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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05. 금요일

꾸물





애들 성적이랑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야 애가 있는 것도, 글타고 숨겨진 애가 있을 리 만무한. 깨끗하다 못해 별 볼일 없는 사생활을 하고 있으니 애들 성적 얘긴 넘어가고. 남들 다 힘들다니까 나도 힘든 주머니 사정으로 보자면 우리는 현명한 소비’라는 걸 해야한다고 한다. 


그니까 지불한 금액에 따른 서비스는 그에 합당한 지 따져보는 게  기본이고 소비자는 그걸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보면 무방한,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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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작년 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와중에 살던 집 계약기간이 끝나서 이사하게 됐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갈 때 인터넷을 신청했는데 보통 인터넷 약정 기간은 3년이더라. 임대차 계약은 2년이고.. 그러다 보니 이사할 때는 인터넷 약정 기간이 1년이 남게 된다. 한 명의 호갱.. 아니 고객이 아쉬운 통신사는 이런 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절하게도 인터넷 이전작업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역시 대기업은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대기업, 공무원은 좋다. 아버지가 그랬다.

 

근데 새로 이사가는 집이 쌔삥으로 지은 데다가 이미 건물 내부에 타 회사 인터넷 회선이 들어오는 구조로 되어있어 무조건 그 회사 거 써야 한다고 그랬다. 그냥 내가 쓰던 인터넷 선만 건물에 있는 막 크고 깜빡거리는 기계에 연결하면 될 줄 알았던 나는 이사하는 집으로 이전해 달라고 그랬다. 접수를 한 다음날 전화가 왔다.

 

고객님 저희 기사분이 이사하시는 댁을 점검해 봤는데 설치가 안 되신다고 합니다.”


? 그냥 선만 꽂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회사 기계가 이미 설치돼 있어서 어려우세요.”


그럼 어떡하죠?”


옥상으로 선 설치해서 창문으로 들어오셔야 하실거에요.”


“… 근데 그러면 창틀을 다 뚤버야 하잖아요? 요샌 다 이중창이라 창틀이랑 해서 많이 뚤부셔야 할 거 같은데.. 게다가 새로 지은 집이라 집주인한테 허락 받아야 하는데요..”


그럼 허락 받고 연락주세요.”

 

당근 허락이 될 리가 없었다. 다시 전화 고고씽.

 

사랑합니다. 고갱님. 상담사 ㅇㅇㅇ입니다.”


저도 사랑…. 아니, 좀 전에 이전 신청으로 통화한 사람인데요. 안된다네요. 어카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방법 외에는 안 되실거 같아요.”


창문으로는 안된다 그러고 저도 책상이 벽 중간에 있어서 창문으로 들어온 선이 한 여름 곧휴가 늘어지듯 들어와서 좀 그런데요..”


? 곧 휴가시라구요?”


아.. 아뇨.. 어쨌든 창문 뚫는 거 아님 안되나요?”


. 어려우세요.”


그럼 해지하면 위약금이 얼마에요?”


잠시만요.. (, 타닥, ) 11만 얼마세요.”


?!! 그렇게 비싸요? 3년 약정에 2년 쓰고 이제 1년 남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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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약금(할인반환금) 계산방식은 그동안 할인 받았던 요금에 대해서 반납하는 것이기 때문에, 3년 약정 후 35개월째 인터넷해지를 한다면 35개월동안 할인 받았던 금액에 대해서 모두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 인터넷해지를 한다면 1년간 할인 받았던 요금 중에 1년치 약정할인금액을 공제한 후 위약금이 청구되기에, 위약금이 가장 적게 나오는 장점이 있고, 인터넷해지에 따른 별도의 사은현금반납도 없을뿐더러, 설치 후 1년이 지난 시점이라면 가입 시 면제 받았던 설치비 33,000원 역시 부담이 없다.


 

위약금 계산해 보니 이 금액이 맞으세요


“…”

 

해당 업체의 인터넷 설치가 불가능한 경우나 군입대, 해외이주, 장기유학 등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 할 경우 위약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검색으로 알아봤다. 그래서 당신네 회사는 창문 뚫고 들어오는 방법 외에는 설치 못하는 거냐고, 그리고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니 설치 불가능한 상황 아니냐, 난 그 위약금 내긴 아깝고 당신네 회사 인터넷이 더 싸고 속도도 괜찮아서 해지할 생각이 없는데, 이 경우는 무조건 내가 위약금을 내야 하는거냐 물었다.

 

그러자

 

아니요. 전 위약금 내시라고 한 적은 없어요. 위약금을 내시고 해지하시거나 위약금이 아깝다면 그냥 다른 회사 인터넷 쓰시면서 남은 1년 다달이 사용료를 납부하거나 창문으로 설치하거나 하세요.”

 

라고 한다.

 

결국 그럼 당신네 회사 인터넷 쓰는 사람들은 방마다 창문에 구멍 나 있겠다.’, 어찌보면 특이한 케이스에 대응도 안 돼 있는거냐.’ 하며 싸워봤지만 소용없었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되는 경우는 위약금 없이 해지 가능하지만 창문으로 설치 가능한데 내 쪽에서 거부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해 들을 수 있었다. (그게 왜 내가 거부하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또 알고 보니 해당 통신사에서 안내하는 세 자리 고객센터 번호는 수신자 부담이 아니라 통화료가 나가는 거였다. 난 그것도 모르고 수십분을 전화로 싸웠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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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이사 한달 후 인터넷 설치로 놀란 가슴이 진정 되기도 전에 또 뭔가 일이 생겼다.

 

별 불편함 없이 사용하던 2G 폴더폰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겨, 마침 그때쯤 출시하는 사과전화 5를 구매하게 됐다. 예약 차수라는 걸 받고 기다리고 있다가 진행상황을 알아 보려 내 예약 정보를 확인해 봤다.

 


?

 


예약된 내용이 없었다. ? 뭐지? 신청한 매장에 전화 해서 알아보니 직원의 실수로 내 정보를 지워버렸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확인돼서 괜찮으니까 다시 복구 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령받기 전날 매장에 찾아가 재차 확인하고 신청서도 미리 작성하는 게 좋을거라 그래서 그것도 작성했다. 근데 신청서를 작성해 주던 직원이 내가 알고있는 한 달 납부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신청서에 적고 있는 게 아닌가?

 

저기요.. 그 금액 맞아요? 제가 확인한 거랑 다른데요..?”


? 스마트폰에는요, LTE라고 인터넷 하는 그런거 금액이 있구요. 잠시만요. (, 타닥, ) 이게.. 얼마에 어쩌구 저쩌구.. (, , 티딕) 네 이 금액 맞아요.”


직원은 내가 쓰던 폴더폰을 만지작 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제가 본사 홈페이지에 나온 요금표 봤을 때는 이게 아니었는데요.”


아닌데.. 이거 맞아요.”


그럼 우선 그건 적지 마시구요 제가 집이 근처니까 집에가서 다시 확인하고 전화 드릴게요.”


“………. 그럼 그렇게 하세요. 이거 ㅇㅇ시까지 정리해서 팩스로 보내야 하니까 그 전까지 전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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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역시 직원의 실수였다.


홈페이지 확인해 봤는데요. 제가 말씀드린 가격이 맞는데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수 십분 후 답장이 왔다. ‘정확히 ㅇㅇ요금제 확인하신 거 맞나요?’ 


그래 씨뱅아!!’라고 하고 싶었지만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 그 매장에서 저한테 두 번 실수 하셨어요. 본사엔 따로 얘기해 놓을게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고갱님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ㅇㅇ할인 적용을 안하고 계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까 맞다면서요? 그리고 전에 다른 사람들 신청서도 계속 작성해 주시던데요.”


“… 죄송합니다. 수정해서 통신사에 다른 분들 보다 신청서 먼저 넣어 드릴게요.”


콜~

 

다음날 핸드폰을 수령하러 출근 전, 매장에 갔다. 순차적으로 개통해서 1명씩 핸드폰을 수령해 가야 한단다. 출근해야 하니까 그냥 물건만 달라고 하고 나왔다. 내 예약 순번으로는 늦어도 당일 저녁까지는 개통된다고 했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출근했고 결국 개통은 되지 않았다. 금요일의 일이었다


다음날 전화를 했다.

 

. ㅇㅇㅇㅇ ㅇㅇ점 입니다.”


어제 핸드폰 수령한 사람인데요. 저녁에 개통된다고 해서 물건만 수령했어요. 확인선지 각선지도 썼구요. 근데 개통이 안돼서 전화드렸어요.”


? 고갱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꾸물이요. 빨리 개통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잠시만요.. .. 고갱님. 통신사에 고갱님 예약 정보가 없다고 그래서 개통이 안됐는데요.”

 

그간의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 .. 죄송합니다. 저희가 따로 빼 놓은 명단에 있긴 있는데요..”


그럼 개통 되나요?”


아뇨.. 통신사는 주말에 근무하지 않아서 월요일에나 개통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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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쓰리

 


거기 매장에서 저한테 억하심정 없죠? 지금 저한테만 자꾸 이러시는 이유가 뭐고, 한번 실수 하셨으면 더 신경써서 관리해야 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것도 그렇고 제가 먼저 이렇게 전화하지 않으면 그 쪽에선 연락 한번 안해주시던데, 오늘 매장 영업하시니까 집에 가기전에 들릴게요.”


“… ..”

 


매장에 들어갔다.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아까 이러이러한 일로 매장 매니저랑 통화했는데 매니저 좀 불러달라고 했다. 직원이 카운터 뒤 사무실에 들어가 얘길하자 헐레벌떡 매니저가 나온다.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됐으니까 왜 이렇게 일이 꼬였는 지 물어봤다. 직원 실수로 예약정보가 지워져서 다시 등록했는데 통신사에 전달되지 못해서 그렇다는 얘기. 그럴 수 있다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매니저는 죄송하다며 핸드폰 케이스며 액정보호 필름 등을 주겠단다.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딴 거 필요 없다고 얘기했다


매니저,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컴플레인은 위로 올라 갈수록 효과적이다. 윗 사람 일수록 컴플레인에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이 많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테이블로 날라주는 알바에게 양이 적다느니 맛이 어떻다느니 해봤자 알바가 음식 더 넣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불러 세워놓고 투덜대 봤자다. 짜장면 시켰는데 늦게 왔다고 배달부에게 뭐라고 해봤자 철가방에서 마술사 마냥 서비스 군만두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 음식점 서빙 알바는 사장한테 전달해 줄 수 있긴 하지만.. 암튼.

 

장소는 다시 매장. 홈페이지엔 본사 전화번호도 나와있지 않길래 매니저에게 본사 연결해 달라고 얘기했다. 난감한 표정의 매니저. 본사가 아니라 명동지점의 담당 부장에게 연결해 주겠단다. 우선은 그러라고 했다.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통화 후, 내용 전달 했으니 부장에게서 전화가 갈 것이라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와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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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그날의 야구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화가 식지 않아서 반쯤 벗어 놓은 바지를 추켜세우며 전화를 받았다. 부장이란 사람이다


구매할 때 사측에서 제시, 약속한 내용이 지켜지지 않은 점, 직원들의 실수와 고객관리 등을 주요 골자로 따져 물었다. 사죄의 의미로 매장 상품권을 주겠단다. 매장에서도 매니저가 상품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본사와 얘기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의 실수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니 원래 그러진 않는데 감정에의 호소로, 사람 대 사람으로 이해해 달라고 부장은 말했다. 실수한 매장에서 주겠다는 상품권이나 부장이 주겠다는 상품권도 결국 매장 직원들을 위한 매장 운영비에서 나오는 것이고, 부장 자신의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했다. 더 받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상품권은 필요 없으니 내가 매장에서 당신들이 그냥 주기엔 아까운, 비싼 물건 두 개를 집이나 회사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걸 당신들이 한 번 올 때 한 개씩 두 번 가져가라고 요구했다. 그게 맞을 것 같았으니까. 본사에는 본사대로 따로 얘기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마저도 그냥 관두기로 했다. '이게 뭐 벼슬이라고...' 그런 생각 때문이었던 거 같다.

 

전화가 하루 이틀 개통이 늦어져 봐야 무슨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나는 연락 한번 없는 고객관리에 결과적으로 두 번이나 매장에 헛 걸음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근데 그걸 직원들, 담당 부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상품권으로 자신들의 실수와 내 화를 무마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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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이 너무 까칠한가?' 몇 번을 되뇌었다. 아니, 난 내가 쓴 시간, 노력, 비용에 응당한 대가를 당연하게 요구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현명한 소비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블랙 컨슈머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 한 사람이야 어쩌다 있는 일이라 화가 나서 그럴 수 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같은 소비자들을 기업의 직원들은 꽤나 자주 상대할 것 같았다. 직원이 뭐라고 하든 딴 말 필요없고 윗사람과 얘기하겠다고 해도, 아니 그 과정에서도 소비자를 상대하는 최전방의 그들에겐 스트레스 일테다. 직장 상사에게 전화 바꿔주면 어느 상사가 좋아하겠냐... 그냥 그 선에서 일처리 못한다는 인상만 심어주겠지기업의 윗 선에선 자신에게까지 일이 오는 걸 절대로 반기지 않을 거고, 그 밑의 직원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처리해야 싫은 소리 안 들을 것이다


말단 직원들은 소비자 응대에 매뉴얼 대로만 대응할 방법 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그 책임을 지게 될텐데, 문제 해결의 범주가 직원이 처리할 만한 권한을 넘어서게 되는 경우에도 그들이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잘해야 본전이겠지만... 윗 사람들은 그 위치대로 할 일이 있겠으나(혹은 다 겪는 과정이라고 해도) 이런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회사라는 조직이 지켜야 할 전통인 것인가



폭언과 욕설은 없었지만 따져가며 얘기하는 내가 참 얄미워 보였으리라.. 나 역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


서비스 품질을 높이던가, 제대로 된 문제해결 매뉴얼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그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언제까지 주먹구구 식으로, 먹고 살기 힘든 젊은이들에게 대기업 직원이라는 명함 하나 던져주고 총알 받이로 내세워서 서로 감정 싸움나는 일을 시키고 앉아있을지..

 

소비자는 정당한 서비스로 보답 받아 마땅하고, 소비자를 대하는 직원들이 최소한의 기본자세를 갖추고 있으면 회사는 합당한 노동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방법에 사람들을 끼워 넣지 말았으면 한다




P.S

시위현장, 집회 현장엔 눈에 보이는 대립관계가 있다. 경찰과 집회자들. 상황이 격해지면 싸움은 언제나 이 두 집단의 문제가 된다. 또 다른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만 싸울 뿐이다.




꾸물

트위터 : @ggu_m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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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를 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