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덮으며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고 있다. 내 나이 낼모레 오십이니 대충 반백 년을 산 것인데, 여태껏 이렇게까지 사회적으로 반향이 큰 공포와 불안감을 동반한 감염병 사태는 처음 본다. 사스와 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두 달 가까이 극한의 사투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빤스를 내리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첫째 가는 빤쓰쑈는 역시 존재감을 내뿜는 야당이다. 민주 사회에서 정부여당을 감시, 견제하는 야당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다. 오죽하면 ‘야당’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opposition party’겠나. 반대, 항의, 그거 하라고 있는 거다. 그래도 어느 정도라는 게 있지. 반대, 항의, 감시, 견제와 혐오, 증오, 저주, 육포는 전혀 다른 영역이잖나. 물론, 자유한ㄱ... 아니지, 미래통합당이 태생부터 썩었기 때문...이지만 또 그게 그렇지마는 않아요. 우리나라 권력구조 자체가 승자독식이라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뭐 또 이래저래 골치 아픈 게 많지만 그건 여기서 다룰 얘긴 아니니까 일단 차치하고.

 

뉴시스.jpg

출처 - <NEWSIS>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때부터 여태껏 근 두 달을 앵무새 마냥 ‘중국 봉쇄’라는 메시지 하나로 버티고 있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이 그렇다.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며, 생각할 뇌가 있다. 어느 특출난 사람이야 두 달 동안 주야장천 ‘중국 봉쇄’라는 녹음기를 들으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타악! 치며 새 세상이 열리고 삼라만상의 깨달음을 얻으사 득도의 길에 올라 악의 기운을 적극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겠다만, 그냥 우리처럼 삼시 세끼 밥 먹고 똥 싸고 이틀에 한번 자위나 하며 사는 무릇 중생들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라는 노멀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통합당이라고 이걸 모를까.

 

한겨레.jpg

출처 - <한겨레>

 

 

우직하게 하나의 메시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프레임 설정 측면에서 좋은 전략이다. 백종원 선생도 잡다한 메뉴는 빼고 한두 가지 대표 메뉴로 승부를 보라잖냐.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조건과 방역 환경에서 시의성도 없고 효과도 불확실한 대안(?) 하나로 두 달을 우려먹는 건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다. 통합당의 처지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가만히 아닥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데 또 딱히 씨부릴 말도 없으니 그냥 “중국에게 굽신거리는 문재인” 이거 하나로 쭈욱 가는 거다. 근데 이 우직한 전략에 주류 언론이 붙어 장단을 맞추고 가락을 넣어주니 그 미련한 메시지가 황금알을 낳았다. 여론에 솔찬히 먹혀든 거다.

 

두 번째 빤스 공개의 주인공은 바로 그 북 치고 꽹과리 울려주는 작당들이다. 조국 사태에서 낱낱이 드러났듯이, 대한민국 언론의 광기 어린 작태는 코로나 국면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조국을 까는 이들은 ‘조적조’(조국의 적은 어제의 조국)라고 놀리던데, 조선일보야말로 ‘조적조’의 원조맛집 아닌가. 여기에 중앙과 동아, 한경 등의 활약상은 또 어떤가. 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메르스 사태는 개인위생을 안 지키는 미개한 시민의식 탓으로 돌리더니 코로나 사태 때는 정부의 무능과 사회주의 정책 탓이라니. 이 판국에 끝까지 ‘우한폐렴’을 못 버리는 조선일보의 눈물겨운 순애보는 애잔함을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비장미(오우삼 감독의 전매특허, 흰 비둘기 날리는 그거 있잖아 그거)까지 담고 있다.

 

200311 dd.jpg

딴지만평<조중동물원>

 

세 번째 빤스쑈의 주연은 바로 ‘종교단체’다. 국민 밉상으로 등극한 신천지는 앞으로 국내에서 영업이 쉽지 않을게다. 하지만 신천지라는 기괴한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종교단체’라는 존재와, 그 덩치와,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대형교회들은 사회적 우려와 방역당국의 간곡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 조옷대로 고집을 피우며 일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거 어쩔 건데?

 

그리고 아아 대한의사협회. 의협은 이익단체다. 사단법인으로서 해당 업계 종사자인 회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코로나 정국은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그들로서는 큰 장이 선 격이다. 자신들의 나와바리 안에서 전 국가적이고 글로벌적인 이슈가 터진 거다. 의협에게 코로나 사태는, 여론의 지지를 얻고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추후 정부의 의료정책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런데 우리 불세출의 회장님, 의협 또는 의료계의 정당한 주장마저 온통 가리고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욕을 처 잡숫는 해괴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0000025713_001_20191001131139692.jpg

시사IN 제560호 ‘고난의 행군-강성대당 건설 中

 

 

끝으로 마스크. ‘중국 봉쇄’에 이어 등장한 이슈가 ‘마스크’다.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마스크 수급 문제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바로미터다. 누군가는 마스크를 사재기해서 떼돈을 벌려고 하고, 누구는 구하기 어렵다며 문재인 욕하는 당위로 써먹고, 누구는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처럼 여기며 공포에 떨 것이다. 또 누구는 묵묵히 방역당국의 안내를 숙지하며 적절히 구매하고 이용한다. 그리고 나는 패션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면 내 못생김이 조금이라도 가려지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지하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왜 남의 마스크가 그리도 더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옛말에 남의 마스크가 더 커 보인다거나 사촌이 마스크를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아직도 ‘중국 봉쇄’와 ‘마스크’ 이슈로 아웅다웅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마스크 수급 문제야말로 언론의 자기부정의 극치다. 마스크 수급이 이슈로 떠오르기 전인 1월 중순부터 신천지 신도로 인한 확진자 급증이 시작되기 전까지, “마스크보단 손 씻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방역당국의 안내에 따른 기사가 주류였다. 또 국경 봉쇄는 정책 판단의 영역이다. 그리고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 실효성은 제각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초기에 공항과 항만을 열되 입구를 좁혀 디테일하게 따라붙는 방역조치가 더 효율적이란 당국의 판단도 상당히 근거 있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정확한 예측이 힘든 상황에서 방역분야뿐 아니라 경제교역 등 다른 분야도 염두에 둔 종합적 고려가 필요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정책 판단은커녕 기본적인 일조차 안 했던 정부를 운영한 인간들이 목소리 높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한겨레11.jpg

출처 - <한겨레>

 

그리고 내가 솔까 경제에 대해 뭘 알겠냐만, 누가 그러드만. 대부분의 경제 위기는 금융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인데 이번 경우는 실물경제 자체가 멈춰 서니 금융이고 나발이고 답이 없다고. 나야 일 년 열두 달 늘 빨간불을 켜고 살지만, 자영업자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의 곡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보는 요즘이다. 내가 징짜 욕을 안 하고 싶었는데 싯팔좃팔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 영세 자영업자든 일용직이든 취약계층이 다 죽어자빠지게 생겼는데 거따대고 들이미는 정책이랍시고 뭐? 법인세 인하랑 최저임금 인하? 야 이 (삐-) 창발적으로 빡침을 고취 시키는 (삐-) 같은 영장류야! (삐-) 개념을 드라이브스루해서 챙겨도 모자를 판에 별 미친  (삐-삐-) 이만희 손목시계 같은 게, 주접을 추수하고 자빠졌네 개 (삐-삐-삐-) 같은 놈들. (편집자 주: 욕지거리 남부럽지 않게 하는 편집자도 태어나 처음 듣는, 신세계의 비어와 속어가 다량 함유된 관계로, 독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부득이 음성처리합니다.)

 

다 좋다. 이제껏 살펴본 것들은 그냥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상수다. 그렇게 안고 가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 사회는 과연 진일보할 것인가. 야당은 매와 같은 눈으로 정부의 삽질을 비판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 언론은 흘러넘치는 가짜 뉴스 속에서 진위를 판별해 쓸데없는 불안감을 잠재우고 올바른 정보를 유통하며 사회적 공기로서 기능할 것인가. 종교단체는 자신들이 믿는 신앙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윤리를 조화롭게 운용할 것인가. 내게 묻는다면 ‘아니오’라 답할 것이다. 쟤들이 저렇게 살아온 게 어디 작년 상반기부터인가. 쟤들은 거의 평생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태생적으로 저렇게 살아왔다.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디스토피아적인 전망만 있는 것인가. 그 또한 아니다. 나는 이번 코로나 사태의 과정을 보며 ‘시민’을 봤다. 어찌 보면 ‘재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몇몇 또라이들은 어쩔 수가 없다. 숨기고 거짓말하며 오만 군데를 돌아댕긴 신천지 신도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줄을 오랜 시간 섰는데 약국이 2분 늦게 열었다고 난동을 피운다든지, 지하철에서 쓰러지며 생쑈를 하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라든지, 그런 애들은 세상 어디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자연법칙이다. 인간의 힘으로 쉬이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패닉에 빠져 마트 몰려가서 휴지와 생필품을 쓸어 담지 않고 (국내에선 팔지도 않지만) 총알을 사서 쟁여놓지도 않고 방역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적극 협력하며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무엇보다 손 씻기에 열심인 ‘시민’들 말이다. 외신들의 대한민국 방역 극찬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런 ‘시민’들 아니겠나. 국뽕의 진짜 주인공 말이다.

 

연합.png

출처 - <연합뉴스>

 

까놓고, 전 국민의 지문 인식된 주민번호 시스템, CCTV와 GPS를 통한 동선 파악, 오랫동안 병영국가의 전체주의에 길들여진 국민 성향, 인력을 갈아 넣는 구조에 익숙한 사회 분위기 등이 현재 사투를 벌이는 방역 시스템의 큰 자산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썩 맘에 들지는 않는 구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큰 난리에도 불구하고 여타 큰 동요 없이 외려 미담이 속출하는 가운데 무난하고 우직하게 버티고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 또한 경탄의 박수가 나올 법한 대단한 자산임이 분명하다.

 

나를 포함한 이런 ‘시민’들의 성숙한 역량의 확인이, 이번 코로나 사태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리고 자랑할만한 풍광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는 2017년 독일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다.) 이 사회적 연대의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대로 시민사회에 축적되고 녹아들어 갈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태 진정 후 냉철히 ‘복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저 진상들 또한 바로 이런 성숙한 시민들의 진일보에 영향을 받아,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그런 소박한 바람을 품으며 오늘도 30초씩이나 빠득빠득 정갈하게 손을 씻어본다. 빠득빠득... (삐삐-) (삐삐-) (편집자 주 : 으아아악)

Profile
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