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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독자투고 게시판에도 블랙홀 사진이라고 올라오고, 자유게시판도 보니까 사진 몇 장 올라오면서 사진이라고 하길래... 그래서 써봅니다. 전파망원경 이야기.

 

 

 

1. 도대체 니가 뭘 알고 전파망원경에 대해 써보겠다는 것이냐?

 

아마도 첫 의문은 요거겠지요. 전 전파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내 전파망원경을 만들 때,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천문용에 대해선 제작을-우리나라 천문연 대단한 곳입니다. 수신기 시스템에 대한 설계는 전적으로 천문연구원 한OO박사님께서 하셨습니다-, 지리용 전파망원경에 대해선 수신기 설계부터 설치, 그리고 Baseband(특정한 반송파를 변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모든 신호에 의해서 점유된 주파수 대역) 몇몇 모듈에 대해서까지 설계/제작을 하였습니다. 대학원 시절엔 일본에서 오신 테츠루 사사오 교수님의-이 분은 전파천문학의 세계적인 대가이십니다. 참고로 지한파를 넘어 친한파이십니다. 항상 술만 드시면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죠. 문득 이 분이 킵해둔 양주를 맨날 찾아먹던 생각이 나네요- 강의를 조금이나마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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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있는 안테나입니다.

한창 처음 드론 사고 날리면서 놀 때라서, 현장에도 가지고 가서 몇 개 찍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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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밑에 몰려 있는 사람 중에 제가 있습니다.

한국있을 때 제 차였던 코란도도 있네요.

 

 

 

2. 전파망원경이 도대체 뭐냐?

 

일단 망원경이라는 게 먼 곳을 보는 거지 않습니까? 전파망원경은 '멀리서 오는 전파를 관측하는 것'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별들은 흑체복사라 하여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 파장에 따라서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전파 등등 여러가지 형태로 에너지는 분출이 되구요, 이 중에서 전파망원경은 보통 2~200GHz 대역의 전파를 관측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3. 그러면 왜 전파망원경을 사용하나?

 

사실 광학망원경엔 많은 제약 요건이 있습니다. 굴절망원경의 경우, 당장 크기를 크게 만들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구요, 반사망원경의 경우도 그 크기가 마구마구 커지진 않습니다. 커진다 하더라도 지구에선 먼지나 습기 등의 문제로 해상도가 선명하지 않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반사망원경 관측소들은 해발 2500m 이상이며 상대적으로 공기가 적고 건조한 곳에 있습니다.

 

전파의 경우, 가시광선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측환경이 더 좋습니다. 물론 H2O absorption(흡수), O2 absorption이 있지만, 가시광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특정 주파수 대역에선 거의 없다시피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전파망원경의 경우, 저장된 데이터의 상관관계(correlation)를 통해 더욱 선명한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사실 광학망원경이든, 전파망원경이든, 해상도는 안테나의 크기와 절대적인 관련이 있는데, 전파망원경의 경우 전파의 파장이 가시광선보다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사경을 크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뿐더러, 두 개의 지점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상관(相關)시키면, 두 안테나 사이의 거리 만큼의 직경을 지닌 안테나로 측정한 것과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파망원경은 단순히 radio telescope라 부르지 않고, VLBI(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초장거리 간섭계)라고 부르지요.

 

 

 

4. 우리나라에 있는 전파망원경은?

 

우리나라엔 주요 전파망원경이 4개 있습니다. 3개는 천문연 소속의 천문 관측용이고(프로젝트명이 KVN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1개는 국토정보지리원 소속의 측지용입니다. 천문연 소속 안테나는 연세대, 울산대, 탐라대 이렇게 세 곳에 있고, 측지용은 거의 중심부인 세종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천문용 안테나는 안테나 직경이 21m였던 것으로 기억하구요, 측정 주파수는 22, 43, 86, 123GHz 네 개 주파수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4개 대역 동시측정은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리용의 측정 주파수는 2, 8, 22, 43GHz이고, 안테나 직경은 22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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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측지 관측센터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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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주도에 있는 안테나입니다. 왠지 이상하지 않은가요?

세종시 안테나와 모양이 같지 않나요? 같을 겁니다.

같은 회사에서 설계하고 시공사도 같은 회사여서...

 

 

 

5. 천문용? 지리용?

 

천문용은 알겠는데, 지리용은 뭐지? 하시는 분들 계실 거 같습니다. 전파망원경에서 중요한 게 간섭계(파동의 간섭현상을 이용하여 작은 변위, 굴절률의 변화, 또는 표면의 거칠기를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천문용의 목표가 여러 개의 안테나를 이용해서 별을 관측하고 그 데이터를 상관(相關)시켜 더더욱 해상도가 높은 화면을 재구성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측지용은 별을 기준점으로 삼아 두 지역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측정오차는 1000km당 mm단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정밀분석이 가능해진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수신기 만드는 전자 엔지니어라서...

 

밑에 그림을 보시면, 먼 곳에서 들어오는 별의 신호는 지구의 거의 모든 곳으로 같은 방향에서 오는 것으로 가정할 수 있습니다. 대략 130억 광년 떨어진 QUASAR(전파각도가 1˝이하이고, 광학적으로도 보통 별과 구별이 되지 않는 천체를 말한다. 강력한 전파원이며, 항성상 천체 또는 항성상 전파원이라고도 한다. QUASAR는 지구로부터 수십억 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활동성 은하의 핵으로서 태양보다 수 조배나 밝으며 고정되어 있으므로 우주공간상 위치측정의 기준이 된다)를 측정하게 됩니다. 이때, 측정하는 두 지점은 정확한 시간과 방위각도를 같이 기록합니다. 데이터 상관을 통해 두 측정 간 시차를 정확하게 알아낸 뒤 그 시차를 이용해서 두 지점 간 거리를 측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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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의 정확한 동기를 위한 수소 메이저 장비입니다.

세슘 원자 장비보다 장시간 위상 안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일본 Anritsu라는 회사에서 이 장비를 팔지 않았기 때문에(비싸기도 하구요)

러시아에서 구매하였습니다.

 

 

 

6. 그럼 거기서 넌 뭘 했는데?

 

전파 망원경은 안테나 하나를 사용해서 4개 대역의 주파수를 받아야 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낮은 주파수의 경우는 신호를 받은 다음에 회로 상에서 패턴을 만들어줘서 분리할 수 있지만 나중에 수신 감도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전파 망원경에서는 전파 신호를 빛처럼 이용, 반사판과 주파수 선택면을 사용해서 주파수들을 분리합니다. 그 부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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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망원경으로 받는 전파의 세기는 굉장히 약한 신호이기 때문에, 정말로 잡음이 낮은 수신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수신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잡음을 낮추기 위해 헬륨 극저온 냉각장치도 사용합니다. 위의 오른쪽 사진들 중 왼쪽 아래에 있는 수신기 내부의 온도는 약 20K, 약 영하 253도 정도입니다.

 

 

 

7. 그럼 이번에 찍은 블랙홀 사진은?

 

정확히 얘기하면 블랙홀 사진은 아니구요, 더 정확히 말하면 블랙홀 그 자체의 전파를 재구성한 사진도 아닙니다. 블랙홀의 그림자... 라고나 할까요? 블랙홀은 전파든, 빛이든 모두 흡수하는 말 그대로 '블랙(Black)'의 영역이기에, 그 블랙홀에 가려진 뒷부분 별들의 전파라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즉, 블랙홀의 그림자를 본 것이지요. 정확히는 블랙홀의 그림자로 받은 전파를 색을 입히고 하는 재구성을 한 것이다. 요렇게 쓰면 되겠네요. 이때 전세계의 안테나를 모두 동원해 동시에 관측한 것이기 때문에, 이론상 거의 지구 크기의 안테나를 사용한 것과 같은 해상도구나. 이렇게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8. 5페타바이트? 무슨 그렇게 용량이 많이 필요해?

 

말씀드렸다시피 전파망원경은 전파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보통 신호를 완벽하게 디지털로 저장하기 위해선 신호의 대역폭의 두 배가 되는 샘플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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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수신된 신호의 파형이 이런 모양이라면, 이 신호를 디지털로 만들어야 저장을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110GHz부터 120GHz까지의 신호를 받는다고 한다면 10GHz의 대역폭이 나옵니다. 이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복원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신호를 잡아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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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잘게 쪼개서 그때 그때의 신호의 크기를 체크해야 합니다. 이때 쪼개는 주기는 대역폭의 두 배 이상 해주어야 신호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습니다. CD의 sample rate가 44K인 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22KHz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확히 얘기하자면, 110GHz 대역이기 때문에 더 잘게 쪼개야 하는 게 맞지만, 단지 이해를 위해서 이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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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그 중에 하나의 신호를 골라내서 그 크기를 디지털화 시킵니다. 예를 들어 8비트, 8개의 0과 1을 가지고서는 128단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0GHz의 신호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초당 20GB의 저장 용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에러코딩, 오버헤드들은 빼고 순수하게 데이터만 말입니다. 20개의 관측 지점이 동시에 10초만 측정을 해도 4TB가 저장되는 것이지요. 5페타바이트... 금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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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래서 뭐?

 

뭐 그냥 그렇다구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거라니까요...

 

이상입니다.

 

 

 

 

편집부 주

 

위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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