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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의 소포

 

76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에 참여했다. 다음 달 개강에 앞서 한국으로 들어올 중국인 유학생이 3만 명이며, 자취 중인 유학생 외출 통제 불가능하다는 인터넷 기사엔 차마 옮길 수 없는 원색적인 중국인 혐오 댓글이 넘쳐난다.

 

영국에서 유학 중인 나는 그 말들이 남달리 모질게 읽힌다. 마스크를 사모아 가족들에게 보낼 소포 상자를 포장하는 우한 출신 중국인 친구들의 애절한 표정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인근 약국을 떠돌며 한국으로 보낼 마스크를 사야 하는지 고민하는 차례가 되었다.

 

제3국인 영국에서 중국인을 포함한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의 입장에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바라보며 느낀 ‘우리’의 중국 혐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중국인 학생을 대하는 영국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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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ws1>

 

영국 내 중국인 유학생은 120,385명 (Studying-in-UK.org, 18/19)으로 국내 중국인 유학생 수 71,996명 (교육통계서비스, 2019)의 약1.7배에 달한다. 방학 및 춘절을 맞이하여 지난 1월 다수의 중국인 학생들이 중국을 다녀왔지만,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돼가는 이 시점에서 영국 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단 13명이다. 그중 중국인 국적의 확진자는 3명뿐이다 (2월 26일 기준). 그 외 감염자는 프랑스 알프스 스키여행 참가자과 다이아 프린세스호 탑승객 등으로 중국인으로 인한 직접 전파 사례는 없었다. 

 

영국 정부는 중국 내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던 와중에도 중국 유학생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다. 방역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영국 대학들은 신속히 중국, 태국,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국가를 방문한 학생들과 현재 감기 증상이 있는 학생에게 2주간의 자가격리를 권고했다. 영국 정부의 판단은 신속했고, 이를 이행하는 대학들의 결정에는 오랜 시간 국제 학생들과 함께한 공동체 의식과 구성원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중국인 유학생 입국을 걱정하는 중국 혐오 프레임은 그들은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뿌리 깊은 의심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진정 시대에 뒤처진 편견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후 유럽에서 동양인이 차별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한, 중, 일 동양인에게는 일상적인 방역 기초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낯선 서양인들에게 감염의 징후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가장 빠르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닌 것은 중국 유학생들이었고, 인종차별의 대상이 된 것도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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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PA>

 

중국 유학생의 자가격리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 어디에서든 많은 중국 학생들은 매일 함께 공부하고, 식사하며 매우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진다. 이번 사태로 놀란 점 중에 하나는 놀라운 그들 간의 견제 체계였다. 방학 간 중국을 다녀온 유학생들은, 영국에 남아있던 다른 중국 유학생들의 유무언의 압력으로 2주간 자가격리를 충실히 이행했다. 매일매일 붙어 지내던 중국인 룸메이트들도 손소독제를 공용 부엌에 비치해두었고, 매일 같이 밥을 먹던 사이임에도 2주간 단 한 번도 그 친구를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 옛날 해외에서 눈살 찌푸리게 했던 어글리 코리안이 아니듯, 중국인들도 그 옛날 중국인이 아니다. 중국 유학생 개개인의 시민의식은 다를 수 있지만, 그들 역시 강한 공동체 의식이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중국 학생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계에 선 한국인 유학생들

 

지난 한 달, 주변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안부는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유럽 내 코로나 인종차별로 중국인과 싸잡혀 한국인도 같이 욕 거리를 듣거나 위협을 당한다던데 너는 괜찮니’라는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지난 한 달, 네덜란드 항공사(KLM) 화장실 한국인 차별부터 유럽 패션쇼 한국인 셀럽 불참 논란까지, ‘우리’ 한국인이 외국에서 받는 차별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분노하고 걱정해줬다. 국내 확산이 줄어들고, 완치 판정자가 늘어갈 때까지만 해도 피해자인 ‘우리’ 한국인과 가해자인 중국인에 대한 구분선은 뚜렷했다.

 

그러나 지난 2월 20일부터 한국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급등하고, 영국 언론에 대구와 청도가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 친구들의 위로를 받을 사람은 한국인이 되었다. 앞서 중국 유학생들의 가족 안부를 묻고, 그들의 짧은 하소연을 들어주었던 내가 이제 그들에게 왜 갑작스럽게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인지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렇게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지역이 점점 늘어났고 (2월 26일 18시 기준, 30개 국가), 순식간에 ‘우리’는 감염 피해자이자 동시에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 찍혔다. 타인의 비극을 외면하고 특정 집단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낙인 할 때, 언제든지 내가 그 비극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오늘도 나에게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물어주었다. 얕은 미소와 함께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납덩이처럼 차고 묵직한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포털에 난무하는 중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들과 댓글들을 그들이 읽지 못함에 감사했다. 하지만 나보다 한발 앞서 한국 연예계 소식을 알려줄 정도로 한국어가 능숙한 중국인 친구는 과연 그 댓글들을 몰랐을까. 유튜브에 혐한 댓글을 번역해 알려주는 영상이 많던데, 중국이라고 한국인의 혐중 댓글을 전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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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어렵지만 자랑스러운 연대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TOEFL, GMAT 등 중국 내 해외 유학 관련 시험 취소와 더불어 향후 중국 유학생에게 의존하고 있는 세계 고등교육 시장에 큰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면 출입 금지 조치로 중국 유학생들과 큰 마찰을 빚은 미국과 호주 대학의 예상 피해액은 산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인 유학생이 몰려온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불러온 배제가 아닌, 중국인 입국 제한을 하지 않고도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예방한 영국의 조치를 분석하며 합리적으로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한국 내 중국 국적 감염자는 6명이다 (2월 25일 기준). 그중 한 명은 일본에서, 또 한 명은 국내에서 감염되었다. 직접 중국을 다녀온 세 명의 중국인은 국내 확산세가 심해지기 이전에 관리되어 완치되어 퇴원했거나 치료 중이다. 창문을 열고 모기를 잡는다는 비난은 온당치 못하다. 이미 한국도 신속하고 차분하게 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중 대학으로부터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는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메일이 왔다. 

 

“우리 대학은 중국과 아시아 국가 학생들과의 단단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국제 커뮤니티의 일원입니다. 대학이자 공동체로서 당신들에게 일어나는 인종차별에 대해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안전과 안녕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 사항입니다.”

 

지난 5일 최영애 국가 인권 위원장의 성명과 같은 맥락이다. 

 

“혐오 표현에 대한 자정과 자제 발언은 우리 사회가 침묵을 넘어서 혐오 문제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인류애와 연대로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외국에서 공부 중인 학생으로서, 손쉬운 배제 보다 어려운 연대를 선택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노력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이 글을 읽다가 영국 사대주의와 친중 프레임을 씌우고 비난할 생각에 근질근질해지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연대하는 ‘우리’는 바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혐오가 자랑스러우신지.

 

 

Profile
퇴사 후 떠난 영국에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