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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척 매뉴얼]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2008. 9. 1. 월요일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정이유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보면 본의 아니게 불멸의 반열에 오른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는 태양은 지구를 돌지만 다른 행성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하는 천동설, 지동설의 절충설을 제시한 티코 브라헤라는 천문학자로서, 천문학계에 그가 남긴 업적이 적지 않으나 약 오백년이 지나 현대인들이 그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프라하의 황궁에서 귀족의 식사예법을 지키려 장시간 소변을 참다가 결국 방광이 터져 죽었다는 우스꽝스러운 비극 때문이라는 것이다.


D.H.로렌스의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어쩌면 작가는 전혀 원치 않았던 이유로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많은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붕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후세들에게 폭군으로 기억되어지는 광해군이 존재하듯, 당 서적은 명작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만한 인문학적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고전명작야설쯤으로 각인된 나머지 마치 애기 백일 사진을 가리키며 너무 야하다 얼굴 붉히는 형국의 읽은 척 오발탄이 난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바로 이 점이 금번 읽은 척 매뉴얼에 당 서적이 선정된 결정적 이유라 하겠다.



 


 읽은 척 매뉴얼



1)주요 등장인물


-콘스틴스 채털리 : 당 서적의 주인공인 채털리 부인. 사랑밖에 모르는, 특히 육체적 사랑밖에 모르는 백치미 가득한 마님일 것 같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멜러즈 : 당 서적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작가 로렌스의 화신.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교육수준이 높은 어머니를 통해 고등교육을 받은 후 스스로의 선택으로 채털리가의 사냥터지기가 되어 은둔중인 인물이다.


-클리퍼드 채털리 : 전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콘스틴스의 남편. 사고를 겪은 후 작가로 성공하고 나중에는 탁월한 사업가로 능력을 발휘한다.


-마이클리스 : 채털리 부인의 첫 애인


-토미 듀크스 : 채털리 부인의 두 번째 애인이 될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증발하는 인물(주의점-결국 안함).




2)내용요약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다른 문학작품과는 다르게 내용에 대한 암기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할 수 있다. 당 서적은 소설의 형식을 띈 자전적 사상서에 가까운 바, 채털리 부인 등의 등장인물이 누구와 언제 어떻게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는 본 무대에 앞서 선보이는 호객용 차력쇼에 불과할 뿐 핵심은 ‘왜?’가 되기 때문이다.


즉, 채털리 부인은 왜 다른 유부남과 그토록 처절하게 바람을 피워야 했으며, 작가는 또 왜 이런 글을 써서 수십 년간 본의 아니게 야설작가로 위명을 떨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당 서적의 읽은 척에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작품의 스토리를 암기해야 한다 해도 그 내용은 간단하다.


진짜 여자가 진짜 남자를 만나 서로 사랑하다.


조금 구체적으로 풀자면 다음과 같다.


20세기 초의 영국. 중산층계급에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자란 코니는 ‘클리퍼드 채털리’라고 하는 귀족과 결혼을 함으로써 거대한 영지의 귀부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 같던 중 남편 클리퍼드가 1차 대전에 참전 후 하반신이 마비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허나 새옹지마라고 그 비극은 일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운명적 연인인 멜러즈(애 딸린 유부남이자 채털리 가문의 영지를 관리하는 하인)를 만나게 되는 간접적 계기가 되고, 결국 코니와 멜러즈는 마님과 돌쇠, 귀부인과 하층민이라는 신분과 빈부의 격차를 초월한 채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불륜커플이 되어 각자 성실하게 이혼을 준비한다.




3)읽은 척 세부스킬


포르노 한 편을 보려면 청계천 세운상가에 가서 이것이 올림픽 하이라이트 녹화 테잎인 줄도 모른 채 거금을 들여 사오는 수고를 들여야 했거나, 설령 운이 좋아 이미 안방 장롱에 라벨 없는 비디오테잎의 정체를 확인했다손 치더라도 언제 시장에서 돌아올지 모를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를 탐지하느라 시신경과 청신경이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해야만 했던 그 시절.


아아. 이것이 고전이 좋다고들 하는 바로 그 이유란 말인가 하고 고전의 가치와 효용성에 대해 새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작품이 있었으니 그 것이 바로 오늘 읽은 척 대상  서적으로 선정된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되겠다. 



 


사실 살면서 당 서적을 읽은 척 해야 할 상황을 직면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그러한 상황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살며시 눈을 내리깔며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 그만일 뿐, 굳이 채털리 부인의 엽색행각을 줄줄이 외어가며 읽은 척을 했다가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교양인으로 평가받기 앞서 저 새끼는 국어사전의 보지에 대한 뜻풀이만으로도 능히 발기를 경험했을 놈이라는 식의 인신공격적 역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당 서적을 읽은 척 함에 있어서는 대중들에게 야설로 각인된 이미지와 진짜 읽어버린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평가받는 그 극단적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야한 얘기를 할 것 같다가도 어려운 얘기를 꺼내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다시 남녀 생식기의 바람직한 마찰계수를 논하는 식의 애간장을 쥐락펴락하는 능수능란한 세부 스킬이 필요하다 하겠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정말 야설일까?


당 서적을 읽은 척 함에 있어 거의 알파요 오메가인 문제제기라 할 것이다.


그만큼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정체성에 대한 판단은 읽은 척 시전자가 진짜로 당 서적을 읽은 것인지, 혹은 한 손에는 휴지를 든 채 리모컨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듯 특정 부분만을 발췌해서 보았는지를 적들로 하여금 능히 짐작케 할 수 있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이런 질문을 던질 때는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묻는 질문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야설의 정의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당 서적의 정체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 되겠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성 에너지를 집약시키는 글을 통틀어 야설이라 정의한다면 당 서적은 야설에 해당될 수 있다. 허나 만약 야설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및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 들어감으로써 귀두가 아닌 진짜 머리를 커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면 당 서적은 야설과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실재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성애장면이 묘사된 부분은 전체 약 7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중 고작 30여 페이지에 불과하며, 횟수로 따져도 여덟 차례에 그친다. 이 여덟 번의 횟수라고 하는 것은 채털리와 그녀의 연인인 멜러즈와의 관계만을 산정한 것인데 설령 백번 양보하여 그녀의 불구 남편이 개인 간호사 격인 볼턴 부인의 가슴을 마치 어린 아이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애무를 하는 행위나, 멜러즈의 법률상 부인인 버사 쿠츠가 이혼하겠다고 덤비는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벌였던 난잡 판토마임 등의 삽입 없는 비생식적 유사 성애장면을 횟수에 포함시킨다 할지라도 그 횟수는 십 회 내외에 불과한 것이다.


고로 혹여 당 서적을 야설적 효용성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는 회당 3.7페이지 분량의 베드씬을 감상하기 위해 매번 약 90페이지 분량의 설레발을 감내해야 하는 형국으로, 마치 김혜수의 빤스 색깔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 <타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는 자학적 고행에 다름없다 할 것이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인데 읽은 척 실전에서 당 서적에 섹스 씬이 몇 번 나온다는 둥, 전체 분량 중 몇 페이지만 문학적 가치가 발견된다는 둥의 과도한 설레발은 삼가도록 하자. 필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괴감을 무릅쓰고 이런 덧셈을 한 것이지 실전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수치일 뿐만 아니라 자칫 적들로 하여금 읽은 척을 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냐며 비웃음을 사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성불구의 남편을 둔 욕구불만의 귀부인이 돌쇠든 도련님이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정사를 벌일 것만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든다 하겠으나, 주인공 채털리 부인은 소설의 서두에서 마이클리스라고 하는 작가와 몇 차례 관계가 있었을 뿐 사냥터 지기 멜러즈를 만난 후에는 다른 유혹이 넘실거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부종사를 하듯 청교도적 불륜관계를 지속한다는 점에서 프리섹스를 표방하는 여타 야설의 근본적 이념과도 거리가 멀다 하겠다.



당 작품의 야설적 이미지 구축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당시의 영화 포스터



그렇다면 대체 당 서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간단히 정리하자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인류에게 조만간 종말이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일종의 예언서이자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통해 이룩된 소위 인류의 위대한 물질문명이란 것이 사실은 인간이 인간을 더욱 교묘히 억압하게끔 만든 허위적 진보에 불과하며, 인간을 돈과 성공을 향해 마치 좀비들처럼 무의식적으로 달려들게끔 사육시킨 재앙에 다름 아니라 규정함으로써 격정적 관능과 사랑의 능력 유무 여부로 구별 가능한 생명력 있는 진짜 인간이 멸종되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 몹시도 염세적이며 비극적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한 대목을 확인해보자. 아래 부분은 채털리 부인이 멜러즈의 오두막에서 한 바탕 몸부림을 친 후의 대화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이, 지식인이고 예술가고 정부고 산업가고 노동자고 모두 다. 자신들의 마지막 남은 인간적 감정과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직관력, 그리고 마지막 남은 건강한 본능까지 미친 듯이 죽여 없앤다면, 그리하여 지금 계속되고 있듯이 그렇게 계속 대수학적인 진행으로 나아간다면, 그러면 마침내 인류여, 안녕! 하고 종치는 날이 도래하고 말 것이오!...”


그녀는 그의 배에 뺨을 대고 부드럽게 비볐다. 그리고 그의 불알을 손으로 살며시 감아쥐었다. 그의 성기가 이상한 생명력을 가지고 가만히 꿈틀거렸다. 하지만 솟아나 일어서지는 않았다...


“... 뭔가 다른 거슬 위해 살자. 우리 자시늘 위해서든 다른 누구를 위한 거시든, 돈만 벌기 위해서 사는 삶을 그만두자. 지금 우리는 그러케 살도록 강요받고 이따. 우리 자시늘 위해서 눈곱만큼 벌고 사장드레겐 거액을 버러다 바치면서 그러케 살도록 강요받고 이따. 이제 그런 삶을 그만두자! 조금씩, 그걸 멈춰나가자. 고래고래 소리치며 떠드러댈 피료가 업따. 그저 조금씩, 산업에 물든 그 모든 삶을 떨쳐버리고 본연으로 도라가자. 돈은 아주 최소한만 이쓰면 충분할 거시다. 이게 모든 사라믈, 나와 당신, 사장과 주인, 심지어 왕까지도 위하는 일이다...(참고로 이 대목에서 나오는 어색한 맞춤법은 멜러즈가 가끔씩 사용하는 영국 중부지방의 사투리를 표현한 역자의 번역이다.)”


말하자면 당 작품은 산업화로 조성된 초첨단의 현대적 시스템이 인간의 행복을 증대시키기는커녕 인간을 마치 진보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뜨린 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원초적 삶의 의지, 혹은 신성한 생명의 에너지를 갉아 먹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고, 그래서 두 남녀가 삶의 의지, 혹은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육감적 섹스를 통해 그리도 처절하게 현대적 시스템에 저항한 일종의 레지스탕스 문학이라고도 평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향후 당 서적에 대한 읽은 척을 해야 할 사태가 발생할 경우, 앞서 언급했던 ‘살며시 눈 내리깔며 수줍은 미소 짓기’신공은 사실 시류에 영합한 얼치기 읽은 척에 다름 아닌 바,  그보다는 어디 응달에라도 기어코 들어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침울한 목소리로,


“난 채털리 부인 얘기를 들을 때면 전태일이 떠오르곤 해...”


혹은


“혹시 터미네이터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
 
정도의 얼토당토 않아 보이는 멘트를 날려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 할 것이다.


단 여기서 주의점 하나,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혐오한다고 했을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럼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허리하학적으로도 빨갛고 이념적으로도 빨간 그야말로 본격 좌경에로소설 아니냐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약육강식의 냉혈 자본주의도 싫지만 볼셰비키로 대변되는 기계적 사회주의에 대한 불신 역시 당 서적의 테마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문학작품 중에 어느 한 정치적 이념을 지향하는 명작은 거의 없음을 기억하자.


주의점 둘, 서로 읽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어떻게 하면 민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섹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 당 서적을 거론하는 경우라면 그냥 아무 소리 말고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쓴웃음의 여운 정도만을 남기도록 하자. 본 기사의 취지가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했던 만큼 거지에게 동냥은 못 하더라도 쪽박은 깨지 않는 것이 읽은 척보다 선행되어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꼭 기억해야 할 등장인물, 존 토머스 경과 제인 부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위인전도 아니고, 독후감을 읊어야만 될 울 회사 회장님의 자서전도 아닌데 무슨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기억해야 하느냐며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이름이 아니고서야 억지스럽게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워대는 것은 매우 저급한 읽은 척 스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존 토머스 경과 제인 부인의 이름은 예외라 하겠다.


아마도 전 인류의 문학사를 통틀어 존 토머스 경과 제인 부인만큼 그토록 짧은 출연분량(70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 존 토머스경과 제인 부인이 언급되는 부분은 단 몇 줄에 불과)에, 게다가 아무런 말도 없는 등장인물이 이토록 강한 임펙트를 남긴 선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는 탱탱하게 그대로 계속 솟아 있는 남근을 말없이 내려다 보았다. “그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녀석아! 이제 그만 됐따. 그래, 그러케 대가릴 계속 쳐들고 이써야겐냐! 거기 그러케 니 맘대로, 응? 남 생가근 조금도 안코서 말야! 네 녀석이 날 똥으로 보는구나. 존 토머스 이놈! 네가 주인이냐? 내 주인이냐고? 허 참, 나보다 더 거만한 녀석이로군. 말도 별로 안코 인는 걸 보니 말야. 야, 존 토머스! 너 저기 저 여자를 원하는 거야? 내 제인 부인을 원하는 거냐고? 이 녀석아, 네놈은 날 다시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게 한 거야. 알아? 그래, 미소를 지으며 네놈은 고갤 잘도 쳐드는구나. 그러면 그녀에게 부타글 해봐. 이노마! 제인 부인에게 부타글 하라구! 이러케 말해 봐.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께서 드러가고자 하시니.’ 하고 말야. 그래, 이 낯짝도 두껀 놈아! 바로 씹이지? 네놈이 원하는 건 바로 그거지. 제인 부인한테 터러놔, 이 녀석아, 네놈이 씹을 원한다고 말야. 존 토머스, 그리고 제인 부인의 씹...!”


“오, 그를 놀리지 말아요!” 코니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침대 위를 무릎으로 기어 그에게 다가가서는...(중략)


그렇다. 존 토머스 경과 제인 부인은 멜러즈와 채털리 부인의 성기, 즉 그의 자지와 그녀의 보지를 의인화하여 지칭한 것으로 작가의 유머감각 내지는 귀족 계급에 대한 엿먹이기 정신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겠거니와 SM 설정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자극적인 애무는 바로 뇌의 자극임을, 정력은 곧 상상력임을 간파한 작가의 비범한 관능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게다가 당 서적의 두 번째 판본의 영어 원본이 1972년에 ‘존 토머스와 제인 부인(John Thomas and Lady Jan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바가 있는 만큼 어쩌면 주인공 올리브 멜러즈와 채털리 부인보다 더 상징적인 인물의 이름이므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은 결코 저질의 읽은 척 잔재주가 아니라 할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여기서, 우리가 언제까지 서구열강의 문화적 노예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잠시 눈치껏 비분강개한 후, 우리도 질세라 자지와 보지에게 ‘철수와 영희’, 혹은 ‘이도령과 성낭자’ 등의 우리식 이름을 부여하자고 느닷없이 제안함으로써 마치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의 교훈을 역이용하는 필살기적 읽은 척 선빵이 시전 될 수도 있음을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D.H.로렌스와 프로이드


밀란 쿤데라가 니체를 사랑하고, 그 니체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모했듯 어느 작가나 자신의 관점과 성향에 영향을 준 선배와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로렌스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겠으나 그가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회자되는 인물은 공교롭게도 프로이드다.


필자가 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프로이드를 공교로운 인물이라 표현했는지는 독자들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천문학자이기보다는 분뇨의 역류자로 기억되는 티코 브라헤가 그러했듯 로렌스가 야설문학사의 서막을 올린 대표적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면 프로이드는 마치 야설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관련 업계의 대사부쯤으로 세인들의 오해를 사고 있는 바, 로렌스와 프로이드의 멘토적 궁합은 마치 히딩크와 박지성, 혹은 평경장과 곤이의 관계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고 운명적이어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무엇처럼 인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로렌스의 대표작으로 <아들과 연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 두 작품을 꼽는다고 했을 때 <아들과 연인>은 프로이드의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형상화한 전형적인 작품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역시 프로이드의 여성의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에 대한 질 오르가즘의 비교우위론을 지지하는 듯해 보일 수도 있다.(채털리 부인이 초기 마이클리스를 통해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을 추구하다가 멜러즈를 통해 질 오르가즘을 경험함으로써 더 큰 육체적, 정신적 만족을 얻는 듯해 보이는 장면이 있다.)


물론, 로렌스의 활동시기에 프로이드의 저작물이 유럽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주지의 사실이고 로렌스 역시 정신분석학 및 심리학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므로 그가 프로이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으나 그의 작품들, 특히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프로이드에게 갖다 바치는 오마주쯤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치 가재는 게 편일 것이라는 종속과목강문계적 선입관에 다름 아닌 성급한 일반화라 하겠다.


왜냐하면 당 서적에서 채털리 부인이 마치 질 오르가즘을 통해 보다 나은 성적 만족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그 진위여부 자체가 명확치 않은데다 설령 그 점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그녀가 멜러즈와 야반도주를 결심한 결정적 요인은 그가 눈알을 희떡 뒤집히게 만드는 질 오르가즘의 제다이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멜러즈가 이 세상에 남은 몇 안 되는 진짜 남자기 때문이라는 점. 즉, 그가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고, 정신적이면서도 육체적이고, 거만하면서도 소심하고, 까칠하면서도 부드러운 입체적, 양면적, 역동적, 비전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그의 ‘용기있는 부드러운 애정’이 채털리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로렌스의 작품 <아들과 연인>은 자신의 생 전반기를,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그 후반기를 배경으로 재구성한 자전적 작품이므로 프로이드와의 관련성을 통해 읽은 척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삶의 발자취를 탐색해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 하겠다.



채털리부인의 실재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프리다 폰 리히트호펜


요컨대, 로렌스를 어떻게든 프로이드와 결부시켜 그의 작품을 해석하고 논하는 것은 마치 애인이 밤중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분명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느라 받지 않는 것이라 확신하는 것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비약적인 심증에 다름 아닌 스파이더맨적 갖다 붙이기라 하겠다.


고로 당 서적을 읽은 척함에 있어 한사코 프로이드를 운운하며 갑작스런 혼란을 주는 누군가를 만날 경우에는 결코 당황할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사실 그도 당 서적을 직접 읽는 대신 당 서적에 대한 각종 평론을 근거로 읽은 척을 하고 있는 동병상련의 아군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늘 강조하건데,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얘기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이다.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읽은척 매뉴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편


[읽은척 매뉴얼] 밀란 쿤데라의 <농담>편 


[읽은척 매뉴얼] 유토피아편


[읽은척 메뉴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편


[읽은 척 메뉴얼 외전] 88만원 세대




딴지 편집장 너부리(newtoil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