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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플레이] 레밍즈

2009-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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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리뷰] 레밍즈


2009.6.9.화요일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설치류과에 속하는 특정동물을 소재로 한 게임을 다루고 있다. 게임의 소재가 설치류과에 속하는 특정동물이라고 해서 현 정부의 특정인을 의도적으로 비하하거나 비방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은 아니니 이점 오해 없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앞뒤 분간 못하고 냅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설치류과에 속하는 특정동물을 생명의 길로 인도함으로써, 현시대에 만연한 서명(鼠命) 경시의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본 게임의 의도와 본지의 주된 논조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Idea


재미있는 게임은 참 많다. 그만큼 즐겨봐야 할 이유도 많다. 찬란한 스토리가 빛나는 게임도 있고, 현란한 기술력을 뽐내는 게임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 없이 단순히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녀석도 있다.
오늘 소개할 레밍즈Lemmings가 바로 그런 게임이다.


 


 Lemming?


레밍Lemming이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말하자면, 레밍이란 나그네쥐라고도 불리는 쥐의 일종이다. 북유럽 등에 분포하며,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 등등. 다른 쥐들과 차별되는 이 녀석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집단 자살이다.
레밍은 쥐답게 시간이 흐르면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다 그 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면 단체로 자살을 택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방식이다. 팔목을 물어뜯거나 목을 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레밍들은 죽음의 순간 직선을 이루는 줄을 길게 서서,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선두의 쥐부터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나머지 쥐들은 차례차례 한 마리씩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얼핏 보면 실소가 나올 만큼 바보 같은 행동이다. 그러나 바꿔 생각해 보면 매우 섬뜩한 광경이기도 하다. 수많은 생명들이 맹목적으로 자살을 택하는 모습이라니.



생긴 건 귀여운데...


확실한 것은, 이러한 광경은 자연에서 보기 드문 현상임과 동시에 은유를 내포하기 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도 곧잘 인용되는 이 유명한 용어가 탄생했다. 레밍 현상Lemming Suicide. 맹목적인 쏠림 현상으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사실 이러한 레밍 현상은, 잘못 알려진 통설이라고 한다. 숫자가 늘어난 레밍들은 그냥 마찬가지로 숫자가 증가한 천적들에게 먹혀서 줄어드는 것뿐이라고 한다. 본인들의 의지와 다르게 맹목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레밍들은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레밍 현상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레밍이 실제로 자살하느냐, 족제비의 먹이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특이하고 재미있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얘도 생긴 건 참 귀여운데...


즉,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바로 이거다. 특이하고 재미있는.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 시선을 잡아끄는 동시에, 그 자체로 재미를 줄 만한 것. 이러한 형용어구가 잘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바꿔 말하면, 이 현상은 어디다 써먹으면 참 좋을까?
그렇다. 바로 게임이다.
이러한 레밍 현상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화시켜 게임으로 탄생시킨 것이 바로 [레밍즈]이다.


 


 How?
 
자, 그러면 [레밍즈]는 어떠한 형태로 이 레밍 현상을 게임화했을까? 우선 자유롭게, 이를 모티브로 만들어낼 만한 게임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레밍이 자살하는 이유를 찾아 세계를 헤매는 어드벤처 게임. 레밍들이 자살하지 않도록 개체수를 조절하며 번식하도록 하는 시뮬레이션. (이놈은 심앤트SimAnt와 비슷해지겠구나...) 자살하는 레밍들 뒤를 쫓는 족제비를 조종하는 액션 게임. 혹은 자살하지 않고 난 누군가, 쥐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무럭무럭 레벨업을 해 족제비를 이기기도 하는 레밍즈 게이트...



행성 파괴용 무기다. 가끔 나는 RPG처럼 성장할 수 있다면 인간이 우주를 지배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여러 가지 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게임이라는 것은 직관적이어야 한다. 이 현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렇다. 줄을 지어 바다로 들어가는 레밍즈의 맹목적인 행동 그 자체이다.
이 [레밍즈]는 바로 그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단순한 행동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 [레밍즈]가 택한 장르는 바로 퍼즐이다.


 


 Puzzle


퍼즐이라는 장르는 가장 유서 깊은 게임 장르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본분에 가장 충실한 장르이기도 하다.
실제로 레밍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레밍들의 행동은 단순하다. 그런 레밍들의 행동을 직관적으로 게임으로 표현하려면, 복잡한 스토리나 민첩한 조작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감성에 호소하거나 반사 신경을 요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레밍즈의 목표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가만히 놔두면 죽거나 헤맬 레밍즈를, 출구로 옮기는 것. 어떻게? 가만히 놔두면 오로지 직진만을 반복하는 레밍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지시함으로써.
매우 쉽기 때문에 여기서 스샷을 올려서 설명해도 큰 무리가 없을 1번 스테이지를 예로 들어보자.



레밍들은 저렇게 떨어져 내려와 직진하기 시작한다. 놈들은 가만히 놔두면 평생 동안 직진하며 반복한다. 그나마 1번 스테이지는 나은 편이다. 다른 스테이지에 가면 시작하자마자 바다를 향해 걸어가 빠져 죽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여튼 아주 다양하게 죽는다. 그야말로 레밍 현상을 아주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설하고, 놈들을 출구로 옮기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1번 스테이지는 쉬우니 답을 말하자면, 저 녀석들 중 하나를 시켜 땅을 파게 하면 된다.



그렇다. 이렇게 땅을 팜으로써 닫혀 있던 공간을 열리게 하며, 출구로 갈 수 있는 경로를 생성하게 된다. 이게 정답이다.
이 게임의 골자는 극히 단순하다. 가만히 놔두면 직진만 하는 맹목적인 레밍즈들을, 출구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출구까지 가는 길 만들기. 막혀 있다면 뚫고, 끊겨 있다면 새로 긋고, 떨어져 있다면 연결하고,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길을 막아서 돌아가게 하는 등등의 방법으로. 이 쥐들은 선두의 쥐를 따라 직진하므로, 하나의 방향을 지닌 직선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직선을 출구까지 연결하는 것. 이 패턴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레밍즈의 핵심이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에서 언급된 것처럼, 게임이라는 것은 지루하지 않게 패턴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작업이다. 게임이 너무 어려워도, 혹은 너무 쉬워도,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금세 질려버리기 마련이다.
이 [레밍즈]는 이러한 패턴을 매우 흥미롭게 제공한다. 각종 레벨은 즐길 만한 가치가 충분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길을 잇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지루하지 않도록 해준다. 게임의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해, 난이도를 점진적으로 상승시킨다. 게이머로 하여금 도전 의식을 계속 불태우게 한다. 그 오묘한 난이도 조절을, [레밍즈]는 멋지게 해냈다.
패턴을 푸는 퍼즐 게임으로서, [레밍즈]는 충분히 재미있다.


 


 Fantasy


하지만 이러한 패턴 해결이 [레밍즈]의 전부라고 말한다면, 조금 섭섭할 것이다. 패턴 해결이 게임의 전부라고? 그렇다면 이 게임을 완벽하게 패턴화시켜보자. 위 1번 스테이지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림이 조잡하지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_-;


즉, 이런 녀석을

                                            가운데를 뚫어서 길을 냈음...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자, 핵심은 이렇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 게임이 위의 허접한 그림과 같은 형태로 제공되었으면 어떨까? 지금처럼 재미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 그럴까? 패턴화시킨 것이니 어차피 골자는 같은데?
그 이유는, 패턴을 포장하는 환상Fantasy이 다르기 때문이다.
패턴을 해결하는 능력은, 개인의 능력이나 성향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단순히 패턴만을 제공하는 퍼즐만으로 재미를 주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이 퍼즐에, 환상을 덧붙인다면?
슈퍼 마리오를 예로 들어보자. 마리오의 본질은? 걷고 달리고 점프함으로써 목표점까지 도달하는 게임이다. 패턴화를 해보면, 끊어진 선과 선을 이어 가며 장애물을 피하고 만들고 없애는 행동들의 집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귀여운 그래픽, 산뜻한 음악, 천재적이라고 칭찬하고 싶은 사운드 등이 마리오 월드라는 매력적인 세계를 구축하면서, 슈퍼 마리오는 전설적인 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골자는 같아도 그에 붙인 육의 풍성함이 다르다. 그에 따라 볼품 없이 뼈만 남은 스켈레톤도 될 수 있고,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는 미녀도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게임이다.
자, 그러면 여기서 [레밍즈]로 돌아와보자.
레밍즈의 패턴은 출구 찾기 게임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원동력은 그 한 마디만으로는 너무나 불충분하다. 귀여운 레밍즈들의 생김새. 멍청하고 바보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감 가는 움직임. 퍼즐의 일부가 되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마다 신경 써서 만들어놓은 애니메이션. 이 귀여운 쥐들을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얘네들을 살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 무언가 속고 있다는 느낌. 이건 바로 환상이다.



정말로 살리고 싶어진다.


레밍 현상이라는 그 단순하고 바보 같은, 어찌 보면 미련하지만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하는 역설적인 자연 현상.
그 현상을 고스란히 환상이라는 요소로 실어내, 잘 만든 퍼즐을 풍성하게 살찌운 게임.
그것이 바로 [레밍즈]다.


 


 Lemmings


잡설이 길어서 스크롤을 내린 분을 위해 친절하게 요약하겠다.


레밍즈는 매우 잘 만든 패턴을 지닌 퍼즐 게임이다. 하지만 그 패턴을 포장하는 환상이라는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수많은 후속작을 양산했고, 지금까지도 레밍즈 3d와 같은 게임이 나오며 시리즈가 명맥을 잇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나 내 리뷰가 그랬듯, 마지막은 이 말로 끝마치겠다.




해보지 않겠는가?


ps. 바야흐로 [게임 고찰 시즌 2] 이다. 시즌 1은 남로당에서 연재가 되었기 때문에, 시즌 1을 접하지 않고 시즌 2부터 보게 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개글을 다시 쓸까 좀 고민하긴 했는데... 그냥 바로 게임 리뷰를 시작하기로 했다. 항상 서론이 장황하게 긴 것도 이제 좀 줄일 때가 됐고, 읽다 보면 필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대충 다들 아실 것도 같고 해서...
(시즌 1이 궁금하면 남로당에서 찾아보시라.)


ps2. 이번엔 2:1 정도의 비율로, 하나의 게임에 대한 집중적인 리뷰 외에, 조금 전반적인 게임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써볼 생각이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전에 재미있게 써야 할 텐데... ㅠㅠ)


ps3. 이번 업로드한 레밍즈의 경우, 도스박스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다운받아서 플레이하시면 된다.


게임파일 다운받기


 


필리온(phyl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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