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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회계사다 (실제 회계사들 업무와는 꽤 동떨어진 일을 하지만, 대외적으로 직업을 표현해야 되는 일이있으면 편의상 회계사라 말한다). 회계사가 전통적으로 하는 일은, 갑돌이가 A라는 주장을 갑순이에게 하면, A가 맞는 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형 회계법인들은 대부분 수백 년 전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는데, 이는 증권거래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

 

증권거래소 설립이래, 수많은 갑돌이(회사)가 갑순이(투자자)에게 구라를 쳐왔다. 그 덕에 갑순이는 갑돌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구라치는 거 아닌가, 전전긍긍해왔다. 그래서 등장한 게 갑돌이가 치는 주장이 맞는 소린지 아닌지를 감별하는 직업, 즉 회계사와 이들이 모여 만든 회사, 회계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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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회계로 정할 때, 아니 불과 몇 년 전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만 해도, 굳은 믿음이 있었다. '내가 죽어서도 이 회사는 남아있거나 혹은 어딘가에 합병돼있지 않을까.' 수많은 기업들이 끊임없이 장부를 조작해왔고, 기업 안의 개인들 또한 횡령을 저질러왔기 때문에 이들을 감시하는 금융당국과 회계법인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그 믿음이 조금 줄었다. 전에는 이 회계법인이 안 망할 확률을 100%로 봤다면 지금은 한 70%? 지금 일 하는 회사가 잘못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기술이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고쳐먹게끔 만든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이걸 IT전문가가 나서서 쫌 찐하게 디벼줬으면 좋겠는데, 이를 다루는 한국어 기사는 고작 몇 건 밖에 본 적 없다. 그래서 직접 시장의 관점에서 파볼까 한다. 서두에 언급드린 대로, 나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IT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문외한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전문가분들이 보면 답답하실 수도 있다. (그럴 땐 직접 독자투고에 올려주시길.)




1. 블록체인, 그게 뭐냐


비트코인은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아직 흥미로운 투자대상(금 가격과 꽤 높게 연관되어있어 안정자산으로 각광받았다. 한때는...)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미 훅간 (얼마 전에 거래소가 또 털리면서 난리가 났다) 화폐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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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바로 이 비트코인을 구현시키는 기술이다. 그 방식도 졸라 혁명적이다. 함 들어보시라.

 

먼저 이름에 블록이 들어간 이유는, 정보를 (주로 거래정보를) 블록화 하여 기록하기 때문이다. 블록이라는 건 정보의 고유 단위이다. 현재 비트코인에 경우 10분에 한 번씩 모든 거래정보들을 묶어서 블록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왜 굳이 블록화 해서 저장하냐면, 각각의 블록마다 고유의 식별코드를 부여해서 이미 만들어진 블록들이랑 헷갈리는 걸 막기 위함이다. (몹쓸 비유를 하자면, 본인은 야구 동영상을 동양 야구, 서양 야구로 나누고, 그 안에 선수 이름별로 폴더별로 나누어서 보관해놓고 있는데 여기서 폴더 하나를 블록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이 블록들은 차근차근 쌓이게 된다. 새로운 블록을 추가하는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비트코인의 경우는 블록추가 과정이 대중들에게 열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새 블록이 나올 때마다, 원하는 참여자들은 블록을 받아 볼 수 있고, 복잡한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블록에 기록된 거래의 타당성 유무를 직접 판단할 수 있다.

 

뭐하러 참여자들이 저 유무를 판단하도록 한 걸까? 비트코인은 블록을 받아보는 참여자가 거래 타당성 알고리즘을 푸는데 필요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준다고 한다. 한 때 열풍이 불었던 비트코인 마이닝이란 게(컴퓨터 켜놓기만 하면 돈 번다던 거), 바로 이 블록에 기록된 거래내역을 푸는 것을 말했다. 자본주의는 위대해서, 비트코인은 현재 구글에 100배가 훌쩍 넘는 컴퓨팅 파워를 보유 중이라 한다.

 

그러면 블록이 만들어지고, 그 안의 정보가 참여자들에 의해 확인됬다 치자. 참여자들의 알고리즘 검사를 통과한블록은, 기존에 존재하던 블록과 체인화, 즉 연결이 된다. A라는 블록이 있으면 B라는 블록이 생기고, 그 뒤에는 C라는 블록이 생긴다. 블록들은 이렇게 차곡차곡 연결되어 서로에게 묶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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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걸 정리하면,


① 거래가 발송되면 이 정보는 즉시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되고, 시간에 따라 블록화 된다.


② 만들어진 블록은 블록체인 참여자에게 배달된다.


③ 비트코인에 눈이 먼 참여자는, 컴퓨터를 열라게 돌려서 블록 내의 거래내역을 검토, 이 기록이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해 준다.


④ 통과된 블록은 기존에 존재하던 블록과 연결된다.




2. 이게 쩌는 거냐


일단 보안 뚫기가 상대적으로 빡세진다. 


만약에 당신이 해커라고 치자. 당신은 거래장부를 조작해서 당신 계좌로 돈이 엄청 많이 들어오게 해킹을 하고 싶을 거다. 그럴라면 일단, 위조된 거래정보를 만들어서 블록에다가 집어넣어야 한다. 그럼 다음은 어디를 쑤셔야 할지 알아내야 한다. 은행거래의 경우라면 쉽다. 은행 중앙전산망을 쑤시면 된다. 은행 중앙전산망에 들어가서 장부를 조작해 버리는 거다.

 

근데 블록체인의 경우, 이 블록을 기록하는 장부가 전세계 블록체인 참여 컴퓨터 모두에게 분산 저장된다. 그것도, 구글의 100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컴퓨팅 파워 속에. 최소한 이중의 과반수 파워는 끌어와야 블록 하나의 장부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토가 나오는 작업이 된다.

 

어찌어찌해서 기적적으로 한 시간만에 해킹에 성공했다고 쳐보자. 그러면 해커는 여기서 또다른 난관에 부딪친다. 아까 말했듯이 새로운 블록은, 기존의 블록과 연결된다. 이 말은 즉, 내가 원하는 블록을 터는 도중에 새로 생긴 X개에 블록까지 털어야만 블록 체인 내의 정보를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ABCDEFG라는 식으로 블록이 연결되있는데 (B~G는 A블록을 터는 60분 간에 새로 만들어짐), 기존 A에 대한 정보는 뒤에 붙은 B~G에도 연결되어 보관될 것이므로, 뒤에 있는 블록들까지 전부 갈아버리지 않는 한, 내가 원하는 식으로 블록체인의 정보를 바꿀 수가 없다. 이건 그냥 해킹하지 말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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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안이 아주 강력한 구조인데 비용 면에서도 엄청나게 싸게 먹히는 장점이 있다. 모든 금융기관들은 중앙화된 장부들을 해커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보호벽을 치고 있다. 보호벽이 단단해질수록, 해커 역시 강해지고, 해커가 강해질수록 금융기관들은 돈을 더 쏟아부어 소중한 장부를 지켜야 했다. 끊임없는 술래잡기가 이루어져온 거다.

 

그런데, 만약 이 정보 기록 방식을 블록체인으로 바꾼다면? 굳이 장부들을 지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게 된다. 전문가, 기업마다 다른 계산을 내놓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는 보안 비용을 약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 상업은행들은 수조 단위에 달하는 규모의 보안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 어케 쓰일까


일단 쓰임새가 가장 많은 곳은 은행일 거다. 구체적으로는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처리하던 Syndicated Loan(기업대출심사과정)을 블록체인으로 빠르고 싸게 처리하는 방안이 가장 자주 언급되고 있고, P2P 대출상품 등에도 빠르게 적용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아주 제한적인 분야를 넘어서 점차 범용적으로, 일반 개인들의거래까지 블록체인 기술이 쓰이게 될 것임은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싸고, 안전하니까.

 

현재 비트코인의 정보(누가 어디서 커피 사는데 비트코인을 얼마를 썼더라와 같은 사소한 것들)와는 다르게 아주 중요하고 은밀한 정보(어떤 헤지펀드가 얼마를 투자했다 같은 지름 액수가 거대한 것들)를 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은행들은 비트코인처럼 개방된 방식이 아니라 전세계 은행들의 컨소시엄을 구상하여 장부들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 한다. R3 CEV라는 이름의 은행 컨소시엄이 그 예이고, 은행 뿐만 아니라 월가, 회계법인, 증권거래소 등도 이 기술을 어찌 써야 하나를 놓고 공론화 움직음을 보이고 있다. 관심이 있는 분덜은 아래 사이트로 가보시라. 회의 기록 같은 것도 보고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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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industry.org



4. 진짜 되냐?


진짜 되고 말고를 따질 것도 없이 이미 조금씩 쓰이고 있는 기술이다. 다만 기술 표준이 먼저 정해져야 되고, 각 나라의 규제당국들이 오케이를 해야 통과될 문제이긴 하다. 복잡한 서류작업이 남았단 소리.

 

하지만, 워낙 보안이 우수하고 가격적으로도 괜찮기 때문에, 금융계에서 최근 몇 년간 논의돼 온 기술 중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기존의 정보가 기록되고, 유지되는 방식 자체를 더욱 안전하고 저렴하게 바꾸기 때문에, 아마 몇년 내로 한국에서도 자주 언급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언젠간 세상의 모든 정보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여러 컴퓨터에 기록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회계사란 직업은 물론, 수많은 정보기록 및 관리 인력이 블록체인으로 대체 될지도 모른다.

 

아직 학생이거나, 학부모이신 독자덜께서는 이쪽을 좀 관심 있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드린다. 회계사인 필자도 요즘 이것 때문에 코딩공부를 시작했다. 세상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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