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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그때 그 사람들> 감독 임상수를 만나다

2005.2.28.월요일
딴지총수

<그때 그 사람들>. 2월 3일 개봉한 이 영화는 앞뒤 장면이 잘린 채 개봉됐다. 그리고 3주를 제대로 못 버티고 대부분의 극장에서 철수했다. 본 이너뷰는 개봉 2주차에 이뤄졌다. 그 사이 그는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와 관련한 정치적 소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었다.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들 역시 함께 찌그러졌다. 본 이너뷰는 흥행에 어떻게든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제작사 측의 바람이 성사에 절반 이상 기여한 케이스긴 했으나 본지 사실 거기엔 크게 관심 없었다. 각종 호들갑도 워낙 명백하게 구린 일이라 오히려 크게 관심이 없었고.


본지는 사실 임상수가 궁금했다. 자 그를 만나보자.



2월 15일 영화아카데미에서 후배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가지고 돌아오는 그와 밤 12시 홍대 딴지바에서 만났다. 본지에선 총수와 술탄이 출동했고, 그는 혼자 왔다.





 


임감독과 총수는 우연찮게 몇 번 조우해 이미 구면이었고 공식적 분위기 나긴 이미 너무 늦은 시간대라, 첨부터 분위긴 노골노골했다.



총: 물론 이 영화 때문에 이너뷰를 하지만, 사실 감독님 인터뷰를 예전부터 하려 했었기 때문에.. 뒤져보니까 임상수가 누구냐.. 이런 인터뷰는 없더라구요. 그런 거 왜 안 하셨어요? (웃음)
임: 내가 항상 그렇지 뭐. 알아봐야 소용이 없지 뭐(웃음).


총: 왜 그걸 안 했을까?
임: 대선에 나갈 것도 아니구(웃음).
총: 그래서, 좀 쑥스러우시겠지만, 임상수는 누구냐..


임: 뽕빨 인터뷰입니까?
총: 그렇죠.
임: 영광이라고 생각하죠.


총: 그.. 어릴 때 얘기부터 좀 해주세요, 쑥스럽겠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다 커서 30대 중반쯤 넘어서 쫘악 돌아보니까 지금까지 임상수를 만드는 데 있어 주요했던 사건들이 있더라..
임: 얘기하기 싫은데..(폭소)


총: 십대 시절에 뭐 이십대 시절에 뭐..
임: 예. 근데...
총: 그런 관점에서 국민학교 때..


임: 어느 사회학 전공하는 사람이랑 얘기하면서 밝혀낸 사실인데, 가부장제가 아버지 하나 가지고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더라구요. 어떤 여자가. 걔네 아버지도 이북에서 내려왔고, 우리 아버지도 이북에서 내려왔는데. 그러니까 혈혈단신 내려온 거죠.
총: 그 시스템에 호응하는 엄마가 있어야 된다?


임: 아니 그러니까, 아버지 쪽 식구들이 쫘악 있어야.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이렇게 대가족 형태로 쫘악 있어야, 소위 한국에서 가부장제의 파워를 갖게 되는 거지, 그냥 띡 혼자 있는 아버지는 보통 가부장의 권위가 이미 없다. 그런 얘기를 들었고..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한테도 해당되는 거 같다 생각을 했는데. 우리 아버지도 온 식구 다 놔두고 자기 아버지랑 둘만 내려와서, 자기 아버지랑도 잘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서 혼자..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어떤 가부장제의 억압, 거대한 가족 제도의 억압.. 그런 데서부터 어릴 때부터 굉장히 자유롭게 자라왔다...


총: 어떻게 보자면 운 좋게..
임: 그럴 수도 있겠죠.
총: 한국사회에서 평균보다 훨씬 자유롭게..


임: 그렇죠. 우리 아버지가 일단 제사 같은 건 하나도 안 지내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제사상이란 건 구경해 본 적이 없고. 외가집에 가서 좀 구경을 해봤고.. 몹시 상징적일 수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세배도 거부했기 때문에..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큰절이란 거를 하지 않았고..


총: 그럼 아버지가 남자로 보이게 되는, 뭐 죽을 때까지 안 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고 한 사람의 남자로 보이게 되는, 그런 때가 좀 일찍 왔겠군요..


임: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전혀, 가부장은커녕 가장으로서의 파워가 필요한 남자가 아니었어요. 내가 생각하기로는 30대 중반부터 실업자였고. 어.. 뭐 간섭하거나 그런 거 없고..


총: 남자형제는?
임: 형이 하나 있죠.
총: 그러면 어쨌든 아버지가 일찍 남자로 보였겠어요. 한 사람의 남자로.
임: 아, 그렇죠. 우리는 별다른 동정심이 없죠.
총: 어릴 때부터.
임: 예.
총: 그게 주요한 사건 하나고, 혹은 배경의 하나다.
임: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부장 구조는 그 사회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모사한다. 지배와 복종의 역학은 그렇게 아버지부터 최초로 학습 받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남다른 대목이다.


총: 또 뭐가 있을까요? 왜냐면..
임: 떡 삼부작! (웃음. 그는 그의 전작 세 편을 떡 삼부작이라 부른다)
총: (웃음) 어떤 영화를 얘기하려면, 그 감독 누구야, 어떤 사람이야 부터 얘기해야 한다 생각하는데.. 아무도 안 했더라구요?


임: 사실은 많은 것들이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거 같아요.
총: 가부장제 세례를 받지 않은 거?


임: 예. 그러니까 난 중고등학교 시절이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고등학교 시절이. 뭐 군대식으로 하고. 아침에 들어갈 때 모자가 삐뚤어져 있으면..
총: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안 자랐는데.. 집에서부터.


임: 예예. 아구창 치고 빠따 치고, 그리고 교련하고. 그런 것들이 정말 지옥같이 느껴졌어요.
총: 미리 그 복종 모드로 훈련되어 있지 않았던 거군요.







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고등학교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거로부터 너무 행복했었는데, 으아, 군대를 끌려가다 보니 이건 더 큰 압제가 있는 거야. 으허허허. 거의 정신병 직전에 제대를 해서 겨우 살아 나왔지.


그런데 사실은, 아 이제 나는 다 했구나, 진정한 자유인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나오면서, 아 국가가 나한테 "너 씨발넘아,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와야 되는 놈이야, 아직 자유는 아니야"(폭소) 라는 그게.. 잊을 만 하면.. 그 담에.. 그래서 난 정말 자유인인 줄 알았었는데, 이제 충무로에 들어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총: 처음에?
임: 예.
총: 그건 또 왜요? 역시 또 위계나 뭐..
임: 예. 도제 질서..


총: 역시 어릴 때 길을 잘못 들이면 평생 고생이군요(폭소) 이번엔 영화판 위계..
임: 그거 인정 안 하죠. 선후배 사이 이런 데 문제가 많고. 나는 한 번도 동창회 이런 데 나가 본 적이 없어. 선배 알기를 개떡처럼 우습게 알고.


총: 물론 존경하는 선배도 없고.
임: 그렇죠.


총: 존경하는 사람도?
임: 그렇지는 않아요. 그건 뭐냐면, 그렇게 시스템이 싫지만 충무로에서 부대끼면서, 거기서 영화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같이 고생하는 동료에 대한 애정, 이런 거는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총: 그거는 동질적 연대, 혹은 수평적인 그런 유대..
임: 그런데 사실은 많은 관계를 맺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죠.



히딩크가 적어도 축구 국대팀에선 절단 냈던, 우리네 혈연 지연 학연 지향은 어쩌면 우리 가족 시스템의 내재적 결함에서부터 최초 출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총: 그렇군요. 감독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거는 사실 <그때 그 사람> 밖에 없는데. 그것도 찔끔찔끔 봤는데..(웃음)
임: 케이블에서?


총: 예. 케이블에서 대여섯 번에 걸쳐 찔끔찔끔 다 본 거 같은 데.. 아직도 못 본 장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근데 제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 임상수를 좋아하게 됐지요. 쪼끔(웃음). 어떤 장면을 보고 좋아하게 됐냐면, 아기 던지는 장면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얘기했을 거 같단 생각 드는데, 제가 개봉할 때 영화도 못 봤고 워낙 영화평 이런 거도 안 보기 때문에 그때 어떻게들 얘기하고 넘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장면 보고 감동했거든요?(웃음) 아, 한국영화사에 남을 한 장면이다 이거...


임: (웃음) 어떤 감동을 느꼈어요?
총: 동물적인 걸 느꼈어요. 어떤 거냐면, 예를 들어 전 봉준호 감독이 아주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면 충격도 다 계산 되어 있고 평균적인 감정 흐름의 템포를 벗어나지 않고 모범적인데.. 이 정도면 놀랄텐데.. 놀라려면 이 정도까지만 놀래라.. 3초간 놀란 다음에 그 담에 고개를 돌려.. 그런 거.. 그러니까, 아 이 사람은 참 공부도 열심히 하고, 머리도 좋고, 영리하고, 사람들 감정 흐름의 평균치를 잘 읽어내고.. 한국에서 소위 잘 만드는 감독들은 그런 감독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는, 이게 평균적인 템포하고 아무 상관이 없고, 게다가 이게 어디서 보고 배운 게 아니다, 이거는 자기가 자신이 있나 보다, 자기의 템포나 각이.. 아, 이거 이렇게 가야 해, 이렇게 가.. 그런 감은 누가 가르쳐주거나 확인해 줄 수 없는 건데.. 그게 그렇게 가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임: 그렇죠.
총: 그러니까 이게 영화를 하다 보니 자기한테 믿음도 생기고 느낌도 생기고.. 그게 뭐냐면.. 왜 동물이 자기가 맘을 주는 암컷을, 인간들이야 열심히 정보도 수집하고 사방에 괜찮냐 물어보고 조건도 따지고 하지만 동물들이야.. 숫사자가 암컷 볼 때 그런 거 따지겠어요. 열 마리 중에서 딱 보고 아 저 년이야.(폭소) 한 눈에. 그거는 본능적으로 확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간들이 그 감각을 잊어간다 생각하는데.. 아, 이 양반이,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동물로서의 감각 그런 걸 다시 자각해 가는 그런 거 아닐까? 그런 게 드러난 장면 아닐까.. 그렇다면 멋지다.. 그런 의미의 동물적인 걸 느꼈지요.


임: 아,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어요.
총: 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바람난 가족>, 그 영화는 감독 자신하고 닮은 거겠구나. 템포나 내용, 자기가 평소에 느끼고 연애하고 세상 사는 방식하고.. 자기 내부 풍경이다.. 그래서 그런 힘이 팍팍 느껴진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보고, 이런 장면은 한국영화엔 없었다. 다 계산되거나, 흉내 내거나, 아니면 자기도 자신이 없거나, 잘 모르겠거나..


임: 알려진 공식대로 하거나?
총: 예. 근데 이거는 자기가 확 가버렸다, 자기를 믿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잠시 뜸 뜰인 후) 맞나? (폭소) 그러구 나서 처음으로 감독님한테 관심이 생겼는데, 근데 제가 다른 자리에서 감독님 처음 봤을 때 있잖습니까.. 그 땐 사실 아무 영화도 안 봤기 때문에.. <바람난 가족> 흥행 직후인데도 영화도 안 봤고 그땐 관심이 전혀 없었고, 그저 <처녀들의 저녁식사> 감독이다..


임: 사과성 발언인 거죠? (폭소)
총: 하하. 그 장면 보고부터 이 양반 인터뷰 한번 해야겠다.. 우리 문화계엔 잘 없는 감각이다..



우리 문화계엔 잘, 없는 감각이다.


임: 대개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이. <바람난 가족> 처음에 나왔을 때 그 장면이 문제가 많이 되었었죠. 주로 비난만 받았어요. 그 때 우리 영화 홈페이지에 아동복지과에서 공식적으로 아동을 그렇게 학대하면 안 된다..(폭소)


총: 하하. 그게 비난 받았었군요..
임: 인터뷰하면서, 또는 무슨 Q&A 하면서 그 장면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편해하고 욕하더라고요. 내가 애를 직접 던진 것도 아니고 영화인데 그렇게 반응하는 건 웃겼는데. 베니스에 갔는데 그 장면이 뷰리풀리 샷 된 장면으로 얘기를 해서, 여기서는 얘기가 되는구나.. 하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찍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더 잔인하게 찍을 수도 있었어요. 근데 아주 간단하게 찍어버린 거거든요. 아주 간단하게 찍어버린 건데..


그 장면의 본질 내지는 기원은 뭐냐 하면, 영화공식, 흥분을 쌓아가는 공식이 있는 거잖아요. 뻔한 공식이. 뭐 주인공이 항상 악당한테 체포를 당해요. 총을 악당이 겨눠. 총을 빵 쏘면 끝나는데 안 쏘고 이러다가 주인공한테 당해. 그 장면의 출발은 그거였다고 생각해요. 왜 그냥 쏘지, 말들이 많아 가지고 당해.(웃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찍을 수 있는데.. 하는 게 사실 나를 영화감독으로 만든 건데.. 나는 다른 식으로 애기할 수 있는 데..


총: 그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장면이겠네요?
임: 그렇죠.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될 수 있는 거고. <바람난 가족>이 세 번째 영환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 번에 네 번째 찍었는데 처음엔 되게 불안해요. 처녀를 찍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뭐를 선택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하면 오버라고 그러지 않을까, 미친놈이라 그러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타협을 하는 거예요. 영화 비슷하게 만들어야 되니까. 결과가. 한 작품, 두 작품, 세 작품, <바람난 가족> 쯤 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고 아아.. 모든 건 내 안에 물어봐야 되는구나. 내 깊숙이 뭐를 선택할지를.



감독은 모든 걸 다 선택 결정하는 건데, 근거는 내 깊숙한 속한테 물어봐야 되는구나 라는 걸 가장 결정적으로 느낀 게 <바람난 가족>을 딱 끝내놓고 이런 타협은 무의미하고 내 안의 것으로 승부가 봐야 되는구나. 그래도 승부가 되어지는구나. 바깥 세상에 나왔을 때. 그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 <바람난 가족>이고 그런 점에서 <그 때 그 사람들>은 정말 내 속에 있는 걸 그대로, 내 속에서 때때로 모호할 때가 있어요. 모호하면 그걸 버리는 수가 많아요.


이번에 <그 때 그 사람들> 찍으면서는 그 모호한 걸 가지고 계속 고민하고 촬영감독을 괴롭히면서 그 모호한 걸 끌어내서 찍으려 노력했고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이걸 이렇게 찍으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 그러지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도 없이.. 그런 점에서 <그 때 그 사람들>이 가장 임상수 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총: 애기 던지는 장면 그런 의미에서 감동적이었는데.. 윤리나 도덕이나 문법이나 관습이나 싹 다 생략하는 게 매우 용감하기도 하고, 아까 말한 의미의 동물적이기도 해서 최근 몇 년간 본 한국영화 장면 중 제일 좋아하는데..


임: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가 얘기를 하길, 자기는 아 저렇게 해서 층계 올라갈 때 애가 죽겠구나 알 수 있었는데, 그렇게 죽일지 몰랐다는 거예요.
총: 아, 몰랐겠죠. 대부분.


임: 나는 관객하고 승부하는 거거든요. 관객의 예상대로 해주면 나는 관객한테 진다고 생각해요. 감독으로서 관객하고 승부하는데 아 저렇게 해서 죽겠구나.. 이야기의 흐름상 애가 죽이는 건 예상할 수 있죠. 죽이는데 나는 이겨야 하기 때문에 뒤통수 치는 씬으로 승부해야 되는 거죠.


총: 남들한테 물을 필요 없이 내가 세상 산 40년, 여러 경험도 했고 그렇게 쌓여진 내 감수성한테 물어보고 확인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신 거잖습니까? <바람난 가족> 끝나고 느낀 게. 그리고 그렇게 이 영화도 찍었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요 얘기는 좀 있다 하려 했는데, 말이 나왔으니까 먼저 언급하자면,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의 사건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몰라도 이 사건은 하필 남들이 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이란 말이죠..


임 : 아, 이 영화.
총: 네, <그 때 그 사람들>. 그렇게 임상수의 감각 만으로 접근했을 때, 누구나 겪은 사건이라 다들 자기 나름대로 기억하고 해석한 다른 사람들의 감성하고 얼마나 공명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와 부딪히게 되지 않겠나 하는 얘긴데.. 그래서 소재에 따라 그렇게 자신 내부의 감성에만 물어보는 게 좋은 방식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건데..


이 이야긴 좀 있다 하기로 하고.. 먼저 임상수가 누군가 이야기를 마저 묻자면, 그러니까 지금의 감독님을 있게 한 핵심은 한국적 가부장을 겪지 않아서 이 사회시스템에 복종하도록 미리 훈련되지 않은 채 사회로 던져진 거.. 또 있을까요? 이런 건 어떻습니까? 소위 떡 무비를, 성 모럴에 대해서 얘기해 왔는데, 그건 아무래도 연애 경험, 첫 사랑 혹은 첫 이별, 배신 등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바람난 가족>...


임: 그건 어린 시절하고 특별히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떡 영화를 찍게 된 데는. 단적인 예는 저는 형이 한 분 있는데. 저와 20년간 한 방을 쓴 형이예요. 저와 친하죠. 그 형이 대학 졸업하고 유학 가서 십 년 동안 못 만났지. 십 년 동안 못 만났는데 내가 감독이 되고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자기는 너무 놀랐다는 거예요.


총: 아, 저럴 줄 몰랐다?
임: 재, 재, 저런 애 아닌데.. (폭소)
총: (폭소)


임: 저 새끼 미쳤나? (폭소) 나도 혼자 웃었는데, 물론 <처녀들의 저녁식사>에는 사실은 앞에 문구가 있어야 되요. 데디케이티드 투 더 걸스 후 나를 여지껏 거쳐간 여자들.. 뭐 이런.. (폭소)
총: 하하하


임: 뭐 이런 게 있어야 되는 영화죠. 또 한 가지는 특별히 성적인 데 과도하게 관심이 있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단 거예요. 그리고 우리 형이 깜짝 놀랐다는 거는 뭐냐 하면 집안 분위기는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않았어요. 성적인 면으로.


총: 그런 면에선 보수적이었다는?
임: 보수적이라고 얘기 할 수 없지만...
총: 특별히 성적으로 리버럴한 건 아니었다?
임: 그건 아니라는 얘기죠.



총: 그건 평균에 가까웠었다?
임: 예 그건 평균에 가까웠었죠. 우리 엄마 아버지 둘 다 성적 트러블을 느끼게 한 건 아니었으니까. 이런 거죠. 데뷔를 해야 되는데, 계속 안 되는 거야..
총: 영화감독 데뷔?


임: 예, 영화감독 데뷔를 해야 하는데 따져보니까 아, 떡 영화를 찍으면 되겠구나. 뭐 코메디 하거나 멜로드라마보다 떡 영화 하면 되겠구나.
총: 좀 쉬운 걸로 하자 이런 거였나요?


임: 멜로, 코메디, 떡 영화 중에 고르라면 나는 그냥 떡 영화 할래. 이렇게 되는 거죠. 떡 영화는 일단 소재니까. 생각을 많이 하고 취재를 많이 하고 취재를 정말 많이 했죠. 그렇게 해서 만든 작품이죠.


총: 그러니까 이게 기획상품이네요?
임: 회사입장에서는 기획상품이고, 기획상품 속에다 내가 나만의 어떤 독특한 색깔을 그려 넣은 거고.. (영화사 스텝 잠깐 들어옴. 인터뷰 잠시 끊김)



그래서 그를 소재주의로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성모랄에 대한 특별한 문제의식은 없고 그게 장사 되는 소재여서 덤볐다는 혐의로. 글쎄. 결국 중요한 건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요리실력 아니던가.


임: 질문이 뭐였죠?
총: 임상수는 첫경험은 언제 했고 첫 배신은 어떻게 때렸나. 하하..
임: 전 대학교 1학년 때 여자친구와 했어요.


총: 그럼 더 중요한 첫사랑, 첫 배신. 여자가 배신을 하든 감독님이 배신을 하건. 사실 개인적으론 사랑에 배신은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임 : 알려진 것보다 저는 대단히 순진한 남자기 때문에..
총 : 순정파..


임 : 그 여자랑 결국 7년간 사귀다 헤어졌는데, 7년이라 하면 대학 4년하고 군대 중간 3년하고 그렇지. 그렇게 7년 사귀고 헤어졌지. 나는 군대 가서 대학교 4학년이고 동기인데 그 여자는 나 때문에 대학원도 다니고 쓸데없이 그러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충무로 가는 거는 지금이랑 틀렸어요. 그건 죽으러, 인생 망치러 가는 거였어요.


총 : 지금 연극판이랑 비슷..
임 : 예 그거랑 비슷하죠.
총 : 예술 한다고..
임 : 나는 결혼을 안 한다, 그 얘기 참 하기 힘들었지 7년 사귀었으니까. 걔로 하여금 포기하게 하는 괴로움을 내가 걔한테 줘야 했지. 지금 애엄마 됐을 텐데..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여자 중에 젤 못해준 여자가 그 여자였던 것 같은데.


총 : 잘 해줄 수도 없었겠죠. 형편도 안되고.
임 : 그렇지. 아직 잘 몰랐지. 그 담부터 여자한테 참 잘해줘야 한다는 걸 알았는데.. 그래서 걔로 하여금 나를 포기하게끔 하는 전략을 구사 했던 것 같아요.
총 : 어떻게.


임 : 뭐 못 되게 굴었지 뭐.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대학 4학년 땐데 걘 대학원 다니고 밤 11시에 도서관이 닫는 것 같애.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데 앞에 두 남녀가 걸어 가더라구. 전혀 신경이 안 쓰여서 추월해서 걸어가는데 어머 상수야.. 하고 부르더라구. 딱 보니까 그 여자야. 딴 남자랑 가고 있더라구. 근데 그 순간 난 딴 남자는 프레임 인 안 했어. 그 여자만 보였어. 그때 이미 헤어지기로 했지만, 너랑 나랑 서로 좋아하니까 가끔 영화도 보고 그러자 이러는..


총 : 친구로 남자..


임 : 서로 연락이 뜸 해져서 몇 달 못 만났을 땐데 너무 반갑더라구.. 야 나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자 그랬더니 노 그러는 거야. 그러는 순간 줌 아웃 되면서 남자가 딱 프레임에 들어 오더라구. 아 그렇구나. 좀 충격적이었던 게 7년간 사귀면서 그 여자가 나한테 그렇게 단호하게 노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때라 그 노가 가슴에 남았는데, 그래서 셋이 11시니까 학생도 없는데 나가려면 그 긴긴 캠퍼스를 걸어 나가야 되는데 셋이 갈수는 없자나. 그래서 가라고 그러고 나는 도서관 로비에서 걔네들 갈 때까지 기다리는데.. 도서관 그 큰 로비에 사람들 아무도 없는데, 애들이 보다 버린 신문지가 바람에 샤악 날리고 그러는데 가슴이..







총 : 서늘..
임 : 서늘해지면서
총 : 그때 진짜 헤어졌군요.


임 : 예. 있는 돈 다 꺼내서 술집에 가서 요만큼만 술을 달라.. 부족해서 안되겠어. 군대 안 가서 취직해 있는 새끼 전화해서 빨리 나와.. 그래서 술 먹고 그때 곡기를 끊고 한 30일을 술만 먹었네.


총 : 내가 떠나 보낸 줄 알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녀가 나를 떠났다..
임 : 근데 이제 너무 낭비적이더라구. 인생에 할 일이 많은데. 여자 때문에 30일간 곡기를 끊고 그때부터 한번도 안 그랬지..


총 : 떡 3부작이라고 부르는 성모랄에 대한 이야기들의 뿌리에 어디 있나.. 그런 의미에서 물어본 건데..
임 : 그 뿌리는 사실은 그 이후에 생긴 거죠. 전 대학졸업하고 충무로에 와서 전혀 다른 인간이 됐어요.. 하하하. 왜냐면 서바이브 할 수 없기 때문에.


총 :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럼 연애스타일은 어떠세요.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전 돌쇠죠.(웃음) 직선으로만 가요. 시간이 걸리면 기다리는 거지 둘러가진 않아요.


임 : 전 그런 에너지가 없어요. 그런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내가 저 여자랑 연애해야겠다는 별루 중요하지 않아.
총 :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 이게 중요하구나.(웃음)
임 : 그렇지. 빨리 맺어질까(폭소)
총 : 푸하하..
임 : 노력을 할 만한 여유, 힘이 없어요.


총 : 맘에 들지 않더라도 가능하면 한다? 오래가진 않더라도.
임 : 사랑하면 그냥 하지..
총 : 다 사랑하게 된다..
임 : 대체로 다 사랑하기 때문에..


총 : 취향이 넓으신건가요 아니면 기왕 만나게 되면 그냥 사랑하게 되는 겁니까
임 : 웬만하면 내가 좋아하면 다 날 사랑하더라구
총 : 진짜루?


임 : 그 이후로, 쟤를 어떻게 꼬셔야지..
총 : 안될 것 같은 사람은 아예 안 좋아 하건가요..
임 : 난 연애하고 싶은데 그 연애를 거부한 사람은 그 이후로 딱 한 명 있었던 것 같애..


총 : 그럼 타겟을 잘 고르는 건가요, 진짜로 누가 되든 다 연애가 잘 되는 건가요.
임 : 타겟을 잘 고르는 걸로 써주세요, 하하하. 그게 좀더 내가 더 멋있게 보일 것 같애(웃음)


총 : 오케이. 자, 그럼 어쩌다가 영화를.
임 : 전 그냥 고등학교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떠들었던것 않아요.
총 : 특별히 어떤 영화를 보구 그렇게 된건가요.
임 : 실은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것 같은데..


총 : 소설가.. 시나리오도 전부 본인이 쓰시나요.
임 : 예
총 : 지금까지 전부..
임 : 예.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위대한 소설가가 많으니까 너무 힘들 것 같어 혼자 처박혀서 그 글들을 다 쓴다는 게..


총 : 그럼,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그런 재주가..
임 : 그렇죠. 구라빨이 좀 있죠. 시대가, 지금은 완전히 넘어왔지만, 그때 이미 영화의 시대로.. 시대 자체가 문학의 시대가 가고..


총 : 텍스트는 이제 갔다..
임 : 그런 거를 본능적으로 간파를 했던 건지..
총 : 대학까지 그런 걸 생각하고 간 건 아니겠지만.. 대학 가서..
임 : 아니죠. 저 대학 갈 때 사회학과 갔는데, 무슨 소리야.. 영화를 하려면 사회를 알아야지.. 이런 심정으로..(웃음)


총 : 감독이 근데 늦게 되신 편이에요. 데뷔가 30대 중반 넘었으니.
임 : 서른 여섯
총 : 98년이 되서야 입봉을 하셨어요. 그건 왜 그렇게 늦었나요. 비교적 일찍 영화판에 들어가셨던 것 같은데 자료를 보니까..


임 :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충무로 도제 시스템의 마지막이 나였던 것 같아요. 그 조금 더 자기색깔이 강하고, 좀 참을성 없는 애들은 이미 다 떨쳐 나간 걸.. 내가 묵묵히 끝까지..


총 : 하란 대로 하고 말 듣고..
임 : 했고
총 : 쫄병 노릇을 오래 하셨군요 말하자면..


임 : 그렇죠. 그걸 한 이유도 있긴 한데. 그때 감각으로 보자면 제 데뷔가 그렇게 늦은 편은 아니에요. 제가 데뷔한 이후서부터는 젊은 프로듀서들이 많이 생기고, 난 사실 비디오 문화랑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디오 전 세대들은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보려면 극장에 가서 보거나 영화 찍는 데서 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비디오를 열심히 보면 분해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비디오시대가 된 거랑 연관이 있는 거 같은데, 저 이후로는 이제 비디오시대도 됐고 영화판에 젊은 프로듀서도 많이 나오면서 도제시스템으로 오래 연출부생활 안 한 애들도 영화 잘 만든다는 게 증명이 됐는데 전 어쨌든 마지막 세대라..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 같진 않아요 지나놓고 보면..


총 : 도제 시스템이 도움이 됐다 이런 게 있나요 혹시
임 : 뭐 그보다 빨리빨리 되는 게 낫죠. 감독 대접 빨리빨리 받는 게 낫지(웃음)



그러니까 그는 소위 비디오 키드가 아니다. 이장호 배창호 류를 만들어 냈던 그 전통의 도제 시스템이 길러낸 마지막 세대. 지금의 임상수와 그 시절 도제 시스템을 연결해 보는 건 참 생뚱맞은 일이다.


이 대목서 본격적인 <그때 그 사람들> 이야기.


총 : 그럼 이제 가장 최근 이야기를 해보자면, <바람난 가족> 보면서 인간이 뭐 동물이지.. 본능과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 잡으면서 눈치 보면서 사는 거 아냐 그런 느낌과 함께 두 번째로 느낀 건..


이 양반이 자기 객관화가 됐다.. 무슨 얘기냐면, 나는 1차원이고 너가 생기면 관계가 2차원이 되죠. 근데 나하고 너하고 아무 상관없는 그가 생기면 이제 인간의 관계망이 3차원이 된다. 3차원, 그. 나랑 상관없는 사람. 사실 쓰나미에 죽은 사람들 안 됐다 싶긴 하지만 안 슬프거든요.


나와 너가 아니라, 그니까. 상관없는 거죠. 근데 그렇게 상관없는 그의 좌표에 가서 x축의 나를 무심하게 내려다 보는 것. 자기객관화죠. 그리고 지성은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자기객관화 된 인간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시큰둥하죠. 쓰나미 죽은 사람 보듯 자기 스스로를 내려다 보니까. 자기한테 일어난 일은 항상 더 특별하고 대단하고 더 엄청난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안 그러는 거죠. 근데 <바람난 가족>을 보면 시큰둥해요.


 


임 : 그렇죠.


총 : 이제 <그 때 그 사람들> 애기로 넘어가 보면, <바람난 가족>을 보면서 느낀 동물적인 거 또는 시큰둥한 거.. 우리나라에서 그런 걸 젤 실감나게 하는 양반이다 그렇게 느꼈었는데.. 근데 <그때 그 사람들> 보면서는 그런 힘이 안 느껴졌어요. 감독님은 그 때 그 사람이 오히려 가장 충실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한 영화라고, 내 맘대로 만든 영화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럴까.. 아까 잠깐 이야기했듯 박통사건쯤 되면 이건 모두가 겪긴 했으나 다들 조금씩 조금씩 다르게 겪어서 공통분모를 뽑기 엄청 어려운데 감독님 감수성이 그 시대 평균과 가깝지 않은, 예를 들어 가부장의 부재로 인한.. 근데 자신 감수성을 너무 믿은 게 아닐까.


이런 사건은 편이 딱 갈라져 있단 말이죠. 근데 이 영화 시각은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니고. 야 내가 충분한 머터리얼을 던져줬으니까 니가 그 때 그 사건이 웃겼는지, 웃기지 않았는지는 알아서 판단해. 애들도 아니고. 관객 너네 이제 그 정도는 되지 않았나? 그렇게 이 영화를 던진 게 아닌가... 근데 이십대는 일단 감정이입이 안 되고 이 사건을 다 아는 애들은 대부분 이미 자기 나름의 결론이 다 난 상태라, 감독님이 자기의 감수성대로만 밀어붙인 게 오히려 쥐약이 아니었을까?


임: 쥐약이 아니었을까..


총: 결과론이긴 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화 보고 전 밋밋한 거 아니냐.. 영화 속에 여러 장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밋밋했거든요. 영화 본 직후 그렇게 느낀 거고, 시간이 좀 지나면서 관객들 반응도 보고 영화흥행성적도 지켜보고 전작들과 비교도 하고 하면서 이젠 그 결과에 대한 이유를 제가 찾는 건데.. 그래서 이런 저런 제 나름의 원인 추정을 말씀 드린 건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 지금 말씀하신 게 영화가 여기 있는데, 결과가 있잖아요? 영화는 결과와 조금 다른 거잖아요. 보는 사람들의 느낌, 저널리스트의 평가, 관객의 평가, 평가가 별로 좋지 않다. 그럼 왜 그랬을까, 이렇게 생각해보신 거 아니에요?


근데 일단 결과가 좋지 않다는 데부터 전 동의하지 않아요. 나와 있는 건, 조선일보랑 동아일보에 리뷰가 나와 있죠. 영화가 좋지 않다는 강렬한 리뷰가 나와 있죠. 그 다음 문제는 뭐냐 하면 흥행결과가 있는데 한국 영화가 웃기는 게, 자본주의 사회가 다 그런 것이긴 한데, 흥행숫자로 모든 걸 다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총: 작품수준까지.
임: 네, 작품수준까지. 사실 실패한 거 아니냐. 관객이 안 들었으면. 그렇게 몰아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심지어 영화 크리티크도 더 이상 영화를 평가하지 않아요. 흥행결과를 예측하고 흥행결과를 분석하고 무엇이 흥행이 되게 했고.. 웃기는 상황이죠.


총: 경마네..
임: 이해는 해요. 걔네는 걔네 나름대로 글을 팔아야 되니까. 먹고 살아야 되니까. 영화에 대한 순수한 글은 안 팔리죠. 그래야지 기 글이 팔리거든요. 그건 별 불만 없어요.


총 : 흥행 이야긴.. 이 영화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대를 못 끌어낸 거 아닌가.. 몇 명 못 봤어도 그 적은 수가 열광하는 경우도 있는데.. 근데 이쪽도 저쪽도 아닌.. <바람난 가족>처럼 확, 야아.. 이런 느낌도 잘 안 오고.. 감독님이 내 맘대로 했다는 데.. 혹시.. 거기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 감수성 물어보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승부하는 것이 그게 감독..


임: 그게 항상 옳은 게 아니고 이번 경우에는 좌초한 거 아니냐.
총: 그렇죠. 다 맞지는 않는 거 아닌가. 확신이 아니라 그런 의문 같은 게 든다 이거죠..


임: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나는 동의하지 않아요. 이 영화 실패했다는데 아직 동의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안 할 거예요.(폭소) 이런 건 생각해볼 필요는 있어요. <바람난 가족>에 김혜수가 캐스팅되었는데, 도망갔어요.
총: 거참 머리는 좋은 듯 한데, 영화를 참 못 골라.


임: 그런데 투자자들이 같이 도망간 거예요. 여자가 안 땡긴다고. 보통 충무로의 관행상 그 작품은 엎어져야 하는데, 명필름이 중심이 있는 거야, 명필름이 지네들 가오가 있거든. 김혜수 도망갔다고 엎어? 못 참어. 현금이 있는 회사였지. 이 십억이 채 안 되었을 거에요, 아마. 그런데 찍은 거야. 임상수 시나리오 믿고 질른 거지. 영화를 다 완성했어요. 자체 평가 좋다 이거야, 영화 잘 빠졌다. 모든 리스크를 지고 갈 수 없어. 그래서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시사회를 했어요. 니네는 영화 시나리오만 보고 돈 지르잖아.


완성된 영화는 훨씬 돈 질르기 쉬워. 그래서 보여준 거야. 그런데 아무도 투자를 안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7분을 짤랐어요. 지루하지 않게. 그래도 안돼. 그래서 그 작품 묻어뒀어요. 봄에 완성했는데 여름까지 묻어뒀어요. 여름에 딱 베니스 영화제 본선에 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온 거야. 그때서부터 명필름이 마케팅을 시작하는 거야. 시사회 계속 하면서 소액주주를 모아 가지고, 소액이 몇 십억이 모였어요. 백 만원씩 천 만원씩 한 사람들이. 이렇게 난리를 펴 가지고 흥행했는데 2백만이 좀 안 들었어요. 돈 벌었어요. 많이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게 벌었어요. 충무로에선 손해만 안 보면 가는 거거든.


손해만 안 보면 가다가 한 번 터지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조감독이 나보고 그러더라고. 200만 가까이 들었는데, 감독님, 그 영화를 본 60%의 관객은 나오면서 그 극장 간판 발로 펑펑 찬다고, 씨발 영화 좆같잖아.(폭소) 그러고 나오는 영화라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이 좀 기분이 나뻐. 그런데 심재명이 마케팅하고 포스트 문소리 벗고 가랑이 벌리고 있는 거로, 그걸로 해서 된 거지, 나머지 40%만 그나마 그 영화의 코드를 이해하고 그 영화를 좋아했을 뿐이지, 당신이 좋아하는 <바람난 가족>도 사실은 그런 작품이라는 거예요.



사실은 아주 소수만 코드를 이해하고 열광했지. 그러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살인의 추억> 엄청난 히트를 했잖아요. 내가 이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데. 여대생애들이 카페에서 그 영화 얘기 하면서 그 영화 너무 천박하고 형사들 얘기니까 재미없다고, 경멸하는 거야. 그 영화가 자기 수준보다 낮다고. 그런데도 사람들이 보는 영화니까 보는 거예요. 뭐냐 하면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때 대중하고 승부를 해야 돼. 그래야지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고.


그렇지만 또 다른 리그가 있어요. 빅리그인데, 감독끼리, 평론가끼리, 국제 영화평론가끼리 노는 수준이 높은 동네야. 여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여기서만 놀 수도 있어. 감독이 선택하는 거야. 몇몇 감독들은 두 리그를 잘 버무려서 하는 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보자구. 그 영화 어려운 영화예요. 불편하고. 그 수많은 관객들이 감독이 의도한 코드를 다 이해했냐? 그건 아니거든요. 질문에 대해서 답은 아니지만 질문에 문제가 있다라는 지적이죠. 이게.


총: 하하하. 그 지적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영화라는 게 다들 자기 눈높이, 자기 감수성 가지고 어떻다 떠드는 거고, 여대생이건 50대 영화감독이든 40대 영화평론가든.. 그럼 취향에서 출발한 질문은 접고 이렇게 말해보죠. 크게 퉁 쳐서 투자자 입장, 영화사 입장에서 그럼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했나? 혹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야 역시 임상수의 색깔이 확실해 라고 말 할 수 있나, 물었을 때... 안 그런 거 같다는 거죠.


임: 그렇지 않다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니까.(폭소)
총: 하하하. 제 혼자 생각일 수도 있죠.
임 : 물론 나 혼자 생각일 수 있죠.


총: 그럼 좀 더 디테일 하게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나 차근차근... 전 감독님이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해요.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사회 평균보다 눈치가 반 박자 빠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하거나 <바람난 가족>을 하거나, 시대가 그 방향이긴 해도 아직 아무도 그걸 시도 안 했을 때 딱 먼저 시도하거든요. 아 눈치가 빠르구나..


임: 그걸 눈치가 빠르다고 말하지 말고..
총: 하여튼.. 그런데 이 박통 얘기는 언제부터 하려고 했어요? 실미도 나온다 해서 나온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들 거든요.


임 : 언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모르겠는데, 이런 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여자 섹스영화를 하나 찍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기간이 1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1년 전에 이미 나에게 지나간 여자들의 기억이 있는데 그 1년 동안 그 기억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숙성해가며 시나리오가 나온 건데,


<그때 그 사람들> 같은 경우는 <바람난 가족> 끝나고 시나리오 쓰기 시작해서 3개월 만에 완성했어요. 그건 무슨 애기냐 하면 이 얘기를 언제 영화로 찍어야겠다고 한 건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나는 이 사건이 실제 일어난 다음 날부터 아주 많이 관심을 가지고 계속 생각해왔고 나오는 자료를 계속 읽었고, 그랬던 게 이미 축적된 걸 딱 3개월 만에 풀어서 시나리오 완성되자마자 영화를 딱 찍을 수 있었던 거죠.


총: 이 영화에 관련된 팩트는 거의 다 이해되어 있었고,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는 다 이미 정리된 상태였겠네요.
임: 그렇죠.


총: 영화 시작할 때는 그 관점을 구체적으로 영화에 어떻게 싣지 하는 것만 고민했겠네요.
임: 네.


총: 보통영화들이 기획될 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태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눈높이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을 해야 하는데...
임: 그러면 시나리오 쓰는 기간이 길어지는 거죠.


총: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임: 예,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죠.
총: 일본어 대사나 엔카나 그런 건,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 시절이라면 그런 노래 부르지 않았을까, 이것도 역시 고증이나 이런 거 보다는...


임: 그런데 그건 정확히 얘기하자면, 심수봉 자서전을 읽어보면 심수봉이 그 때 대학가요제에 데뷔했을 때, 재는 좀 세미프로 냄새가 나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근데 사실 세미프로였어요. 비밀요정에서 대단히 인기 있는 가수였었고. 비밀요정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다 엔카였어요. 박종규, 뭐 김재규도 그랬었고. 그래서 거기서 엔카 죽이는 얘 있어. 맨날 엔카 부르는 여자였다는 게 자기 자서전에 나와요.


총: 그러니 그 자리서 딴 거 불렀겠냐?
임: 그 때 그 사람을 불렀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엔카를 불렀다 하더라도 보안사 수사기록에서는 그걸 제꼈을 거 같다..


총: 엔카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던 상황이겠군요. 그런 개연성에서 영화가 만들어졌군요. 혹시 두 번째 여인, 옆에 있던 여인은 실제로 만나보셨어요.


임: 아뇨.
총: 왜 실제로 안 만나 보셨어요?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요?


임: 그렇죠. 어떤 작품을 위해서 취재를 할 때 페이스 대 페이스로 취재를 하는 방식이 있어요. 또 어떤 때는 나와 있는 자료와 상상력만 가지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걸 결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페이스대 페이스 만나는 거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어요. 소문이 미리 나기 시작해서.. 그렇기 때문에 아예 안 해버리고..


총 : 그럼.. 이 영화는 특별한 메시지를 시도했다기보다.. 그 안에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말하자면 내가 이해한 대로, 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한 번 재구성해서 말해볼까...



왜 찍었냐.


임: 그 사건에 대해 법원 버전이 나와있어요.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이 이랬어.. 라고. 너 그 다음에 뭐했어, 그 다음에 뭐했어, 이 심문기록이 있고 그걸 기초로 보안사 수사기록부터 검찰기록이 되는 거고 법원기록이 되는 거죠. 79년도 보안사 지하실에서 이뤄진 기록을 지금 개명천지에 누가 그걸 사실이라 보겠어요?


그 날 사건에 대해서는 버전이 다 살아있는 거죠. 보안사수사기록을 바탕으로 한 대법원기록이 살아있는 거고. 거기다가 임상수 버전을 하나를 보탠 거지. 난 거기 있지 않았고, 모르지. 그러니까 불만 있는 사람 자기 버전 다 얘기하라 이거야. 그게 진실을 구축하는 제일 좋은 방법인 거지.


총: 그럼 이 영화의 가치는. 제 말은 정치적 메세지,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임상수한테 이 영화의 가치는. 내가 그 사건 나 이렇게 봐?


임: 이럴테면 이런 거예요. 노무현 오늘밤에 술 먹다가 국정원 사람이 열 받아서 총 싸서 죽였어. 그러면 내일 아침부터 기사 나와서, 그건 사실이기 때문에, 뉘앙스만 틀릴 뿐이지 팩트에 관해선 끝나버리는 거야. 일주일 이내에 다 끝나버리는거야.


그게 우리가 사는 문명사회인 거예요. 그러고 끝내버리는 거지. 그런데 이거는 비밀에 싸인 채로 25년이 되도록 얘기하면 안 된데...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왜 애기하면 안 되는지. 다 이유가 있지. 그 이유까지 이 영화가 유추하도록 나는 만든 거죠.


총: 음 그건 멋집니다. 그럼 그런 건 없었어요. 예를 들어서 박정희를 혐오하는 혹은 흠모하는 양 쪽 모두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렇지만 공기처럼 내면화 되어있는 거.. 그런 부담은 없었나요?


임: 남의 마음속에 어떻게 내면화 되어있는 것까지 의식하고 싶지 않아요.
총: 아니 감독님 내면 안에서. 감독님이 그들을 의식하려 않으려 했지만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한 쪽으로 뭐...
임 : 나는 뭐 박정희를 경멸하죠. 인간적으로. 경멸하지만 영화에서 절대로 그걸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총: 혹시라도 그게 보일까봐 오히려 조심하고?
임: 오히려 조심하고. 나는 딱 팩트.. 인척 한 거죠. 결국 속일 수 밖에 없어. 속일 수 밖에 없는데, 나는 박정희를 경멸하든, 경배하든 일단 팩트는 알고 경배를 하든 경멸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팩트는 이겁니다. 내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총:임상수가 보는 펙트는 이건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임: 뭐 알고 경배하려면 하고 경멸하려면 하라는 거지. 그게 문명사회 기초 아니에요? 논리죠. 알아야 감정을 가지지. 모르고서 감정을 갖는 건 대개 이상한 얘기잖아.



왜에 대한 답. 말 된다.


총: 그럼, 이건 어때요? 저는 블랙코메디라고..
임: 블랙코메디는 내 입에서 나온 게 아니고 찌라시에 나와있던 거예요.


총: 그래요? 그렇게 얼핏 듣고 봤기 때문에 어, 이거 안 블랙하다. 그리고 이번엔 왜 아기 안 던지지.. 그런 생각 하면서 봤어요. 그런 이야기 듣고 그냥 이 영화는 그런 게 아닐까, 짐작 정도 하고 봤는데 그 짐작에는 어긋났죠.


임: 영화를 보는 자세의 문제인데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사전 지식이 생길 수 있는데..
총: 블랙코메디라는 한 마디에..
임 : 항상 그런 거 배제하고 텍스트에 몰두해야 돼요.


총: 저도 그건 맞는 말씀이라 생각하는데, 여하간 블랙코메디라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 방향으로 바이어스에 걸린 채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화는 박정희 + 블랙코메디 인가보다. 그 다음에 임상수가 과거에 애기 던진 거 기억하고. 그렇게 영화를 봤거든요. 그러니까 박정희를 던질래나? 그런 기대.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덜 블랙하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감독님은 팩트는 이런 거였어 라고..


임: 냉정한 보고서.
총: 전 사실.. 그런 기대에 비춰서는 좀 당황스럽고.. 이런 씨발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웃음) 영화 때깔을 좋은데.. 그리고 영화에 정치, 사회적 의미 부여해서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시대에 이런 역할을 했어.. 전 이런 거 후진 얘기고 영화 자체가 재미있냐 재미없냐 그게 가장 중요하다 보는 데 전 그게 밋밋했다 이거죠.


임 : 영화든 예술작품이든 딱 봤을 때 당혹스러운 작품이 있어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건 대개 두 가지예요. 대개 작품이 후지거나 쉽게 후지지 않고 복잡하게 후지거나 또는, 당혹스러워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생각을 해야지 제대로 감상이 가능하게 하는.. 많잖아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작품이든 사실은 많은 작품이 명작이라고 하는 데 당혹스러운 경우, 어떤 경우는 아이 씨발 몰라 던져 버리는 경우도 있고 많이 생각해서 이해하는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 거죠. 한 편의 영화라 해서 딱 봐서 코드가 안 온다 해서 씨발.. 이건 아니야 이건 잘못되었어 하는 태도는, 그러면 누가 예술작품을 하겠어요. 신경질 나게. (폭소)


총: 우하하하. 그래도 전 여전히 영화가 기대만큼 뜨지 못했다 생각하니까.. 또 다른 이유도 생각을 해 봤는데.. 영화 보면 그 잘린 다큐 장면에서 맨 앞에 사람들이 울고, 끝에는 우는데 맨 앞에는 박정희 때문에 괴로워서 울고 맨 뒤에는 박정희가 죽어서 괴로워하며 울어요. 근데 그런 대비는 관객이 알아서 눈치 채야 하죠. 예를 들어 김재규도 이 사람이 또라이야 아니야 혁명가야.. 말해주지 않죠. 감독님은 그걸 누가 알아 씨발 하여튼 사건은 이랬거든.. 하고 관객에게 툭 던졌어져요. 그러니까 존나 머티리얼만 던져주는 거예요.


임: 뭐를 던져요?
총: 재료. material. 그리고 감독님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전 그거로 충분하지 않은 거 같은 데 라는 생각.. 적어도 평균적인 일반관객한테 익숙하지 않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
임: 얘기 했잖아요. 평균적인 일반대중이란 게..


총: 취향은 다 다르고.. 관객동원은 마케팅이 하고.. 뭐 그 이야긴 어느 정도 동의하는데, 지금 이야긴 관객에게 던져 준 데이타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건데, 또라이라고 몰고 가거나 혁명가로 몰고 가라는 게 아니라, 또라이거나 혁명가로 판단하기에 어느 쪽도 충분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또 그 사건으로 우왕좌왕하는 인간군상들을 보여줬는데 그것 역시 우낄 만큼 우왕좌왕하지도 않았고, 영화적 오버라도 있을 수 있는데.. 어느 쪽도 아니었단 말이죠..

임: 이렇게 얘기합시다. 내가 이 영화를 찍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고 그리고 아무런 주장도 없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총: 그런 정서도 있다 생각해요.



임: 설명도 없고 나의 주장도 없어. 나는 그 영화를 냉정한 보고서로 보거든요.
총: 그 대목서 사람들이 왜 그라야 해,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임: 나는 주장하고 싶지 않아. 그건 하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나는 주장하는 사람이 아냐. 나는 보여주는 사람이고 나는 예술가지.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묘사하는 사람이지. 예? 그 묘사를 보고, 거기서 애초부터 타락했지만 18년간 더 타락한 권력의 실상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거를 나라라고 믿고 살면서 숭배했던 게, 이걸 우리가 나라라고 믿고 살았어? 십쌔끼들, 월급 주고, 우리보다 훨씬 월급 많이 주고.. 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할 수 없어.


총: 충분한 재료였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도 드네요. 보통 그렇게 멀찍이 떨어질 거면 다큐멘타리를 찍지 않나..
임: 그거는 왜 송재호를 캐스팅했느냐 하고 묻는 거 하고 똑같은 얘기예요.


총: 사람들이 그거에 익숙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임: 사람들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김어준씨가 그렇게 안 해도 된다니까. 하하.


총: 하하하. 제 이야긴..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카타르시스.. 맞아 씨발.. 저거 딱 그냥 동네 구멍가게 운영하는 원리를 가지고 나라를 좆나게 폼 잡으면서 통치 했네 라는 생각이 들고.. 저런 수준을 가지고 사람들이 무슨 아직까지도 대단한 것 인양 호들갑이야.. 라는 그런 뒤엎는 전복적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이야긴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치가 있었나 봐요. 내가 예를 들어 다큐멘타리를 본다고 생각하고 똑같은 영활 봤다면 느낌이 달랐겠죠.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영화적으로 블랙하거나 막 가거나 하는 그런 것을 이미 기대했었나 봐요.


임: 당대의 김어준도 이 정도일진데 이 땅의 대중을 상대하는 진지한 감독을 이해하셔야 해요.
총: 그거야 뭐 또 감독님 사정이니 제가 다 이해해 줄 필요는 없죠.(웃음) 그랬나봐요. 그 기대치에 어긋나니까 뭔가 아쉬운데 뭘까? 지금 감독님 말이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임: 말만 돼요?(폭소) 사람들에 대해 걱정을 하는데, MK(영화제작사)의 견해는 이거야. CJ가 떨어져 나감으로 해서 배급에서 불이익내지 배신을 당해서 백만이 떨어져나가고, 영화가 짤렸다는 자체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당연하지 짤린 영화 누가 보고 싶어하겠어요.
총: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임: 이게 백만을 달아나게 하고, 그 다음 이제 동아일보 조선일보 리뷰, 안티세력으로 끊임없이 박사모. 그게 또 한 백만 떨어져 나가고. 그런 건데 그거 합치면 그냥 이 영화는 평균 정도로 대박인 거예요. 그런 예상치 못했던 세력이 있어서 그런 거지.


총: 영화가 생각만큼 잘 안되었을 때, 기획사가 누구보다 빨리 이유를 찾아내고 거기서 위안을 받고 그러니까.. 적어도 개인 관객 김어준으로 아쉬움을 말하자면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덜 재미있었어요. 기대치하고 달라서도 영향이 있겠고, 또 영화 속에 꼭 애를 던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왜 애를 안 던졌을까..


임: 그 말은 철저히 주관적인 애긴데.. 당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거고 나는 있다고 주장하는 거고.
총: 어디서 애를 던진 건가요?
임: 이런 거겠죠. 기대치가 틀렸다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나는 냉정한 보고서를 던졌는데 대단한 로멘틱 한 소설을 기대하고 온 사람이 딱딱한 보고서 읽으니까.. 관공서적인 보고서를 읽으니까.


총: 보고서를 조금 코믹하게 섰네 정도..
임: 나는 코믹하게 쓰지 않았어. 그냥 실제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코믹했지. 보고서를 코믹하게 쓰지 않았어. 있는 자료가 코믹했지. 내가 코믹하게 쓰지 않았어.


총: 한 발짝도 더 과장하거나 더 웃기게 만들기 위해서 애쓰지 않았다?
임: 네.


총 : 음.. 이 영화 개봉하기 전부터 기대치가 있었고 이런 저런 소란도 나고 신문에서 떠들기도 했는데.. 거기 걸 맞는 흥행숫자가 안 나오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생각들을 말하고.. 그 중에는 잘못 이해했거나 오해도 있을 거고.. 그러다 보니 그 의도를 정확히 설명할 필요도 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오늘 전체적으로 감독님이 방어적인 되신 것 같은데..(웃음)


그런 걸 떠나서.. 개봉하고 났더니 시간이 좀 지나고 관객들 반응도 좀 보고 그러고 났더니.. 혹시 남는 아쉬움이 있나요? 여기선 방어적인 태도를 접고.


임: 방어적인 태도를 접지 말고(폭소) 그것도 포함해서 얘기한다면..
총: 하하하. 아직 개봉 중이니.
임: 흥행수치로 승부하는 게, 영화 크리틱도 흥행크리틱이지 영화크리틱이 아닌 것처럼 제대로 승부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면에서 패배한 거야. 패배를 인정해야겠지.



총: 다음 영화를 못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임 : 그렇지만 사실은 순전히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술시사를 스텝들이랑 해요. 시사회 하기 전에. 기술시사에서 스텝들이랑 피디랑 사장이랑 촬영감독이랑 조명감독이랑 미술감독이랑 다른 스텝 딱 만나서 영화 보고 뭐 고칠 거 있나, 문제가 있나, 애기를 해요. 간단하게. 우리는 그냥 눈빛으로 오케이, 우리 뭔가 했어, 잘 나왔어. 우린 해냈어. 그걸로 사실 나의 승부는, 순수한 감독으로서의 승부는 끝나는 거예요.


그러면 내 손을 떠나 여러분들한테 제출된 영화가 있어요. 어떤 영화인지 모르지만. 이걸 가지고 비판적으로 향유를 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는 거지. 세상이. 비판적이라는 말은 씹을 수 있다는 거지. 씹든지 즐거워하든지 비판적으로 향유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데 이 영화를 가지고. 과연 세상은 잘 승부했는지 나는 물어보고 싶은 거야..


세상에 던지기 전에 난 이미 승부를 봤어. 나머지 승부는 당신들에게 가 있는 거야. 이 영화를 좋아하던지 싫어하던지 즐기던지 이 영화를 갖고 토론을 하던지 묻어 버리던지 그럴 의무와 권리가 있는데 과연 이 영화에 대해서 이기셨는지, 이 영화를 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는 거지. 이렇게 증오하고 훼손하고 별거 아닌 걸로 묻어버리고서 과연 승부에서 세상은 이기셨는지..



영화 관객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그의 주장. <그 때 그 사람들>과 관련해 그가 사회와 대중에게 가지는 섭섭함의 근거다. 이 이야기는 후반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그때 이야기하자.


총 : 질문과는 상관 없는 대답이네. 하하. 어쨌든 아쉬움은 안 남는다는 얘기네요.
임 : 그렇죠.


총 : 영화 만든 사람으로서의 아쉬움은 없고 이게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실패하면 아쉬움은 있을 수 있으나 상품 자체의 완성도나 상품을 만든 사람으로서 아쉬움은 없다?
임 : 통쾌하다


총 : 그럼 된 거죠. 감독 개인으로선. 남는 건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냐 마냔데, 사실 사람들은 반드시 좋아하거나 혹은 말거나 할 의무는 없죠. 사실 아무 관심 안 가져도 되기도 하는 건데..


임 : 한국영화계에서 또는 한국문화계에서 한국 사회 전체에서 이 작품이 그렇게 아무 관심 안 갖고 짤라서 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거다..



역시 방어적. <그때 그 사람들>이 아무 관심 안 가져도 되는 영화라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게 꼭 누구에게나 애증의 대상일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그럴 의무도 없단 일반론인데. 평소 같으면 당연히 알아 들었을 말인데 말이다.


이 대목서 법정 공방 이야기로.


총 : 이 영화를 사법부가 중간에 껴들어 짤라 냈다는 건 매우 후진 일이지만, 그건 사실 입을 댈 필요도 없을 만큼 명백해서 가치판단에 무슨 갈등을 일으키거나 하진..
임 :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총 : 그럼 그 얘기를 해볼까요.


임 : 김대중 정권 때만 해도 박지원이 중앙일보 사장방에 가서 유리잔을 깨고 지랄을 쳤단 말야. 그러니까 박지원이 전화 한번 하면 이 영화 제작 안 되는 거야. 근데 노무현이는 띨띨하고 힘이 없으니까 지가 당하고도 전화할 데가 없으니까 지가 법원에 고소하겠다고 해 가지구 또 박살나자나.


총 : 억울해 가지구..


임 : 박지만은 나를 고소할 수는 있지만 그건 법적으로 하는 거야. 나한테 전화를 해서 못하게 할 수는 없어. 박근혜도 나한테 전화를 해서 영화를 못하게 할 수는 없어. 동생을 시켜서 고소를 하게 할 수는 있지만. 이른바 법치주의가 된 거야. 표현의 자유? 개인의 명예가 얼마나 중요한데. 개인의 명예를 악의적으로 훼손하는 거, 개똥이지. 소송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악의적으로 박정희를 명예훼손 했다면 영화상영 중지돼야 돼. 더 심하게 악의적으로 했으면 형사법도 있어요. 감옥 구속시켜야 되는 거야. 이 대목에선 표현의 자유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다만 그 소송의 문제가 생겼을 때 과연 명예훼손을 했냐 안 했냐를 따져야지. 가위질은 편집이거든. 편집은 감독이 하는 거지 판사가 하는 게 아니거든. 이 문제를 자기가 가위질 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저기 아프카니스탄 학생 정권, 그거 뭐죠.


총 : 탈레반
임 : 탈레반이 불상을 종교적인 이유로 파괴하는 것과 동일하게 야만적인 것일 뿐이야.
총 : 그렇다..


임 : 법적으로 이거 명예훼손이다 그래서 아예 못 튼다 아니다 틀 수 있다를 해야지. 여기 짜르고 저기 짤라라 이런 게 야만적인 거라는 거지. 당연히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는 있는 거고, 명예훼손에 합당하다면 영화 틀 수 없는 거지.


총 : 아까 제 말은 감독님 논리가 너무 옳아 이 문제 갖고 더 이상 실갱이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이 말이었는데.. 어쨌든 그런데 사실 마케팅에 득이 안된 거 같아요. 오히려.
임 : 계속 마케팅 얘기네.. 하하.


총 : 상처 난 영화는 보기 싫다. 그 영화 어쨌든 짤린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있을 것 같고. 영화 보기도 전에 괜히 불필요하게 엄숙해지고 그래서 재미없을 것 같단 느낌.. 무슨 운동하는 느낌.. 그렇게 괜히 진지한 이슈에 개입되는 것 같은 느낌 주는 데 기여했고.


법정논란이 이 영화하고 관련해 가장 큰 이슈였지만 방금 말씀 드린 대로 워낙 논쟁의 여지가 없어서 우리 이너뷰에선 중요한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한 건데.. 그럼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인터뷰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관객이다.. 이거 사실 좀 식상한 표현인데.. 하하







임 : 최대의 피해자는 저건 거 같애, 판사. (폭소)
총 : 하하하. 정말 궁금했던 건, 기승전결상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잘라버린다는 얘길 들으면 감독으로서 실제 가장 먼저 든 느낌.. 그건 뭐예요.

임 : 정말 사기 당했다
총 : 사기 당했다는 건 어떤 거죠
임 : 법리적으로 검토한 바로는..
총 : 문제 없을 것이다?
임 : 문제 없어요. 동일한 명예훼손으로 동일한 심의를 했고 동일한 맥락에 있는...


총 : 내부 법적 검토로는 문제 없었다.
임 : 문제 없었다. 근데 내부 법적 검토로도 정치적이면 곤란하다..


총 : 이게 박근혜가 껴서 그런가요. 딱 잘라 말해서.
임 : 그렇죠.
총 : 박근혜가 껴 있고 하필 저쪽에 대표로 가 있으니까 재판부가 뭔가 최소한의 제스처를 취해주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해서 나온 건가요.


임 : 그렇죠. 웃기는 건데 시사회 다음 날, 바로 그 날이 아마 영화 기사 쓰는 요일이 아니었을 텐데 조선일보에서 살벌한 리뷰가 떴고 다음날 항상 쫓아오는 동아일보가(웃음) 리뷰를 썼고. 그 다음에 얘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법원기사를 쓰는데, 이 판결이 관건이다.. 쓰는 데


유일하게 조선일보가 다큐멘터리 부분을 물고 늘어졌어요. 사실은 박지만이 쓴 소장에는 일본어 문제, 친일문제, 엽색문제 이런 게 준데 이런 건 문제가 아니고 앞 뒤에 붙어있는 다큐멘터리가 문제다.. 이런 기사를 두 번 썼어요.


총 : 그걸 받은 거군요.
임 : 사실과 허구가 혼동된다. 판결문이 그걸 고대로 받아썼어.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
총 : 그게 그렇게 된 거군요.

임 : 변호사가 딱 전화 왔는 데, 나도 모르게 변호사한테 신경질을 확 내버렸어. 아니 어떻게 이런 비겁한 판결을 내릴 수가 있어 상영중지를 하라고 하던지. 변호사가 너무 당황하면서 제가 아직 판결문을 읽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전화 다시 하겠다고 하고 끊더니 영원히 전화 안 해 버리더라구.


그 다음에 이은씨(영화사공동대표)가 전화하더니 이렇게 저렇게 됐다.. 나중에 한 9시쯤에 폭탄주에 떡이 돼 가지구 변호사가 대성통곡하면서 전화하더라구 너무 쪽 팔리다구 자기가 법조인인 게. 뭐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 판사는 그냥 갈 수는 없고.. 자기 나름대로는 솔로몬의 지혜로 앞뒤 잘라도 영화 될 거 같고. 근데 대중들을 우습게 봤지. 자기가 가위질을 하는 거..


총 : 자신의 법적 권위가 그런 방식으로도 먹힐 거라 생각했던 건데..
임 : 내 입장에선 당연히 상영가능이고, 정말 정치적으로 판단하려면 상영중지 해라. 근데, 상영중지 하면 박근혜가 견딜 수 없어.

총 : 자신 있으셨군요. 판결에.
임 : 상영중지 하면 박근혜가 견딜 수 없으니까.
총 : 설마 그걸 짜르고 틀라고 그러랴. 이건 상상도 못했던 하하하. 근데 그게 어찌 보면 성공한 거네요.


임 : 저쪽이 성공한 거예요.
총 : 흥행도 죽여버리고 영화도 후지게 만들어 버리고.
임 : 이렇게 비판하든 칭찬하든 떠드는 것 자체가 불안했을 텐데 인지도를 높이니까. 그런 데 영화 짜르고 난 다음엔 처절하게 씹어서 영화 재미없는 걸로 묻어버리는..


총 : 음모론적으로 보면 실수나 우습 게 본 게 아니라 치밀한 게 아니냐 싶은 생각마저 드네요..


임 : 최고의 피해자는 판사고, MK도 피해자인 것 같고. 최고의 승자는 조선일보로 알려져 있어.
총 : 봐라 우리 힘을 씨발..


임 : 내가 보기에 조선일보는 동네깡패가 꼬마 팔을 딱 부러뜨려놓고 봤지, 이러는 형국인데 이걸 성공으로 볼지 실패로 볼지는 모르겠어.



그랬단다. 역시 조선일보다. 아직도 조선일보의 수작이 통하고 그 장단에 춤 추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 우리나라, 참 후지다.  


이 대목서 배우 이야기로 점프.


총 : 백윤식씨요. 저는 영화 보면서 그 전에도 영화에 나왔었지만. 저 양반 참.. 전원주의 재발견처럼, 백윤식씨 정도 되는 사람이 영화를 통해 이렇게..


임 : 나이 60이 다 돼서..
총 : 멋지다.
임 : 놀라운 일이죠.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의..


총 : 연기자로서 어떻게 평가하세요.
임 : 마지막 촬영 날 제가 깊숙이 인사하고 다음 작품으로 꼭 한 번 다시 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다음에 꼭.


총 : 감독들에게 배우는 일반인들이 보는 배우하곤 틀릴 거 아닙니까.
임 : 그렇죠.


총 : 요새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 정도 얘기하고 그리고 한석규 얘기하는데 요새 좀 밀리는 듯하고. 지금 백윤식 얘기를 했는데 배우들 얘기를 좀 해주세요. 저희가 보통은 막판에 정치인 논평을 하는데, 한석규는 어떤 배우입니까. 몇 문장 정도로 표현한다면. 그리고 나머지 삼대 배우라고 하는 배우에 대해서도 일단 오줌 싸고 갔다 와서 이어 가겠습니다.(폭소. 소변 후 계속)


임 : 딴지 오프 더 레코드는 불가능한가요.
총 : 하하하.
임 : 같이 얘기하는 스탭이나 배우에 대해서는 남 얘기는 하기 힘들자나요
총 : 하하 감안하고 얘길 들을께요.


임 : 석규씨는 고독한 사람이에요. 알려지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주 고독한 사람이고 현장에 와서는 혼자.. 영화 일이란게 기다려야 되는 거 거든요. 기다리다 30초 연기하고 30초짜리 한 댓번 하고. 한 5시간 기다렸다 또 하고. 보통 사람들로서 참기 힘들어요.







그래서 그거 다 게기는 노하우가 있죠 나름대로. 주로 수다를 많이 떨지. 근데 석규씨는 혼자서.. 그리고 웬만한 애들은 매니저가 다 운전도 하고 그러는데 혼자 운전하고... 그리고 딕션이 누구보다 정확한 사람이에요. 그게 오히려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총 :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임 : 사실 내가 볼 때는 섬세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 근데 고독하기 때문에 사실 누구하고도 친하지 않거든요.
총 : 그 사람이 누구하고 친하지 않으려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사람한테 가서 친해지기가 어렵겠군요.


임 : 어떤 점에서는.
총 : 배우로서는.


임 : 완벽한 배우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 정도면. 보기 드물게. 그 사람한테 필요한 건 좋은 연출자예요. 제가 볼 땐. 근데 나이도 꽤 들었고 영화계 짬밥도 꽤 먹었고. 근데 좋은 작품을 기다려야 하고. 좋은 연출자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어떤 식의 좌절감으로 자기에게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근데 그건 어떻게 보면 배우의 본질적인 좌절감일 수 있죠.


총 : 모든 배우가 그렇겠죠 어느 정도는. 운때가 또 맞아야 되고. 운이 사실 그리 좋은 배우인 것 같진 않아요.
임 : 운이란 건 상대적인 거죠.
총 : 엄청난 대박이 나거나 좋은 연출자 좋은 감독을 척척 만난 건 같진 않아요.


임 : 쉬리까진 그랬죠. 쉬리 이후에
총 : 좀 쉬고 나서 한동안.
임 : 이번 작품 어떻게 보셨어요


총 : 저는 백윤식이 튀었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 한석규가 못했다.. 기보다는 백윤식이 너무 잘했다.
임 : 그런 견해도 있고 제가 들은 견해는 한석규 완전히 재기에 성공했다.
총 : 한석규만 보면 그런데,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임 : 한석규의 재발굴이다 이런 견해도 있는데 지금 말씀하셨다시피 백윤식씨한테 묻힌 측면도 있고 영화가 이 정도 나왔으면 두 사람이 뻔질나게 인터뷰하러 다니고 이래야 되는데, 영화가 정치적으로 이상하게 풀려서 그런 얘기가 하나도 안 나왔다는 점에서 또 운이 나쁜 거죠.


총 : 같은 상황에서 한석규씨한텐 더 그런 것 같아요 유난히. 이 정도 되면 인터뷰 들어가고 여기저기 많이 나와야 되는데 또 다시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이 배우를 잊어버리는... 그럼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하곤 작품을 안 해보셨자나요.







임 : 설경구씨 무명 때 해봤져.
총 : 아. 세 사람을 간단히 평가하자면 감독의 눈으로.
임 : 송강호씨는 지금까지 지금까지 보인 모습만 보자면 변칙적인 배우예요. 오소독스한 배우가 아니에요.
총 : 한석규하곤 다르네요.


임 : 한석규, 최민식, 설경구까지 오소독스한 배운데, 그런 점에서 좀 다르죠. 영화계가 또는 영화감독들이 그 사람을 변칙적인 모습으로만 소비했기 때문일 수 있어요. 근데 그럼에도 변칙적인 연기를 하면서 톱 클래스의 배우에 꼽힌 건 대단한 능력인 것 같아요.


총 : 동물적인 감각..
임 : 그런 것도 있고 또는 영화계 주류 자체가 오소독스한 배우를 가지고 오소독스한 영화를 만드는 흐름에서 좀 변칙적인 영화로 좀 개성적인 영화로 변화하는 시류를 잘 탄 측면도 있겠죠.


총 :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가 일반 드라마에선 멋진 경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발사던가요. 보지는 못했는데..
임 : 보지도 않았으면서 뭔.(웃음)


총 : 하하.. 보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거기서 송강호씨가 매력적일 것 같단 기대가 없어서 보지 않았거든요. 그럼 최민식씨는...
임 : 나는 영화감독이긴 하지만 같이 일해보지 않은 배우하곤 전혀 친분관계가 없어요.
총 : 그냥 바라보는 관점..


임 : 최민식씨는 열정이 강하죠. 열연을 하는 스타일로 보여요. 열연을 해야 일한 것 같고 밥값 한 것 같고.. 그런 배우인 것 같은데 그게 장점일수도 있지만 약점일수도 있죠.
총 : 못하는 배역이 있을 수 있겠네요.


임 : 그렇진 않아요. 카메라 돌아갈 때 한석규씨하고 그런 얘기 한 적 있는데 카메라 돌아갈 때 가만 있을 수 있는 능력, 아무 것도 안 하고 그 능력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아닌 것 같아요. 내공이 있어야 가만히 있을 수 있는데 가만히 있어도 뭔가 존재감이 있어야 되니까.


총 : 말론 브란도처럼.
임 : 가만 있지 못하는 건데... 지금 거론하신 배우들은 그런 경지에 다가가야 한다고 난 생각해요.


총 : 다가가야 한다..
임 : 다가 갈 시점이 됐다.


총 : 그런 관점에서 최민식씨는 아직?
임 : 석규씨가 그런 얘기 했는데 감독님 말씀 하신 거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겠는데 자기도 나중에 찍고 나서는 아 가만 있어도 되는데 그런 걸 느끼는 데 막상 찍을 때는 그렇게 하면 연기한 것 같지 않고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자기도 그런 갈등에 시달린다는 거죠. 감독이 배우에게 좀 더 확신을 주고.. 가만 있어도 되는.. 그게 단계를 하나 넘어설 수 있는 경지인 것 같은데.. 그런 거.. 이거 배우평론을 해도 되나 모르겠네.


총 : 설경구
임 : 처녀들의 저녁식사 할 때 같이 했었고. 아주 겸손하고. 사람은 다 변하는 것이긴 하지만 스타이면서 스타이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일거라 생각해요. 스타인 걸 불편해 하는. 네 명이 다 그렇지만 연기 외엔 할 게 없는, 태어나길 연기자로 태어난. 연기자들이 별루 절 안 좋아해요. (폭소)


총 : 왜 그렇습니까.
임 : 제 시나리오가 배우를 망가뜨리는 경향이 있는..
총 : 바람난 가족 같은..


임 : <그때 그 사람들>도 어떤 느낌에선 그렇자나요.
총 : 배우가 자기가 뽀대가 안 난다고 생각하는..


임 : 백선생님 같은 경우는 모르겠어. 그 분은 그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총 : 그 양반은 그걸 넘어선 거 같아요.


임 : 그걸 넘어선 거 같은데. 석규씨 같은 경우는 아마 자기가 영화 한 이래로 자기분량이 이렇게 조금인 영화는 처음일 거예요. 그런데도 선뜻 하려고 했던 거는 자기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어떤 변화의 필요성. 그건 백선생이 가고 있는 방향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걸 한석규씨가 일정 정도 느껴서 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총 : 전 백윤식씨 연기 보면서 저 사람 참 무심하다 연기하는 게. 무심한데 자기가 화면에 어떻게 보일지 잘 알면서도 무심한 것 같다..
임 : 연습 많이 하고 계산 많이 하고 나오는 사람이라고 전 생각해요. 어느 배우가 연습 하고 나오는지 안 하고 나오는지 우린 잘 몰라요.
총 : 시험 공부 하고 안 한 척..?


임 : 그리고 어떤 사조는 연습 많이 안 하는 게 낫다 그런 사조도 있어요. 현장에서 상대방이랑 부딪쳐서 하는 게 더 진솔하다.. 많이 하는 거 안 좋다 그런 사조도 있어요. 그게 장점도 있거든요. 그래서 연습 안 하고 나와서 부딪쳐서 날 것의 연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게 좋은 점도 있고. 백선생님 같은 경우는 내가 집에서 훔쳐보진 못했지만 치밀하게 연습 많이 하고, 어조도 다 어디서..



여기까지 배우 이야기. 여기서부터 감독 이야기.


총 : 듣고 보니 그런 거 같네요. 최고로 치는 감독은 있어요? 혹은 저건 내가 없는걸 가졌네


임 : 한국영화는 장사에 아주 발목이 매여 있는 데,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 때문에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바보 같은 짓인데.
총 : 그걸 탓하는 건 엄살이고. 안 그런 분야가 어디..


임 : 방향은 내가 볼 땐 세련이에요. 근데 세련도 심하게 가면 장사가 안돼. 일정부분 촌스럽고 그래야 대박이 나.
총 : <복수는 나의 것> 장사 안 되자나요.


임 : 실미도, 태극기 도 일정부분 촌스러운 부분 있자나요. 10프로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방향은 난 점점 더 세련되야 하고 세련되야 감독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감독들을 꼽자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 정도를 생각을 해야 될 테고..


총 : 세련된 감독들.
임 : 뭐 이재용. 근데 그렇게 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갈려고 하고. 그런데 하나 독특한 인물은 장준환인 것 같고.
총 : 아하하..
임 : 전대미문의.. (폭소)


총 : 그럼 장준환 감독 정도는 혹시 부럽기도 하세요.
임 : 그렇죠. 내가 못하는 걸 하니까. 내가 못하는 것도 하나도 안 부러운 것도 있지만 부러운 것도 있자나요.


총 : 못하는 건데 나도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장준환 정도 부럽다. 그 외엔 부럽기까진 한 감독은 없군요. 나보다 더 세련되거나 하지만.
임 : 각자 색깔대로 가는 거죠.


총 : 열등감을 느끼거나 그렇지는 않는..?
임 : 열등감 느껴요.
총 : 하하. 최근 영화 중에 그런 영화 있어요. 열등감 느끼게 하는. 최근에 한 10년 사이에.


임 : 박찬욱의 영화적 테크니칼 한 부분은 사실 약간 열등감을 주는데 애써서..
총 : 외면. (웃음)
임 : 영화의 테크니칼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인간이 중요해 이런 식으로..(폭소)


총 : 예를 들면 어떤 장면 같은 거..
임 : 뭐 복수는 나의 것 같은 거.
총 : 어떤 장면.


 







 


임 : 특별히 열등감이라기보다 나는 신하균이가 야구 방망이로 후드려 까고 들어오고 강간하고 있고 경동맥에 꼽고 할머니가 공격하고.. 그 씬을 참 내가 너무 사랑하는 장면이죠.


총 : 감독님이 그 장면을 연출했다면 나는 저렇게 안 했을 거다 생각하며?
임 : 그런 생각 잘 안 해요. 또 김지운한테 부러운 건 그 감독은 그렇게 시나리오를 빨리 쓴데 한 3주면 쓴대. 난 그게 진짜 열 받어. 속 터져.


총 : 감독은 무슨 재미가 있어요. 감독으로 먹고 살면.


임 : 감독의 네 사이클이 있어요. 시나리오 쓰는 사이클이 있어요. 취재하고 책 모으고 사람 만나고 어디 들어가서 혼자 남들 다 잘때 정말 고독하고. 위장에 탈이 나요 스트레스 땜에 담배를 끊어야 되는데. 또 희열도 있죠. 돌파해 나갈 때 막힌 데를.


총 : 내가 이 대사를 썼단 말야 씨발.
임 : 하하 그런 거예요. 그런 희열이 있죠. 젤 고독한 작업이고 그게 끝나면 비지니스를 해요. 이걸 팔아야 하거든요. 프로덕션에 팔아야 하고 프로덕션과 함께 투자자를 꼬셔야 되고 그럴려면 배우를 또 꼬셔야 되고 맨날 술 먹고 이거 죽여, 이거 하면 돈 벌어. 이게 비지니스 시즌이에요.


그러면서 프리 프로덕션을 하죠. 그러다 딱 크랭크 인을 하면 그때는 딱 노가다예요. 그때는 20시간 30시간 일하고 퀴퀴한 여관방에 뻗어서 씻지도 못하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또 찍고 완전 노가다지. 그게 끝나면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전제 하에 잘난 척 타임.


총 : 지금과 같은.
임 : 인터뷰 하면서 잘난 척 하고. 관객과 Q&A 하면서 잘난 척하고 해외영화제 가서 잘난 척 하고. 졸졸 쫓아다니는 여자애들 어떻게 좀 해보려구 그러구. 그런 타임이 끝나면 다시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거예요.


총 : 그 사이클이 한 2년 됩니까.
임 : 그 네 개 중에 하나만 하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총 : 못해..
임 : 못하진 않지. 그게 직업이니까 해야 되는 거지. 너무 하나만 하지 않고 번갈아 하니까 그게 좋은 거 같애.


총 : 어떤 대목이 젤 재밌어요.
임 : 다 재밌어요. 다 괴롭긴 하지만 다 재밌기도 해요.
총 : 그럴 것 같아요. 네 사람의 다른 직업을 가진 삶을 사는 거와 비슷하네요. 그것도 주기적으로 소재도 다른. 이야 재밌겠다.


임 : 아주 좋아요. 끝까지 할 수 있다면. 근데 이제 시장에 목을 걸고 시장 앞에서 빤스를 내리고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개쪽 팔고 실업자 되야 되는 거 아냐 못 만들면. 그냥 실업자 되는 것도 아니고 개쪽 팔고.


총 : 저는 요즘 영화 하는 사람들은 다 박찬욱 감독 거론하던데, 전에 박찬욱 감독 인터뷰한 적 있었는데, 감독으로는 지금이 두 번째 인터뷰인데, 박찬욱 감독도 예상과는 다른 감독이었어요. 영화만 봤을 땐 아 이 사람이 참 시니컬 하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임 : 시니컬한 사람이 민노당 당원 안 하자나.
총 : 근데 실제로 만나보니까 시니컬 하다기 보다 뭐랄까요, 사람이 좀 차가울 거라 생각했는데.. 명석하고.. 제 용어로는 교양인이더군요. 이 사람 교양인이네 잘 배우고 잘 살아서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도 있고. 사람이 참 참하네. 그렇게 교양인이던데, 본인은 본인을 표현하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요 여자들 꼬실 때 말고.


임 : 제가 여기 와서 교양 없게 있었나요.(폭소)
총 : 하하. 교양, 그건 제 용어고. 여자들한테 수작 걸 때 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임 : 얌전하고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총 :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죠.
임 : 그렇게 생각 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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