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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04. 05. 금요일

김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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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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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어느날 이른 아침 안산 시외버스 터미널근처 횡단보도에서 북핵 규탄 내용의 플랜카드를 걸어둔 옆으로 멈춰진 낡은 승용차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노년의 남자들이 내렸다. 피켓팅을 하려는 걸까. 집회를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지켜보는 사이에 신호가 바뀌었다.

 

 

북한에서 핵을 터트렸는데 왜 여기서 시위를 하냐는 아이의 질문에 시위하는 모습들을 보여줘야 하는 필요가 있거나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어쩌면 시민단체 활동의 명목을 보여서 지원금을 타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친한 사람들이 하자니까 나온 걸 수도 있고 정말 순수한 애국심일수도 있는 거겠지. 하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시간에 우리가 도청에서 법원에서 미대사관에서 피켓팅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덧붙여 설명을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을 하면 미국이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에 압력을 넣겠지. 원래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도 있고 이제 경제력도 좀 쎄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 대놓고 반항하기에 아직은 찝찝한 미국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자존심이 상하겠지.

 

 

그래도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어딘가에 화를 풀려고 보니 적당한 나라가 일본인 것 같다. 일본이 예전에 중국 침략도 하고 우리나라 독도문제 비슷하게 영토문제도 있으니까. 반일시위를 막 하는 거겠지.

 

 

일장기를 불태우고 대사관에 계란 같은 거 던지고 하는 중국의 반일시위를 보면 일본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테지만 중국 군사력과 중국시장 때문에 싫은 티를 못 내고 꾹 참다가 만만한 한국에다 태극기 불태우고 독도는 일본 땅 같은 이야기도하고 혐한시위도 하고 위안부할머니들 폄훼하는 짓도 하는 거겠지.

 

 

우리나라는 일본에 기술의존도가 높고 러시엔캐쉬같은 곳에 가계부채도 있고 큰 은행들도 일본자본 지분도 많아서 분하긴 한데 일본에다 대고 공식적으로 뭐라 뭐라 할 순 없고, 북한 규탄 시위 같은 거라도 해서 눈을 돌려야겠지.

 

 

북한은 저러다 또 기분 나쁘거나 필요하면 미사일을 쏘던가 핵실험을 할테고 ,,,,,,그러면 또 같은 일들이 반복되겠지. 좀 더 복잡한 속셈들도 있겠지만 대충 그런 것 같다.

 

 

헐 ~ 우리나라만 불쌍하네 하는 말에 그러게 말이다 , 라고 순순히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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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가 전쟁 위기를 쏟아내고 시민의 안보의식저하를 개탄하는 사회지도층인사들의 발언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학교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뉴스를 보았는지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을 걱정하는 아이에게 컴퓨터를 키고 코스피 지수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2000안짝의 숫자가 나왔다. 지난달과 비교하는 그래프도 보라고 했다. 조금 올라 있었다.

 

 

전쟁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외국 자본이 워낙 많이 들어와 있어서 큰 전쟁이 일어날것 같으면 주식이 절반이하로 떨어지고 은지원같은 외국인 자격증 있는 유명인들이 갑자기 출국하기 바빠질거라고 설명했다.

 

 

대충 안심했는지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사실 전쟁이 일어난다해도 생존을 운에 맡기는 것 외엔 딱히 할수있는게 없다. 아이들까지 답이 안 나오는 전쟁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전쟁은 뚜렷한 목적을 두고 치밀한 계획과 계산으로 시작되고 폭력과 분노의 확산으로 계획과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의문을 가진 힘없는 사람들의 절규와 신음으로 끝맺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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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선고가 나오고 한 달쯤 지난 2월 26일 미국 다국적 기업인 파카 하니핀에서 화성 장안공단에 3000만 달러를 들여 신규공장을 투자하고 글로벌 사장단 전략회의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갖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정권 구석구석에 박힌 김엔장의 위대한 힘만으로 생각하기엔 조금 찜찜했던 대법선고의 의문이 풀렸다. 항상 그렇지만 힘없는 자의 정의 따위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다. 그나마 전쟁위험은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는 위안이 든다. 씨발

 

 

대법 선고에서 패소한 뒤에 심한 무력감과 공허함과 더 이상 하소연할 곳 없는 우울함으로 5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집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밖에서만 몰래 피운다. 지난 싸움을 정리해서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서 다음에 이런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에 참고문건이라도 남겨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쩔 수 없는 구석으로 몰려서 가진 것 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무력감을 갖게 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지는 싸움임을 뻔히 알면서도 개미똥구멍 만한 희망하나를 마음에 품고 처절해서 외면 받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미리 힘 빠지게 할 필요는 없다 싶었다.

 

 

인터넷에 글을 쓸데 다음 블로그를 메모장처럼 사용하고 딴지 게시판에 복사해서 올린다. 가뜩이나 느린 타자로 게시판에 쓰던 글이 허무하게 알 수 없는 이유로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이후에 생긴 버릇이다. 오랜만에 다음에 로그인을 했더니 응답하라 마사오라는 글에 블라인드조치가 취해져있었다. 사랑의 교회에서 명예훼손으로 걸었다. 그 크신 사랑과 정성에 감복해버렸다. 죽었다 살아나는 신체부위를 생각하며 사랑의 교회의 사랑을 받아드렸다.

 


응답하라 마사오 - 카인 편집본 (링크)


 


조금 더 이기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몸뚱이가 가장 큰 재산이었다는 걸 지난 교통사고 이후 발목 뼈가 저려서야 느꼈다. 삼개월 8만원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틈틈이 운동을 한다. 노동과 운동은 전혀 같지 않다. 병아리 눈물만큼 몸이,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

 

 

부여산성 산행에 1년쯤 전에 한번 참가했던 더불어 숲이라는 모임에서 여행 문자가 왔다. 이천 딸기농원 체험 여행이라고 참가비와 입금 안내하는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총무인 예금주이름이 대법 선고 일주일전에 회사측과 합의서명을 한 봉현이었다. 더불어 숲은 시흥시 통합진보당의 느슨한 성격의 하위 모임이었다. 개인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절 수 없이 선택한 방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봉현이를 아끼는 그쪽 누군가의 코치가 있었던 듯 하다. 남국이에게 방구가 잦으면 똥이 된다고 몸조심을 종용하고 결혼할 여자를 소개시켜주던 선배가 있었던 것처럼 봉현이도 그런 선배가 있었나 보다. 그래도 챙겨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구나하는 1그램 부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형 때문에 힘들어도 투쟁한다던 말이 생각나서 한동안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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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비 문제로 전화가 왔다. 해고자들의 신분이 사실상 타인임을 선고받은 대법이후 어정쩡한 관계와 월 3만원에 달하던 조합비가 부담되던 사람들의 문의가 있었다. 그래도 인간적인 끈이나마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월 5천원이라도 납부 할 의사가 있느냐 질문을 한다는 전화를 받고 그러마 대답을 했다. 몇 명이나 동의하더냐는 물음에는 대답을 얼버무린다.

 

 

한동안 뜸하던 본사의 노무인사담당이사가 파카한일유압에 며칠간 드나들더니 다시 구조조정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다시 희망퇴직 공고가 붙었다. 조직의 힘이라는 건 쉽게 무너지지않는 거라며 해고자들을 위로하던 성규형님이 희망퇴직에 서명을 했다. 해고자들을 위로하며 자기시간을 빼서 식사준비를 도와주던 대원이형도 희망퇴직을 했다. 그리고 파카한일유압과 노동조합에서 희망을 볼 수 없게 된 몇몇이 더 썼노라고 허탈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이후 몇몇은 산별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로 적을 옮겼다. 기업노조에 있다가 이 기회에 더러운 꼴 그만보자고 희망퇴직을 신청한 누군가에게는 나가고 싶으면 사직서 쓰고 나가라는 비릿한 대답을 들려주는 회사 측 답변이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결말을 예상했었기에 맥없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렇게 많이 안타깝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라도 국운이 쇠하면 무너지고 망하는데 노동조합이 무너지고 망하는 것 따위야 흔한 이야기이다. 다음에 밥이나 먹자하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노동조합을 지킨다고 결혼패물은 진작에 팔고 둘째아기 출산준비로 첫째아이 돌반지를 팔았다던 임원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은사람들은 더더욱 소수가 되고 소수가 된 약자는 강자의 편에 서고 싶은 다른 약자들에게 공개적인 괴롭힘을 당하기 쉽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이 독해지던가 무너지던가 한다. 우리의 뜨거웠던 마음들은 너무 긴 시간에 처음엔 용광로처럼 서로를 녹여내다가 원심분리기처럼 각자의 형편과 성향대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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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그룹은 작년 한국에서 4000억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지배구조는 외환위기 이전 재벌의 구조본과 닮았고 사업구조는 형식적인 법인체계와는 별도로 유기적이다. 다른 극악한 자본에 비하면 파카한일유압 법인의 비교적 합법적인 노동조합 죽이기는 거의 성공했다.

 

 

안보위협과 경제위기로 더더욱 삶이 팍팍해진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명맥만 겨우 남은 일본을 닮아갈 공산이 크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자본주의가 극으로 발전하고 그 부조리가 서로 간에 피를 부를 만큼 처절해질 때에나 그 피범벅 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사회구조가 형성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되도록 그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해고투쟁 1400일을 넘긴 포레시아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뜬금없이 든다. 한참 힘들 것 같은데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채로 찾아가봐야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만 들게 할 것 같아서 마음으로만 응원한다.

 

 



덧> 이런 우울하고 찌질한 이야기를 굳이 적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남은 뒷이야기를 하는 것도 긴 시간 관심과 응원을 해주던 분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다.

 

 

 

 

 

 김범우