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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사람들을 매트릭스에 가두는 방법
- 가상사회가 사람을 지배한다

2004.2.1.일요일
딴지 편집국


 들어가며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가 개봉된 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세계는 소수 SF매니아들만이 관심을 가져왔던 시대에서 일반 대중들의 관심까지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실세계가 사실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컴퓨터상의 가상현실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매트릭스는 실세계를 그대로 모방한 그 가상현실의 이름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혹시 자신이 살고 있는 실세계가 조작된 가상현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러한 생각을 터무니없는 공상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만들어져 있는 다양한 매트릭스들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실세계에 만들어진 매트릭스가 영화와 다른 점은 시각적으로 동일하게 구성된 가상현실이 아니라 생각과 사고를 종속시키는 논리적으로 구성된 매트릭스라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생각과 사고를 따르며, 그 생각과 사고는 태어나면서 습득한 많은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를 결정할 요인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포위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매트릭스에 갇히게 된다. 이제부터 이를 논리매트릭스라고 부르자.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이 사람들을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자체를 파괴해야 될 대상쯤으로 여긴다. 실세계에서도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그런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많은 사상과 종교들이 있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공산주의는 자본의 억압에서의 해방을, 민주주의는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사고를 종속시키는 논리매트릭스는 그 자체만으로는 선악의 여부를 따질 수 없는 일종의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집단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집단적인 생활양식에는 나름대로의 규율과 가치관이 그 구성원들을 제약하는 매트릭스로 작용한다. 세상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 어떠한 경우라도 논리적인 형태의 매트릭스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논리매트릭스가 결과적으로 사람들에 이로운지 해로운지에 따라서 그 좋고 나쁘고의 가치를 따질 뿐이다.


이 글은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의 매트릭스에 갇히게 되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한 글이다. 이를 잘 이해하는 것은 집단을 이끌고 사회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할 뿐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분야나 상업적인 분야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의 정보화 시대에서는 사람들을 어떤 주어진 세계에 묶어두는 방법론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순수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결국 고민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을 자신의 싸이트에 오랫동안 머물게 할지, 어떻게 하면 자주 자신의 싸이트를 찾도록 만들지에 관한 것이다. 이때 그 싸이트에 어떤 가상적인 세계를 만들고 사용자들이 그 안에 갇히도록 한다면 매트릭스는 완성된다.


가상세계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그 안에 가두는 힘은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한다. 온라인 게임 분야가 그 정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 빠진 사람은 가상세계에 몰입해 현실을 등한시 할 정도의 강력한 중독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 중독성은 도박의 중독성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다. 가상세계에서의 활동을 위하여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폐인들이 나오는가 하면, 그 안의 아이템들이 고가에 판매되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더 좋은 아이템을 살 돈을 모으기 위해서 현실세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가상세계에 몰리고 빠져드는 현상은 지금 실제로 사회현상으로 인식될 정도의 큰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온라인 게임 분야는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한 유명한 싸이트의 경우 사용자수만도 3천만이 넘는다. 이는 국가전체의 인구수와 비교될 만한 엄청난 숫자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이웃 중국에서도 사용자수가 작년에 800만을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인터넷 환경이 갖춰지게 되면 전 세계의 사용자수는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가상세계로 끌어 모으고 거기에 가두는 것일까? 그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고 가둘 수 있는 가상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그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과 부를 동시에 얻게 된다. 가상세계의 파급력은 일부의 소수 매니아들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파고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게다가 그 사용자들은 현실을 등지고 가상세계에 매달릴 정도의 높은 충성도를 갖는다. 3천만의 인구를 통제하는 매트릭스, 느낌이 오는가? 인터넷이 깔리는 전 세계 곳곳마다 사람들이 한국에서 만든 가상세계에 매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미래에는 3억뿐 아니라 30억이 될 수도 있다.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는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현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모습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그 영향력 때문에 정부도 온라인 게임을 강력하게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앞두고, 가상세계가 사람들을 가두는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핵심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요인과 원인들은 정확히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 이후에는 겉모습이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실제와 똑 같은 것이 바로 그 요인이라고 이야기되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영화 <매트릭스> 수준으로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상현실이 실현 가능하냐를 궁금해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동일 한 것이 그 요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형은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사람들을 매트릭스에 가두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에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제부터 여러가지 형태의 매트릭스에 대해 사람들이 갇히게 되는 이유와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사회성


1990년대 초 국내에 최초로 인터넷이 들어왔을 때, 다행히도 필자는 최초로 인터넷이 깔린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때 이후로 인터넷을 통해 일어난 많은 변화를 몸소 겪을 수 있는 경험을 얻게 되었다.


인터넷이 들어온 후의 최초의 변화는 전 세계인들이 실시간으로 채팅을 할 수 있는 IRC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었던 일이다. 하지만 IRC는 사용자들에게 정해진 아이디를 발급하지 않고 접속할 때마다 자신의 별명을 새로 정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연속성은 크게 떨어졌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다가 곧 흥미를 잃곤 했기 때문에 IRC에 지속적으로 매달려 중독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뒤에 나타난 것이 BBS라는 서비스이었다. BBS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몇 개의 게시판들이 주어진 소규모 서비스이다. 이 당시 하이텔과 같은 피씨통신과 유사한 방식이었으므로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IRC와 다른 점은 사용자마다 고정된 아이디를 발급하여 그 아이디를 자신의 얼굴처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BBS의 인기는 높았을 뿐 아니라 IRC와는 다르게 꾸준한 인기를 끌었고 지속적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곳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에 자극 받아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이 BBS의 지속성은 매우 놀라울 정도라서 웹으로 대세가 옮아간 지금도 계속 운영되고 있는 BBS들이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10여년 전에 활동했던 아이디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IRC와 BBS는 무엇이 달랐을까? BBS는 사용자마다 자신만의 아이디를 부여받고 그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여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구성했다는 점이 달랐다. 하나의 가상 사회가 구성된 것이다. 서서히 그곳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실상 BBS는 아주 초보적인 형태의 매트릭스에 해당한다.


사람을 가상세계에 가두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 사회성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곳에서 그 곳을 진짜 사회로 인식하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실제와 동등하게 받아들인다. 그곳의 겉모습이 실제 사회와는 완전히 달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BBS는 게시판에 글자만으로 이뤄진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사회성 때문에 실질적인 매트릭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BBS의 강력한 힘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던 그 때, 필자는 우연히 실험실의 낡은 컴퓨터에 다 죽어가는 우리마을이라는 BBS의 운영자 권한을 갖게 되었다. 없애버리자는 실험실 사람들의 압력을 뿌리치고 그 곳에서 사회성에 대해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원하는 사용자들에게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개인보드를 만들어 준 것이다. 당시 게시판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개인보드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때였다.


결과적으로 예상은 적중했다. 사람들은 자신 이름의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하여 아무도 찾지 않던 이 BBS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이렇게 개인들에게 자신을 과시할 수단을 주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기 쉽도록 그 시스템을 구성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곳에 빠져들게 된다.


개인보드를 지원하는 형태의 BBS는 유행처럼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 웹으로 이전하면서 텍스트형태의 BBS가 사라져 가는 오늘에도 개인보드를 제공하는 BBS들이 남아있다. 어떤 곳은 수 백개가 넘는 개인보드를 운영하는 곳이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사회성이 강화된 가상세계는 지속적이고 강력하다.


가상사회를 이루고 사람들을 가두는 역할을 하는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요소는 바로 이 사회성이다. 사회성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그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못해온 것이기도 하다. 사회성이 없는 형태에서는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도박이나 전자오락의 경우 그 안에 나름대로의 세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 빠져 있다가도 곧 그만두고 빠져나올 수 있다. 그 곳에는 아무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큰 미련이 없다.


하지만 사회성으로 얽혀진 세계에서는 중독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일단 자신과 사회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면 그것을 완전히 끊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끊게 되면 사회적 관계가 없어질 뿐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회성으로 묶여진 가상세계에서는 다른 도박이나 게임과 같이 중독성이 있는 것들에 비해 거부감이 훨씬 덜한 것도 강한 중독성을 갖는 한 원인이다. 어차피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며 친밀감을 쌓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과 다른 세계라고 인식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곳에서 빠져 나와야 할 이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성으로 만들어진 BBS들은 초창기를 지나고 시간이 한참 지나기 후까지 중독이라는 개념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과시욕과 사회성


BBS라는 게시판만으로 이뤄진 간단한 시스템조차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가두는 매트릭스로 작용한다는 사실에서 인터넷 사업에서 BBS의 비중이 얼마나 높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인터넷 붐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금 살아남은 큰 업체들을 살펴보면 결국 BBS와 같은 형태의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이다. 가장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 모아 크게 성장한 업체는 다음(daum.net)이다. 다음은 카페라는 동호회 지원에 의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사회를 구성하도록 하여 그곳에 가두는데 성공한 케이스이다. 다음이 시작한 카페의 성공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재하다. 이 역시 사회성으로 사용자들을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용자만 북적대는 인터넷서비스 업체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벌게 될지 모델이 불확실했다. 그때쯤 주식시장에서는 과도하게 폭등한 인터넷회사들에게 수익모델을 내 놓으라 아우성 쳤고, 인터넷서비스는 결국 돈을 벌지 못하는 거품주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아바타였다. 세이클럽에서 사용자들의 분신을 아이콘화한 아바타를 판매하여 월 수십 억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바타 산업은 다른 업체들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아바타는 가상세계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남들에게 자신을 좀더 잘 보여주기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유료화 전환만으로도 사용자가 급감하는 성향을 보이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가상세계의 아바타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건이었다. 지금도 외국의 언론들은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한국의 네티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은 그 가상사회가 개인들이 실질적인 사회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세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평소에 옷차림과 외모에 신경 쓰는 것과 사실상 별로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상세계에서의 사회관계는 현실세계에서 보다는 비중이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속통신망 이후에 전 국민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실제세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가상세계가 실질적인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곳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가상세계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며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곳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아바타의 중요성은 매우 커지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바타 이외에도 개인 홈페이지 운영 같은 데에서도 드러난다.


개인 홈페이지는 자신을 드러내고 방문객들과의 사회적인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자기 과시를 통한 욕구를 실현하는 곳이다. 그런데 한때 크게 유행했던 개인 홈페이지는 차츰 시들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의 특성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독립된 주소를 갖는 개인 홈페이지들은 폐쇄적이고 고립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방문객들 수도 많지 않아서 그들에게 아이디발급 같은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방문객과 운영자 사이에 사회적인 관계가 좀처럼 잘 형성되지 않는다. 취미로 홈페이지를 열었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흐지부지 방치하다가 문을 닫게 된다. 홈페이지 제공 서비스를 해주던 업체들에게 이것은 큰 문제이자 고민거리였다.


고립된 개인 홈페이지가 갖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사회성으로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해주면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이미 등장했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페이지에서는 등록한 사용자들이 개설한 홈페이지를 왕래하면서 과거의 BBS처럼 고정된 아이디로 교류하도록 고안했다. 아바타를 추가하고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며, 종합적인 인기도에 따라 점수까지 매겨진다. 더 노골적인 것은 일촌맺기라는 방법으로 사용자들 사이에 사회적 관계를 명시하고 등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마저 명시적으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개인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 우려가 언론에서 수 차례 지적되어 왔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사회성이 강화된 이 개인 홈페이지 시스템은 크게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싸이월드에 만든 자신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느라 중독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을 정도이다. 싸이월드에 홈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독이라는 단어에 동감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방문객들이 얼마나 찾아오는지, 어떤 글을 남기는지 항상 체크하고, 그에 대해 답장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답장도 쓴다. 사람들괴 일촌관계를 많이 맺으면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일촌이 적으면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싸이월드는 사람들의 이러한 사회적인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경우이다.


사회성과 과시욕 이 두 가지가 가상세계에서 실현되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을 좀더 멋지게 보이려고 하며,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 곳에서의 사회관계의 비중이 어느 정도 높아지면 실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초보적인 형태의 매트릭스는 이러한 방법으로 완성된다.


사회적인 관계 형성을 위한 인간의 심리는 뇌의 특성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사회성에 관여하는 뇌부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사람의 뇌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불안감과 심리적 고통을 느끼도록 되어 있다. 가능하면 주변사람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홀로 고립되어 위험 상황에 처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터득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회성에 관련된 심리적인 현상과 행동들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사회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작용하며, 대중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면 사람들을 인터넷상이나 혹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매트릭스에 가둘 수 있다.
 


 실제와 허구


글을 쓰고 채팅을 하는 BBS수준의 간단한 시스템이 초보적인 형태의 매트릭스라는 것은 좀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 BBS 시스템은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이 인터넷 환경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상공간에 사람들이 갇혀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약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단순한 통신시스템처럼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통신과 BBS에 중독되는 현상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즐기는 것에 빠지는 것이므로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의 일환이며, 그 사람이 그곳에 빠지는 것은 실제세계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 없다는 관점이다.


그 안에서의 내용이 실제 세계와 유사하거나 연장선에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중독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매트릭스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곳에 빠져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이유또한 실세계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 안의 내용이 진짜냐 가짜냐, 혹은 진짜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완전한 허구냐가 그것이 사람들 가두는 매트릭스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으로 생각하기 쉽다. 영화 <매트릭스>는 실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한 세계를 가상세계에 옮겨 놓은 것이다. 사람들이 그곳에 갇혀 사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그 안 세계가 너무나 실제와 똑같아서 진짜인 것으로 속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기준에서 나온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완전히 가두는 매트릭스를 만들려면 실제세계와 완벽히 똑같은 가상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안의 세계의 내용이 얼마나 실세계와 유사하냐는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는 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실제세계와 같으냐 다르냐, 혹은 실제세계와 비슷하냐 완전한 허구냐하는 내용들은 사람을 매트릭스에 얼마나 강하게 가두게 하느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극단적인 예가 있다. 이제부터 그것을 이야기 해보자.


다시 1990년대로 돌아가자. 인터넷이 국내에 최초로 들어오고 BBS가 인기를 끌 무렵 한쪽에서는 머드라는 희한한 것이 등장했다. 이 머드라는 것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것과도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머드에 빠진 사람들은 외모부터 확연히 달랐다.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듯 지저분한 머리에 면도도 하지 않고 외모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 속에서 도를 닦다 온 사람처럼 수염을 잔뜩 기르고 장발을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좀처럼 수업에 나타나지도 않고 시험 볼 때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가 하면, 같은 학과 사람인지 아닌지 아는 사람도 없어 의문의 사나이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머드에 완전히 빠진 사람들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머드폐인이다. 보통 밤새워 컴퓨터에 매달리다가 식당에서나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는 드물었고, 주로 머드에 빠진 사람들끼리 친분관계가 형성되어 머드족이라는 그룹을 이루었다. 많은 머드족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학점 미달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속출했다.


대부분 대학에서 쫓겨나면 군대에 끌려가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머드에 매달렸다. 한국의 젊은 남자에게 군대와 대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학에서 쫓겨나 군대에 가야 된다면 그 나이의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 정도로 이들에게 강력한 중독성을 보였다. 머드의 중독성은 그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들을 현실세계로부터 등지게 만든 머드라는 것은 무엇일까? 머드는 텍스트로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진 초보적인 가상현실의 일종이다. 다음에서 머드화면의 예를 보자.






(* 빵을 먹습니다 에너지가 올라갑니다 *)
(* 괴물을 만났습니다. 공격하시겠습니까? *)
(* 괴물을 공격합니다 *)
(* 괴물이 죽었습니다 새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 당신의 좌표는 (100,300) 입니다 *)


이것이 그때 유행하던 머드의 일반적인 장면이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메시지가 화면에 올라오고, 화면의 메시지에 따라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메시지를 보고 상상해가면서 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 안의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화면에 나오지도 않았으며, 사용자의 위치조차 (x,y) 형태로 숫자로 표시되었다.


필자는 궁금증을 갖고 처음 머드를 접하고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단순한 메시지들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다니? 이 안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멀쩡한 사람들을 그 안에 완전히 가두어 버리는 것일까? 초기 머드에는 실제세계와 비슷한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화면은 조잡한 메시지들로 가득했고, 그 안의 내용도 괴물들을 만나서 싸우는 비현실적인 허구의 세계였다. BBS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이나 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교환이 있다고 하지만 머드에는 정말 실제의 세계와 관련되는 것은 전무했다.


머드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도 그 전에 알려진 피씨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여러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한다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론적으로 사회성으로 연결된 것이다. 머드의 중독성은 바로 전투와 결합된 강력한 사회성에 있다. 사용자들은 그 안에서 괴물을 잡고 전투를 하며 자신의 힘을 키운다. 시스템에 따라 사용자끼리도 싸울 수가 있고, 힘이 강한 상대는 싸워서 상대방의 아이템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 안에서 권력의 서열 같은 것이 형성된다. 힘이 강한 상대는 사람들이 우러러 보거나 부러워하는 대상이 된다. 함께 협동을 해서 싸워야 되는 형태에서는 동지간의 전우애까지도 만들어진다.


사람은 전쟁과 전투를 통해 강한 사회성을 형성하도록 진화된 동물이다. 사람뿐 아니라 침팬지들도 정글에서 집단을 형성해서 이웃집단과 끊임없는 잔혹한 전쟁을 치룬다. 사회성과 결속력이 강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렇게 전투와 전쟁을 통해서 사회성을 얻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전투와 관련된 사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다. 따라서 가상세계에서 전투와 사회성을 결합하게 되면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전쟁이나 전투가 벌어지는 환경에서는 사람의 사고와 생각자체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전투모드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앞으로 언제 있을 지 모르는 싸움에 대비할 수 있도록 형성되게 된다. 강한 자는 강한 자대로, 약한 자는 약한 자대로 그에 맞는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강한 자는 그 안에서 누리는 권력과 부러움을 받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약한 자는 좀더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강한 자의 위치로 오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의 성향은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사회성으로 유지되는 매트릭스에 한번 갇히면 그 안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사회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파급되는 심리적인 효과는 다양하다. 일단 안정적인 관계가 이뤄지면 그 가상세계 안에서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면 굉장히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게을리하게 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앞서나가거나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을까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다시 노력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게 된다. 이런 세계에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좀처럼 실행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빠져 나갔다가도 얼마 못 가 다시 돌아오곤 한다.


다시 허구의 세계에서의 매트릭스로 돌아가서 이 머드의 의미를 살펴보자. 머드는 완전한 허구의 세계이며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완벽한 가상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독성은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현존하는 모든 형태의 중독성이 있는 것들과 비교하더라도 최상급이다. 이는 결국 사람들을 매트릭스에 가두는 힘은 그 외형이나 실제세계와의 유사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관계를 만드는 세계를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완벽히 허구의 세계이더라도 사회성이 갖춰진 세계라면 사람들은 그곳에 갇히게 된다. 머드와 같이 그곳이 완전히 허구의 세계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도 강력한 사회성으로 얽혀지면 사람들은 그곳을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진입장벽


자 그럼 이제 영화수준의 3차원 그래픽으로 무장한 요즘의 가상현실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화려한 그래픽으로 현실세계 못지 않은 3차원 실시간 화면으로 구성된 가상세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을 가상세계에 가두는데 3차원 그래픽과 같은 외형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면 왜 많은 온라인 게임들은 너도나도 3차원 그래픽 환경으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의 온라인 게임들은 과거 머드1세대들이 회사를 차리고 나가 시작된 것이 이어져 온 것이다. <단군의 땅>,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머드형 온라인 게임의 개발의 주역들은 초창기의 머드족들이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멋진 그래픽으로 무장한 온라인 게임들도 과거의 텍스트 머드에서 그래픽으로 화면을 씌우면서 발전한 것이다. 텍스트 머드에 익숙하던 그들은 이미 머드의 핵심은 화면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업 초기에는 텍스트 형태의 머드게임 서비스가 주종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사용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매니아층이 아닌 일반적인 대중에 크게 확대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는 점이다.


텍스트로 서비스하던 초기의 머드들은 초보자들이 익숙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뿐 아니라, 처음 머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친밀감이 아주 떨어졌다. 필자도 처음 머드를 접하는 순간 그 조잡했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덕에 그곳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머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과 유사한 외형적 요소가 사람들을 매트릭스에 가두는 요인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세계와 너무 동떨어지게 되면 진입장벽을 높이는 효과로 작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가 없게 된다.


2차원 형태의 그래픽으로 전환한 뒤 일반인들의 진입장벽이 훨씬 낮아졌고 결과적으로 머드형의 온라인 게임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인 <리니지>의 경우를 살펴보자. 동시 접속자수 12만명, 월 1회 이상 <리니지>에 접속하는 사람은 무려 220만명이다. <리니지> 사용자수는 3천만명. 가히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구는 모조리 흡수해버린 숫자이다.


물론 <리니지> 이외에도 당시에 2차원 그래픽으로 무장했던 게임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리니지>의 성공을 2차원 그래픽에서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폭발적인 온라인 게임의 확산은 그래픽 환경으로 가면서 대중들이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춰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요즘의 많은 온라인 게임들은 3차원 환경을 갖춘 영화 수준의 정교한 화면으로 무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단순히 진입장벽을 낮춘 수준이 아니라 그 세계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사용자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리니지II>의 경우 유료화 이후에 동시접속자수 1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낮은 진입장벽과 시각적 디자인이 사람을 끄는 효과가 배가된 결과이다.


사람들을 매트릭스에 가둘 수는 힘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외형적인 요소는 바로 이 진입장벽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그 디자인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끌어오는 힘과 그곳에 가두는 힘, 이 두 가지가 매트릭스가 성장하고 유지되는 요인이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결합되면 그 폭발력은 겉잡을 수 없게 된다.
 


 가상사회(Virtual Society)의 지배력


사람들을 가두는 힘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아니라 가상사회(Virtual Society)에 있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사람을 가두는 매트릭스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야기했던 핵심은 바로 사람은 사회성에 의해 이끌리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 힘이 어느 정도일까?


초창기 시절부터 머드족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의 폐인이 되어갔던 일화들이 알려지면서, 머드에 빠지면 인생 망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머드가 상용화되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가 어떨지는 그때부터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온라인 게임이 청소년층에 확산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되었을 때 지나치게 언론에서 부풀려 비약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제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요즘은 이 현상이 외국에까지 확산되어 세계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중독성이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이다.


사회성으로 무장한 매트릭스가 사람을 가두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온라인게임의 중독성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자. 격투기나 전투 시뮬레이션, 성장게임 등 모두 온라인이 아닌 상태에서는 자신만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고 그 게임에 깊이 빠졌다가도 최종점까지 도달하면 결국 흥미를 잃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게임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온라인에 연결되고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하면 경쟁의식이 생긴다. 자신의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그 캐릭터를 통해 주변 사용자들과 사회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하나의 가상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가상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까지 만들어가게 되면 사실상 중독단계에 들어간다.


요즘 인기를 끄는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전투와 사회성이 결합된 형태이다. 지속적인 전투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들어, 먹고 자는 것 마쳐 귀찮게 느껴지게 한다. 며칠씩 날을 새우며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도 보통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고, 밤에는 집으로 귀가하지도 않고 게임에 매달린다. 심한 경우 직장인까지도 회사를 등지고 온라인 게임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보면 더욱 극단적인 경우들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찾아 볼 수 있다. 지난달에는 피씨방에서 한 사용자가 20일 연속으로 온라인 게임을 하다 돈을 지불하지 못해 경찰에 고발된 기록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용자가 세운 기록은 무려 438시간 38분. 새우잠을 자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20일을 쉬지 않고 게임에만 매달린 것이다. 이외에도 20시간 넘도록 게임을 하다 숨진 40대 실직자, 밤새 게임을 하다가 숨진 대학생, 온라인게임을 하기 위해서 거액을 훔쳐 가출한 초등생 등 그 중독성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고 있다.


중독현상은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일반적인 대중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 청소년 77%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에서 작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중 인터넷이나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증세를 보인 학생은 무려 41.4%에 달한다.


온라인 게임의 중독성은 해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유명 온라인 게임들은 해외 각국에 진출하여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진출한 나라마다 청소년들의 중독증세로 골치를 앓고 있다. 해외에서도 청소년들이 귀가와 등교를 거부하고 게임에 매달리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으며, 쉬지 않고 장시간 게임을 하다 사망한 사람들 이야기가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급기야 중국정부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 대해 청소년 허용 연령제한을 높여버리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태국은 한국 온라인 게임 철야금지령을 내렸을 정도이다. 한국에서도 인기 온라인 게임마다 청소년 허용 등급을 15세로 할 것인가 18세로 할 것인가를 놓고 정부와 업체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가상사회의 지배력이 그 개인에 대한 실제사회의 지배력보다 더 커질 수 도 있으며, 심지어는 완전히 지배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한 경우 실제세계에서의 생리적인 욕구인 먹는 것과 자는 것도 거부하게 만들 수도 있고, 실제사회를 완전히 등지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가상사회의 강력한 지배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일반대중에까지 비슷한 영향력을 가질 만큼 광범위하다. 이는 가상사회가 그 안의 사람과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 실제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상사회나 실제 사회, 이 두 가지 사회가 사람을 지배하는 방법은 그 원리상 다를 게 없다. 이 둘은 모두 사회성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특성을 그 원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슷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세계를 삼키는 가상세계가 온다.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분야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온라인 게임이 그 답 중 하나로 당당히 들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이 분야 자체가 성장 잠재력까지도 높다. 2002년 말 전세계의 인터넷 인구는 약 6.55억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곱절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다. 가상세계의 대중성이 더 강화되어 인터넷 인구의 반 이상이 가상세계 인구가 된다면, 장기적으로 십억이 넘는 인구가 가상세계인구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숫자다. 소수의 온라인 게임이 전체 시장을 싹쓸이하는 속성상 이 인구가 몇 개의 가상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소수의 가상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은 그 가상세계를 운영하는 주체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라인 게임은 매달 사용자들이 사용료를 지불하는 수익모델이 확실한 사업이다. 국내 한 업체는 이미 2003년 매출 천오백억에 시가총액 1조원을 넘는 회사로 성장했다. 세계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경우 매출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하는 회사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도 가상세계를 통제하는 자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들을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그 세계에 중독 시킬 것인가는 결국 그 가상세계의 운영자 손에 달려있다.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적 가치관과 사상을 전 세계에 전파한 것 이상으로, 가상세계를 지배하는 자가 문화적인 지배력까지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렇게 전 지구적인 규모의 가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되는 벽이 많다. 문화적 장벽이 그 중 하나이다. 현재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동아시아권에는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나 서구에까지 진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더 폭넓은 대중성의 확보이다. 현재의 가상세계는 전투를 기본으로 하는 온라인 게임이 주종이다. 전투는 긴장성을 높여서 사용자들을 그 세계로 몰입하게 만드는 반면, 강한 중독성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여러가지 문제를 유발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투는 젊은 층에 주로 어필할 뿐, 여성사용자나 다른 모든 연령층에 광범위하게 어필하지는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투보다는 커뮤너티가 강화된 형태의 가상세계가 되어야 한다. 가상세계에서의 자유도는 실제세계서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높이고 자유롭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과도한 중독성이 완화되고 여성과 여러 연령층에 고르게 어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커뮤너티는 사회성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므로 그 세계에 사람을 가두는 힘은 지속성이 더 강화된다.


실제로 이미 여러 온라인 게임 업체들에서 커뮤너티를 중심 개념으로 하는 가상세계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험과 전투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집을 짓고,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나면 결혼하여 그 집에서 함께 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러운 형태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차세대 온라인게임 형태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형태로 커뮤너티가 중심이 된 가상세계는 현재 청소년층의 비중이 높은 사용자층을 모든 연령대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적인 규모의 가상세계가 만들어질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 선두에 한국의 기업들이 앞서가고 있다. 결국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한국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전 세계인들이 가상세계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은 그것을 실현하는 자가 그 가상세계의 지배자가 된다는 뜻이다. 총과 무력이 아닌, 문화와 지식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러한 엄청난 세계가 실현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핵심에 바로 사회성과 가상사회가 있다. 사회성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다. 그 동안 겉으로 드러나는 가상현실만이 주목을 받아왔을 뿐, 그 안의 실질적인 힘의 원천인 가상사회와 사회성은 전혀 주목받지 못해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사람을 움직이는 그 핵심적인 힘에 주목해야 한다. 그 힘을 가장 잘 이용하는 자가 곧 등장할 전 지구적인 가상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가상사회가 사람을 지배한다.
쇼팽(chopinxenakis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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