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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 딴지, 봉준호 감독을 만나다!!

2003.4.29.화요일
딴지 영진공 전문면접과




딴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다덜 아시겠지만 본 공사 웬만해선 소위 잘 나가거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영화인들은 잘 만나지 않음이다. 본 공사가 그렇게 콧대가 높아서?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음이다.


본 공사와의 이념과도 잘 안 맞을뿐더러 무슨 영화만 개봉했다하면 재래식 언론덜이 100m 경주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만나 이너뷰를 해대는 까닭에 본 공사까정 나서서 호들갑 부르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궁금증을 풀어줬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살인의 추억>. 올해의 기대작답게 개봉하자마자 무더기로 관객을 불러모았고 지금 추세로 보면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의 관객 수에 육박할 만큼의 폭발력을 보이고 있음이다. 그래서 그 인기에 무임승차해서 한 몫 잡아 볼 겸 <살인의 추억>의 감독인 봉준호를 만났느냐? 그건 아니다.


당 영화가 위의 열거한 대박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람 후 관객들의 반응이 재밌다, 씨바 돈 날렸다와 같은 단순한 의견 피력이 아니라 진정 범인이 누구인지, 어느 것이 실제고 허구인지, 스토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의견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언론덜이 그것을 풀어주겠다며 던진 질문들의 수준은 과연 어떠했단 말인가?


맨털리티에 대한 모자이크 같다는 둥, 인물과 사건이 구체적인 질감을 잃게 된다는 둥 현학적인 질문을 남발할 뿐 아니라 이너뷰 재료의 답변보다 더 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게 과연 이너뷰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독자 개무시의 이너뷰를 보면서 본 공사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음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4월 29일 서울 모처의 한 카페로 아주 비밀리에 꼬셔 불러내었고 <살인의 추억>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관객의 입장에 서서 가장 궁금한 질문들만을 추려 그에게 던져보았음이다.


다음은 본 공사와 봉준호 감독간에 2시간 여에 걸진 접선 내용이다.







 
첫 질문이니까 간단하면서도 디피컬트하고 난해하면서도 심플한 질문부터 던져보도록 하겠다. 대 딴지일보는 자주 보나?


그럼요, 되게 좋아하는 매체고 맨날 보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쓸 때도 딴지일보 기사에서 도움받은 것도 꽤 있었는데...









딴지, 조타고요


본지 기사가 도움을 많이 주긴 한다. 흠흠.. 근데 어느 기사에서 도움을 받았나?


80년대 짜가 마크에 대한 소고, 그 기사. 프로스포츠, 나이스... 영화에 나오잖아요. "나이키가 아니구 나이스구만" 그거. 저도 짝퉁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거든요. 근데 그 기사를 보니까 딱 총정리가 되더라구요.


이미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하나로 본 우원은 봉준호 감독의 정신분석을 끝마쳤다. 그 역시 본 공사와 같은 길을 걷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재료 점검 차원의 질문은 날릴 필요가 없었다. 


아주 난리다. 속된말로 터졌다. 이번 주 흥행 순위 보니까 1등이던데. 영화 쫄딱 말아먹은 감독에서 대박 감독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기분이 어떤가?


별로 실감이 안 나요. 집에 그런 돈이 없는데 우리 와이프가 몇 억 어치 표를 샀나... (웃음)


제가 흥행을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플란다스의 개>도 쫄딱 망했고, 그리고 제가 연출부나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들도 흥행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모텔 선인장> 경우도 서울 이만 몇 천 그랬거든요.


그래서인지 별로 실감도 안 나고, 저번에 회사 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메가박스 앞을 지나는데 매진매진매진매진 돼 있더라구요. 그래서 옆에 가봤지. (웃음)


일렬로 늘어져있는 거 그거 바라보면서 좋아 가지구 헤~ 이러구 전철 타고 집에 갔지. 되게 신기하더라구요.


그럼 언제쯤 되야 실감할 거 같나?


지금은 실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위에서 축하전화가 오니까 실감을 하려고 애쓰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당장 모 변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돈 나올꺼 아닌가?


이거 다 계산하구 하려면 한참 걸려요. 정산해서 저한테까지 오려면 오래 걸려요. 그걸 가지고 실감하려면 올 연말쯤이나 되야 되지 않을까... (웃음)


<살인의 추억>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재래식 언론들하고 한 이너뷰처럼 각 잡지말고 걍 친구에게 썰 풀 듯 편안하게 한 번 얘기해봐라.


범죄영화가 찍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혹시나 딴지에서 그런 거 한 번 판매 해 줬으면 좋겠는데, 옛날 동서추리문고 판매 같은 거.


우리도 했으면 좋겠다만 대체 연료도 검증해야 하고 지구평화도 지켜야 하고 워낙 공사가 다망해서리. 니가 좀 이해해라. 그럼 귀 재료는 어느 작품 좋아하나?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라고 있는데 그거 좋아해요. 탐정이나 경찰의 입장이 아닌 범인 시점에서 쓴 소설이었어요. 어느 의사가 자기 부인 살해해서 완전범죄 저지르는 이야긴데 들킬까 말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


그리고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이던가? 그것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사형 집행 며칠 전, 며칠 전 이래 가지고 누명 쓴 남자 누명 벗기러 뛰어다니고 그게 참 좋았어요.


그래서 항상 범죄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플란다스의 개>도 사실 범죄영화예요, 좀 하찮아서 그렇지. 개를 죽이고 막 그러니까. (웃음)


그런가? 알았다. 당 영화가 잭 더 리퍼 사건을 참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 영감을 많이 받았지요. 근데 100년 전의 영국 얘기니까 세부내용과 시추에이션은 워낙 달라요. 잭 더 리퍼라는 이름도 그냥 경찰서에 보낸 편지에 적혀있는 이름이었지. 그것도 범인 안 잡혔잖아요, 영구미제잖아요. 영구미제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나 그런 거에 힌트를 많이 얻었지요.


되게 재밌구 그 시대에 대한 느낌이 화~악! 나요. 런던에서 이 때 사람들이 이런 꼬라지로 살았구나, 이 때 귀족들이 이랬고 이 때 사회상이 이랬고 사건만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냄새가 물씬 나거든요.


우리영화도 시대적인 공기나 분위기가 많이 스며들어 있잖아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그 시대에 대한 흔적을 부각 안 시키고 은근히 보여주려 열라 노력하더라.


그런 거 일부러 생색내면 민망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훌륭한 영화들이 이미 앞에 많이 있었구요.


사실 우리 영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형사들이 범인 못 잡는 영화잖아요. 형사들이 실패하는 그 점이 특이한건데, 왜 실패했는지 따져보다 보니까 그것이 시대상하고 맞물린 거였거든요. 되게 무능하고 어둡고 한마디로 조까튼 시대였기 때문에 범인도 못 잡고 우리는 이렇게 엿같이 패배하지 않았느냐, 라는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시대상이나 분위기 같은 게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원론적인 질문은 요기까정. 사실 이 영화 만든 목적이 먼가요, 무엇을 참조 했나요와 같은 질문은 본지가 아니더라도 재래식 언론이라든가 주간영화 찌라시덜에서 많이들 했다. 그러니 이런 원론적인 사항이 궁금하면 얘네들 꺼 보시덩가 하시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본 이너뷰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지 않나. 썰이 길었다. 그럼 본 이너뷰의 하이라이트 들어간다.


양복 쫙 차려입은 송재호 아저씨가 등장할 때 기차 길에 서서 후까 잡으며 담배에 불 붙이는 씬 나온다. 그거 <영웅본색>에 대한 오마쥬 아닌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그렇게 등장하잖나.


으하하하하! 기찻길... 상상력 기막히시다. 할튼 <영웅본색>까지는 아닌데 우리 영화가 원체 꿀꿀하다보니까 멋있는 사람도 없고, 간만에 한 번 약간 폼을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함)




그럼 뽀일라 김씨 그건 오마쥰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나왔던 뽀일라 김씨, 이번엔 자막으로 표시되어 나오더라.


자막에 또 애들이 그렇게 넣었더라구, 보일라 김씨라구.


그럼 그게 귀 재료의 아이디어가 아니란 소리?


아니 난 나중에 알았어. 보일라 김씨 이강산 그래가지고.


그럼 당 영화에 나오는 뽀일라 김씨는 조명감독 이강산 씨가 연기한 건가? 


예, 조명감독 이강산 씨. 그냥 하신 거예요. 뒤에서 간단한 거 만지고 그러는 거.


원래 귀 재료가 변희봉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나. <플란다스의 개>에도 보면 변희봉 할아버지가 출연해서 뽀일라 김씨 얘기도 엄청 하고. 그래서 본 우원은 히치콕 영화에 히치콕이 항상 까메오로 나오는 것처럼 당 영화의 자막에 뽀일라 김씨가 나오자, 이거 봉준호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숨은 그림 찾기다! 이런 카인드로 이해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조명기사님으로 했는데 우리 연출부 애들이 그런 생각을 했었나봐요. 난 나중에 시사할 때 알았어. 롤 자막 올라가는 거 보니까 보일라 김씨 이강산 이래가지고 연출부한테 "야! 니네 왜 이렇게 했냐". (웃음)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그렇고, 귀 재료가 만든 영화엔 항상 뽀일라실이 나온다.







네, 당신 영화엔 왜 항상 보일러실이 나오냐고 사람들이 또 그러더라구요. 어릴 때 보일러실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 근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실제 그 당시 경찰서를 보면요 미국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이중거울 돼있고 안에서 취조하는 거 밖에서 막 들리구 이런 거 전혀 없었어요. 창고, 보일러실 심지어는 경찰관 옆에 있는 여관있지요, 여관방에 들어가서 방구들에 앉아 가지고 취조하고 이랬어요. 여인숙 같은데 끌고가서 때리고 그 당시에는 다 야매였어요, 야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리얼하게 그런 썰렁한 파이프들 있는 지하실에서 취조하는 장면을 연출했어요.


뽀일라실과 관련하여 당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취조할 때 뽀일라 수리공의 등장시간에 대한 것이다. 그 넘을 장시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항간엔 뽀일라 수리공이 범인이다, 사건 해결의 열쇠다, 이거 단서다, 이런 의견덜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해명 바란다.


그러니까요. 저로서는 의외의 반응인데...


그럼 단순히 여기는 뽀일라 실이다 이걸 알려주려는 의도?


그런 분위기 상의 의도도 있지만 너무나 허접한 취조 분위기 있잖아요, 취조하고 있는데 막 왔다갔다하고, 신경 안 쓰고, 옆에선 빤스 입고 취조하고 있고. 너무나 부조리하고 뻘쭘한 그 상황을 보여주려고 한건데 영화가 워낙 사건이 강렬하다보니까 관객들이 예민하게 단서로 받아들여서 미안하더라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그런 의견들로 아주 난리가 났다.


맞아, 보일러 김씨가 범인이다 이런 글도 있었어.


심지어는 뽀일라 김씨에 대한 귀 재료의 오마쥬다, 라는 의견도 있다.


난 그냥 뻘쭘하고 조악한 느낌을 살릴려고 한 거였는데. 또 이강산 기사님이 연기가 서투르시다 보니까 느릿느릿 걷잖아요. 웬지 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거야. 그런데 그 시퀀스가 그럴 수 있는 시퀀스 같아요. 거기가 드라마의 어떤 핵심적인 몬가를 차지하는 시퀀스가 아니라 박해일이 등장하는 중간 과정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찍을 여유가 있었고 관객들도 드라마, 내러티브 상으로 그 단락에서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눈이 가게 되고 예를 들어 더 긴박하고 아수라장 상황에서는 그런 인물이 심어져 있어도 눈에 띄지도 않죠. 드라마 흐름 탓도 있는 거 같아요.









백광호


그 부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럼 다음 궁금증으로 넘어가자. 백광호가 목격자로 확인되고 박두만과 서태윤이 그에게 박현규 사진을 보여주지 않나. 그러자 백광호 왈, "얘가 불구덩이에 집어 넣었다" 라고 한 장면에서 누가 백광호를 불구덩이에 넣은 건가? 여기에 대한 의견도 오만가지다.


아버지. 저기 아버지가 달려오잖아요, 그 때 백광호가 "날 던졌다, 저 사람이 어렸을 때" 그러잖아요.


우리가 옛날에 배우들하고 시나리오 토론을 할 때도 그 장면에 대한 논란이 많았어요. 저는 쓸 때 사실 그냥 썼거든요. 웬지 얘는 이 시점에서 불이 뜨겁다 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직관적으로 확 써내려 간건데 보는 사람 입장에선 여러 가지로 해석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박현규에 대한 부분도 몹시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박현규가 범인 인 것처럼 몰고 가는데 실제에서도 그런 넘이 있었나?


사실 실제 사건에서도 유전자 조사를 받고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언론 상에 거의 범인처럼 발표가 되긴 했었고. 하지만 유전자 결과가 아닌 걸로 드러났지요. 근데 그 인물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언급이 되면 피해가 될 거 같아서 피하고 싶고, 그리고 범인이 아닌 걸로 명확히 판명이 났으니까.


그럼에도 당 영화를 보고 나면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박현규는 투수 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는 것처럼 그 인물의 위치,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니까 박해일 배우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그를 밑그림으로 해서 계속 생각하잖아요. <우울한 편지>를 계속 보내는 놈이 있다, 그가 범인이라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잖아요. 이미 그는 범인 또는 범인 같은 것이고 앞에 나왔던 용의자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라는 느낌이 생성 돼가고 있잖아요.


근데 투수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듯이 그 자리에 해일이가 싹 들어가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미 캐릭터 자체보다 그 캐릭터의 포지션 자체가 드라마 상에 이미 있었어요. 그 인물은 사실 형사나 관객들이 범인을 잡고 싶은 욕구가 되게 강하게 몰고 가는 드라마니까 형사나 관객들의 입장에선 걔가 범인이고 싶어요.


그 욕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는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 감식이 아니라고 나오니까 그게 인제 거의 불덩이와 얼음이 충돌하듯이 그 접점에서 뜨거운 경계선이 생기는 거죠. 어떻게 보면 박현규라는 것은 실질적인 사건의 인물, 캐릭터라기 보다는 하나의 어떤 형사나 관객의 욕망이 하나로 집결되는 어떤 포지션인 거 같아요.


본 우원도 박현규가 범인이 아니라는 FBI의 서류장면을 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따. 그래서 FBI 이 넘들도 조사를 날림으로 했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가 범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죠. 그리고 그만큼 김상경의 심정에 동화 돼 버린 거죠. 영화를 보면 얘는 범인이다, 로 몰고 가고 있잖아요. 그니까 <우울한 편지>를 계속 신청한다, 그리고 또 얘가 버스 타고 사라졌을 때 여중생이 죽는다, 손이 부드럽다, 이 모든 것이 강한 심증일 뿐이지 이게 다 정확한 물증은 아니니까.


그 지점에서 형사들이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실제 사건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실제 사건을 보면서 내가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게 사건이 5년에 걸쳐서 일어났잖아요, 초창기 일수록 더 개판이예요. 현장보존도 안 되고. 근데 그 5년 동안 과학수사도 발전을 하더라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실제 사건에서도 여중생이 죽었을 때 거의 클라이막스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 땐 정말 형사들이 과학수사를 했어요. 실제 사건에서는 유전자를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보냈어요. 형사들도 정말 승부수를 제대로 던진거지. 그동안은 두들겨 패고 풀려나고 그걸 반복하고 억지 수사만 하다가 이번엔 정말 승부수를 던졌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는 범인이 아니라고 온 거야. 그거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칼하고 웃기기도 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졌었어요.


영화에도 그게 고스란히 반영이 돼 있어요. 특히 관객들이 영화 안에서 김상경의 시점이나 심정을 따라가게 돼 있는데 맨날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하거든" 그랬다가 정작 서류가 얘를 배신하게 되잖아요. 대사도 "이건 다 거짓말이야" 이러는데 실제 사건에서도 그렇고, 그 비극성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마침내 과학수사라는 게 본 궤도에 오르고 승부를 던졌는데 거기서는 정작 아닌 걸로 나오니까 얼마나 허망했겠어요.









절라 허망한 순간...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도 실제로 있었던 걸 차용한 건가?


그건 실제가 아니라 픽션인데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장치예요. 연극 원작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장치 중의 하나가 FM 라디오 신청하는 그거랑 무모증 에피소드 그런 건데 연극에 고스란히 있어요.


그럼 연극에서도 <우울한 편지>가 등장하나?


연극에서는 <모짜르트 레퀴엠>이에요. 그런데 연극보다 영화에서는 시대적인 느낌이나 공기 같은 게 중요하고 실제적인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레퀴엠 이런 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이 기억할 수 있는, 그리고 제가 중학교 때 개인적으로 그 노래를 좋아했어요. 유재하 음악 처음 나왔을 때 그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는 센세이셔널 했거든요. 서로 녹음 따서 돌려 듣기도 하고 그랬어요.


사실 박현규 캐릭터랑 잘 맞을 거 같기도 했어요. 뽀얀 피부를 한 애가 앉아서 그 음악을 듣고 있는 그런 장면을 생각해 보면 섬세한 그런 느낌과 잘 맞을 거 같기도 했고, 또 유재하가 죽은 가수잖아요. 그 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사람. 그래서 더 끌리기도 했고, 그래서 <우울한 편지>를 하게 됐죠.


마지막 기차 터널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심장이 쪼리뽕 될 정도로 정말 벌렁벌렁하더라. 그 장소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인가? 아니면 현장 헌팅하다가 발견하고 넣은 장면인가?


처음 시나리오에는 기차 클라이막스가 원래 터널이 아니었어요. 그냥 뻥 트인 공간이었는데 그게 항상 답답했었거든요. 뭔가 아쉽고 클라이막스에서 이런 식으로 풀어 가지고는 과연 비쥬얼한 이펙트가 있을까... 근데 헌팅하다가 터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 터널 덕분에 그동안 여러 가지 매듭이 안 풀렸던 생각들이 쫙 정리되면서 참 좋았었어요.


어떤 매듭?







일단 빛과 어둠이 있고 그 터널이 반대쪽은 안 보이잖아요. 박현규가 어둠 속으로 쫙 사라져서 퇴장하는 그 느낌도 너무 좋았고,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있는 그 느낌. 대부분 관객들이 잘 모르는데 자세히 보면 송강호가 해일이한테 "밥은 먹고 다니냐" 대사 치는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그 터널 경계선에 서 있는데 송강호는 비를 막 맞고 있고 박해일은 말짱하게 비를 안 맞고 있어요. 그게 해일이 쪽 표정연기에도 도움을 줬고 일부러 그렇게 설정을 했는데 그 서로 다른 경계선에 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근데 그건 영화 보면서 느끼기는 힘들어요. 빗소리 사운드가 계속 나기 때문에 별로 인식하기 어려운데 예를 들면 그런 설정이라든가 그리고 터널이니까 기차가 나올 꺼 아니예요. 형사와 박해일을 서로 갈라놓는, 운명적으로 완전히 끝나 버린 느낌 있잖아요, 그리고 FBI 서류를 찢어 놓고. 그니까 터널로 인한 일타사피의 효과라고나 할까 모든 매듭을 다 풀어줬어요.


그 시각적인 느낌하며 터널 그 자체의 느낌도 좋았고 그 이끼가 잔뜩 낀 질감이라든가 어두컴컴한 느낌. 좀 으슥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더러 터널 때문에 비로소 모든 장면들을 구성할 수 있었고 클라이맥스에 대한 고민이 풀렸어요.


사실 클라이막스 부분은 콘티를 안 해놓은 상태였거든요. 대부분의 씬들이 클랭크 인 할 때 콘티북이 통째로 책이 한 권 있을 정도로 미리 정교하게 짜 놨었는데 클라이막스는 비워 놓은 상태였어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 터널로 컨셉을 잡게 되면서 모든 매듭이 다 풀렸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그게 귀 재료가 범인에게 하는 소리라는데?


그거 애드립이예요, 내가 계속 강요한 애드립이지. 장소는 사천의 한 피자집, 때는 늦은 밤. 그거 찍기 며칠 전부터 강호 선배 불렀어요. "잘 모르겠다"와 "아, 씨발 모르겠다" 그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는 건데 내가 강호 형 거기 모가 또 하나 있을 꺼 같아요, 뭔가 하나 더 나와야 한다, 그동안 박두만 역할을 몇 달 동안 해 오셨으니까 박두만 만이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걸 나보다 더 아실 꺼 같다, 모 좀 하나 해 주세요, 내가 강요를 했거든, 괴롭혔어요. 근데 막 고민하면서 죽을려구 그러더라구.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예를 들어 <복수는 나의 것> 보면은 마지막에 신하균이랑 강물에 들어가 갔고 "내가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면서 다리 확 짤라 버리잖아, 그게 얼마나 웃겨.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착하다면서 왜 또 짤라 짜르기는. 그 점이 되게 강렬하잖아요. 그 예를 들면서 내가 막 그런 모시기가 있어야 되요, 그랬더니만 괴로워하더라고.


그랬더니 강호 선배가 그 대사를 딱 생각 해 오신 모양이야. 현장에서 딱 한거지. 처음에 스탭들은 대체 뭔 소리야 저게, 멀뚱했던 모양인데 두고두고 볼수록 좋았어요. 그렇게 밥을 먹고 다니냐 한 버전도 있고 안 한 버전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를 편집에서 하게 됐지.


귀 재료의 단편 <지리멸렬> 같은 경우는 주제가 직접적이었다. 근데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는 주제가 애둘러 표현하는 느낌이다. 맞짱 뜨는 거에 대해 흥미를 잃은 건가?


<프란다스의 개>가 특히 모호했지. 제 성향이 원래 그래요. 정색하고 심각한 얘기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농담하다가 한마디 툭 내뱉어 버리고 가는 거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 따라 성격도 다른 거 같고.


<살인의 추억>은 시대적인 코멘터리라든가 그런 것들, 소녀 죽을 때 등화관제 되는 거랑 노골적으로 교차편집 된다거나 송재호 선생님이 "전경들 수원시내 시위 진압하러 갔다" 그런 얘기를 대사로 해 버리자나요. 그런 점 때문에 <플란다스의 개>보다는 조금 더 직설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적으로는 <플란다스의 개>에 비해 비교적 직설적인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아까 시대상을 은근히 깔았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플란다스의 개>에 비하면 선명한 지점이 있지 않았던가. 그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1~2년 지나고 저도 더 두고봐야 알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의 주제는 몬가?


주제? 아! 씨바,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플란다스의 개>는 특히 말하기 복잡한데요,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는 정말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이죠.




근데 제목 참 죽인다. 직접 붙인 건가?


예, 여러 가지 제목을 써서 내가 제출했는데 <살인의 추억>을 프로듀서가 픽업했죠.


남로당 사무총장 너부리의 메신저 이름은 삽입의 추억이드라.


으하하하하. 오 마이 갓. 에로 비디오도 나오겠다. 영광이지 뭐. (웃음)... <플란다스의 개>는 영화가 망하다보니까 에로 패러디 버전이 없었어. 이번엔 좀 나오겠구나. 아~ 영광이네. 삽입의 추억, 사정의 추억 그런 거 나오겠네.


질문의 요지가 빗나갔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살인의 추억> 주제는 몬가?


<살인의 추억>은 제목 그대론 거 같아요. 사실은 살인의 악몽이죠. 역설적으로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없다 그런 건데, 작게 보면 형사들이 실패하는 아픈 기억,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 그 시대의 살았던 우리 모두의 씁쓸한 아픔 같은 거, 그게 주제죠.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가 씨바 이렇게 살았었구나. 저렇게 엿 같은 시대에서 나름대로 낄낄거리면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보면 되게 부조리 하자나요, 한 편의 코미디처럼 보이잖아. 한복 여고생들이 태극기 들고 뛰어가고 그 때는 그게 리얼한 거였잖아,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게 부조리 한 거지. 불과 십 몇 년 전인데, 사건 자체도 강렬하고 전대미문의 사건이긴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저런 꼬라지로 저런 범인도 하나 못 잡고 여자애 죽는 거 하나 못 막고, 그렇게 살았었구나, 슬프다 씨바,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그게 주제죠 사실.


임상수 감독님이 처음 제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반응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우리가 이 꼬라지로 살았었구나, 라는 반응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 반응이 가장 기뻣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했고, 그거 같아요.


사실 당 영화의 주제에 대한 질문을 날렸을 때 봉준호 감독은 웃으면서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본 우원에게 어렵다는 의미는 아픈 기억을 설명해야 하는 가슴 쓰라림 이런 카인드의 맥락으로 들려왔다.


고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을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물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음 페이지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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