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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이 부조리극은 오랜 기간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상의 이름이 의미하듯 이 작품은 난해하고 또 난해하다. 고도가 뭐지? 왜 기다리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이 난해한 작품을 읽은 지 이십여 년 정도가 지났다. 물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간의 기억은 무한하나 기억 자체를 끄집어내는 인출의 기능이 동작하지 않을 때는 무용하다. “‘인덱스(index)’가 없다면 뇌의 한 영역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버려진 데이터일 뿐”이라는 오래 전 심리학 교수님의 말을 오늘 새삼스럽게 이해했다.


법원의 이재용 구속영장실사의 결과를 기다리며, 이십여 년을 잊어버렸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 이유는,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에서였다.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기다렸다. 아니, 돈벌이의 상식을 기다렸고, ‘기업’이라는, ‘사장’이라는 명사가 상식적으로 제 값어치를 하는 날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은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이 50년이었는지 100년이었는지 모를 만큼 오래되었다.


글의 제목을 “그래도, 이재용의 구속을 기다리며”로 정한 이유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경제민주화’는 소설의 그 ‘고도’와 같지 않나 싶어서였다. 법원이라는 소년(boy)은 우리에게 찾아와 뭐라고 할까?


“오늘 오려했지만 오지 못했다.”


아니면,


“고도가 왔다.”


일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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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우리 나이로 50살이다. 대학 기수는 87학번이라 전방 훈련 입소만 했으면 군대에서 소위 3볼트라고 얘기하는 3개월 조기 전역 대상이 되었을 것이나, 군대를 면제받아서 이런 개이득도 받지 못했다.


작년엔 49살로 아홉수였다. 이 친구는 아홉수를 잘 넘기나 싶더니 요즘 흔히 말하는 법과 상식이 1g도 에누리 없이 적용된다면 환갑을 감옥에서 보낼 가능성이 찾아왔다. 


그는 허리 디스크를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 최근에 알려진 사실로는 승마실력은 정유라 백번 찜 쪄 먹을 정도로 출중하고, 종편에서 말하길 선명한 왕(王)자 복근을 갖고 있는, 자기관리의 화신이라고 한다. 종편 패널들은 그런 철저한 자기관리로 갤노트7 폭발 사태 정도는 무난하게 헤쳐 나갈 거라더니, 결국은 정경유착에 의한 혐의로 구속 직전에 와 있다. 아니, 왔었다. 


이재용은 모든 이씨(李氏)의 본이라는 경주(慶州) 이씨(李氏)다. 경주 이씨 중에 뛰어난 조상을 말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누구도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대한민국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스스로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향했던 이 분의 삶을 얘기하면 모두가 숙연해진다.


이명박이란 사람이 경주 이씨고, 삼성가 이씨들의 본이 경주이다 보니 이런 가문 자랑은 아무 쓸데없는 흰소리이니 그만하기로 하자.


이재용은 1994년 10월 10일부터 1996년 4월 23일까지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61억 4000만 원을 증여받아 삼성그룹 계열사인 에스원의 주식 121,880주와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 694,720주를 취득했다. 불과 2년여 만에 이 두 회사의 주식이 상장되어 주가가 급등하자, 이를 매각하여 약 539억 원이라는 거의 10배의 매매차익을 남겼다.


이렇게 만든 종자돈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 인수해 삼성이라는 화수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세간의 비난과 울분에 눈치를 보며 조용한가 싶더니 제 버릇 개 못주고 2015년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그룹 삼성을 털도 뽑지 않고 꿀꺽 삼키려 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더니 에버랜드 불법상속에선 주주와 투자자의 돈을 털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서는 5천 만 국민의 피땀 어린 국민연금을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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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이 삼성을 장악해가는 동안 국회의원 노회찬은 삼성X파일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부유한 기업 삼성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제조환경에서 병으로 쓰러져 갔다. 삼성의 하청기업들은 삼성의 노예가 되었고, 대기업을 통한 손쉬운 성장에 취한 국가는 미래성장 동력을 위한 신기술 개발은 등한시하고 재벌 봐주기를 위한 세제 개편과 국고보조금지원에 매달렸다. 또한 흉악한 범죄를 돈으로 매수한 언론을 동원해, 애국심으로 덧칠한 뒤 ‘나라경제를 떠받드는 삼성이 건재해야 한다’는 신기루로 국민들의 눈을 멀게 했다.


이재용의 죄목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규범을 무너트려 사회체제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든 죄가 첫 째요,

돈이라면 국가의 법령을 기만할 수 있다는 법치주의를 부정한 죄가 첫 째요,

돈으로 매수한 언론을 통해 상식과 사실 마저도 붕괴시켜 버린 혹세무민의 죄가 첫 째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은 아무리 노력해도 정권을 등에 업은 재벌을 넘어 설 수 없다는 기업가 정신을 파괴한 무기력을 퍼트린 죄가 첫 째요,

행정가와 정치인에게 권력만 쥐게 된다면 재벌의 스폰서를 통해 막대한 사익을 편취할 수 있다는 그릇된 욕망을 조장한 죄가 첫 째요,

국민 개개인의 의미 있고 소중한 삶을 황금과 견주어 초라하게 만든 죄가 첫 째다.


이재용이 구속 뿐 아니라 감옥에 가서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함은 당연하다.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말은 대단한 지상명령인 듯 하지만 마치 법관들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청하는 듯하여 꺼림칙하다. 그래서 없는 용기를 모으고 모아 필부는 외친다.


“이재용을 구속하자!”


두렵지만 접시에 담긴 물 만큼도 안 될 용기를 또 한 번 짜내어 외쳐본다.


“이재용을 감옥에 보내자!”


이재용의 구속 영장이 기각된 오늘, 그래도 나는, 이재용을 구속할 그 날을 기다린다. 


그것이 상식이기에.   





*참고

2003 고합 1300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위반(배임) 판결문




워크홀릭

트위터 : @CEOJeonghoonLee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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