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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7. 금요일
카인


 

최근 MTV의 웹매거진인 MTViggy.com에서는 여러 개의 노미네이션 기사를 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밴드 20 노미네이션이라던지 하는.


지난 9월 19일에는 Beverly Brian의 이름으로 [The 12 Best New Female Emcees Dominating Mics Everywhere]라 는 기사가 떴다.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며 각자의 씬에서 자리매김을 한 여성 MC 12명을 미국 본토에 소개하는 기사였다. 순위제는 아니고 12명을 뽑은 것뿐이다. 12명의 국적과 활동 국가 또한 다양하다. 말레이시아, 케냐, 나이지리아, 영국, 칠레, 미국 각지 등등.


이 기사에서 다룬 12명의 여성 MC 중 12번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한국의 윤미래 a.k.a T다.


 


 

기사는 윤미래를 한국 힙합의 여왕으로 소개한다. 훌륭한 MC이면서 동시에 소울풀한 싱어 능력도 겸비하고 있다고 극찬하며 그녀의 육아법도 살짝 칭찬한다. 나왔다 하면 한국의 음악상을 휩쓸고 무대에서 마이크만 쥐면 장난이 아니라고 추켜세운다.


정말 그런가? 내 대답은, hell-yeah!


 


역대 윤미래 영어 랩 베스트 모음




데뷔 : 업타운 UPTown


 

정연준이 라는 남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흑인음악을 수련했고 조만간 자신의 모국 한국으로 돌아가 가요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자신과 같은 교포 출신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페인계로 스페인어가 가능한 까를로스Carlos가 합류했고, 뒤이어 스티브Steve를 끌어들였다. 남성미를 담당할 멤버는 이 둘로 충분하다고 본 정연준은 여성 멤버를 원했고, 타샤Tasha라는 혼혈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윤미래였다.


정연준은 단번에 윤미래를 픽업한다. 당시 나이 17세. 취미로 DJ 활동을 했던 아버지 덕인지 그녀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리듬 이해력과 자신의 플로우를 갖고 있었다. 충만한 재능의 윤미래는 노래도 가능했다. 정연준은 아이돌 그룹으로 재편 되고 있는 90년대 후반의 한국 가요계를 꿰뚫어보고, 이렇게 자신의 그룹 업타운의 기본 라인업을 만들었다. 때는 97년이었다.


 


업타운의 데뷔곡 '다시 만나줘'
윤미래의 초기 랩과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정연준의 작곡과 보컬을 음악적 핵으로 하여 3인의 MC가 랩과 노래를 하는 업타운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해가 지나갈 수록 업타운은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고, 윤미래의 포지션은 점점 다른 멤버들을 압도해갔다. 그녀의 플로우는 해가 갈 수록 원숙해졌고 노래의 감정 표현력 또한 점점 좋아졌다. 정연준과 기획사는 연기자 지망생이던 박탐희를 객원 보컬로 넣어 윤미래를 보좌하게 하여, 윤미래를 업타운의 중심으로 삼을 정도였다.


업타운은 드렁큰타이거와 함께 당시 초기였던 한국 힙합에 본토 출신 교포라는 피를 불어넣었다. 정 연준의 가요는 힙합과 90년대 알앤비에 기초한 작법으로 랩을 수용한 형태였고, 드렁큰타이거는 가요 작법 따위 집어치우고 정통 동부 힙합 음악을 내세웠다. UPT & DT는 기념비적인 연합앨범 [1999 대한민국]에서 교포 출신들의 플로우를 유감 없이 보여줬다. 그 중에서도 윤미래는 독보적이었다.


 


업타운 초기 라인업, 17세의 윤미래. 방송에선 19세라고 속였다.




재기 : 타샤니 Tashannie


 

2000년이 됐다. 업타운의 까를로스와 스티브가 대마초 혐의로 입건되었고 유죄로 판결나 국외추방되었다. 업타운은 산산조각 났지만 윤미래는 무죄 판결로 재기의 발판을 얻었다. 드렁큰타이거와의 친분으로 윤미래는 한국 오버그라운드의 최초 힙합 크루 무브먼트(Movement)의 오픈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영어 가사만 쓸 수 있어 한국어 플로우 능력이 떨어졌던 윤미래는 허니패밀리, 김진표 등과 교류하며 자신의 한국어 플로우 능력을 끌어올렸다.


 


이 그룹명은 한국에 왔던 보이즈투멘(Boyz2Men)이 지어줬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윤미래의 재기는 타샤니라 는 2인조 아이돌 그룹으로 시작됐다. 애니Annie 이수아와 짝을 이룬 윤미래 a.k.a 타샤는 준수한 자신의 랩과 노래가 잘 포장된 가요로 재기에 성공했다. 정연준의 지원을 받았던 타샤니는 앨범 하나 이후 사라졌고, 윤미래 a.k.a. 타샤는 자신의 이름을 T로 축약한 뒤 솔로 알앤비 앨범을 발매해 대성공을 거뒀다. 궤도에 오른 윤미래의 싱어 능력이 검증된 것이다.(이수아 a.k.a. 애니는 안무가로 직업을 바꾼다)


싱어로서의 능력을 보인 1, 2집과, MC로서의 능력에 집중한 EP를 내자 업타운 시절 소속사였던 월드뮤직이 소송을 걸었다. 업타운 시절 대마초 사건에 연루됨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소송은 5억이었고, 다행히 원만한 해결을 보였으나 한동안 윤미래는 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홀로서기는 참 어려웠다.


 




01~02년에 연달아 나온 그녀의 세 앨범
1집 [Time Goes By]
EP [Gemini]
2집 [To My Love]


 


1집 [As Time Goes By]에 수록된 '시간이 흐른 뒤'
그런데 동영상에 나오는 사진은 2009년 싱글 [떠나지마]


 


윤미래의 대표곡, 'Memories (Smiling Tears)'
EP [Gemini]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Intro)
Yo if I fall two times I come back on my third
절대로 포기 않지 and that's my word
if I fall five times so I come back on my sixth
조금만 더 가면 돼 포기 않지 난 아직
If I'm knocked 7 times I come back on my eight
칠전팔기 내 인생 끝까지 가볼래
Now knowledge of self thru the pain in this world 난
절대로 포기 않지 and that's my word


 

Chorus)
All the memories of hate and the lies
don't you know eventually we'll pay the price
all the hopes and the dreams will survive

eunite we got to keep our faith alive


 

verse 1)
지금 21살의 어린 나이로 바깥 세계로
시기와 배신 그리고 검은 손길의 유혹
일찍부터 맛본 계기로
나의 어린 시절 순수함은 사라지고 또 My hopes and dreams are go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몽우리져 눈물이 되어 흘러 그냥 흘러
집 옥상으로 올라가 소리질러 미친 듯이
하지만 메아리는 내게 혼자라는 비정한 말로 돌아와 비수로 날아와
멍하니 밑을 내려다봐 갑자기 날고싶은 생각이 나
자유를 향해 순수를 위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나의 소중한 시절을 찾아 저 높은 우주에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 그냥 끝까지
잃어버린 기억속에 찾아가 또래 친구와 같이 놀고 싶어
오직 바라는 것은 넓은 동산에 누워 한가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


 

* Chorus repeat


 

verse 2)
끊어진 전기 꽁꽁 얼은 내 방구석에 내
배게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내


스무 번째 생일날 난 간절히 기도했지

신은 어딨냐고 왜냐고 책임지지 못할 날 왜 이 땅에 보냈냐고

가파른 험한 내 인생의 산은 너무도 높고

아무리 올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막다른 골목길에 길을 잃은 나의 뒤에 그림자마져 지쳐

I take a step a slower 모든게 난 지겨워 모두의 미소도 무서워 but

let go my pipe dreams that robbed me like a viking

이대로 포기하긴 너무 일러 Risin'

이불을 걷어차고 어루만져봐 저 야윈

엄마의 얼굴을 바라봐 저 별들을

무심코 똑딱거리는 저 초침의 바늘을

거꾸로 돌려 이제 달려나가 저 앞으로

 

* Chorus repeat


 

verse 3)
ya! So there you have it ma whole life with all it's memories

I'm tryna figure out how to set all of my pain free sometimes
I wish that I could turn the hands of time back so I could

rewrite the wrong and put ma life back on the right track
되찾고 싶어 잃어버린 나의 날개
난 할래 끝까지 나의 삶을 찾아갈래
If I'm knocked seven times I come back on my eight
칠전 팔기 내 인생 끝까지 가볼래





자리매김 : T


그녀의 곁에 서정권 a.k.a. Tiger JK가 접근했다. JK는 업타운 대마초 사건 때 엉뚱하게 까를로스와 스티브가 공범으로 JK를 지목하는 바람에 연루되어 수모를 당했다. 구치소 독방에 몇 주간 갇혀서 유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인격적 모독을 받았으며, 법정에서 검사의 비아냥을 듣고 참아야 했다. 윤미래는 자신의 팀메이트에 의해 곤욕을 치른 친구 JK에게 늘 미안했고, JK는 윤미래를 여성으로서 맘에 들어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2006년, JK는 동료 DJ Shine과 결별하고 드렁큰 타이거라는 팀 브랜드를 홀로 책임진다. 동시에 그는 기존 기획사로부터 독립하여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는데, 회사 설립에 윤미래가 참여한다. 정글 설립 직전, JK가 앓아오던 지병인 척수염으로 결국 쓰러진다. 윤미래는 소송 이후 갈 곳 없던 자신을 JK가 챙겨준 대로, JK의 병수발을 들며 정글의 설립과 운영을 도운다. (이후 JK의 아버지는 아들의 척수염 완치에는 윤미래의 지극한 보살핌이 있었다고 며느리를 극찬한다.)


 


3집 [Yoonmirae]


 

마침내 2007년에 윤미래의 3집이 발매 된다. 3집은 여러 모로 명작이다. 싱어와 MC로서 대가가 된 윤미래가 자신의 힙합과 알앤비를 마음껏 실험했다. 기존 정연준의 음악적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완전히 벗기 위해, 윤미래는 언더그라운드의 비트메이커들에게서까지 곡을 받는다. 정글을 통해 손이 닿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의 진정성을 공급 받고, 기존의 메이저 가요에서 알앤비의 대중성을 공급 받은 윤미래의 3집은 판매량이 높지 않았으나 그녀가 거목임을 증명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더 콰이엇(the Quiett)이 프로듀싱한 타이틀곡 '검은 행복'은 상당한 완성도였다.


 


3집 [Yoonmirae]의 타이틀 '검은 행복', 윤미래가 노래와 랩을 모두 한다.
뮤직비디오에서 꼬마 윤미래와 자기 음악을 완성한 윤미래를 둘 다 볼 수 있다.


 

verse 1)
유난히 검었었던 어릴 적 내 살색
사람들은 손가락질 해 내 Mommy한테
내 Poppy는 흑인 미군
여기저기 수근대 또 이러쿵 저러쿵
내 눈가에는 항상 눈물이 고여
어렸지만 엄마의 슬픔이 보여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에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난 내 얼굴을 씻어내
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
까만 피부를 난 속으로 원망해
Why O Why 세상은 나를 판단해
세상이 미워질 때마다 두 눈을 꼭 감아
아빠가 선물해 준 음악에 내 혼을 담아
볼륨을 타고 높이 높이 날아가 저 멀리, La Musique!
...and goes on & on & on...


 

hook)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위로해주네
So you gotta be strong,
you gotta hold on and love yourself.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일으켜주네
So you gotta be strong,
you gotta hold on and love yourself.


 

verse 2)
시간은 흘러 난 열세 살 내 살색은
짙은 갈색 음악은 색깔을 몰라
파란 불을 알려줘 난 음악을 인도해
서로에 기대어 외로움을 위로해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찾아온 기회
Microphone을 잡은 난 어느새 무대 위에
다시 만나달라 하며 음악과 작별해
열세 살은 열아홉 난 거짓말을 해야 해
내 얼굴엔 하얀 화장 가면을 써 달래
엄마 핏줄은 OK 하지만 아빠는 안 돼
매년 내 나인 열아홉 멈춘 시간에
감옥에 갇힌 나는 내 안에 기대
너무나도 참혹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음악이 그립다고
탈출을 시도해 NO 붙잡힌 나는
밤마다 기도했고 드디어 난 이제 자유의 몸, It’s on!


 

hook)


 

bridge : T's pop)
My sweet little girl tasha,
I guess I can give you a little skit on life
I guess talk about the good times and the
bad times you gotta be able to blend
both of those in your life you have to know,
and you have to believe with all you
heart that things will always get better.
So just keep your head up keep your faith and be strong
never let nobody tell you that you can't do it
because it can be done.


 

hook)


 

outro)
Sometimes it's hard to see all
the good things in your life.
And I know it hurts sometimes
but you gotta be willing to try.
Sometimes it's hard to see all
the good things in your life.
But you gotta be strong and you
gotta hold on and love yourself.





결혼 : 서조단 어머니


2007년, 윤미래와 JK 서정권은 결혼한다. 다음 해 아들 서조단 군이 태어난다. 산후조리와 영아 양육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2009년에는 싱글을 발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활동은 주로 JK를 보좌하는 정도로 그쳤다. 남편의 활동이 궤도에 오르니 육아에 방점을 두기로 한 듯 보였다.


 


서조단 군의 미래가 심히 기대 된다.


 

2011년 현재에는, 그간 간간이 예고해왔던 그녀의 네 번째 솔로 앨범이 곧 발매될 예정이다. 기대해 본다. 아주 심히, 크게, 과장하면 미친 듯이.


크게 기대하는 이유는, 그녀는 명성과 경력에 비해 앨범이 많지는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워낙에 크다.


일단 그녀는 Lil Kim릴킴, Missy Elliott미시 엘리엇과 같은 bitch 컨셉을 잡은 적이 없다. 릴킴은 남자를 홀려서 지배하는 특유의 bitch 컨셉으로 일세를 풍미했고, 수많은 청중과 평론가가 그녀의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bitch라는 캐릭터 스웨거는 릴킴 일파에게는 힙합의 마초성을 여성성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였고, 그런 맥락에서 릴킴은 전설적이다. 윤미래는 이 길을 따르지 않았다.


본토의 여성 MC들이 개척한 경향성은 크게 두 갈래다. 릴킴, 미시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의 마초적 발현인 bitch 컨셉이 하나. 다른 하나는 윤미래가 선택한 길, 힙합/랩의 마초성을 체화해버려 여성성을 지우는 방법이다.


윤미래가 싱어로서 노래할 때는 알앤비의 감미로움을 잘 살린다. 그러나 마이크를 고쳐잡고 랩을 하기 시작하면 윤미래는 공격적인 플로우를 쏟아내는 전사의 이미지로 돌변한다. 이런 바에야 그녀를 '여성' MC라고 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2007년 T의 솔로 콘서트 배너. 싱어와 MC, 두 양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윤미래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리고 최초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여성' MC다. 그것도 너무 묵직하게. 결국 그녀를 뛰어넘거나 피해가는 것이 후발 여성 MC들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윤미래가 최초였기 때문이다. 윤미래보다 조금 늦게, 허니패밀리에 합류하며 데뷔한 미료의 플로우 또한 윤미래와 비슷한 경향이었고 미료의 전임자였던 수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미래를 위시한 한국 여성 MC의 선구자들은, 남성 성향의 랩 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공법을 택하여 전투적인 플로우를 구사했다. 이는 그대로 이후 한국 랩에서 릴킴과 같은 여성성의 발현이나 기타 다른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




과제 : 그녀를 넘어서라


 

윤미래 이후 수많은 여성 MC들이 명함을 내밀었다. 그들 대부분은 '제2의 T'를 기치로 내걸었고, T라는 한 글자를 결코 넘지 못하고 내민 명함을 회수한 채 사라져갔다. '윤미래 짝퉁이네?' 이 한 마디의 파괴력은 10년간 무적처럼 무수한 MC 지망 여성들을 격파해왔다.


 


그녀는 이미 한국에서 여성 MC를 평가하는 기준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미 윤미래 스타일의 플로우에 익숙한 한국의 리스너들은 탈윤미래를 은근히 원하면서도 윤미래 스타일에 길들여져 왔다. 탈윤미래의 경향을 보이는 뮤지션은 완성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박살났다. 윤미래 플로우의 완성도가 지나치게 높았고, 덩달아 듣는 귀가 높아져버렸다. 마초적인 장르인 힙합답게, 여성의 랩은 가혹한 기준을 강요 받았다.


나아가 윤미래 스타일은 메이저 가요 시장에서도 충분한 음악적 영향력을 발휘해버렸다. 그녀 이후 상업적 성공을 한 걸그룹의 랩 담당들의 랩을 들어보라. 윤미래의 톤과 플로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여유까지는 없는 아이돌의 랩은 윤미래를 모범으로 놓게 되었고, 이는 곧 지배적인 경향이 되어버렸다.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에서 몇 년간, 아무도 윤미래의 아성을 넘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윤미래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는 200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가시화되었다.


첫 번째는 비슷한 스타일 덕에 라이벌이 될 뻔 했으나 경력과 실력에서 한 수 밀려버린 미료와, 쥬얼리 박정아의 전속 래퍼였던 하주연이 었다. 이들은 아이돌 가요에 완전히 소속되면서, 윤미래와 상업적 노선을 달리하는 전략으로 비교를 피해갔다. 더불어 이들은 각자 브라운아이드걸스와 쥬얼리의 음악에 철저 적응하였고, 특히 하주연은 bitch 컨셉의 적절한 활용과 파티 음악에 어울리는 플로우를 이용해, 완벽한 pop MC로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미료.
허니패밀리의 객원 MC로 데뷔해, 멤버 수정이 탈퇴하여 그 후임으로 합류하였다.


 


쥬얼리의 하주연.(그녀의 허리는 21인치)
박정아의 객원 래퍼로 소속되어 있다가 쥬얼리에 합류하였다.


 

언더그라운드에도 하주연과 비슷한 방법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리미(Rimi)라 는 MC다. 리미는 진실되지는 않은 스웨거로 보이지만, 여하튼 하주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bitch 컨셉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녀의 캐릭터는 섹스를 즐기며 남자를 쉽게 아는 경향을 보인다. 그녀의 음악 자체도 무겁기보다는 가벼움의 요소가 더 많다. 그러나 첫 공식 앨범 [Rap Messiah]의 실망스러운 완성도와, 자신을 디스한 아마추어 리스너에 대한 고소 사건으로 현재는 활동이 뜸하다.


 


리미(Rimi).
첫 앨범의 실패를 딛고 반드시 제대로 된 bitch 스웨거를 보여주길 기원한다.


 

e.Via는 탈윤미래 시도 중에서 가장 특이한 케이스다. 메이저에서 발매된 이비아의 첫 앨범에는 랩의 마초성이 거의 삭제되어 있다. 이비아는 자신의 앨범에서 가장 유의미한 구절로 [왜 랩은 꼭 멋있어야 해요?]라는 부분을 꼽는다. 이비아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아이돌 음악에서 귀여운 목소리로 어설프게 랩을 하는 부분들에 주목했고, 내퍼(Napper)였던 자신의 이름을 이비아로 바꾸면서 귀여운 스타일로의 변신을 꾀했다. 이는 분명히 의미 있는 시도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이비아의 음악은 리미의 앨범만큼이나 완성도가 낮다. (내게 좋은 동생인 이비아에게는 미안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이비아 본인과 앨범 프로듀서 김디지 본인은 현재까지의 이비아 음악의 질이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오히려 그렇게 되도록 기획했다고 하니 이후의 선택을 주시해볼 가치는 있겠다.)


 


이비아에겐 분명 귀여움 외에도 다양한 무기가 숨어있다.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기만 하면 된다.
(여자 아웃사이더 이딴 컨셉은 때려쳐야만 한다.)


 

이 모든 시도가, 윤미래가 가지 않은 길을 택하려는 시도다. 윤미래와 같은 길을 택한 사람 중엔 주목할 사람이 없냐고? 없다. 그들은 죄다 윤미래의 아성에 일찌감치 박살났기 때문이다.


때문에, 윤미래를 한국 힙합의 여왕이라고 소개한 MTViggy.com의 문구는 진실이다. 아직 그녀의 아성을 위협할 사람은 없다. 단 하나도. 이미 여성성을 벗어던졌기에 남/녀 불문하고 그녀와 같은 스타일에서 같은 반열에 오를만한 사람은 기껏해야 그녀의 남편 Tiger JK뿐이다.


그녀의 뒤를 쫓는 후배 뮤지션들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어쨌든 이런 뮤지션이 한국 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리스너인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다.


소울 뮤지션 John Legend는 내한 공연을 오면서 한국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왔으나, 자신의 공연 오프닝을 맡은 윤미래를 보고 극찬을 하며 한국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다. 최소한 어느 고양이 사료보다는 국격을 한참이나 드높이지 않았을까.


 


존 레전드와 윤미래


 

마무리는 2010년 M.net 아시아 뮤직 어워드에서의 여성 MC들의 퍼포먼스 무대. 왜 윤미래가 최고인지 알게 된다. 걸그룹 멤버 둘은 당연하고, 미료와 하주연마저도 압도해버린다. (미료는 프리스타일로 랩을 하지만, 살짝 말렸다. 안타깝다.)


 


 

P.S. MTViggy.com의 12명 여성 MC 기사의 주소.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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