에 그나마 평등한 출발선에서 (물론 이 말 자체도 무리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등한) 386들의 부모 밑에서 자라났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배틀 로얄을 치루고 바로 그 386이 주축이 된 학원 강사진들에게 맡겨져서 피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요즘은 초등학생 일제고사까지 치루며 자라나고,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결정되는 우등과 열등을 경험한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반문을 하게 될까요.


그래서 켄 로치의 <자유로운 세계>는 끔찍하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들쥐의 세계'는 참혹합니다. 또 켄 로치의 다음과 같은 말은 더더욱 제 공포를 무겁게 합니다.


"'그럴 수 있어. 얼마나 치열한 경쟁 사회인데...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앤지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논리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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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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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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