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712E44D554C06F11C.jpg

 

어느새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단어는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 같은 단어들과 맞물려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IT 기술을 재료로 인공지능의 양념을 좀 뿌려 '공유경제'라 칭하는 서비스와 상품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쏘카 같은 카셰어링 업체들의 영업행태를 보면 기존 렌터카 업체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대여 시간을 좀 더 잘게 쪼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사업의 기본 구조는 다르지 않다.

 

공유경제는 아래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성립된다.

 

1) 여러 사람들이 어떤 자산을 ‘공동 소유’한다.

 

2) 여러 사람들이 공동 소유한 자산을 공동 사용한다.

 

3) 공동 소유한 자산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분담한다.

 

4) 공동 소유한 자산으로 생산된 ‘잉여’는 공동 소유 혹은 분배한다.

 

소유권이건 사용권이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면 그것은 더이상 공유가 되지 못한다. 이런 경우는 그냥 ‘임대’라고 하거나 ‘빌려준다’라고 한다. 실제 따지면 전혀 공유가 아님에도 공유라는 이름표를 다는 것은 이 단어가 주는 미래 지향적이고,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하고 친환경적인 듯한 느낌 때문이다. 한마디로 광고 선전용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기준으로 또 다른 공유경제 모델이라 말하는 카카오 카풀을 헤집어 본다.

 

 

1. '카카오 카풀' 공유경제일까?

 

5bcd4521210000de03c988d7.jpg

 

카카오는 영리하게도 '카풀'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카풀’ 역시 ‘공유’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기 쉬운 단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카풀’의 상식적인 이해는 내 차에 같은 지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모아 차를 꾸욱 채워 함께 출근한다는 의미다. 카풀에 동참하는 이들은 대부분 직장 동료이거나 같은 지역 주민들이고. 기름값을 분담하는 선에서 금전 거래가 있더라도 카풀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 이는 없다. 비록 차를 여러 사람이 공동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카풀을 통해 발생하는 ‘잉여’가 누구 하나에 독점되지 않기에 우린 ‘카풀’을 공유경제의 한 단면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카카오 카풀은 아니다. 퇴근길 남는 자리에 돈 받고 태워준 건 정확하게 영리를 추구하는 영업 행위다. 이걸 경제학적 워딩으로 옮기면, '남아도는 차의 사용 가치에 자신의 노동력을 더해 이동 서비스를 판매하였다'는 말이다. 택시랑 같은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소리다. 택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개인 사업자가 시나 도에서 시행하는 택시 면허 시험을 볼 필요 없이 카카오라는 사유 기업에 크루(사업 운전자)로 등록한다는 것이다. 카카오 카풀이 말하는 크루는 면허 없는 개인택시 사업자인 셈이다.

 

‘카풀’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의미 있게 들리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지역(사무실이나 공장이 밀집한 지역)의 직장으로 이동하는 표준화된 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카풀’이 가진 이런 이미지를 간파하고 얼른 마빡에 '카카오 카풀'이라는 간판으로 달아 자신들이 자가용으로 개인영업을 하는 이들과 소비자들 사이에 거간꾼이 되어 수수료를 떼먹는 장사꾼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희석하고 있는 것이다.

 

 

2. 자율 자동차 시대가 오면 공유가 될까?

 

shutterstock_416963170.jpg

 

우버나 카카오 카풀의 다음 단계, 운전자 없는 자율 자동차로 운영되는 때는 진정 ‘공유’가 될까? 더더욱 아니다. 그때는 운행되는 자동차의 소유는 회사일 테니 이용자는 운전자 없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일 뿐, 공유와는 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지금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카카오 카풀’이 공유경제에 조금 더 가깝다. 가깝다는 의미를 오해 마시라. 둘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데 카카오 카풀이 오른쪽에 서 있어, 오른쪽 저 멀리 협곡 건너 맞은편 절벽 위에 있는 공유경제에 가깝다는 소리니까.

 

다시 말하지만 둘 다 공유경제 아니다. 이들이 붙인 ‘공유경제’는 마케팅 수사에 불과하다. 이들이 공유라면 버스 회사도 택시 회사도 아주 오래전에 공유경제를 실천하고 있었다.

 

공유경제의 전위에 서 있는 기업인들과 자본가들은 환경까지도 고려한 지속 가능성을 거론하며 ‘공유경제’의 윤리적 혹은 도덕적 정당성을 강변한다. 그렇게 지구 환경의 미래 그리고 인간의 보건 문제까지 걱정한다면, 승용차 형태의 자율 자동차가 아니라 버스 혹은 지하철 같은 대규모 대중교통 수단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승용차 형태의 자율 자동차를 이용한 서비스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형 대중교통 수단보다 환경적으로 취약하고 에너지 소비 측면으로는 비효율적이다. 단위당 이송 인원이 적어 더 크고 긴 도로가 필요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소형 자율 자동차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결국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 소비자의 편리를 극대화한 서비스를 지향할 텐데, 이건 인간의 보건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현대 의학이 내린 현재까지의 잠정적 결론은 일정 정도의 육체적 불편함이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 육체적 불편함을 우리는 ‘운동’이라고 부른다.

 

버스나 지하철 같이 일정한 노선을 운행하는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어쩔 수 없이 육체적 불편, 걷기를 감내해야 하므로 대중교통은 사용자의 건강에 일조하는 측면이 있다. 인간을 직접 움직이게 할 뿐 아니라 수많은 승용차들 때문에 쓸데없이 넓었던 도시의 도로 면적을 축소하여 시민들에게 환경친화적인 휴식/운동 공간으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도로가 줄면 매년 멀쩡한 도로를 뒤집어 다시 깔면서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는 일도 줄어들 테고.

 

 

3. 공유경제의 끝, 독점

 

카카오 카풀, 우버, 에어비앤비같이 ICT 기술과 실물경제를 접목하여 ‘공유경제’라는 이름표를 단 사업들은 결국에는 그 사업 구조상 독점으로 귀결된다. 이들이 말하는 ‘공유’란 예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서 썼던 물건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쓰게 만든다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공유경제’는 실물경제 생산 위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1610_carfactory_main.jpg

 

자동차의 경우, 사용 가치로만 따진다면 현재 자동차 수요의 반, 어쩌면 ⅓ 수준으로 수요가 줄게 되고 당연히 생산 규모나 시장 크기도 줄어든다. 이 이야기는 현재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이미 공급 과잉을 훌쩍 넘어선 상태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걸 이해하면 GM이 왜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려고 하는지, GM과 포드가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니 MaaS(Mobility as a service)하며 자기들은 더 이상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니라고 우기는지,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자율 자동차 더 나아가 플랫폼 사업 모델(Platform Model: 수많은 사용자들의 거래를 매개하는 장을 만들고 거래에 따른 수수료로 영업하는 사업 형태. 구글과 애플이 운영하는 앱스토어가 대표적인 플랫폼 사업 모델임)을 기반으로 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로 탈바꿈하려고 진력하는지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마저 우버 같은 이동 서비스 공급업체로 변신하려 할 때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경영 임무는 사용자들을 초기에 대거 확보해서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시장을 독점해야 그나마 지금의 회사 규모(물론 매출 규모, 시가총액 같은 화폐가치로만 매겨지는 규모다. 공장시설이나 자산규모는 더 이상 의미 없다)를 유지하거나 조금이라도 성장시킬 수 있다. 앞으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 중 어떤 업체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은 업체는 경제블록 혹은 국가 단위를 호령하는 독점 기업이 될 것이다.

 

카카오 카풀이 말도 안 되는 공유나 애매한 소비자 편익을 내세워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도 독점적 지위를 선점하기 위함이다.

 

3392558_psa.jpg

 

최근 트럼프가 힘으로 중국을 밀어붙이는 것도 미국으로 제조업체들을 데려오려는 이유보다, 실물경제와 ICT 경제가 접목된 신잡종 경제에서 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힘쓸 수 있도록 중국의 정보 통신 시장과 금융 시장의 빗장을 풀려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로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단일 시장으로는 가장 큰 시장인 중국 시장이 그림의 떡이 될 것이고, 잘못하면 정말 뒷방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도시화가 50%를 넘어선 중국은 이미 단일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지금까지 중국 시장에서 미국의 ICT 기업이 성공한 예가 없다.

 

물론 셀럽병 중증 환자인 트럼프가 그것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무척 의심스럽지만,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미국의 주류들과 그 주류의 싱크탱크들이 트럼프의 좌충우돌을 그대로 두다시피 하는 것도 중국 시장에서 독점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연막전술로 보인다. 플랫폼 사업 모델의 구조상 일정한 시장을 독점하지 못한 회사들은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로다.

 

현재 우리 곁에 맴돌고 있는 ‘공유경제’라는 유령은 시장 독점의 그림자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의미의 공유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그럼에도 유수의 ICT 기업들이나 대기업, 대자본들도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는 ‘공유’와는 다른 의미의 ‘공유’를 고집하는 것은 무식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뭔가 구린 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유 기업의 시장 독점은 늘 사회적 편익보다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GM과 포드의 선언이 의미 있는 것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들이, 생산 패러다임이 정말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은 생존을 위한 직접적인 생산 활동에서 배제될 것이고 그 속도는 점점 가속될 것이다.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소득을 어떻게 창출할지가 불분명해지는 사회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이행을 돌이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더라도 기업들이 시장 독점을 위해 칭얼대는 것을 다 받아 줄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이행에 대한 보다 넓은 시야와 깊은 이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걸음의 속도를 잠시 늦추거나 멈춰 서기도 해야 한다.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시 위기로 먹고사는 재벌 기업주들이나 보수 언론, 보수학자들은 죽네 사네 할 테지만 그래야 이런 이행에 때문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덜고, 상처를 치유하고, 은근슬쩍이라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신 택시 기사분의 명복을 빈다.

 

 

 

 

편집부 주

 

위 글은 독자투고(링크)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독자투고 및 자유게시판(그외 딴지 커뮤니티)에 쓴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이후, 계좌정보 등의 확인 절차를 거쳐 

깜짝 놀랄만큼의 원고료(소박해서)가 하사됩니다.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기사로 채택된 '무이선사' 님께는 

필진블로그 개설권한이 생성되며

연락이 가능한 이메일 주소나 개인 연락처를 

ddanzi.master@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