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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천수를 위한 변호 - 이천수에겐 입을 열 권리가 있다

 

2009.7.1.수요일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울 것이다.
– 볼테르

 

필자는 철학가 부류의 격언을 말머리에 써놓는 일을 내키지 않는다. 남의 권위에 의지해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이거나 괜한 허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별수없이 그 권위를 빌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는 말이니 말이다.

 

이천수를 변호하기 위해선, 필자 자신부터 그가 잘못한 부분을 명확히 해야만 했다. 이천수를 둘러싼 여론의 계기판이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선 현 상황에서 필자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편견을 아무리 없애보고, 부풀려졌다 여겨지는 뉴스들의 핵심만 추려본다고 해도,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이란 가정 하에선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무조건 감싸줄 수가 없다.

 

전남에 오게 된 경위부터 생각해보자. 박항서 감독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천수가 무적(無籍) 선수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에이전트나 구단 사이에 설사 어떤 꼼수가 있었더라도, 인간적으로 박 감독만큼은 이천수의 이적 가능성을 포함한 모든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어야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조항을 거짓말로 흘리고 나서는, 사실 박 감독을 보호하려고 그랬다는 건, 설사 그 의도를 이해한다고 해도 결국 뒤늦은 땜빵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천수가 누군가. 무슨 신인 유망주도 아닌 판에 그런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는다 생각했던 걸까.

 

사태가 이 지경이 될 줄이야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쨌든 이 일이 이천수 본인 때문에 시작됐고 김봉수 코치나 전남 구단의 탓만은 아니라고 하면, 우리 문화에선 일단 먼저 숙이고 보는 상황이 전개되는 게 맞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 내려와서 돌 맞아줬다면 당시 정국이 정부 비난 일색은 아니었으리란 분석도 있다. 사회 통념에 따라줄 필요도 있단 얘기다.

 

억울한 심정도 있을지 모른다. 스포츠 찌라시의 기자들은 다 이천수를 잡아먹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 선수 중에서 이천수보다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본 사람이 있는가. 이번에야말로 그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보도해줄 것이라 믿어서 억울함을 호소한 걸까. 게다가 이번 사건에선 스포츠지의 표현이 과격하다 할 순 있어도, 공중파부터 블로그까지 모든 언론이 주의를 기울이는 마당이라 사실 왜곡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이천수 이적 파동 소식은 인터넷에 널려있다. 소식 모르는 분도 다들 쉽게 찾아볼 수 있으리라. 여기서 얘기하려는 핵심은 우리가 미디어에 속고 있든 아니든, 국민 정서상으로 이천수는 싸가지 없는 놈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거다. 그 명찰을 박은 대못은 꽤 오래되었고, 이번에 다시 한번 호된 망치질을 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 명찰이 오로지 오해에서 비롯됐다곤 생각지 않는다.

 

이야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싸가지 없다는 이천수는 매장당해야 마땅한 것인가?

 

 

 

당신이 어느 회사의 회사원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을 무지 싫어하는 상사와 동료들이 주위에 바글바글하다. 게다가 당신은 성격도 모날대로 모나 돌출행동을 일삼았다. 평판이 안 좋은 당신이 마침 외국 지사로 발령이 나게 됐는데, 이 문제 때문에 다시 당신은 부서 사람들과 대판 싸움을 벌였고, 어렵사리 당신을 부서에 넣어준 상사는 곤란을 겪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싸가지 없는 당신을 이 부서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제 대답을 해보자. 이 상황은 합당한가?

 

경우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런 사람은 조직 내에 늘 있게 마련이다. 연줄이 좋아서, 아니면 알고 보니 회장님 셋째 아들이어서 자리를 꿰차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생존의 기준, 즉 어떤 사람이 회사 조직에서 짤리지 않는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바로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싸가지 없더라도, 업무 능력이 있다면 쉽게 해고될 수 없다. 만약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면 주위 평판쯤이야 깡그리 무시되고 오히려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어쩌면 당신 주위에 그런 사람 하나 정도는 있을지 모르겠다.

 

이천수에게 위 경우를 대입해보면 해답이 간결해진다. 이천수의 싸가지가 어떻든 간에, 축구 실력이 있다면 그는 매장당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이천수는 실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K리그에선 사기 유닛으로 불리는 선수다. 최소한 아시아권에서 그가 출중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맨유의 호나우도는 싸가지가 없어도 통한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대로 이천수를 그와 견줄 수 없다 해도, 아시아 리그에 국한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게 아니라면 늘 팀플레이를 해친다던 그가 K리그에서 보여준 기량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천수가 유럽 빅리그를 고집하지 않고, 그의 기량이 쇠퇴하지 않았다는 조건이 만족되면, 그는 결코 축구계에서 매장당할래야 매장당할 수가 없다. 이것은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당장 올해의 기록이 8경기 4골 1도움이다. 이천수의 돌출행동이 가장 알려진 곳도 우리나라겠지만 그의 멋진 플레이를 가장 많이 기억하는 곳도 여기다. 술 먹고 야구 배트로 사고를 쳐도, 경기력만 갖고 있다면 다시 뛰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선수가 반성을 모른다면 강제로라도 반성을 시켜 뛰게 할 곳이 스포츠계다. 중요한 건 선수의 기량일뿐 다른 면이야 어쨌든 부차적이란 것이다. 이천수가 영원히 K리그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주장엔 그래서 이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축구 문외한인 필자도 추측할 수 있는데, 하물며 언론이 이를 모를 리 없다(모른다고 하면 말 그대로 찌라시인 것이고). 이 점에서 이천수의 변호 가능성이 생긴다. 이천수가 비판 받아야 한다면 앞서 말한 업무 능력의 측면, 즉 그가 축구 플레이에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최소한 그가 받고 있는 도덕적 비판은 기량의 평가와 병행되어야 한다. 당신이 정말 이천수를 비판하고 싶다면, 운동장 밖뿐만 아니라 운동장에서 뭘 못했는지 집요하게 추궁해 찍소리도 못하게 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진짜 비판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그런 비판의 능력을 우리 모두가 갖출 순 없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하고 언론이 필요하다. 가령 전남 드래곤즈와 박항서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어떤 것이며, 거기에 이천수의 플레이가 제 역할을 했는가, 하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인가, 주위 선수들과 일으켰다는 불화는 경기장에선 어떻게 불거졌는가 등의 정보가 우리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짐작하시겠지만 그런 정보는 언론을 통해 유포되지 않는다. 아마 회원제 축구 커뮤니티에서나 분석되는 내용일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이천수에 대한 비판이 인상(印象) 비평도 아닌 인상(人相) 비평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애초에 밉살스럽게 찍힌 게다.

 

사실 여부를 떠나 룸싸롱에서 고주망태가 되었든 연예인과 사귀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선동렬은 등판 전날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기도 했으며, 연예인과 어울리고 또 결혼까지 한 선수들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언제는 그게 문제이던가. 그렇다면 이천수가 술을 즐기든 가수랑 사귀든 그건 사생활이고, 중요한 건 경기장에서 주사를 부렸는가 아니면 멋진 프리킥을 날렸는가일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도 이천수의 싸가지 없음에는 그 사생활의 영역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이건 불공평하다. 문희준이 록을 한다고 하면 그 음악으로 평가받는 게 마땅했지만, 이미 붕어 아이돌로 낙인찍힌 그에 대한 비난의 핵심은 뷁과 오이 세 개였듯이 말이다.

 

선수로서의 이천수에 국한시켜보면, 그 스스로도 플레이가 실망스러웠던 날은 자책을 거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료들이 못해서 팀이 졌다는 따위의 말을 한 이천수를 필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2006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뛰지 못한 이동국을 위해 대신했던 골 세레모니는 이천수가 과연 싸가지 없는 선수인가를 되묻게 만든다. 이 장면에서 혹시 새삼스럽지 않은가. 제멋대로 돌출행동을 일삼는 이천수와, 동료를 위해 이역만리에서 세레모니를 대신한 이천수 사이의 간극이.

 

이를 토대로 자주 억울함을 호소했던 이천수의 편을 들자면, 언론은 지나치게 경기장 밖에서의 그를 비난해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경기장 안에서의 플레이와는 분명 구분돼야 한다. 그러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 비난들은 한데 뭉뚱그려지며 싸가지 없는 이천수의 이미지를 순환시켜왔다. 선수들도 사람이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면식 없는 선수들은 그를 해괴한 종자쯤으로 백안시했을지 모른다. 이천수의 좋은 플레이가 보도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누구든 정식 이력서보다 화장실 뒷담화의 평가가 더 그럴듯한 법이니, 이천수로서는 찬사와 비난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도 왜 결국 자신은 싸가지 없는 놈이 될 수밖에 없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책임은 물론 언론이 져야 한다. 진정한 비판 문화를 갖지 못한 건 우리 모두의 공통 사항이지만, 지금까지도 선정적인 기사를 생산하고 있는 쪽은 독자들이 아니다.

 

 

처음의 이야기를 다시 환기해보자. 이 이야기는 이천수의 경기 외적인 잘못들을 변호하고자 시작한 게 아니다. 이적 사건에 대한 이천수의 잘못과 어리석음은 비판 받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입을 열면 열수록 돌아오는 건 비아냥일 뿐이다. 우리 스포츠 업계의 미숙한 일처리까지 이천수의 탓은 아니라 해도, 그는 한국 축구계의 스타다. 흔히 일벌백계(一罰百戒)라 하는데 그 일(一)을 맡는 사람이 바로 엘리트, 1인자, 그리고 스타 아니던가. 언론의 집중포화가 불만이어도 꼭 언론 잘못이라고만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 비아냥과 집중포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천수는 입을 열어야 한다. 또 그럴 권리가 있다. 그것은 축구 영역에서의 그의 잘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채, 다른 영역에서의 이미지를 가공하고 투영시킨 언론의 잘못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 우리의 경솔함이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처럼 필자도 이천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의 이미지가 거짓이라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 사회인 이천수는 사회 통념대로 그저 입 닫고 자숙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축구 선수 이천수는 이미지로서가 아닌 축구장에서의 선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어야 하며, 거기에 다른 요소가 개입된다면 항의해야만 한다. 화술이 부족하거나 오해를 사더라도 그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어쩌면 필자도 이천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입을 다물라는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최대의 수단 – 글을 쓰는 일이 되겠지만 – 을 동원해 변호할 수 있다. 그리고 축구에 대한 이천수의 의견이 대체 무언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현재로선 더욱 당연하지 않을까.

 

아홉친구 (ninthpa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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