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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경찰국가 미국을 까발려주마

 

2000.6.05. 월요일
딴지 국제부 전문기자 민영돈

 

80년대 말 야그다. 영국의 유명한 시사 주간지 Economist "전두환이라는 잉간은 지적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저돌적인 군바리로서, 한국판 피노체트."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판 피노체트라.. 피노체트가 얼마나 악질이었길래 전두환의 원조격으로 비교 당했을까.

어쨋든 피노체트가 집권했던 칠레나 전두환이 집권했던 울 나라나 지금은 모두 민간정부가 들어섰는데, 지구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이 오리지날 군바리 독재자 피노체트가 모처럼 신문 지상에 나왔다. 이렇게...

 


군 생활 65년에 총사령관 25년, 대통령 17년, 종신 상원의원…  "내 명령 없이는 나뭇잎 하나도 못 떨어질 껄.." 하고 큰 소리 뻥뻥 마구 권력을 휘둘러대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그가 이제야 칠레 국민에 의해서 처벌받을 모양이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뭐, 이런 단어들이 슬그머니 똥꼬를 비집고 나왔다.

하지만, 버뜨...

기사를 읽고 난 본 기자, 똥싼 후 뒤처리를 안 하고 바지춤을 올렸을 때의 그런 찜찜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기둘리시라. 이제부터 그 이유를 얘기해볼라니깐.

 

 만행을 저지른 독재자







 
어째.. 저 표정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쥐? 박통이 쿠테타후 짓던 바로 그 표정말여..

 

 

 

 

 

1973년 9월 11일 아침 칠레 공군은 대통령 궁을 전격적으로 폭격했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거다. 당시 대통령은 기관총을 들고서 집무실에 끝까지 남아 처절하게 저항하다 사망하였다.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자유주의 전통의 틀내에서 국민을 사회정의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권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앞에서 말했던 악질 군바리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집권하는 순간이었다. 

군부의 반란은 1주일 여에 걸친 내전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아옌데 대통령을 포함해 약 3만 명이 학살된다. 이윽고 권좌에 오른 피노체트는 좌익분자 소탕이라는 명분 하에 반체제 인사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의회를 해산시키는가 하면 정당활동을 금지시키는 등 공포정치를 휘두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지? 

근데 이 피노체트라는 넘은 거기에 한술 더 떠 집권하는 동안 사망자만 3천여 명에 실종 1천여 명,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추방 100만 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폭압통치를 행했다.

이 넘은 잔머리까지 잘 굴려서, 90년 대선에서 패배하여 민간 정부에 정권을 이양할 때까지 그 동안 자행한 모든 잔학 행위를 스스로 사면해 버렸다. 그뿐이랴. 퇴임 직전에는 개헌을 통해 98년 3월까지 총사령관 직을 보유하고, 이후에는 종신 상원의원이 되도록 장치까지 마련할 만큼 졸라 얍삽한 넘이었다. 

 

 한 스페인 판사의 기소

하지만 1998년 10월 신병 치료차 런던을 방문한 피노체트는 한 스페인 판사의 요청으로 영국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된다. 그리고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 협정과 유럽 테러 협약에 따라 피노체트의 신병을 인도해달라고 요구함으로써 이후 세계적 관심을 끈 피노체트 재판이 시작되게 된다. 

그러나 1년 반 동안 계속된 구속과 재판 뒤에, 건강상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인도주의적 이유를 내건 영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피노체트는 본국으로 송환되었고, 이후 독재자 단죄라는 당시 국제적 요구 또한 수그러들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당시 그를 기소한 스페인 판사 발타사르 가르손의 기소내용이다. 가르손의 기소 내용에선 피노체트의 혐의를, 

 

ⅰ) 지난 73년부터 83년까지 군사통치 기간 중에 벌어진 400여 명의 스페인인 피살·실종사건 가운데 구체적 증거가 수집된 80여 건과 

ⅱ) 이른 바 콘도르 작전(Operation Condor)으로 불리는 좌익 진압 작전과 관련된 것

 

으로 한정했다. 특히 가르손 판사는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군사정권들이 똘똘 뭉쳐 좌파 때려잡기 작전으로 공동 수행한 콘도르 작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었다. 칠레를 오가며 군사 정권을 비판하던 무수한 유럽인들이 이 악명 높은 콘도르 작전으로 희생됐기 때문이다.

 

 

 암호명은 콘도르

문제의 콘도르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70년대 당시 남미는 좌·우익의 대립이 한창이었는데 특히, 친미 국가들인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6개국에는 군사 독재 정권이 득세하고 있었다. 정권유지에 골몰하던 이들은 긴밀한 상호 협조 체제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각국 정보기관들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써 이를 현실화하게 된다.

콘도르(안데스 대머리 독수리)는 73년 칠레 군사 쿠데타 이후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자행된 마르크스주의 테러리스트들을 뿌리뽑기 위한 암살·납치공작을 가리키는 암호다. 이 공작을 주도한 핵심기관은 칠레의 비밀경찰 격인 디나(DINA).. 

콘도르는 표면적으론 반공과 좌익진압이라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실은 각국 반체제 인사들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암살·납치공작을 하는 이른바 남미의 테러 협조 시스템이었다.

 

 

 

 

 

 

 

 

비밀해제되어 세상에 알려진 FBI문서

 

 

 

 

 

 

 

지금 와서 문제가 된 것은 98년 말 피노체트가 아직 영국에 붙잡혀 있을 당시에 비밀 해제된 76년 9월 28일자 미 연방 수사국(FBI)의 비밀 전문때문이었다. 이 문서가 스페인 판사가 제기한 피노체트의 콘도르 작전 관여 혐의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로서 받아들여진 거였다. 근데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서를 통해 당시 콘도르 작전의 중심에 있던 칠레의 DINA와 미국 CIA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존재했음을 확인하게 된 거다. 

또한 이를 계기로 콘도르 작전의 진행 과정을 미국이 면밀히 파악하면서 배후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즉 이 문서는 미국이 DINA의 요인 암살, 납치 활동 등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물증이었던 거다. 

그런데 미국은 피노체트 체포사건을 계기로 스페인으로부터 DINA의 테러활동과 관련된 기밀문서의 공개요청에 받게 되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해왔다. 미국이 콘도르의 활동상황을 인지한 것은 물론 깊숙한 커넥션을  갖고 있었음이 드러날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칠레의 쿠데타와 그 이후

이보다 앞서 98년 11월에 비밀해제된 CIA 기밀문서엔, 한술 더 떠 미국이 지난 73년 쿠데타로 무너진 살바도르 아옌데의 반미 좌파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쿠데타 공작을 한 사실이 담겨있다. 

그런데 미국은 왜 자기나라도 아닌 칠레의 쿠데타에 음흉스럽게 관여한 걸까?

그 당시 사회주의자였던 아옌데의 대통령 당선은 칠레의 우익 진영뿐만 아니라 미국도 당황케 하는 사건이었다. 미국은 아옌데 정권의 출범이 곧 구 소련과 쿠바가 중남미 정복을 시작한 징후로 받아 들였던 거다. 실제로 공산권이 중남미를 정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들이 정복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성급한 판단때문에 미국은 칠레군 장교들을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칠레 뿐만 아니라, 남미에서 자행된 미국의 오바질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피노체트 친미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남미를 연계하는 반미 좌파 조직을 뿌리뽑기 위해 또 다른 정책이 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지원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쿠데타 이후를 감시하는 남미정책, 바로 콘도르였던 거다.

 

 남미의 경찰국가, 미국

70년대는 냉전체제의 절정기였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 소련과 대결을 벌이던 미국은 특히 자신의 텃밭인 남미에서 벌어지는 반미주의적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마침 1970년 합법적인 국민투표로 출현한 칠레의 아옌데 정부는 당시 미국 소유의 세계 최대 구리광산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독점하던 산업들을 국유화하여 경제를 재건하려는 의욕을 나타냈고, 이에 대해 미국은 신생 정부의 성격을 가늠해보기도 전에 소련의 도전으로 간주, 민간정부 전복에 착수했던 거다. 

결국 한 나라의 주권과 인권보다는 자국의 정책과 이익이 우선한다는 미국의 목표가 칠레에서 구체화한 셈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지구를 지킨다며 오바하는 미국의 지맘대로 국제경찰 행위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통해 칠레의 민주주의를 파괴했으며, 칠레 국민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거다.

 

이 즈음에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게 과연 남의 일인가 말이다. 

80년대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봐라. 80년대 초 미국의 보이지 않는 지지를 등에 업고서 온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폭력적으로 제압하며 탄생되었던 군바리 정권을... 

피노체트, 전두환, 미국... 

17년간의 독재 정권 속에서 짓밟힌 칠레 민주주의의 비극이 사실상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거다. 
 


 

 


이제 본 기자가 피노체트 단죄에 관한 기사를 보고 찜찜함을 느꼈던 이유를 말할 때가 온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의 운명같은 건 바뀔 수 있다는 극단적인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서서히 지난 시절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피노체트 단죄는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자들은 반드시 죄값을 치르도록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새로운 국제질서, 즉 뉴 인터내셔녈리즘(신국제주의)이 자리잡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국제사회가 무모했던 지난 냉전시기를 참회하는 첫 출발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왜 피노체트만 처벌받아야 할까? 미국은 왜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냔 말이다. 피노체트의 배후에 있던 미 국무장관, CIA국장 그리고 죽은 미 대통령은 왜 논의 선상에서 빠져 있는지에 대해 문제의 신문기사는 답하고 있지 않는 거다. 그러니 본 기자 이 신문기사를 읽으며 찜찜해 할 수밖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제3세계 민주주의를 탄압한 넘들, 세계 평화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약소국의 인권과 자유를 짓밟고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한 넘들, 바로 미국넘들의 뼈아픈 자기 반성과 책임자 처벌이 있기 전에는 말이다.

 

 

 

 

 

 

 

 

딴지 국제부 전문기자 민영돈 

 

(msavvy@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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